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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口蜜腹劍)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을 말한다.
口 : 입 구(口/0)
蜜 : 꿀 밀(虫/8)
腹 : 배 복(肉/9)
劍 : 칼 검(刂/13)
(유의어)
소중유검(笑中有劍)
소리장도(笑裏藏刀)
면종복배(面從腹背)
경이원지(敬而遠之)
양두구육(羊頭狗肉)
표리부동(表裏不同)
소면호(笑面虎)
(속담)
○ 등치고 간 내먹는다.
○ 웃음 속에 칼이 있다.
입술에 꿀 바른 듯 달콤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일단 경계 대상이다. 말로는 친한듯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칼날을 품고 있듯이 해칠 생각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웃고 뺨친다’나 ‘등치고 간 내먹다’ 같은 똑 같은 뜻의 속담도 있다. 북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할 때 나열한 죄상 중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딴마음을 품는다는 뜻의 양봉음위(陽奉陰違)도 유사성어 중의 하나로 유명해졌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은 중국 간신 중에서도 이름 높은 당(唐)나라 때의 이임보(李林甫)에게서 비롯된 말이다. 당 현종(玄宗)은 초기에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방을 든든히 하여 개원지치(開元之治)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만년에 양귀비(楊貴妃)와 사랑에 빠진 뒤부터는 권신 이임보에게 국정을 일임해 버렸다.
음험하고 아부에 능했던 이임보는 조정의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자기의 자리를 위협하는 충신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없애거나 그렇지 않으면 멀리 지방으로 내쫓았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들은 연유도 몰랐다. 이임보가 정적을 제거할 때는 한껏 상대방을 추어세운 다음 뒤통수를 치는 음험한 수법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팔사략(十八史略)이나 자치통감(自治通鑑) 등의 관련 조에는 이렇게 이임보를 평가한다.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妬賢嫉能 排抑勝己 性陰險). 사람들은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人以爲口有蜜腹有劍)."
19년 동안 전횡한 이임보가 죽은 뒤 재상이 된 양국충(楊國忠)이 그 죄상을 밝히자 현종은 그때서야 생전의 관직을 박탈하고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에 처했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은 꿀같이 달콤한 말을 하지만 뱃속은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위해주는 듯하나 속은 상대를 해치려 하거나 적대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유래는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나라 현종 때, 왕의 총애를 받던 이임보(李林甫)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임보는 늘 온화한 미소를 띠었고, 얼굴을 마주하기 껄끄러운 이가 있어도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격이 모나지 않고 둥글어 사람들과 원만히 지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당나라를 몰락의 길로 이끈 장본인이며, 중국 역사상 최악의 간신으로 꼽힌다. 모든 행동이 권력을 얻기 위한 아첨이고 위선이었던 것이다.
당나라는 태종 즉위 후 크게 발전했다. 태종이 죽은 뒤에는 고종이 아버지의 기세를 이어 당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다졌으며, 고종 뒤로는 그의 부인 측천무후가 황제가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당나라가 한창 전성기를 달릴 때, 측천무후의 손자인 현종이 황제로 즉위했다. 712년, 27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현종은 측천무후가 마련해둔 제도들을 개선하고, 백성을 살피는 일에 힘썼다.
그는 유능한 인재들을 발탁하여 각 지방에 파견해 다스리게 했으며, 무능한 관리는 주저 없이 해임했다. 현종은 황제에게 직언할 줄 아는 기량이 뛰어난 재상들을 곁에 두었다. 당시 장구령, 한휴 등이 현종을 보좌했고, 현종은 그들의 간언을 교훈 삼아 국가를 다스렸다. 현종은 명군이었고, 옆에 있던 이들 역시 명신이었다. 덕분에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나라가 평안하고, 국고가 풍부해지자 현종은 초심을 잃어갔다. 즉위한 지 30여 년이 되었을 무렵, 그는 정치에 흥미를 잃고 도교에 빠졌다. 후궁이었던 양귀비와 밤낮으로 잔치를 벌이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갔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간신들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왔다.
그 간신 중 하나였던 이임보는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문보다는 음악이나 그림, 무예, 예체능에 더 능했으며 멋을 부리는 데 관심이 많아 관리 중에서도 옷 잘 입는 멋쟁이로 불렸다. 하급관리였던 이임보는 권력을 얻기 위한 처세술에 도가 튼 인물이었다.
그는 황제 눈에 들기 위해 주변 인물들에게 공을 들였는데, 그 대상이 의외다. 실질적인 권한이나 권력이 없는 환관(내시)과 후궁들이었다. 늘 황제 곁에서 보필하는 그들이 황제의 가치관과 취향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임보는 그들의 입을 통해 황제의 심중을 파악했다. 그리고 회의가 열리면 황제의 의중에 맞는 맞춤 의견을 내보였다. 황제 눈에 이임보는 자신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신하였다.
환관과 후궁들은 이임보를 인품까지 겸비한 현신이라며 황제에게 수시로 어필했다. 조정에서는 당연히 이임보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점차 이임보는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받는 신하로 자리매김했다. 뛰어난 학식이나 나라를 다스릴 능력은 없었으나 아첨하는 재주 하나로, 드디어 왕의 오른팔 격인 재상(宰相) 후보 자리까지 올랐다.
