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 두 팔 없는 작은 십자가 >
- 文霞 鄭永仁-
- 2012-08-26(일) 신부님 강론 중에서 -
‘두 팔 없는 작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밑에는
“너희가 나의 두 팔이 되어 다오.”
라고 적혀 있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엊그제 신문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제목은
‘발가락으로만 1분에 140타(140타/분)를 치다’
입니다.
어렸을 적, 감전으로 두 필을 못 쓰는 남학생이 대학을 나온 후 두 발가락으로만 1분에 140타를 친답니다.
그는 한국의 굴지의 정보회사에 취직하여 척척 일을 잘해낸답니다.
그는 모든 걸 발로 해결하겠지요.
우리는 가끔 이와 같은 기적을 보고 듣습니다. 두 팔 없이도 수영을 잘하는 사람, 두 손가락로만 피아노 치는 소년, 아마 다 이게 기적일 것입니다.
언뜻 장자(莊子)의 말이 생각납니다.
“자신의 삶을 긍정해야 자신의 죽음도 긍정 수 있는 법이다.”
긍정과 부정은 행복과 불행처럼 동정의 양면처럼 등을 맞댄 한 끗 차이지만 넘나들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주님께서는
“너의 밥이 돼 주겠다.”
라고 하셨다.
이제나 저제나 ‘밥’은 인간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지금도 끊임없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내 밥은 내 밥이다. 제 털 뽑아 제 구멍에 박는 사람이다.
내 밥도 내 밥이고 네 밥도 내 밥이다. 전적으로 도둑놈 심보이고, 손 안대고 코를 풀려는 인간이다. 최소한도 건상유족(褰裳濡足)도 없는 인간형이다.
내 밥은 네 밥이다. 내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고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사람이다.
루가 복음(18 : 8~9)을 보면 세관장 ‘자캐오의 다짐’이 나온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로 갚아 주겠습니다.”
우리 본당 교무금 신립율이 약 38%라 합니다. 그러니까 10가구 중 4가구가 교무금을 내는 꼴입니다.
하기야 도처에서 밥그릇 싸움이다. 의사와 약사, 의사와 한의사, 여당과 야당,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실 나도 그렇다. 입만 신자다.
아무리 ‘신자들의 기도’를 그렇게 길게 한들, 손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울리는 징과 같은 것!
300원이면 아프리카 빈곤한 나라 어린이들에게 한 끼의 식사가 된다고 합니다.
“내가 너의 밥이 돼 주겠다.”
첫댓글 밥이 되어주는 삻을 살라 주님은 부르시는데 우리는 무얼, 무얼 달라고만 응답하네요.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회개하여 살게 하소러,
*** 자투리 돈, 부스러기 돈 ***
내가 일주일에 두번 모이는 친구 모임 총무가 됏다.
모든 경비는 그날그날 정산한다.
하다보면 자투리 돈이 생긴다.
그 부스러기 돈들을 모아서
말레시아고아원에 보낸다.
거기서 우리 본당 보좌신부님이셨던,
해외선교를 하신다.
정산할 때 약간 더불려서 돈을 걷는다.
또 그렇게 하겠다고 총무직을 수락할 때 선언했다.
사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