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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물결소리≫를 쓸 때 내 나이는 36살, 지금 생각해 보면 풋풋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젊은 나이였는데, 나는 그때 왜 그렇게 죽음의 문제에 매달려 있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 강기혜를 그때 내 나이인 30대 후반에 폐암으로 죽게 한 후, 35년의 세월이 흐른 금년 봄, 나도 폐암 수술을 받았다. 폐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솔바람 물결소리≫였다. 뿌린 씨를 거두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https://youtu.be/UO43L5sb1v0?si=eqzVFvEXZweX4fpn
책 속으로
죽음은 영원한 이별, 한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 생명은 끝없이 윤회한다 하나 전생의 만남을 모르니 내생의 만남도 알지 못한다. 생(生)과 사(死)가 하나라지만 그건 요원한 비밀, 지금 우리에게는 육신의 이별만이 안타까운 것이다.
255p
바보라는 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바보가 되면 편한데 사람들은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건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305p
석양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든 바다는 검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바다는 어둠속에 잠길 것이다. 그러면 바다의 형체는 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생명도 그런 것이 아닐까?
죽음이 오면 육신의 생명은 끝난다. 하지만 바다의 본래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변화가 없듯이 인간의 생명도 육신의 생(生), 멸(滅)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 사가 따로 없고 모든 생명은 여여 하여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364p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솔스님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다솔스님은 너무 먼 곳에 계셨다. 이 무서운 절망의 순간에도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계셨다. 아득한 그 거리, 그건 바로 잿빛 승복이었다.
368p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내 소유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일까? 하지만 마음은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을 뿐 아니라 끝없이 유전(流轉)한다. 그 마음을 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하다. 결국 내가 살아 온 삶 자체가 어떤 환영(幻影)처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377p
가을비가 질척하게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멎으면 추위가 오겠지. 계절이 바뀔 때면 항상 비가 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 . . 하지만 나는 이제 다시 돌아오는 봄을 볼 수가 없다. 여름 바다도 가을 들판도 역시 볼 수가 없다. 죽음이라는 절대의 힘 앞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병원에도 다니지 않고 진통제로 버텼다. 심할 때는 손끝까지 쑤셔왔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이끌고 병원 문을 드나든다는 것이 어쩐지 희롱당하는 것 같아 치료받는 일을 포기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30년전의 일로 기억된다.
초등학생 시절에 나의 어머니는 한 동안 책 한권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셨다. 어떤 책인지 제목을 어깨 너머로 보고는 이내 흥미를 잃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 하셨다. 언제나 손이 가는 곳에 책이 놓여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어머니가 유독 한권의 책을 가슴에 대고 계셨다. 그 책이 ‘솔바람 물결소리’ 였다. 아직도 그 때의 장면과 기억을 어렴풋이 가져 올 수 있는걸 보면 어린 시절 나의 눈에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대학시절, 어머니처럼 작고 낡아버린 서가에서 오래된 책이 눈에 띄였다. 『솔바람 물결소리』 그리고 『연꽃을 피운 돌』 마치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이 두 책이 항상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단아하고 가지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흥미를 끌지 못했던 제목의 책은 10년이 지난 나의 눈에 새롭게 들어왔고 또 남게 되었다.
또 다시 20년 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남지심 작가의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을 내가 몸 담고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로 하였다.
책 만드는 내게 숙연(宿緣)이라 할 수 있는 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묘한 설렘이었다.
2014년 10월 22일, 이 책이 인쇄소에서 나온 날, 아직 인쇄기계의 온기가 남아 있고 종이 냄새가 거칠게 베어 있는 책을 들고서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낡아질 것이 없는 작은 서가에 두권을 표지가 보이도록 나란히 놓고 나왔다.
만남은 우리의 삶을 끌고 가는 나침반이다. 좋은 만남은 우리의 삶을 좋은 쪽으로, 나쁜 만남은 우리의 삶을 나쁜 쪽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얼마큼 가다보면 만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자연히 알게 된다.
