예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성모 신심에 대한 공경은
17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의 노력으로 점점 보편화되어,
예수 성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1942년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게 하였다.
처음에는 8월 22일에 선택 기념일로 지냈는데, 1996년 경신성사성 교령에 따라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의무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에 예수님의 부모는
축제의 관습에 따라 소년 예수님과 함께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기간이 끝났지만 성전에 남아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에게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신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본디 계셔야 할 곳에 머물러 계셨던 것이다. (복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모, 곧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예루살렘에서 나자렛으로 돌아가던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부지런히 걸어가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 문득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다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가서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성전에 계신 예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 대부분이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 자기 식구들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가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됩니다.
‘나는 가정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우리 가족은 화목하지 못할까?’
‘나는 우리 가정이 성가정이 되게 해 주십사고 부지런히 기도했는데,
왜 우리 집은 아직도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든다면 그동안 자신이 걸어오던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예수님을 찾으려고,
걸어가던 길에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던 것처럼 그렇게 돌아서야 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곧 남편을, 아내를, 자녀를, 부모를 예수님으로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성가정이란 예수님을 자기 식구로 맞아들이는 것이고,
이는 곧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또 다른 예수님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안젤라 씨는 신혼 초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남편의 잦은 외박에 신경이 예민해졌던 겁니다.
직장 때문인 줄은 알고 있지만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느 날 무심코 성당에 갔다가 마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서 엄청 화를 냅니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겁니까?’
남편이 오지 않는 날이면 늘 그렇게 성모상에 화풀이를 했습니다.
설마, 성모님께서 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소리를 듣습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던 성모상에서 “참아라!” 하는 소리들 들은 것입니다.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며
살아 계시는 성모님을 그 순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찌 그 한 사람뿐일는지요?
성모님을 통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이기에 입을 닫고 있을 뿐입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상대를 탓하지 않는 어머니의 목소리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몇 안 되는 성경 구절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이렇듯 열려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성모님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믿는 이들이 희망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