재상 자리 문턱까지 온 이임보에게는 장애물이 하나 있었다. 당시 재상으로 있던 장구령이었다. 장구령은 인품, 학식 등 모든 면이 이임보보다 뛰어났다. 장구령이 재상 자리에 있는 한 자신은 재상이 될 수 없을 거라 판단한 이임보는 장구령을 밀어내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심중을 절대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임보는 장구령에게 늘 겸손한 태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고, 시종일관 미소 지으며 대했다. 얼마나 이중적이었는지 유능한 장구령도 그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임보는 장구령과 같은 편인 척하면서 중요한 순간에 뒤통수를 쳤다.
당시 당나라에는 ‘우선객’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관할 지역과 군대를 훌륭히 다스렸다. 조정에서 우선객을 고위직에 올리자는 의견이 나왔고, 장구령은 이에 반대하였다. 변방의 장수를 곧바로 고위 자리에 앉히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장구령은 이임보를 찾아가 이 같은 의견을 황제에게 함께 전하자고 제안했다. 이임보도 동의하였다. 그러나 막상 두 사람이 황제 앞에 찾아갔을 때, 의견을 피력하는 장구령 옆에서 이임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 가서 우선객에게 조언했다. “우선객이 조정에 오지 못하는 것은 장구령의 반대 때문이니 황제를 마주하면 울며 충성심을 보이게.”
우선객은 이임보의 말대로 하였고, 황제는 우선객의 태도를 보고 신하들에게 다시 의중을 물었다. 장구령은 여전히 반대하였으나, 이임보는 말을 바꾸었다. 장수의 재능을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을 주는 것은 황제의 뜻이니 신하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황제는 이임보의 뜻에 따르겠다며 그가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칭찬했다.
한번은 현종이 수도를 옮기자는 의견을 내었다. 장구령을 비롯한 충신들은 반대했다. 수도를 반드시 옮겨야 할 이유가 없고, 비용이 많이 들며, 백성의 논밭을 허물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현종은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내심 불편해 했다. 이때 이임보는 ‘백성의 재정이나 농작 문제는 세금을 면제해주면 되는 것이니, 황제의 결정이라면 신중히 검토해봐야 할 문제지 무작정 반대부터 해서는 안 된다’며 황제 편을 들었다.
현종이 지방을 다스리는 절도사를 임명할 때도 장구령은 ‘학문이 부족한 사람은 절도사로 보내기 부적절하다’고 반대했다. 이임보는 ‘학문은 배우면 되는 것이고, 재능은 배움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다양한 면에서 평가하고 뽑아야 한다’고 황제의 의견에 동조했다.
현종이 황태자를 폐위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장구령은 극구 반대하였다. 이임보도 장구령의 의견에 동의하였으나 막상 황제 앞에 가서는 또 행동이 달라졌다. 황태자를 폐위해선 안 된다고 열변하는 장구령 옆에서 이임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환관을 통해 황제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게 했다. “황태자 폐위에 관한 내용은 결국 황제의 집안일인데 이런 문제에 감히 신하가 끼어들어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입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현종은 제 의견에 반대만 하는 장구령과 신하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공석이 된 재상 자리에는 이임보가 올라갔다.
이임보는 재상이 된 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모함하고 내쫓았다. 정치에 노련한 신하들을 지방으로 좌천시켰고, 과거 시험도 직접 관리하여 우수한 성적을 받은 자는 전부 낙제시켰다. 황제에게는 인재들이 이미 모두 조정에 있는 것 같다고 핑계를 대었다.
어느 날, 현종이 재상 이임보를 불러 엄정지라는 인물의 행방을 물었다. “엄정지는 어디 있는가? 요즘 통 보이질 않으니 다시 조정으로 불러오게.” 엄정지는 장구령에게 발탁되어 조정에서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던 자였다. 그러나 이임보가 그를 눈엣가시로 여겨, 지방에 좌천당한 상태였다.
현종이 엄정지를 다시 조정에 들여오고 싶어하는 낌새를 눈치챈 이임보는, 황제에게 그를 찾아보겠다고 한 뒤 엄정지의 동생을 찾아갔다. “형이 황제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엄정지에게 ‘큰 병이 나서 경성에 돌아가 치료 받고 싶다’는 상소를 조정에 올리라고 전하게.” 엄정지의 아우는 형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임보에게 감사하다며 절까지 했다.
엄정지는 아우의 말대로 병 치료를 위해 경성에 돌아가고 싶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임보는 이를 황제에게 보고하며 말했다. “정말 아까운 인재인데 애석하게 되었습니다. 엄정지가 중병이라고 하니 어찌 나라의 중책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현종은 어쩔 수 없이 엄정지를 승진시키려던 생각을 버려야 했다. 현종은 이임보가 재상으로 있으니 조정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그를 더욱 신뢰했다.
