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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 : 34.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5]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은 오늘 우리의 행동을 규제하고, 내일 일에 대한 염려는 오늘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1) 평안의 유형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않는 사람에도 두 가지 형태의 사람들이 있다. 그 첫째는 아무런 생각 없이 흥분된 가운데 들떠 있거나 어떤 새로운 환상이나 즐거움에 몰두한 채 살아가는 부류인데 그들은 어떤 뚜렷한 목표나 계획 없이 쾌락을 즐기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둘째 유형은 그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날마다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며, 자신들의 능력도 닥쳐오는 모든 순간순간의 일도 하나님께 맡김으로 평안을 누린다.
즉 하나님께서 앞날의 모든 일까지도 준비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염려 자체를 회피하는 자들이라면, 후자는 염려를 정복하고 초월한 상태에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주께서는 성도들이 둘째 유형에 속한 자로서 살기를 원하신다.
(2) 염려에 대한 교훈
예수께서는 주로 가난한 무리를 대상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주님의 청중들은 항상 가난했기 때문에 일상적인 의식주로 끊임없이 염려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그러한 염려로부터 해방되는 귀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것은 내일의 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염려는 우리의 생활에 현존하는 명확한 실재다. 그러므로 평소에 신앙이 좋다고 자부하는 자들도 이 같은 염려의 세력이 밀어닥치면 신앙을 적용할 겨를도 없이 염려의 포로가 되어 깊은 근심과 좌절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장래 일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고 무익할 뿐이다. 왜냐하면 염려로서 어떤 일이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일의 문제까지 오늘 끌어안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일 일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즉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기고 사는 것이다.
(3) 무의미한 내일의 염려
만일 성도가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면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이 구원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를 유혹하는 염려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내일의 일을 염려하는 '단편적인 시각'을 버려야 한다.
장래의 염려를 거부하고 이렇게 구하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오늘 하루를 범죄하지 않고 지내게 하옵소서' 이것이 불안과 두려움의 세력을 물리치는 현명한 방법이다.
(4) 염려하지 말아야 할 적극적 의미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내일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 관여하지 말고 현재만을 위해서 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오히려 이 명령은 내일 일에 관한 준비와 대책을 요청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일의 일을 염려하다가 오늘 실행할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내일로 미루고 그로 인해 염려하지 않았어도 될 내일까지도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오늘에 충실하고 현재의 삶에 성실함으로써 다가오는 미래를 복된 것으로 대비하라는 말이다.
성도 여러분! 쓸데없는 염려와 걱정으로 오늘의 삶을 소홀하다가 진정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미래를 맞지 말고 미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고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순간들에 충실함으로 복된 내일을 자신 있게 맞이하는 성도가 되자. 주님은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기 전에 오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함을 주의하자. 내일이 소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늘에 대한 신앙 현재적 신앙을 가진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6]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 마 6: 31-34 )
잠언 기자의 유익한 기도가 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 7-9)
물질의 은사자로 충성하려면 의식주의 공급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더욱 넘치는 은혜를 말씀하고 있다. 한 마디로 큰 채움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다.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다. 물질을 맡은 청지기가 되고자 합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란다.
(1)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려면 먼저 성령이 임하여야 한다.
* 막 9: 1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롬 14: 17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먼저 성령을 구하기를 바란다. 성령의 지배 아래 사업을 일으켜야지 사탄의 지배 아래서는 안 된다. 마귀는 훼방꾼이다. 마귀가 다스리면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밖에 없다.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고 반문한다. 이 세상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부분적으로 마귀의 지배하에서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되돌이켜보라.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두려워서 옮기지 못하던 나라가 이만큼 산업이 발달하고 복을 받은 것도 우상과 미신을 타파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 복을 받으려면 더 변화되어야 한다. 진정 회개하면 통일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성령이 함께하실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복 받을 일을 하고서도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살펴보면 기도 생활이 부족하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하심이 없고 복을 가지고 내려온 천사들이 맘대로 활동할 수 없다. 다니엘서를 보면 응답을 가지고 내려오던 천사가 스므날 동안 지체하는 일이 있었다.
