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국보 제1호, 숭례문 by 알쓸수집가
< 모셔온 글입니다>
1. 국보 제1호, 숭례문
위치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가는 방법 : 1, 2호선 시청역 혹은 4호선 회현역에서 도보로 가까이에 있음
숭례문은 지금의 서울의 기초가 된, 조선의 수도 한양의 4대 정문입니다.
일제의 잔재이지만 통칭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 숭례문은 1396년, 태조 5년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숭례문은 남문이었기에, 4대문 중에서도 그 규모가 크게 지어졌습니다. 완성된 후 세종, 성종 등 여러
시대와 임금을 거쳐서 보수 공사를 했죠.
숭례문은 현존하는 한국 성문 건물로서는 규모가 가장 큽니다. 북한에 '보통문'이 있다면, 남한에는
'숭례문'이 있다고 할 정도이죠.
4대문에는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이 있습니다. 이중
돈의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서 허물어졌고, 숙정문은 북문의 특성상 작게 지어졌고 그
존재감도 미비했습니다. 남은 것은 흥인지문과 숭례문이었고, 이 둘은 그 상징성을 인정받아 국보
제1호, 보물 제1호로 각각 지정됩니다.
2. 중앙부에 홍예문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이 자리
숭례문은 중앙부에 홍예문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 위에 섰습니다.
석축 윗면에는 높이 1.17m의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렸으며, 건물의 외주 바닥에는 판석을 깔았습니다.
3. 일제강점기, 허물어질 뻔한 것을 막다
숭례문은 한양의 정문이었기에, 이전부터 백성들의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죠.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가 한양에 올 때 황태자가 머리를 숙이고
숭례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은 성문을 부수려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백성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고, 일제는 숭례문을 허물지 않고 숭례문 서쪽 성벽을 허물었습니다. 이후에도 일제에
의해 동쪽 담까지 헐어졌지만, 다행히도 문 자체는 보존되었습니다.
숭례문의 뜻은 '예'입니다. 4대문은 각각 고유의 뜻을 담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흥인지문 - 어질고 착함
돈의문 - 의로움
숭례문 - 예의바름
숙정문 - 지혜로움
4. 안타까운 사고, 2008년의 숭례문 화재
조선 건국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까지 여러 시련을 겪었지만 숭례문은
그 와중에도 자체를 고이 간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적은 2008년에 무너집니다. 당시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이 의도적인 방화를 하였고, 이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해
숭례문은 상층부 90%가 훼손됩니다. 당시에 지붕이 와르르 무너지는 광경을 생중계로
봤었는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숭례문은 고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잃어버렸지만, 숭례문의 상징성과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통해 오늘날 다시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국보로서의 위치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건국 이후, 희노애락을 서울 한복판에서 지켜본 숭례문. 이 숭례문이 다시 불타오르지
않도록 이제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