만남은 꼭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도 인생을 밝음 쪽으로 혹은 어둠 쪽으로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다. 책은 작가의 사상이 농축된 것임으로 오히려 더 강렬한 힘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본다.
남지심 작가의 초기 작품인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을 다시 펴내게 된 것은 좋은 만남을 가져다 줄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30여년이라는 세월은 한 시대를 뛰어 넘는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조금도 녹슬지 않은 것 같은, 오히려 더 은은한 광채를 내 뿜는 것 같은 두 권의 책은 좋은 친구처럼 독자 한 분 한 분과 좋은 만남의 인연으로 이어가리라 믿는다.
이 가을, 국화 꽃 향기 같은 두 권의 책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프롤로그 006
다비식 009
1장 3월 023
2장 4월 059
3장 5월 091
4장 6월 119
5장 7월 157
6장 8월 187
7장 9월 225
8장 10월277
9장 11월 313
10장 12월 349
11장 1월 375
다비식 401
■책 속으로
죽음은 영원한 이별, 한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 생명은 끝없이 윤회한다 하나 전생의 만남을 모르니 내생의 만남도 알지 못한다. 생(生)과 사(死)가 하나라지만 그건 요원한 비밀, 지금 우리에게는 육신의 이별만이 안타까운 것이다.
255p
바보라는 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바보가 되면 편한데 사람들은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건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305p
석양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든 바다는 검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바다는 어둠속에 잠길 것이다. 그러면 바다의 형체는 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생명도 그런 것이 아닐까?
죽음이 오면 육신의 생명은 끝난다. 하지만 바다의 본래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변화가 없듯이 인간의 생명도 육신의 생(生), 멸(滅)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 사가 따로 없고 모든 생명은 여여 하여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364p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솔스님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다솔스님은 너무 먼 곳에 계셨다. 이 무서운 절망의 순간에도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계셨다. 아득한 그 거리, 그건 바로 잿빛 승복이었다.
368p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내 소유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일까? 하지만 마음은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을 뿐 아니라 끝없이 유전(流轉)한다. 그 마음을 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하다. 결국 내가 살아 온 삶 자체가 어떤 환영(幻影)처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377p
가을비가 질척하게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멎으면 추위가 오겠지. 계절이 바뀔 때면 항상 비가 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 . . 하지만 나는 이제 다시 돌아오는 봄을 볼 수가 없다. 여름 바다도 가을 들판도 역시 볼 수가 없다. 죽음이라는 절대의 힘 앞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병원에도 다니지 않고 진통제로 버텼다. 심할 때는 손끝까지 쑤셔왔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이끌고 병원 문을 드나든다는 것이 어쩐지 희롱당하는 것 같아 치료받는 일을 포기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30년전의 일로 기억된다.
초등학생 시절에 나의 어머니는 한 동안 책 한권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셨다. 어떤 책인지 제목을 어깨 너머로 보고는 이내 흥미를 잃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 하셨다. 언제나 손이 가는 곳에 책이 놓여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어머니가 유독 한권의 책을 가슴에 대고 계셨다. 그 책이 ‘솔바람 물결소리’ 였다. 아직도 그 때의 장면과 기억을 어렴풋이 가져 올 수 있는걸 보면 어린 시절 나의 눈에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대학시절, 어머니처럼 작고 낡아버린 서가에서 오래된 책이 눈에 띄였다. 『솔바람 물결소리』 그리고 『연꽃을 피운 돌』 마치 같은 듯 다른 느낌의 이 두 책이 항상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단아하고 가지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흥미를 끌지 못했던 제목의 책은 10년이 지난 나의 눈에 새롭게 들어왔고 또 남게 되었다.
또 다시 20년 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남지심 작가의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을 내가 몸 담고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로 하였다.
책 만드는 내게 숙연(宿緣)이라 할 수 있는 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묘한 설렘이었다.
2014년 10월 22일, 이 책이 인쇄소에서 나온 날, 아직 인쇄기계의 온기가 남아 있고 종이 냄새가 거칠게 베어 있는 책을 들고서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낡아질 것이 없는 작은 서가에 두권을 표지가 보이도록 나란히 놓고 나왔다.