주자량이라는 감찰사가 ‘이임보는 재상직을 맡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고 상소를 올렸다가 쫓겨날 정도였다. 사실 이는 이임보가 현종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고, 다른 신하나 백성의 반발, 충언이 황제 귀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려는 자들은 해를 당하고 황제 근처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조정에는 점차 유능한 신하들이 사라지고, 이임보 같은 간신들만 가득 채워졌다.
현종은 이임보에게 모든 정사를 일임한 채 양귀비와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이임보는 국정을 자기 입맛대로 조종했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이었던 당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기반이 붕괴되어 갔으나, 이임보는 죽기 직전까지 재상 자리를 지켰다. 이임보의 죄는 그가 죽고 나서야 밝혀졌다. 현종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나라의 체계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다.
서민들은 과도한 세금 착취로 고통받고 있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민심은 이반되었다. 이임보가 재상으로 있던 17년 동안 군사 체계 역시 약화되었다. 중앙 정부는 간신만 판치고 인재가 없으니 통제력이 약해졌다. 이는 지방의 군벌들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반란 일으키기 딱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다.
결국 현종은 4년 뒤 일어난 안사의 난으로, 황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역사 학자들은 안사의 난을 당나라 몰락의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아첨하는 작은 혀가 황금기의 대국을 패망하게 만든 것이다. 당나라의 쇠퇴를 가져온 이임보의 행동은 역사에 길이 남아, 오늘날까지도 ‘구밀복검’의 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 겉으로는 아무리 친절해보여도, 뒤에서는 나를 향한 칼을 갈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기 위해, 겉과 속을 다르게 위장하는 ‘구밀복검’ 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한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꿀맛 같이 절친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밀(密)은 빽빽할 밀(宓)에 뫼 산(山)을 받쳐 놓은 글자이다. 나무가 빽빽한 산 속에서 한 일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서 비밀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복(腹)은 배, 검(劍)은 칼을 뜻한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말은 중국 역대의 간신중에서도 이름 높던 이임보(李林甫)를 가리켜 한 말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45년 치세의 초기에는 측전무후(則天武后) 이래의 정치의 난맥을 바로잡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한 정치를 잘한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하여 주색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임보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환관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에 들러붙어 현종의 환심을 사 출세하여 재상이 된 사람이다. 이임보는 황제의 비위만을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신하의 충언이나 백성들의 간언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한번은 비리를 탄핵하는 어사(御使)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명군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무슨 말을 아뢸 필요가 있겠소. 저 궁전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시오. 어사도 저렇게 잠자코 있으시오. 만일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이런 식으로 해서 신하들의 입을 봉해 버렸다. 설령 직언을 생각하고 있는 선비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이나 자치통감(自治通鑑) 등의 관련 조에는 이렇게 이임보를 평가한다. "이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李林甫 妬賢嫉能 性陰險 人以爲 口有蜜腹有劒)."
그가 야밤 중에 그의 서제 언월당(偃月堂) 들어앉아 장고(長考)를 했다하면 그 다음날은 예외없이 누군가가 주살 되었으며 자주 옥사를 일으켰으므로 황태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 했다. 재상 지위에 있기를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냈으나 현종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안녹산(安祿山)도 이임보의 술수를 두려워 했으므로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楊貴妃)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다. 양국충이 재상이 되자 마자 죄목을 하나 하나 들어 현종에게 고하자 이제서야 깨닫고 크게 화가 난 현종은 명령을 내려 그의 생전의 관직을 모두 박탈하고 폐가망신과 함께 부관참시의 극형에 처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임보가 죽은지 3년째 되던 해였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는 꿀을 담고 배에는 칼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해 주지만 속으로는 해칠 뜻을 품거나 뒤에 가서는 헐뜯거나 적대하는 것을 말한다.
당서(唐書)에 전하는 것으로 구유밀복유검(口有密復有劍)의 줄임말이다. 당나라 현종은 초기에는 정치를 잘하여 '개원의 치(開元之治)'라 불리며 칭송을 받았으나 뒤에는 주색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때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후궁을 통해 황제의 환심을 사서 재상까지 올랐다. 그는 재상으로 있으면서 황제와 후궁의 비위를 맞추면서 수많은 사람을 모함하여 죽였다. 이른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죽이는 방법이 교묘하여 겉으로는 상대를 추켜세운 후에 은밀히 모함하여 죽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임보(李林甫)는 입으로는 꿀과 같은 달콤한 말을 하지만 배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고 하며 경계하였다. 이는 오늘날 '말로는 친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숨기고 있다'는 의미로 간신이나 사기꾼 등을 경계하라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1. 최고 통치자가 중심을 잃으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건 군주나 대통령, 총리 등 최고 통치자가 중심을 가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최고 통치자가 중심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관리를 잘하며 사치와 방탕에 빠지지 않으며, 특히 인사를 고르게 하고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잘 조절하며 귀와 눈을 밝게 하는 일이다.
