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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별 주제설교(2026. 6. 21.)
침례자(Baptist) 요한
(부제: 메시야의 선구자 엘리야)
성경 인물 시리즈, 오늘은「침례 요한」입니다. 신약성경 인물 두 번째입니다. 신약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연이나 엑스트라입니다. 지난 번에 우리는 예수님을 이 땅에 (육신으로) 탄생하게 한 인물들, 요셉과 마리아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앞서 준비한 주연급 조연 선지자 침례 요한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제로는 [메시야의 선구자 엘리야]라는 제목을 부쳐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들 아시겠지만, 구약성경 마지막 책 말라기 4장에 예언되었던 엘리야가 바로 오늘 살펴볼 침례 요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교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퍼포먼스를 좀 펼쳤는데요, 제가 잘난 척하려고 한 게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서 올 해에 구약의 소선지서를 다룰 예정입니다. 지난 번 남소리 형제가 호세아서를 다루었는데, 사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오늘 제가 했던 이런 퍼포먼스, 쇼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전했습니다. 선지자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메시지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헤세드을 나타내기 위하여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고 떠나면 또 찾아가서 값을 치르고 데려왔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행동 1 (독신으로 살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자녀도 낳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행동 2 (썩은 베 띠): 새 베 띠를 사서 허리에 동였다가, 유브라데 강가 바위 틈에 감추게 하셨습니다. 오랜 기간이 지난 후 다시 가보니 띠가 완전히 썩어 쓸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행동 3 (나무 멍에와 철 멍에): 목에 줄과 멍에를 얹고 다녔습니다. 행동 4 (토기 깨뜨리기): 백성의 어른들 앞에서 토기장이가 만든 오지병(진흙 그릇)을 산산조각 나도록 깨뜨렸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행동 1 (누워 지내기): 좌편으로 390일, 우편으로 40일을 누워 지냈습니다. 행동 2 (쇠똥에 구운 떡): 인분(나중에는 거부하여 쇠똥으로 변경)으로 불을 피워 밀가루와 보리를 섞은 부정한 떡을 저울에 달아 조금씩 먹었습니다. 행동 3 (삭발과 머리카락 나누기): 예리한 칼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저울에 달아 3분의 1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3분의 1은 칼로 치고, 3분의 1은 바람에 날렸습니다. 행동 4 (아내의 죽음과 애곡 금지): 하나님이 그의 눈에 가장 귀한 아내를 갑자기 데려가셨지만, 눈물도 흘리지 말고 슬픈 내색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했던 선지자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자기가 없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라고도 하는 침례 요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침례 요한 역시, 화려한 제사장 성전을 버리고 빈 들에서 삶 자체로 외친 하나님의 마지막 도구였습니다.
‘침례 요한’이라는 인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400년 간 하나님의 말씀이 끊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암흑기에 어둠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회 치는 닭’과 같이 외치다 밝은 태양이 떠오르자 소리 없이 사라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모임에도 ‘소리’가 있죠? 남소리 형제님, 아마도 남중희 형제님께서 소리 형제를 얻을 당시에 침례 요한을 많이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침례 요한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침례 요한의 탄생과 성장
둘째, 침례 요한의 사역
마지막으로, 침례 요한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런 순서로 살펴보겠습니다.
[1. 침례 요한의 탄생과 성장]
누가복음 1:5~7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침례 요한은 유대 왕 헤롯 때 인물입니다. 성경에는 헤롯이라는 왕이 여러 명 등장합니다. 헤롯이라고 해서 동일 인물이 아닌 건 다들 아시죠?
헤롯 대왕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제사장 집안이라면 오늘날로 따지면 금수저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침례 요한은 금수저인 셈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굳이 사가랴의 아내가 아론의 자손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듯합니다. 누가가 엘리사벳이 ‘아론의 자손’임을 강조한 것은, 아마도 침례 요한이 양가 부모 모두가 명확한 제사장 계보를 지닌, 율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흠잡을 데 없는 가문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이 부부는 제사장 가문 출신일 뿐만 아니라 뼛속까지 유대인이었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두 사람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 이런 반문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인일 수 있지?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죄인 아니야? 그리고,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한다는 게 가능해?’