만남은 우리의 삶을 끌고 가는 나침반이다. 좋은 만남은 우리의 삶을 좋은 쪽으로, 나쁜 만남은 우리의 삶을 나쁜 쪽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얼마큼 가다보면 만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자연히 알게 된다.
만남은 꼭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도 인생을 밝음 쪽으로 혹은 어둠 쪽으로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다. 책은 작가의 사상이 농축된 것임으로 오히려 더 강렬한 힘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본다.
남지심 작가의 초기 작품인 솔바람 물결소리와 연꽃을 피운 돌을 다시 펴내게 된 것은 좋은 만남을 가져다 줄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30여년이라는 세월은 한 시대를 뛰어 넘는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조금도 녹슬지 않은 것 같은, 오히려 더 은은한 광채를 내 뿜는 것 같은 두 권의 책은 좋은 친구처럼 독자 한 분 한 분과 좋은 만남의 인연으로 이어가리라 믿는다.
이 가을, 국화 꽃 향기 같은 두 권의 책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작가 남지심의 첫 장편소설(1980. 여성동아). 이 작품으로 소설가,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87~90년대 그 유명한 밀리언 셀러 <<우담바라>>의 주인공이다. 1책 4권의 분량이지만 주제는 우리가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소리로 읽었다.
작가는 불교에 그 사상적 근간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고의 방법이나 범주는 불교라는 종교적 특수성이 아니라 자연(법)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불교는 속칭 '종교'라기 보다, 자연 그 자체라고 나 자신이 믿기 때문이다. 즉, 자연스런 것이 불교의 핵심이며 전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를 불교 종교인의 카테고리에 난 포함시키지 않는다. 모든 종교는 삶의 한 방법론 또는 방편 또는 도구와 수단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방법론을 통하여 어떻게 삶을 행(실천)하고 있는가를 볼 뿐이고, 그 드러난 행동으로 그 사람의 방법론을 역으로 가름해볼 뿐이다.
줄거리 등은 Y24의 소개란에 잘 나와 있고, 이미 올려진 독자리뷰에 있기 때문에 없는 얘기와 간단한 감상을 적어 보겠다.
1. 소설의 형식은 굳이 얘기하자면 액자소설, 나레이터 즉 화자는 두 명, 딸과 엄마다.
2. 단락은 12 개, 액자에 월별로 나눈 11 개, 액자포장 1 개, 그 포장은 앞뒤로 나뉘어 있다.
3. 단락별(월별 : 3월 ~ 1월 + 다비식) 주제를 독자의 감상결과대로 뽑아 소제목을 붙여봤다 :
3월 : 외로움
4월 : 만남(또는 인연)
5월 : 욕망
6월 : 정직(또는 거짓 또는 위선)
7월 : 나병(문둥병)
8월 : 청솔(음성나환자들의 집성촌이 있는 지명 : 하지만 이 지명은 가공된 것. 왜냐하면 사회적 소란야기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함으로 보임)
9월 : 불교와의 만남(또는 불연佛緣)
10월 : 불교입문(또는 보살계菩薩戒)
11월 : 선행(또는 보살도菩薩道)
12월 : 거듭나기(또는 버리고 떠나기 또는 업장소멸)
1월 : 관세음보살(또는 해탈 또는 깨달음)
여기에 '다비식'이 앞뒤로 나뉘어 놓여 있다.
물론, 독자마다 언어가 다르고 해석과 개념 및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소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4. 감상 :
-. 개인적으로 만든 위 PLOT을 보면, 싯타르타 태자의 깨달음의 여정과 많이 닮아 있다. 즉, 우리 모두의 사는 모양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다가왔다. 객관적 성직 - 개인적으로 가당치도 않은 우스운 조어로 여기지만 - 의 길을 가든, 일반의 길을 가든 정작 인간이 가야하는 길은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 평범과 일상성, 평상심이 잔잔하게 흐르며 마음 깊은 곳이 후벼졌다. 작가의 노자(老子)적 - 굳이 노자를 들추어 현학적으로 보일 의도는 죽어도 없지만 많이들 얘기하는 지라 - 물의 철학과 거짓없는 순리 그리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영아(嬰兒)의 눈은 전체적 그림을 맑게 한다. 즉,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정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평범 속에 자연(또는 '진리'라는 것)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작가는 관세음보살 - 또는 착하고 닮고 싶은 사람 - 이 아닐까?..^_^?
