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비 오는데 들헤 가랴
윤선도
비 오는데 들헤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마히 매양이랴 장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난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리라
♣어구풀이
-들헤 : 들에.
-사립 : 사립문, 사립짝을 달아서 만든 문, 시비
-마히 : 장마가
-장기 : 쟁기
-사래 긴 밭 : 이랑이 긴 밭
♣해설
-초장 : 비가 쏟아지는 날에 들판에 나갈 것 뭐 있냐? 사립문을 닫아 버리고
소에게 여물이나 주어라.
-중장 : 장마가 계속되겠느냐? 쟁기와 연장들을 쓸 수 있도록 손질하여 두어라.
-종장 : 비 오는 동안은 쉬다가 비가 개거든 나아가 이랑의 긴 밭을 갈거라.
♣감상
이 시조는 윤선도의 문집인 「고산유고(孤山遺稿)」에 실려 전하는
「산중신곡(山中新曲)」중 ‘하우요(夏雨謠)’ 2수 가운데 하나이다. 비
오는 데에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야 할 농촌 생활의 정경을 노래
하였다. 이것은 또한 정치 생활을 풍자한 것으로, 당시의 당쟁 중에
처해야 할 선비의 자세를 읊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초장의
‘비’와 ‘사립’을 각각 ‘당쟁’과 ‘자연’에 비유하여 ‘당쟁이 심한데 벼슬
길에 나가겠느냐? 전원에 묻혀 수양하며 지내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중장의 ‘마히 매양이랴’를 ‘당쟁이 늘 계속되겠느냐’로, ‘종장의 개난 날
보아’를 ‘당쟁이 그치는 때에 벼슬길에 나가기 위하여 마음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자’로 ‘사래 긴 밭’은 ‘때거 되는 국가 백년대계를 이룩하여
보자’라고 각각 해석할 수 있겠다.
♣작가소개
윤선도(尹善道, 1587~1671) :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시호는
충헌(忠憲), 선조 20년 한양에서 출생. 광해군 4년에 진사시(進士試)에 급
제하고, 그 뒤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 직간을 하다가 모함에 걸려 경원·영덕
·삼수·광양 등지로 귀양살이를 다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풀려나서
고향인 해남(海南)으로 돌아왔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수군을 모집하여
서해상으로 북진하던 중 항복의 비보를 듣고 되돌아와 보길도(甫吉島)의 절
승을 발견하고 그곳을 여생을 마칠 땅으로 삼아 산수(山水)를 즐김. 벼슬로
는 호조좌랑(戶曹佐郎)·한성서윤(漢城庶尹)·세자시강(世子侍講), 성주현감
(星州縣監) 등을 지냈다.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금쇄동(金鎖洞)에서 시작
(詩作) 생활을 하다가 현종 12년 부용동에서 85세를 일기로 사망. 우리
나라 시가사상 단가의 제1인자임. 문집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으며,
‘견회요(遣懷謠)’·‘우후요(雨後謠)’·‘산중신곡(山中神曲)’·‘산중속신곡(山中續新
曲)’·‘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