최고 통치자가 중심을 잃게 되는 경우는 대체로 사치와 방탕에 빠지거나 특정의 세력만 두둔하고 인사를 골고루 하지 않을 때 많이 발생한다. 만약 최고 통치자가 중심을 잃으면 주변에 아첨하여 권력과 이익만 탐하는 간신이 득세를 부리기 쉽고 특정인에게 최고 통치자의 마음이 지나치게 쏠려 그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하기 쉽다. 그러면 그는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 최고 통치자의 마음이 그에게 쏠리는 이유는 그 간신이 최고 통치자에게는 간을 빼 주듯 온갖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야심이 많은 간신과 간악한 자는 최고 통치자에게 온갖 아첨과 충성을 발휘하므로 최고 통치자의 눈과 귀를 막으며 권력을 확대해 나가게 된다. 그러면 국정은 그 야심이 많은 간신이나 간악한 자의 손에 의해 농락당하여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되거나 국정에서 밀려나고 권력은 그에게 독점되기 쉽다. 그 간신배는 지속하여 자신의 권세와 지위를 누리기 위해 최고 통치자에게 아첨하여 정의로운 관리들을 탄핵하고 제거하기 위해 온갖 모함을 일삼는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에게 불편한 사람은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지만 결국은 모함하여 제거하게 된다. 그것이 오래가면 권력은 휘청거리고 내분이 일어나고 불만 세력에 의해 반란이나 반정의 조짐도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기울게 된다.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여 준다.
그런 간악한 사람은 대부분 겉으로는 양의 얼굴을 하고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마음속에는 엄청난 음모와 무서운 칼날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공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는 자에게는 인(仁)이 없다고 하였다. 중국 당나라 현종 때에 이임보라는 자가 바로 황제에게 교언영색(巧言令色)하여 권력을 손에 쥐고 수많은 무고한 관리를 희생시킨 사람의 하나다. 그 이임보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고사가 口蜜腹劍(구밀복검)이다.
2. 口蜜腹劍(구밀복검)의 유래
口蜜腹劍(구밀복검)은 당서(唐書)에 전하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현종 때였다. 제6대 임금 현종 이융기(唐玄宗 李隆基, 685년 ~ 762년)는 초기에는 매우 어질고 총명한 황제였다. 그는 유능한 관리를 등용했으며 신하의 직언을 달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흉년에 곡식을 풀어 백성을 구제하기도 하는 등 애민 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래서 별호로 당 명황(唐明皇)이며, 당 태종 이세민 이후 개원 성세로 불리는 왕조의 재 번영을 이끌기도 하여 “개원의 치(開元之治)”라 불리며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뒷날 오만해져 충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내쳤으며, 이임보와 고력사 등 간신배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양귀비에 빠져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특히 이임보(李林甫)는 무식하고 무능한 인간이지만, 아첨에 뛰어난 간신배였다. 그는 후궁을 통해 황제의 환심을 사서 황제의 총애를 받아 승상까지 올랐다. 그리고 아첨으로 권력을 독점하면서 황제에게 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19년간이나 국정을 전횡하였다.
이임보는 황제의 최측근 환관 고력사에게 아첨하여 황제가 자기를 칭찬하게 하였고, 좋든 나쁘든 무조건 황제의 의견에 찬성하였으며, 황제가 주색에 빠지도록 종용하였다. 그리고 황제에게 올바른 의견을 밝히는 곧은 신하들의 목소리가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항상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그렇게 하여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기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다져갔다.
승상이 된 그는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비위(非違)를 밝히고 탄핵하는 어사(御使)에게 "폐하는 고금에 없는 명군(名君)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은 황제에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소. 저 궁전 앞에 말없이 서 있는 의장병(儀仗兵)들을 보시오. 우리도 저들처럼 말없이 잠자코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만약 한마디라도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소" 하며 위협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나라를 걱정하며 황제에게 직언하고자 하는 지조 있는 관리는 항상 있었다. 이임보는 무식하였기에 학문이 깊은 선비는 싫어하여 내쳤으며, 특히 정론(正論)을 펴고 간언(諫言)하려는 관리, 어질고 재간이 있는 현능(賢能)들이 정사를 논하려 하면 어떤 구실이든 만들어 주살(誅殺)하거나 멀리 내쫓아 황제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도 제거하기 힘든 사람은 좋은 말로 설득하여 일정한 지위에 오르게 한 후 교묘한 방법을 써서 주살하였다. 그가 밤중에 언월당(偃月堂) 들어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에 빠진 다음 날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주살되었다. 이임보는 그런 식으로 조정 내의 모든 권세를 휘어잡고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래서 황태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고 경계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나라 수도 장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며 사람들은 항상 이임보를 조심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장안에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 "이임보는 입 끝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배 속에는 칼을 지닌(口蜜腹劍), 위험한 자이다. 조심하라."