-. 한 사람의 꾸밈없는 삶의 이야기를 보이며, 작가는 독자에게 또 다른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선물한다. 즉, '정화와 치유를 돕는 전반적인 인생경(人生經) 같은 맑은 거울(鑑)' 말이다. 작가의 통찰을 배운다.
5. 독자의 요청 :
5.1. 작가의 장편작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 보인다. 그것은 후반에 집중적으로 불교용어와 교리 같은 내용이 마치 시간에 쫒긴 듯이 쏟아부어 놓여진다는 것. 일반독자는 반드시 한글사전과 브라우져를 동반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우담바라>>, <<담무갈>>이 그랬고, <<솔바람..>>도 약하긴 하나 그 경향을 지니고 있다. 분산처리하면 일반독자의 충격이 약화될 수 있을 것 같고, 타겟 독자가 불자라 하드라도 술술 읽혀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이다. 불자 모두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을 외우고 그 뜻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5.2. 불교용어에 대한 각주를 달아주면 좋겠다.
6. 칭찬 또는 감사 :
-.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읽었다. 수필집을 포함한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다름 - 작가의 아우라(AURA) - 은 1) 표현의 철두철미한 절제다. 그래서 독자는 시종일관 긴장과 Suspense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 2) 매우 영상적이다. 아니, 영화보다 더 영상적이다라고 하면 과장이라고 할 지는 모르지만. 즉, 영상의 언어화에 爲 또는 억지를 찾아 보기가 어렵고, 물처럼 문장 간에 다툼이 없어, 한편 슬프도록 투명하게 보인다. 일본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을 선호한다. 그의 작품의 세계도 이와 같다. 그래서 두 작가의 작품들은 나에게 언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귀중한 세계이다.
7. 오자, 탈자 등 : 좀 있음
먼저, 작가에 대한 독자의 언더스탠딩 : 작가 남지심의 첫 장편소설(1980. 여성동아). 이 작품으로 소설가,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87~90년대 그 유명한 밀리언 셀러 <<우담바라>>의 주인공이다. 1책 4권의 분량이지만 주제는 우리가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소리로 읽었다. 작가는 불교에 그 사상적 근간을 두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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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마음이 정화되는 소설, 오랫동안 이 기분을 잊지 못할 것 같다『솔바람 물결소리』 남지심평점8점 | p********1 | 2014.11.19리뷰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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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7859549
『솔바람 물결소리』 남지심 / 얘기꾼
마음이 정화되는 소설, 오랫동안 이 기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래전 출간된 이 책이 다시 새로운 옷을 입고 나왔다 했지만, 제목과 작가마저 생소해서 인터넷에 조금 검색을 해보았다. 그때 당시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사람들도 보이고,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도 보였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선지, 아니면 종교적 특색 때문인지 많지는 않았지만, '남지심'이라는 작가의 책들은 눈에 많이도 띄었다. 그리고 이 책을 새롭게 접한 나는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이야기의 여운에 깊게 빠져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물과 삶,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여타 다른 소설과 비슷하지만, 『솔바람 물결소리』는 종교적인 색채를 깊게 지니고 있는 책이다. 이야기 속에서 삶과 선택, 생각에 불교적 사상이 연결된다. 한없이 청정한 마음의 다솔스님, 나병환자의 자식이지만 그에게 키워진 재능 많은 소년 혜강, 어머니에게서 핍박을 받고 자라는 소년 덕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교사 '기혜'가 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신뢰하며, 삶과 부처에 관한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다솔스님과 기혜의 사랑이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있는 듯하지만, 사랑보다 이들은 더 큰 차원의 관계로도 보인다. 그들은 교리에만 치중하지 않고, 삶의 모든 것이 진리일 수 있다는 불교의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실천해나간다.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랑의 실천, 이 세상에서 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나환자촌에 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허세와 경쟁의식을 비판하고, 누군가를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탐구하고, '윤회'를 통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특색이 강하여 각각의 성장을 지켜보는 소설로도 보이는데, 절에서 자란 소년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미움만을 받는 소년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을 아끼던 주인공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묻게 되면서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게 된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의 사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사상보다도 이야기의 힘이 유독 강하여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에, 차분하고 순수한 대화들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제자인 '혜강'이 선생인 '기혜'에게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저의 대지'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수많은 곳곳,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정말 많이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 기분을 잊지 않을 것만 같았다.
