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인구절벽 시대에 무엇이 문제인가?
인민망 한국어판 kr@people.cn
17:53, March 02, 2021
[인민망 한국어판 3월 2일] 흔히 인구는 국력이라 한다.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 국가의 경제 추격 속도를 감안하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경제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출산에 대한 의욕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합계출산율을 보면 한국은 0.84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에 장기간 머물러 있으면 인구 감소가 더욱더 가파르게 나타날 우려가 있다.
2019년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장기인구추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는 2028년 519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9년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총인구는 2044년에 5000만 명 벽이 깨진 뒤 2066년 3000만 명 대로 낮아져 100년 뒤인 2117년에는 2081만 명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전망조차 합계출산율이 1.27명 수준을 유지하고 외국에서 인구 유입이 이뤄진다는 가정에 바탕을 둔 것이어서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2020년 한 해만 37조가 넘는 예산을 썼다. 지자체들도 출산지원금 확대 등 출산 장려에 나서고 있으나 효과는 미미한 것 같다. 일각에서는 아동수당, 출산장려금 등으로는 인구 감소 추세를 역전시킬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출산을 초래한 여러 이유 중 여성의 의식변화가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평생 아이 1명 안 낳는 한국 여성들이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왜 아이의 출산을 기피하는지 필자는 주변 여성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S대 여 교수, 영혼이 자유로운 학자 생활에 만족하다
김 교수(65세)는 명문대 S대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여 교수로 어렸을 때부터 꽤 잘 사는 집안에서 막내딸로 컸다. 위로 오빠 둘과 언니 한 명이 있고 형제 4명 모두 명문대에 진학할 정도로 집안의 면학 분위기가 좋았다. 김 교수는 막내로서 아버지, 어머니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 명문대로 유학까지 갔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온 김 교수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재원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 김 교수는 너무나 바쁜 연구와 교육 일상에 파묻혀 혼기를 놓쳤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도 없었지만 영혼이 자유로운 학자 생활이 더 매력적이어서 굳이 결혼하고 애 낳고 가족을 중심으로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연애 경험으로는 유학 시절 잠깐 좋아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외국인과의 사랑 한 번 빼고는 없다고 한다.
몇 년 전 아직도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를 잘 짓곤 하던 김 교수는 정년 퇴임을 맞았다. 현재는 가끔 학교에 가서 대학원 강의를 하는 것 외에 부모님이 물려주신 성북동 저택에서 노후생활을 유유히 보내고 있다.
평생 결혼 안 하고 자식을 안 낳아서 후회가 없었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한국에서 경쟁이 치열한 학자 생활을 하려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보였고, 후학 양성과 좋아하는 연구를 실컷 해서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비즈니스 우먼, 대기업 사원에서 스타트업 회사 창립멤버까지 내 인생에 충실하기로…
최 이사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시상식이었다. 자신이 다니는 화장품 회사 대표자로 소비자들이 주는 상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최 이사는 한눈에 봐도 커리어우먼 같아 보였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스마트한 인상을 주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활달한 성격 덕분에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고 나중에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꽤 자주 보는 친구가 되었다.
최 이사는 20대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모 대기업 광고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실력이 뛰어나 미국, 중국 등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맡은 바 업무에 모든 심혈을 기울인 결과, 40대 중반에 한 부처를 책임지게 되었다. 일에 관한 한 똑 소리가 나게 처리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웬만한 남자 직원보다 더 인정받고 살았다. 물론 주변에서는 일벌레라고 놀리기도 했다. 바쁠 때는 하루에도 열 몇 시간씩 업무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남자를 몇 번 사귀어 보기는 했지만 다들 그녀보고 너무 자기중심으로 산다는 둥, 이기적이라는 둥 했기에 이래저래 다 헤어지고 말았다. 40대 초반에 정말 모든 면에서 자기랑 천생연분이라 생각되는 남자를 만나기는 했는데 나중에 그녀가 미국에 장기 출장 가 있을 때 상대 남자가 바람을 피워 결국 그녀는 깊은 상처를 받고 결혼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
40대 후반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그녀는 모 스타트업 화장품 회사의 상무가 되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성과 내느라 눈깜짝할 사이에 또 2~3년이 흘렀다. 요즘 그녀는 혼자 사는 운명이다 싶어 아예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 여가 시간에 노후 준비를 위해 본인이 좋아하는 심리상담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최 이사는 힘들고 외로울 때 가족들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80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여동생 가족과 친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명절이나 휴가 때 그다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여동생이 낳은 조카 한 명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많이 보살펴서 지금도 서점에 같이 다니고 휴일을 같이 보낼 정도로 그녀와 가깝게 지낸다. 따라서 그녀는 굳이 자기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아이를 키우는 재미를 느끼며 산다고 말한다.