이임보는 19년이나 재상으로 있으면서 권력을 휘두르고 국정을 농단하였다. 그렇게 권력을 휘두르던 이임보가 죽고 넉 달 뒤에 이임보의 전횡에 대한 죄가 소상히 밝혀지고 이임보는 생전에 호인(胡人)과 내통하여 모반을 도모했다는 죄목으로 지난 관작은 모두 박탈되고 그 자손은 모두 귀양을 갔으며 그의 시체도 욕됨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당나라의 국력은 매우 쇠락해졌다. 이임보가 살아있을 때는 그가 두려워 말없이 지내고 있던 안록산은 이임보가 죽은 후 양귀비를 등에 업고 사사명과 주도하여 난을 일으켰다. 그것이 ‘안사의 난’이다. 다행히 난은 황태자 이형 등에 의해 평정되었으며, 황제의 위는 이형에게 계승되고 당 현종은 장안으로 돌아와 태상황이 되어 쓸쓸한 노년을 보내다가 752년 양귀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병을 앓다가 죽었다. 주색에 빠지고 간신에게 빠져 국정을 농락당한 결과였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이 말은 이렇듯 당나라 현종 때의 간신이며 오랜 세월 승상의 자리에서 권력을 휘둘러 수많은 선량한 관리들을 내치고 주살하였던 이임보라는 사람을 빗대어 한 말이다. 이임보는 늘 웃는 낯이고 또 어떤 때는 입으로 찬양하는 말을 했지만, 그가 찬양하여 높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살되었다. 그런 그는 입으로는 꿀과 같이 달콤한 말을 했지만 배 속에는 무서운 칼을 지니고 있었다. 이임보가 그렇게 권력을 휘두르게 한 뒤에는 중심을 잃고 주색에 빠진 오만한 황제인 당 현종이 있었다.
3.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오늘에 되새겨
이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오늘에 되새겨 보자. 오늘날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쉽다. 그것은 당 현종처럼 오만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만에 빠지면 인사(人事)를 망치고 주변에는 간신배가 들끓게 된다. 그리고 언로(言路)는 막혀 절대 권력의 눈과 귀는 멀게 된다. 그래서 절대 권력은 항상 위험하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일을 막는 것은 나라의 존망을 지키고 국민의 인권과 삶을 지키기 위함이다. 절대 권력이 중심을 잃으면 나라는 위태로워지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진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나 총리 등이 중심을 잃으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편파적인 인사(人事)와 특정 인사와 세력에게 인사가 편중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므로 그들이 권력을 남용하게 만든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 사건이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 차지철이 그것을 말해 준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세계에 간신배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중심을 잃은 권력자는 아첨하는 간신에게 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쏠리게 된다. 그리고 아첨하는 신하(참모)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아첨하며 민의(民意)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간신들은 옛날처럼 정적을 주살하지는 못하지만,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고 배 속에는 칼을 지니고 있어 사람들을 모함하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공자도 말을 지나치게 수려하게 하는 정치인을 경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진실성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보자. 지금도 사기꾼이 넘쳐나고 많은 사람이 사기(詐欺) 피해를 당한다. 어쩌면 첨단 산업사회인 지금, 문명화된 사람들이라지만 옛날 이상으로 사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쩌면 현대는 사기가 만연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한때 제비족이란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그 제비족은 양상을 달리했지만 지금도 곳곳에 숨어 있는 듯하다. 제비족은 원래는 유흥업소에서 금전을 갈취할 목적으로 돈 많은 여자를 꼬드겨서 이익을 취하는 남자를 일컫는다. 다른 말로 방울뱀, 기둥서방, 남창이란 말로도 쓰였다.
제비족의 기원은 1970~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중동 붐이 일었는데 남편은 이역만리 중동 땅에 가서 돈을 벌어 집으로 보내주었다. 그때 홀로 독수공방하던 젊은 부인들은 돈은 있고 시간도 많고 자녀들 학교 보내고 나면 무료해지니 밖으로 돌기도 했다. 이때 찾은 곳이 캬바레 등 유흥업소였다. 그때 그곳에 상주하던 춤 선생과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을 몽땅 빼앗겨 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때 캬바레의 젊은 남자는 매우 멋지게 차려입었으며 말을 잘했고 매너도 좋았다. 그래서 여자들이 홀딱 넘어가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성행하자 사기성이 짙은 남자들이 멋진 정장 차림을 하고 돈 있고 시간 있는 젊은 여성 곁을 맴돌아 환심을 하고 몸을 빼앗고 돈을 뜯어내는 등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일이 잦아졌다. 제비족은 ‘매우 신사적이고 잘빠진 몸매에 춤도 잘 추니 마치 제비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들은 겉으로는 매우 멋지게 보이지만 속에는 대단한 흑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그런 제비족에게 당할 여자들은 적지만, 다른 양상의 사기꾼이 곳곳에 숨어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가끔 교도소에서 상담과 교육을 하다 보면 사기 범죄로 입소한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대체로 얼굴이 곱상하고 말을 잘한다. 말과 행동에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겉으로 보기엔 저런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을 속이고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준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어디든 사기꾼이 꼬인다. 남을 잘 속이는 자는 항상 사람들에게 친근감이 있고 상대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멋진 말을 하거나 위협적인 상황도 만든다. 요즈음 보이스 피싱이라는 전화 사기가 심하여 그 피해자가 많이 나타났다. 그 정도가 심하여 지금도 곳곳에 경계하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이고 때로는 긴장감이 들 정도의 위협도 한다. 또한 그 설명과 설득의 수준이 뛰어나 평범한 사람들은 진짜로 여겨 당하기 쉽다.