* 단 10: 12-21 – 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13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14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15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16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하니 18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19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20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21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
군장 미가엘이 도와주어 응답이 임하였다. 강력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더 기도하시고 더 충만하시기 바란다. 사탄의 지배가 사라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 그때 더하여 주시는 은혜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2) 그의 의를 구하라.
그의 의는 일반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다.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을 뿐 아니라, 예수 안의 생명의 성령으로 변화 받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신학적 명칭으로 칭의와 성결이라고 한다. 요약해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순탄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 엡 5: 5 -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죄악을 품고서 형통할 수 없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고통을 당했다.
* 눅 15: 16 -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다 얼마나 사로잡힘과 재난으로 고통당했다.
* 왕상 8: 47 – 그들이 사로잡혀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 왕하 17: 23 -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 스 2: 1 -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뜻대로 살기 바란다.
* 슥 14: 2 -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눅 21: 24 -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뜻대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형통함을 주신다.
그의 의는 이런 면에도 해당이 된다. 복이 약속된 소득의 십분의 일이라든지, 혹은 현세에서도 백 배의 복이 약속된 영혼 구령(救靈) 사역, 기타 하나님께서 감동 주시거나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실 일에 힘쓰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부자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풍족하게 드린 과부의 헌금이 더 의롭게 인정받은 바로 그런 의를 말한다.
* 눅 21: 1-4 –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고후 9: 8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고 이어서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했다.
성경에는 바로 이런 의도 있다. 베푸는 자를 의인이라고 했다.
* 시 37: 25-26 –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우리가 귀한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더욱 풍성하게 더하여 주신다. 야곱의 아들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을 보라. 섬겼더니 한 지파로도 부족하여 두 지파로 나누어 복을 주셨다. 유다도 보라. 목숨 걸고 섬겼더니 가장 큰 땅을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면 또 생기고 봉사하면 또 생기는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은 물론 의식주 모든 것에도 부족함이 없이 더하여 넘치게 하신다.
(3) 믿음에서 순종하라.
* 신 1: 36 -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 삼상 15: 22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또 나온다. 여기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접속사다. 즉 이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려면 절대 믿음에 서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냥 단순히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앞의 말씀과 연관해서 보라.
내일을 염려하는 불신앙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도 없거니와 여러 선한 일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일의 일을 염려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주저한다. 구제해 버리면 난 어떻게 살아? 헌금하면 난 어떻게 살아? 건축 헌금하면 난 어떻게? 다 하라 했나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일을 염려하며 주저한다. 단순한 일을 한 가지 하려고 해도 내일 일 때문에 할 수가 없다.
* 히 13: 17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공급하셔서 쓰시려는 귀한 일군 삼으려고 해도 하나님의 책임져 주심을 믿지 못하고 내일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면 결코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없다. 믿음이 부족하다면 작게라도 시작하기를 바란다. 채우시는 체험 속에서 믿음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면 더 순종해 보라. 옛날에 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일을 순종하고도 여전히 먹고살며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도리어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히 5: 7-10 –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 롬 5: 16-19 –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이런 절대 믿음 절대 신앙 없이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 없다. 믿음이 작아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지 말기 바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절대 믿는 자만이 계속하여 더하여 받는 기적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큰일을 이루심과 같이 하나님의 귀하고 크게 쓰임 받는 청지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염려하지 않는 절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여 더하여 넘치는 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도한다.
* 벧전 2: 12-17 –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 딤전 2: 11 -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 벧전 3: 1-7 –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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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설교 감사합니다.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도록합시다.
게시물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남은 시간 행복이 넘쳐 나시길 기원 드립니다.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도록합시다.
강해 설교 감사합니다.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도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