여기서 '흠이 없다'는 것은 죄가 전혀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율법의 제사를 소중히 여기고, 죄를 지었을 때 자복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신앙의 태도’가 올발랐음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이라는 명문가에 부부의 삶 또한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모습이라 정말 이 부부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고 그저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완벽했을 것만 같은 그들 부부에게도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식이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많았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실제 나이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기록한 이유는 아마 그들이 일반적인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를 지났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살펴보다 보면,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 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을 때 반응으로 유추해보면 그들이 매우 늙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그리고 천사가 나타나 한 말 중에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라는 표현을 볼 때 그들은 오랫 동안 자녀를 위해 기도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결혼하면서부터 기도 제목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요 주의 계명과 규례를 흠이 없이 행한 그들에게 자녀가 없었다는 것은 그 당시로는 큰 수치였습니다. 더구나 구약 말씀에 따르면,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열매라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는 자괴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 역시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첩으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당했었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역시 그랬었지요.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자녀를 낳지 못한 것이 여성에게는 칠거지악(七去之惡) 중 하나로 소박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사가랴 부부는 늙어서까지 자녀를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할 수 없어 직무수행을 하는 사가랴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런데 천사로부터 아이가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을 때 또 얼마나 기뻤을까요? 사가랴는 처음에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여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어야 했지만 그 기쁨을 어디에 비하겠습니까?
천사가 약속한 아이는 이런 아이였습니다.
첫째, 그는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며
둘째,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는 나실인이 될 것이며
셋째,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넷째, 이스라엘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다섯째,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그야말로 막중한 사명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녀에 대한 이런 약속을 받는다면 기쁘시겠어요? 슬프시겠어요?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면 와!하고 놀라워하며 축하해줄 수도 있겠지만 내 아이가 그런 아이라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것이 소위 말하는 침례 요한의 태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침내 엘리사벳이 잉태를 하게 되었고, 날이 차서 침례 요한이 태어났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요한을 임신한 중에 엘리사벳을 찾아온 마리아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는 나이 늙어 아이를 가진 엘리사벳보다 더 하죠? 남편 요셉과 잠자리도 하기 전에 아이를 가진 마리아도 참 어려웠을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마리아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엘리사벳을 찾아왔고, 그때 엘리사벳 복중에 있던 세례 요한이 뛰놀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이 태어나자 부모는 팔일 만에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당시 관례대로라면 ‘사가랴 2세’, 이렇게 불려야 하고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뜻밖에 사가랴는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가랴는 묵묵히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누가복음 1:80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졌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였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다음 문장, ‘그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뭔가 깊은 울림을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뼈대 있는 제사장 명문가에 태어나 제사장 학교에 들어가 율법을 배우며 장차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제사장 학교가 아니라 사람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빈 들, 광야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빈 들’이라는 헬라어 원어 ἔρημος(erēmos, 에레모스)는 문자적으로 장소 측면에서 사용될 때에는 ‘허허벌판, 광야, 사막’의 의미가 있지만 사람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에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세속을 떠난’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따라서 침례 요한은 성경에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사람들이 사는 사회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가 ‘이스라엘에게 나타날 때까지’입니다. 침례 요한이 왜 그런 삶을 살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2. 침례 요한의 사역]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낙타 털옷을 입은 한 사나이가 광야에서 외치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광야 빈 들에서 한 젊은이가 정신이 나간 채 외치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습니다. 이 젊은이를 아는 사람들은 혀를 차며, ‘사가랴 부부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 그만 저렇게 되었구만’ 하고 안타까워하였을 듯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맡아 보존하던 사람들은 서기관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가까이 하나님의 계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외침은 미친 사람처럼 치부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침례 요한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마태복음 기자는 이사야 40:3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 역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침례 요한이 받은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40:1~8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구약성경 1014쪽 부근입니다.)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침례 요한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사야 말씀을 받았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성장하면서 이스라엘에 나타나기까지 빈 들에 있었다고 누가복음 1:80절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광야 생활 가운데 구약성경 말씀을 읽다가 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남유다의 역사적 상황과 이사야 전체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핵심 배경은 한 마디로 ‘바벨론 포로기 말기,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위로와 해방의 선언’입니다.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는 주로 앗수르의 위협과 남유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경고 내용입니다. 그러한 경고대로 결국 남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수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바벨론 포로기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40장을 통해 회복과 해방의 길을 예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뒤, 영적 암흑기에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이 예언의 말씀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나타난 인물이 바로 침례 요한이었습니다.
다시 마태복음 3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침례 요한의 외침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향해 오늘날로 말해서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마태복음 3:7~10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사람들이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세리들] 저희들은 세리입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군인들] 저희들은 군인들인데,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회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회개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회개’하면 그동안의 나의 잘못이나 죄악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마음으로 애통해하는 것이라고 알고 계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러나 예수님 당시 회개는 마음의 회개뿐 아니라 실제 삶에서 회개의 결과가, 열매가 나타나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장차 임할 임박한 진노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주기식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두 벌 옷이 있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에게 실제로 자신의 나머지 한 벌을 나누어주어야 했습니다. 야고보가 지적했듯이,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옷은 주지 않고, 먹을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그런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세금을 거두는 자 세리는 나라에서 부과한 세금 이외에는 거두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얼마나 많은 이와 같은 늑징이 있었습니까?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때,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관원들도 똑같았습니다. 세금+자기 주머니에 들어갈 돈 α... 우리나라 1980~90년대 때에는 또 어때했습니까? 기업에서는 정부 관리들에게 돈을 쥐어주면 세금을 깎아주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운전면허증 밑에 만원짜리 몇 장을 넣어 경찰관에게 쥐어주고,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가 있었는지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촌지를 받고 학생들의 성적에 차별을 두었습니다. 기독교 인구 천만 시대에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교회에 와서는 주님께 ‘나는 죄인입니다.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십시오.’ 하지 않았습니까?