제비족이나 온갖 유형의 사기꾼들, 이들은 모두 겉으로 보기에 입에는 달콤한 꿀을 가지고 좋은 말과 멋진 행동을 보이지만 배 속에는 칼날 같은 흉계가 숨어 있다.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
공자가 일컫기를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에게는 인(仁)이 없다고 했다.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하고 얼굴빛을 항상 환하게 꾸미는 사람에게는 선한 마음이 드물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수려한 말의 뒤에는 엄청난 거짓이 숨겨 있을 수 있으며, 나에게 좋은 말과 아름다운 낯빛으로 접근해 오는 사람은 필시 그 속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선거에서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지닌 자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사기가 만연하는 요즈음 세상에서도 구밀복검(口蜜腹劍)을 새겨볼 일이다.
[참고]
당 현종의 본명은 이융기다. 그가 황제에 오르는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는 당 예종 이단의 3남이며, 어머니는 소성황후 두씨였다. 그는 처음에는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다가 나중에 임치왕(臨淄王)으로 책봉되었다. 일찍이 별가 등 요직을 맡았으나, 당시 황후인 큰어머니 황후 위씨에게 모함을 받아 수도인 장안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710년, 위씨 황후가 딸인 안락공주와 결탁하여 황제인 중종 이현을 죽이자, 이것을 알아챈 이융기는 우림군 병사를 소집하여 궁중으로 들어가 위씨와 안락공주를 죽이고, 이어 위씨 가문 모두를 몰살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의 할머니인 성신 황제 무씨 집안일가까지 몰살시켰다. 그리고 고모 태평공주에게 아버지 예종 이단의 복위 주도 운동을 맡아달라 하였다. 그로 인해 이단은 다시 황제의 자리에 앉았고, 이융기는 평왕(平王)에 책봉되었다가 큰형인 이헌의 양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712년 9월 8일, 이융기의 27번째 생일에 예종 이단은 황태자 이융기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황제 이융기는 연호를 선천(先天)이라 하였다. 이로써 당나라 제6대 황제인 현종이 등극한 것이다. 그러나 이융기(현종)의 고모 태평공주가 황위를 노리고 은밀히 여러 번 이융기를 독살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713년 현종 이융기는 태평공주와 그 일당을 모두 죽이고 권력을 안정시켰다.
현종은 즉위 1년인 713년, 연호를 개원(開元)으로 바꾸고, 요숭(姚嵩), 한휴, 송경, 장구령, 소숭 등 유능한 관리를 곁에 두고 정치 개혁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모두 능력이 출중하였으며 황제에 대한 충성심도 컸다. 그중에도 요숭의 공이 가장 높아, 그를 승상에 임명했다. 요숭은 ‘가난 퇴치를 포함한 치국의 10가지 조건’을 제시하였고, 황제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한휴는 언제나 황제에게 직언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황제는 그 직언도 잘 들었다. 그러나 소숭은 황제에게 언제나 순종적이고 아첨을 하였다.
현종은 요숭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짐이 마르더라도, 천하와 백성들이 살찌면 아무 여한이 없다.”고 하며 애민 정치에 전력을 쏟았다. 그는 중앙의 유능한 관리를 지방에 도독이나 자사로 파견하였고, 능력에 맞지 않는 관리는 모두 교체했다. 나라에 가뭄이 들면, 황궁의 쌀을 배고픈 민중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행하였다. 특히 환관과 인척을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여 정치가 문란해질 위험을 미리 막았다. 또한 사찰과 승려의 수를 줄이고, 권력가들을 제압하는 한편, 조정을 정비하여 상벌을 엄정히 나누어 주어서 중종 이후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을 안정시켰다. 현종의 이러한 훌륭한 정치 덕분에 당나라의 국력은 강성해졌으며, 태종 이세민이 이룩한 태평성세에 버금가는 치세를 누렸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이를 현종의 연호인 개원(開元)을 따 “개원의 치(開元之治)”로 불렀다.
치세가 계속되고 나라가 융성해지자, 현종은 오만해졌다. 직언하는 훌륭한 대신들을 내치고 아첨하고 순종하는 신하들을 중용하였다. 또 주색에 빠지며 이원을 세워 광대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권력과 아첨의 상징인 환관 고력사를 가까이하여 그에게 권력을 주었으며, 유능한 장구령(張九齡)을 해임하고 간신 이임보를 승상으로 임명했다. 이임보는 무식하고 무능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아첨에 뛰어나서 후궁을 조정하여 황제의 총애를 받아 승상까지 올랐다. 승상이 된 이임보는 황제에게 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19년간이나 국정을 전횡한 간신배였다.