▒ 담아둔 문장
▒ 인간이 느끼는 희 로 애 락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숱한 얼굴들,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나를 괴롭게 했다.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사람도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행복이나마 줄 수 있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괴로움을 준 적도 있었다.
서로 행복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은 좋은 인연이고 서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나눠야 하는 만남은 악연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좋은 사람만 만나면서 살고 싶지만 살다보면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할 때도 많고 내 자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사람이 되어야 할 때도 많다. 이런 관계는 의식에서 선택되어지기보다는 거의 필연적으로 와 진다. 이 필연적인 관계가 바로 업연인지도 모르겠다. (76p)
▒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내 가슴속에서 다솔스님의 잿빛 승복 위로 불어오던 깊은 산 솔바람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서였다. 이것은 무엇일까? 내 가슴 속에 와닿는 이 신선한 솔바람소리는 무엇일까? 다솔스님을 처음 만난 순간 느꼈던 그 경이로운 감정은 다시 한 번 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내가 눈을 뜨고 혜강을 쳐다보자, 혜강이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혜강이한테 남아있던 꺼림칙한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내 가슴속에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혜강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자. 혜강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자.'(81p)
▒ "다솔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당 근처에서 풀을 뜯어먹던 염소가 매일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은 공덕으로 다음 생에서는 축생도를 벗어났다고요."
"그렇지만 너도 큰 공덕을 쌓고 있구나."
"그렇지요. 저는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왔으니까요."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자랄 수 있었다는 건 분명 예사 공덕은 아닐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내 가슴은 착잡했다. 혜강은 자신의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발밑에 있는 지렁이를 바라보았다. 지렁이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혜강은 몸부림치는 지렁이를 보고 있더니 수돗가로 가서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은행나무 밑에 물을 부어서 흙을 적셔 놓고는 나뭇가지로 지렁이를 들어 그 젖은 흙 속에 묻어 주었다.
"선생님, 저 지렁이는 다음 생애에 조금 더 지혜 있는 축생으로 태어날 겁니다."
"왜?"
"염불소리를 듣고 자란 제 손으로 살려 주었으니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혜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206p)
▒ 나는 창문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쏘이며 자리에 누워서 새털처럼 흐르는 하얀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중한이라고 할까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솔스님과 그 마을을 찾아갈 일을 생각했다. 지구의 끝이라고 해야 할지, 연옥의 끝이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이 세상 같지 않은 그 마을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스님이 다시 와 주기를 원했다. 불교가 무엇인지 알리가 없는 그 사람들도 스님을 보는 순간 막연하게 부처님을 생각하고 내세의 구원을 생각했을 것이다. 종교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경전을 외우고 교리를 아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겠는가. 고통스럽고 절망에 빠진 약한 자신을 내려다보고 너그럽게 손을 뻗어 구원해 줄 것 같은 대상, 그 대상에게 자신을 던지고 겸허하게 매달리는 것이 종교의 본질일지도. (252p)
* 출처 : 예스24 <https://m.yes24.com/Goods/Detail/15022674>
책속에서
P.12
죽음은 영원한 이별, 한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 생명은 끝없이 윤회한다 하나 전생의 만남을 모르니 내생의 만남도 알지 못한다. 생(生)과 사(死)가 하나라지만 그건 요원한 비밀, 지금 우리에게는 육신의 이별만이 안타까운 것이다.
P.255
바보라는 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바보가 되면 편한데 사람들은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건 바로 그래서가 아닐까?