방송작가, 계산해 보니 도저히 아이 키울 용기가 안 나다
이 작가는 40대 초반의 나이로 방송계에서 꽤 인정받는 인물이다.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감칠맛 나게 대본을 잘 짜서 모 티브이 방송국에서 5년째 같은 인기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로 맹 활약 중이다. 성격 또한 명랑해서 연예인부터 방송국 직원들까지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작가는 몇 년 전에 13살 연상인 남자와 결혼에 골인했다. 불규칙한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여자로 자처했었는데 한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는 ‘이 남자가 바로 내가 찾던 그 남자야’라며 먼저 고백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 후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을 시작한 이 작가는 결혼생활 자체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남편은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훈남 스타일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방송 작가에게는 딱 맞는 캐릭터다. 하지만 주변에서 2세 계획을 물을 때 그녀는 여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직업의 성격 상 생활이 불규칙한 데다 남편의 나이가 50대 중반이 다 돼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비현실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에 개인 사업을 하던 남편이 코로나 위기를 맞아 재정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한 후 이 작가는 더더욱 아이를 낳을 엄두도 못 내게 되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평균 3억 원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에서 출산장려금을 1억 원씩 준다 해도 태부족이죠. 지금 우리 부부가 자신을 먹이고 살리는 데도 바빠서 죽겠는데 언제 애 낳고 키우겠어요?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보다는 그냥 우리 둘이 편안하게 살래요”라고 하면서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결혼이주여성, 한국에서 어른 도움 없이 직장 다니며 육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30대 후반인 샤오양은 중국 북방지역의 한 군인 집안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하는 엄친딸로 동네에서 유명했다. 대학 진학 후 한국어를 전공한 관계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잠깐 와 있었다. 단정한 외모에 한국말까지 잘해서 유학생 가운데서도 유난히 돋보였다. 그때 샤오양에게 운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바로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남학생이었다. 사랑에 국경이 없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둘은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확인한 후 평생을 같이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남성우월주의가 심하다는 한국에 절대 외동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샤오양 집안의 반대가 확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드디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고 한국에서 살게 되었다.
샤오양은 한국어를 잘할 뿐만 아니라 업무능력과 책임감 또한 뛰어난 편이다. 결혼 후 한국에서 두세 개의 직장을 전전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가는 가운데 임신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맡은 업무에 지장을 줄까 봐 샤오양은 임신 기간 꼭 필요한 병원 검사 말고는 거의 휴가를 안 내고 출산 직전까지 꼬박꼬박 출근했다. 원래 아이를 출산한 후 몇 개월의 육아 휴가를 쓰고 다시 업무에 복귀할 생각이었지만 회사가 중소기업인 데다 주변으로부터 눈치가 많이 보여서 도저히 버텨내기가 어려웠다. 결국은 샤오양은 아이를 출산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이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 시부모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시댁이 지방 도시에 있고 요즘 한국에서 시어머니들은 손주를 잘 봐 주지 않는 분위기여서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직장 생활이 바쁜 남편에게도 크게 기대할 수가 없어서 샤오양은 급기야 중국에 계신 친정엄마를 한국으로 모셔 왔다. 요즘 친정엄마가 옆에 있어서 샤오양은 2년 만에 처음으로 숨을 돌리게 됐다. 이제는 슬슬 향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둘째를 가질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샤오양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국에서 어른의 도움 없이는 직장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저는 아이도 중요하지만, 중국 여성으로서 평생 가정주부로 살기가 싫어요. 아이를 한 명 낳았으니 이제는 사회인으로서 저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위에서 인터뷰한 네 명의 여성은 결혼과 출산에 대해 요즘 한국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한 단면을 진솔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정부와 지자체의 현금지원만으로는 부부들이 아이를 더 낳도록 유도하기 어렵다. 보육과 교육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환하고, 특히 외국인 인력 유입과 이들이 출산해서 자녀를 기를 수 있는 법적 제도적 환경을 구비하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부담만이 아닌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고 애국의 길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널리 확산해야 할 것이다.
[저우위보(周玉波), 인민일보 인민망 한국지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