737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무혜비마저 죽자, 방황하던 현종은 양옥환의 미모에 빠져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환관 고력사(高力士)를 시켜 그녀를 데려오게 하여 후궁으로 삼았다. 그녀가 바로 수왕비 양옥환(楊玉環)이었는데 그녀는 현종의 13남인 수왕 이모의 여자로 결국 며느리를 가로챈 것이었다. 745년, 현종은 나이 61세 때에 27세인 양옥환을 귀비에 책봉하고 양귀비에게 빠져 양귀비뿐 아니라 그 일족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고 주색에 빠지게 되었다. 뒷날 양귀비는 늙은 황제 몰래 젊고 우람한 체구의 안록산과 내통하여 정을 나누고 권력을 휘둘러 결국 ‘안사의 난’을 일으키게 하는데 기여했다. 이처럼 당 현종 이융기는 초기에는 애민 정치로 선정을 베풀었으나 후기에는 주색에 빠져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게 했다. 여기에 승상 이임보와 환관 고력사라는 간신의 역할이 컸다.
황제가 오만해지니 중심을 잃고 중심을 잃으니 인사(人事)가 엉망이 되고 인사가 엉망이 되니 간신이 들끓고 결국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권력자가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 口(입 구)는 ❶상형문자로 입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러나 다른 글자의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口(구)꼴의 자형(字形)은 입의 뜻인 경우 뿐만은 아니다. 品(품)과 같이 물품을 나타내거나 各(각)과 같이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石(석)과 같이 돌을 나타내기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口자는 '입'이나 '입구',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口자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본떠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口자를 보면 ㅂ자 모양을 하고 있어 위아래의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네모난 모습으로 바뀌면서 더는 상하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口자는 입을 그린 것이니만큼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대부분이 '입'이나 '소리'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출입구'나 '구멍'과 같이 단순히 모양자로 응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口(구)는 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 (1)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의 뜻 (2)작은 구멍, 구멍이 나 있는 곳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입 ②어귀, 사람이 드나들게 만든 곳 ③인구(人口) ④주둥이, 부리, 아가리 ⑤입구(入口), 항구(港口), 관문(關門) 따위 ⑥구멍, 구멍이 난 곳 ⑦자루, 칼 등을 세는 단위 ⑧말하다, 입 밖에 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에는 연설이 끝이나 시위 행진 때 외치는 간결한 문구를 구호(口號), 구설을 듣게 되는 운수를 구설수(口舌數), 변명할 재료를 구실(口實), 음식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을 구미(口味), 말로써 베풀어 아룀을 구술(口述), 마주 대해 입으로 하는 말을 구두(口頭), 흥정을 붙여 주고받는 돈을 구문(口文), 보통 회화로 쓰는 말을 구어(口語), 글을 읽을 때 다른 말을 아니하고 책에 집중하는 일을 구도(口到), 말로 전함을 구전(口傳), 입과 입술을 구순(口脣), 단체 행동의 동작을 일제히 하도록 부르는 호령을 구령(口令), 사람의 수효를 구수(口數), 집안 식구나 집안의 사람 수효를 가구(家口), 한 나라 또는 일정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입을 다물어서 봉함을 함구(緘口),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고 하는 항구(港口),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함을 금구(噤口), 나가는 곳을 출구(出口), 강물이 큰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하구(河口),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을 이르는 말을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말과 하는 짓이 아직 유치함을 일컫는 말을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말조심을 하라고 경계하는 말을 구화지문(口禍之門),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으로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구약현하(口若懸河), 말과 마음으로 전하여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구전심수(口傳心授), 입과 귀의 간격이 가깝다는 뜻으로 남에게서 들은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남에게 옮김 곧 자기의 몸에 붙지 않은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사촌(口耳四寸), 입이 관문과 같다는 뜻으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구자관야(口者關也), 살아 나갈 걱정 곧 먹고 살 근심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구복지루(口腹之累), 말로는 옳다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르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구시심비(口是心非), 남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전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지학(口耳之學), 그 입에 오르면 온전한 사람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나 결점만을 들추어 좋게 말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구무완인(口無完人),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그린다는 뜻으로 열과 정성을 다하여 교육한다는 말을 구강지화(口講指畫) 등에 쓰인다.
▶️ 蜜(꿀 밀)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宓(밀)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蜜(밀)은 꿀벌이 분비(分泌)하여 벌집의 주 성분이 되는 물질로 ①꿀, 벌꿀 ②달콤하다, 감미롭다, ③자세(仔細)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꿀을 짜낸 찌꺼기를 끊여 만든 기름을 밀랍(蜜蠟), 달콤한 말이나 남녀 간의 정담을 밀어(蜜語), 결혼하고 난 바로 다음의 즐거운 한두 달을 밀월(蜜月), 약 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환을 만든 것을 밀환(蜜丸), 꿀을 뜰 때 쓰는 기구를 밀도(蜜刀), 꽃의 꿀을 내는 털을 밀모(蜜毛), 꿀물로 꿀을 탄 물을 밀수(蜜水), 꿀과 메밀가루를 섞어서 빚은 술을 밀주(蜜酒), 밀과 같은 누른빛이 나고 젖송이 같은 무늬가 있는 호박을 밀화(蜜花), 벌이 꿀을 빨아 오는 식물을 밀원(蜜源), 귤나무나 귤을 밀감(蜜柑), 꿀이나 설탕에 버무려서 시루에 쪄 말린 대추를 밀건조(蜜乾棗), 찹쌀가루로 만들어 꿀을 바르고 팥고물을 묻힌 단자를 밀단고(蜜團餻) 등에 쓰인다.