군인들은 받는 월급이 적다고 사람들에게서 강제로 빼앗고, 안주면 거짓 고발하고, 심지어는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사람들을 남산 안기부 지하로 데려가 죽이거나 산 송장을 만들고...
이들이 회개한다는 것은 그 행위를 멈추는 것입니다. 마음의 회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은혜 시대이니 회개도 가벼워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침례 요한의 외침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3:11~12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의 회개의 물 세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요한 뒤에 오시는 분은 더욱 엄중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십니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실 분입니다. 이 말씀은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실 사역을 말씀하고 있지만, 정확히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여러분, 키를 아십니까? 연세 있으신 우리 부친 모친님들께서는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키가 뭐야? 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키는 곡식을 탈곡하고 나서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해내는 도구입니다. 키질하는 것을 까분다고 합니다. 요한 뒤에 오실 분, 곧 예수 그리스도시겠죠? 그분은 자신의 타작 마당에서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실 분이십니다.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시겠지만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여기서 곳간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이고, 꺼지지 않는 불은 유황 불못입니다. 그렇다면...
알곡은 구원받은 사람들
쭉정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그렇겠죠? 맞습니까?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을 이렇게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알곡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
쭉정이는 회개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열매는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들
내가 알곡인지 쭉정이인지는 열매로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 시대이니 열매가 필요 없을까요? 아닙니다. 진짜 은혜를 경험하고 참되게 회개한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삶의 변화,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히기 마련입니다. 열매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내가 참된 믿음을 가졌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알곡과 쭉정이의 차이는 오직 하나입니다. 속이 열매로 차 있느냐? 비어 있느냐? 주님은 바로 그 열매를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 침례 요한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첫째,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침례 요한은 구약의 이사야 선지서에 기록된 대로 이방 세계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백성들에게 위로와 포로 귀환이라는 소망을 전하도록 선택받은 선지자였습니다. 더불어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장차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길 엘리야로,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메시야의 선구자였습니다. 침례 요한이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외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 마라나타, 주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실 때에도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보기 위해서는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들은 낮아지고, 굽은 것은 곧아지고, 험한 길은 평탄하여져야 했습니다. 사람들 마음에 연약함과 실패로 낮아진 자존감은 메워져야 합니다. 산처럼 높아진 교만한 마음은 낮아져야 합니다. 꼬부라진 마음, 울퉁불퉁한 마음, 가시 돋힌 마음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이 땅을 찾아오시는 왕을 맞이하기 위하여 곧게 해야 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서 머지않아 또다시 하늘로부터 임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오실 길을 곧게 해야 합니다. 침례 요한은 헤로디아의 요망한 짓과 헤롯의 자존심 때문에 허무한 죽음을 죽었지만 지금도 성경기록을 통해 살아서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유대 광야에서 목 놓아 외쳤던 그때처럼 지금도 우리들의 광야 같은 마음에 울려퍼지도록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2026년,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도 이 어두운 시대 속에서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 살아갑시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형제님의 메시지를 잘 들었습니다. 귀한 교훈의 말씀에 감사합니다. ^^
그렇습니다. 침례요한이나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였습니다.
(다만, 침례에 대하여 선지자 요한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침례는 다른 의미가 있다고 분별합니다.)
그렇죠. 선지자 요한의 침례는 물침례를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침례는 성령침례와 불침례이니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지요. 어떤 이들은 요한의 물침례와 예수님의 물침례를 구분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만 크리스탈 형제님께서 분별하시는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요?
@어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침례를 받음으로 의를 이루셨습니다.
제 분별도 어라연님과 같습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말하려고 했었습니다. ^^
(요한의 침례는 회개에 포커스가 있으며, 예수님의 침례는 순중에 포커스가 있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님으로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헬라어에 광야가 '세속을 떠난' 의미도 있다는 것 배웠어요. 형제님의 헬라어 공부가 매우 유익하게 빛을 발하네요.
알곡과 쭉정이는 회개의 열매 여부로 가려진다는 말씀해석이 명쾌하고 동의합니다~ 주옥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희 구봉산 모임도 말라기 마치고 다음주 욥기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