P.305
석양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든 바다는 검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바다는 어둠속에 잠길 것이다. 그러면 바다의 형체는 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생명도 그런 것이 아닐까?
죽음이 오면 육신의 생명은 끝난다. 하지만 바다의 본래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변화가 없듯이 인간의 생명도 육신의 생(生), 멸(滅)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 사가 따로 없고 모든 생명은 여여 하여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P.364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솔스님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다솔스님은 너무 먼 곳에 계셨다. 이 무서운 절망의 순간에도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계셨다. 아득한 그 거리, 그건 바로 잿빛 승복이었다.
P.368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내 소유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일까? 하지만 마음은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을 뿐 아니라 끝없이 유전(流轉)한다. 그 마음을 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하다. 결국 내가 살아 온 삶 자체가 어떤 환영(幻影)처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P.377
가을비가 질척하게 내리고 있다. 이 비가 멎으면 추위가 오겠지. 계절이 바뀔 때면 항상 비가 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 . . 하지만 나는 이제 다시 돌아오는 봄을 볼 수가 없다. 여름 바다도 가을 들판도 역시 볼 수가 없다. 죽음이라는 절대의 힘 앞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병원에도 다니지 않고 진통제로 버텼다. 심할 때는 손끝까지 쑤셔왔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이끌고 병원 문을 드나든다는 것이 어쩐지 희롱당하는 것 같아 치료받는 일을 포기했다.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할 때도 많고 내 자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사람이 되어야 할 때도 많다. 이런 관계는 의식에서 선택되어지기보다는 거의 필연적으로 와 진다. 이 필연적인 관계가 바로 업연인지도 모르겠다. (76p)
시읽는리니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내 가슴속에서 다솔스님의 잿빛 승복 위로 불어오던 깊은 산 솔바람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서였다. 이것은 무엇일까? 내 가슴 속에 와닿는 이 신선한 솔바람소리는 무엇일까? 다솔스님을 처음 만난 순간 느꼈던 그 경이로운 감정은 다시 한 번 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내가 눈을 뜨고 혜강을 쳐다보자, 혜강이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혜강이한테 남아있던 꺼림칙한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내 가슴속에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혜강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자. 혜강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자.`(81p)
시읽는리니
˝다솔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당 근처에서 풀을 뜯어먹던 염소가 매일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은 공덕으로 다음 생에서는 축생도를 벗어났다고요.˝
˝그렇지만 너도 큰 공덕을 쌓고 있구나.˝
˝그렇지요. 저는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자라왔으니까요.˝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자랄 수 있었다는 건 분명 예사 공덕은 아닐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내 가슴은 착잡했다. 혜강은 자신의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발밑에 있는 지렁이를 바라보았다. 지렁이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혜강은 몸부림치는 지렁이를 보고 있더니 수돗가로 가서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은행나무 밑에 물을 부어서 흙을 적셔 놓고는 나뭇가지로 지렁이를 들어 그 젖은 흙 속에 묻어 주었다.
˝선생님, 저 지렁이는 다음 생애에 조금 더 지혜 있는 축생으로 태어날 겁니다.˝
˝왜?˝
˝염불소리를 듣고 자란 제 손으로 살려 주었으니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혜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206p)
시읽는리니
나는 창문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쏘이며 자리에 누워서 새털처럼 흐르는 하얀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중한이라고 할까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솔스님과 그 마을을 찾아갈 일을 생각했다. 지구의 끝이라고 해야 할지, 연옥의 끝이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이 세상 같지 않은 그 마을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스님이 다시 와 주기를 원했다. 불교가 무엇인지 알리가 없는 그 사람들도 스님을 보는 순간 막연하게 부처님을 생각하고 내세의 구원을 생각했을 것이다. 종교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경전을 외우고 교리를 아는 것이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겠는가. 고통스럽고 절망에 빠진 약한 자신을 내려다보고 너그럽게 손을 뻗어 구원해 줄 것 같은 대상, 그 대상에게 자신을 던지고 겸허하게 매달리는 것이 종교의 본질일지도. (25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