▶️ 腹(배 복)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复(복)은 아래 위가 같고 가운데가 불룩한 모양으로, 月(월)은 몸에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腹자는 오장육부 중 하나인 ‘배’를 뜻하는 글자이다. 腹자는 ⺼(육달 월)자와 复(돌아올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신체기관을 뜻하는 글자이기 때문에 ⺼자가 의미요소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复자는 성(城) 밖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돌아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腹자는 이렇게 ‘순환’의 의미가 있는 复자에 ⺼자를 결합한 것으로 사람의 ‘배’를 뜻하고 있다. 그래서 腹(복)은 ①배(오장육부의 하나) ②마음, 속마음 ③가운데, 중심 부분 ④앞, 전면(前面) ⑤품에 안다 ⑥껴안다 ⑦두텁다, 두껍다 ⑧받아들이다, 수용하다 ⑨아이를 배다, 임신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배 두(肚),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등 배(背), 가슴 흉(胸)이다. 용례로는 배를 앓는 병을 복통(腹痛),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계획을 복안(腹案), 배. 물건의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 사이에 있는 가운데 부분을 복부(腹部), 내장에서 새어 나오는 액체가 뱃속에 괴는 병을 복수(腹水), 배와 등이나 앞과 뒤를 복배(腹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깊은 속마음을 복심(腹心), 뱃속의 아이를 복아(腹兒), 가슴과 배로 썩 긴하여 없어서는 안될 사물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음식을 먹지 아니하여 고픈 배를 공복(空腹), 배가 잔뜩 부름을 만복(滿腹), 먹고살기 위하여 음식물을 섭취하는 입과 배를 구복(口腹), 수술을 하려고 배를 쨈을 개복(開腹), 배를 갈라 자살함을 할복(割腹), 한 어머니가 낳은 동기를 동복(同腹), 아주 우스워서 배를 안음을 포복(抱腹), 의식에 입는 옷을 의복(儀腹), 배가 남산만 하다는 말을 복고여산(腹高如山), 마음이 맞는 극진한 친구를 이르는 말을 복심지우(腹心之友), 배와 등에 난 털이라는 뜻으로 있으나 없으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복배지모(腹背之毛), 나라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이르는 말을 복리지면(腹裏地面), 앞뒤로 적을 만난다는 말을 복배수적(腹背受敵),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하다는 말을 구밀복검(口蜜腹劍), 겉으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는다는 말을 면종복배(面從腹背), 배를 두드리고 흙덩이를 친다는 뜻으로 배불리 먹고 흙덩이를 치는 놀이를 한다 즉 매우 살기 좋은 시절을 이르는 말을 고복격양(鼓腹擊壤), 배를 안고 넘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우스워서 배를 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웃음을 이르는 말을 포복절도(抱腹絶倒) 등에 쓰인다.
▶️ 劍(칼 검)은 ❶형성문자로 剣(검)의 본자(本字), 劔(검)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뾰족하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僉(첨, 검)으로 이루어졌다. 끝이 날카롭게 뾰족한 칼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劍자는 ‘칼’이나 ‘베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劍자는 僉(다 첨)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僉자는 많은 사람이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모두 다’나 ‘남김없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금문에서는 金(쇠 금)자가 들어간 鐱(가래 첨)자가 ‘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이것이 칼과 관계된 글자임을 뜻하기 위해 刀자로 바뀌면서 지금의 劍자가 만들어졌다. 사실 劍자는 칼 중에서도 ‘양날 검’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劍자에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僉자가 쓰인 것도 양쪽에 날이 있는 검을 뜻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漢)나라 때부터는 이 둘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지금은 큰 구분 없이 ‘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劍(검)은 (1)무기로서의 긴 칼 (2)군인들이 사용하던 긴 칼의 뜻으로 ①칼, ②검법(劍法; 칼을 쓰는 법), ③찌르다 ④베다 ⑤죽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칼 도(刀)이다. 용례로는 검술에 뛰어난 사람을 검선(劍仙), 검술이 있는 협객을 검협(劍俠), 검술에 조예가 뛰어난 사람을 검객(劍客), 검술을 닦은 사람을 검가(劍家), 칼을 잘 쓰는 수법을 검술(劍術), 검술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인격의 수양을 도모하는 일을 검도(劍道), 검술에 능통한 사람을 검사(劍士), 허리에 띠게 만든 긴 칼을 장검(長劍), 짧은 칼을 단검(短劍), 보배로운 칼을 보검(寶劍), 총 끝에 대검을 꽂음을 착검(着劍), 이름난 훌륭한 칼을 명검(名劍), 찌를 듯이 날카로운 말을 설검(舌劍), 오줌을 검사함을 요검(腰劍), 뱃속에 칼을 품는다는 뜻으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복검(腹劍), 불효하고 불경하고 무자비한 사람이 떨어진다고 하는 지옥을 검림지옥(劍林地獄), 바람이 칼자루 끝에 있는 작은 구멍을 스쳐가는 미세한 소리라는 검수일혈(劍首一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