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People-신일학원 김창호, 그의 의지
“지금 비 와?”
내 그렇게 아내에게 물었다고 했을 때, 아내가 이렇게 대답하면 그것으로 대판 부부싸움으로 번져 갈 수 있다.
“오는 것 같아요.”
현장 확인을 안 해보고 짐작을 앞세운 책임 회피적 답이라는 것이, 내 그 대판 부부싸움에 이른 변명이다.
내 그런 심사를 알고 아내가 이렇게 답할 수도 있다.
“당신이 직접 확인 하세요.”
그 답 또한 대판 부부싸움의 빌미다.
헌신이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답은 곧 이것이다.
“베란다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 봤는데요, 지금 비가 오고 있네요. 창 안으로 들이칠 정도로 많이 와요. 아무래도 골프 못 치겠어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검찰수사관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상관의 물음에 꼭 이런 식으로 답하는 부하가 있었다.
“그런 듯싶습니다.”
그 답으로 결국 그 부하는 한직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고위 공직자임에도 매사에 책임지려는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 그때 그 상관이 내세운 이유였다.
나는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불만이 많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적령기에 결혼하지 않는 것, 주위를 두루 살펴보지 않는 것, 오로지 자기만 챙기는 것, 어른들의 경험담을 듣지 않으려는 것, 그러면서도 어른들이 경험 속에서 얻은 재물을 탐하는 것 등,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불만은 자기 주관을 뚜렷이 내세우지 못하는 것, 바로 그 비겁함이다.
예를 들어, 그 어떤 견해를 밝혀야 할 상황에서, ‘생각 안 해봤어요.’라거나 ‘아직 그 나이까지 안 살아봤어요.’라거나 해서, 미꾸라지 피해가듯 답을 하는 젊은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기 주관을 뚜렷이 내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주관이 없거나 있어도 흔들린다는 것의 반증이며, 결국 누군가에게 의존적 삶의 징표로 이어진다.
그런 의존적 삶으로는 뭔가 이뤄낼 수 없다.
혹 그럴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의존한 상대에게 빚진 것으로서, 온전한 자신의 것일 수는 없다.
그래서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직원들처럼, 나와 아주 가깝다 생각이 되는 주위를 향해서는, 내 늘 이런 요지의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손들고 나서서 답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용기의 상징이다. 주춤하는 것은 비겁함의 상징이며,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 앞서가는 다른 사람이 있다. 답은 명확해야 한다. 맞는 답이든 틀리는 답이든 상관없다.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단, 그 답에 이르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 답이 틀렸다 하더라도, 논리가 그 답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내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 그것은 곧 선뜻 나서주는 ‘의지’, 바로 그것이다.
내 주위에는 그런 의지의 인물들이 꽤나 있다.
주관이 뚜렷하고, 그 뚜렷한 주관을 주위에 선뜻 밝힌다.
부끄럽지 않은 주관이기 때문이다.
신일학원 김창호 선생도 그런 인물 중의 하나다.
매사에 주춤거림이 없다.
선택이 빠르고 실행 또한 곧장 뒤를 잇는다.
2015년 6월 21일 일요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구 신월동 신월야구장에서도 그랬다.
제 69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현장으로, 경북 경주고등학교와 서울 충암고등학교가 맞붙고 있었다.
경주고 출신인 김 선생의 권함이 있어, 아내와 함께 그 현장을 찾았다.
모처럼의 야구경기 구경이어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으면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내가 그 야구장에 들어섰을 때에는 1회 말에 충암고가 이미 2점을 선취해 있었고, 그 이후 득점 없이 진행되다가 5회 초 경주고의 공격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루타 하나로 포문을 연 경주고였다.
충암고 투수의 폭투와 볼넷으로 무사에 1, 3루를 만든 절호의 그 추격 찬스를 경주고는 놓치지 않았다.
2타점 적시타가 터져 동점을 만들더니 곧이어 충암고 투수의 폭투에 또 한 방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단번에 3점을 얻어 역전 드라마를 엮어내고 말았다.
그 분위기로 봐서 경주고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경기는 김 선생이 교편을 잡고 있는 서울의 신일고와 청원고와의 한 판 다툼이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기에서 경주고가 승리하고, 뒤의 경기에서 신일고가 승리하게 될 경우에는, 이틀 뒤인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목동경기장에서 야간경기로 펼쳐지는 8강전에서 그 두 학교가 맞붙게 된다는 김 선생의 설명이 있었다.
슬슬 내 마음에 장난기가 일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게 그 두 학교가 맞붙게 된다면, 김 선생은 과연 어느 학교가 승리하기를 바랄 것인가 하는 것이 궁금했다.
생각으로만 감춰둘 수가 없었다.
단박에 이렇게 물어봤다.
“김 선생은 모교인 경주고를 이기기를 바라나요, 아니면 현재 재직하는 신일고가 이기기를 바라나요?”
내 그 물음에, 김 선생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역시 단박에 이렇게 답을 했다.
“경주고를 응원할 겁니다.”
재직 학교인 신일고의 승리를 기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하나 없었다.
그 논리가 이렇게 정연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모교인 경주고를 응원해야, 우리 신일고 학생들도 언제 어디에서든지 모교를 응원하게 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놀라운 의지였다.
그런 의지의 남자인 김 선생과 함께 하는 내 지금의 삶, 내 그래서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문득 한 생각을 떠올렸다.
김 선생을 행복하게 해줄 생각이다.
김 선생이 모교 경주고가 이길 것을 바라고 있으니, 나는 김 선생이 재직하는 신일고가 이기도록 응원하는 것, 곧 그 생각이다.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의지적으로 확신한다.
경주고 선수들의 투지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얕은 경험이 문제다.
내 알기로, 야구부가 있다 없다 하는 것을 반복하는 바람에 지금의 주전선수들은 1학년생과 2학년생들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주고가 1975년에 창단되어 40년의 역사를 수차례에 걸쳐 황금사자기를 거머쥔 적이 있는 신일고 선수들을 감당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경주고가 신일고에게 치욕을 안겨주면서 이긴다면, 그것은 고교야구계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기적 같은 대 사건이 되고 마는 것인데, 그런 기적은 있을 수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요행수를 바라는 분위기가 생길까봐서다.
지난해 봄의 일이다.
김 선생 부부와 함께 벚꽃이 한창인 밤의 신일고를 들러, 어둠이 깊어지는 그 밤에, 연습에 열중인 신일고 야구부 선수들의 모습을 봤고, 그 실력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됐다.
학교의 지원도 만만치 않음을, 내 김 선생에게 들어서 잘 안다.
결코 햇병아리 같은 경주고 선수들에게 지는 그런 치욕을 안을 신일고 선수들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낸 결론은 신일고가 이긴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번의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주고가 충암고를 이겼던 스코어인 10대 2 정도의 스코어인 콜드게임으로 신일고가 이기는 승부가 될 것이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이맘때쯤에도, 경주고와 신일고가 맞붙어 경주고가 패한 역사가 있다.
지금의 경주고 주전 선수들이 3학년이 되는 내년이면 몰라도, 금년에 막강 타선의 신일고를 이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2015년 6월 24일 수요일인 오늘 밤, 목동야구장에서의 그 한 판 승부, 아예 보나마나다.
그래도 간다.
아내도 함께 가기로 했다.
나를 행복하게 한 김 선생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오늘 밤만큼은 떠는 그의 모습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밤이 될 것이다.
이어서 시원한 생맥주판 한 판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