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 15-20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본문은 아브라함의 연약성에서 나온 실수가 어떻게 파장치며 나타났는가? 를 알게 합니다. 다시 노아 때와 같은 혼합 위기가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족장, 곧 교회 지도자의 실수를 하나님께서 친히 어떻게 수습하시는가? 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래도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1. 본문 15-16절은
“⑮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입니다.
1) 비록 아브람이 너무 겁을 내고 너무 조급하게 두려움을 가지므로 죄를 짓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전혀 원인이 없이 그렇게 겁을 내고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아내가 왕 앞에 대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애굽인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는 대신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으로 모세는 사래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이 모든 곳에까지 널리 퍼졌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행실이 훨씬 방종한 대신들에 의하여 더 열심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동시에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런 이유로 그들이 왕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도 왕의 궁전에서 창궐하고 있는 그 부패가 고대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추론하게 됩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일들이 아첨을 하며 알랑거리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같이 그들 귀족들도 정기적으로 왕에게 만족과 기쁨을 안겨주는 일을 알선하는 데에 그들의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들 대신들 중에 보다 더 높은 벼슬을 하려면, 그리고 왕의 총애를 더 받기를 원하고 있는 자는 그의 노예처럼 아첨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왕의 정욕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여 그 기호에 맞게 제공하는 데에 몰두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2)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에서 그녀가 궁전으로 들어가 당분간 거기서 거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기를 그녀는 왕과 불륜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욕적인 사람인 그가 그녀를 자기의 손아귀에 넣을 때 과연 그녀의 정조를 생각하고 그냥 놓아두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또한 그의 아내의 정절(貞節)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돌보심에 맡기지 않은 아브람은 충분히 이런 결과를 당해야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즉시 따르고 있는 재앙은 여호와께서 그녀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서 우리는 그녀가 아직까지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비록 이곳에서 모세가 이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연속되는 유사한 줄거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는 이번에도 전혀 예외 없이 수반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그와 비슷한 위험에 처해 있었을 때에도(창20:1) 하나님은 그랄 왕이 그녀를 괴롭히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녀가 이번에는 바로의 정욕에 희생되었다고 추측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정절을 지키며 정직하고 정숙하게 살아왔던 그녀를 보호해 주시는 것보다 과거에 한번 수치를 당한 그녀가 다시 두 번째의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을 생각하셨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약 하나님이 직접 아브람에게 호의를 베풀어 이제 그가 두 번째 그런 추함에 넘겨주었던 그의 아내를 구해 주셨다면 과연 그전에 있었던 위험에서 그대로 당하도록 버려두셨으리라는 것이 하나님에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아마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결함이 더욱 더 넘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들이 정욕이 그 후에 나타난 것처럼 그렇게 자제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우기 아브람이 사래를 위하여 아주 친절하게 언급되고 있는 내용을 첨가한 것을 봐서 우리는 그녀가 바로에 의하여 아주 명예스럽게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창녀처럼 취급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결론을 내리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말하기를 그녀가 왕의 궁으로 인도되어 갔다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다른 목적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고 왕의 엄숙한 의식으로 그녀를 자기의 아내를 삼으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2. 본문 17절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입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래는 각각이면서 동시에 하나였습니다. 한 언약을 함께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보호를 받습니다. 만약 모세가 단순히 하나님이 왕이 간음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에게 벌을 내리셨다고 언급했다면, 사래의 정절을 하나님이 과거에 보호해 주셨다는 사실이 그렇게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분명하게 선언하기를 아브람의 아내 사래 때문에 왕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다고 할 때에 우리 판단으로는 모든 의심들이 말끔히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을 대신하여 그분의 능력 있으신 손을 적절한 시기에 뻗쳐 간섭하셔서 사래가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배려의 예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배려로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곧 그들의 큰 목적은 가장 강력한 왕조들을 대항하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수행함으로 그분의 종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은 이 줄거리와 유사한 시편 105편 12절에서부터 15절까지 언급되고 있는 이야기들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보면 “때에 저희 사람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나라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서 또한 바로 조금 전에 생각했던 의견에 대하여 확신을 유출해 낼 수 있습니다.
바로가 아브람에게 아무런 상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나님이 바로를 책망하셨다면 사래도 역시 정절을 유린당하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는 것으로 귀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본보기들로 우리는 다음 사실을 교훈으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효가 적거나 또한 우리의 약함을 인하여 이 세상이 제 아무리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귀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이 열왕들을 대적하는 분으로 선언하실 것입니다. 심지어는 전체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직접 싸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보다 더 막강한 자들의 정욕과 강포가 우리를 압박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이제 그분의 보호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의문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바로가 다른 사람의 아내를 소유하려고 교활하거나 또는 강제적인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에, 바로가 불공정한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간들의 행위들이 언제나 우리의 판단에 의하여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님의 저울로 그 무게를 달아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그 허물에 전혀 관련이 없으며 우리 자신은 모든 죄성에서 해방되어 있다고 하는데도 여호와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분이 공정하게 형벌을 내려야 될 잘못을 찾아내신다는 사실이 종종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줄거리에서 왕들은 자기들의 권세를 억제하고 그들의 권위를 온건하게 이용하는 것을 배워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 자신들에게 알맞은 자발적인 법칙을 적용시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바로에게서 공공연하게 잘못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 감히 바로의 방탕성을 억누르는 신실한 충고자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는 하늘에서 그를 징치(懲治)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 관해서 생각할 때 그들은 정말로 무죄했으며 여호와께서 그렇게 징치하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보이는데 사실은 우리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언제나 그렇게 하시는 것에 대한 정당한 원인을 지니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종 아브람을 아끼신 것은 하나님의 부성애적인 관대함에 지속시켜야 될 것입니다.
3. 본문 18-19절은
“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입니다.
바로는 잘못의 장본인이었던 아브람을 공정하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 측에서는 전혀 아무런 대답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는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인 그 사건에 대해 공정하게 내리는 견책에 동의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서 무죄를 변명하는 것을 생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 그의 계획은 아브람을 보호하고 그의 결혼관계를 정당하다고 입증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攝理)에 대한 예표를 제공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아브람이 자기의 어리석음으로 또는 그의 부주의로 정당한 형벌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두 번째로 똑같은 잘못의 전철을 밟았던 사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4. 본문 20절은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입니다.
아브람이 그 나라에서 안전하게 가도록 명령하면서 바로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위험을 대비하기 위하여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브람은 그 자신을 대항하는 민족은 하나님의 채찍을 가지고 온 자를 대항하는 것으로서 오명을 쓰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추측이 거의 견고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더 간단한 해석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아브람에게 그 나라를 떠나라는 허락이 내려진 것은 그가 그들에게 폭행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애굽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교만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아브람이 그가 받은 재물들을 가지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가 틀림없이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또한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신 은혜의 혜택으로 간주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