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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적도정병(趯倒淨甁)
- 물병을 차서 넘어뜨리다
스승을 통쾌하게 짓밟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가라
불교에서 깨달음 과정은 스승의 스타일 부정하고 자기화하는 단독화 과정
들판에 핀 다양한 꽃처럼 스스로의 색깔 갖는 것이 참된 주인공으로 사는 삶
위산(潙山) 화상이 백장(百丈) 문하에서 공양주[典座]의 일을 맡고 있을 때였다. 백장은 대위산(大潙山)의 주인을 선출하려고 위산에게 수좌(首座)와 함께 여러 스님들에게 자신의 경지를 말하도록 했다. “빼어난 사람이 대위산의 주인으로 가는 것이다.” 백장은 물병을 들어 바닥에 놓고 말했다. “물병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너희 둘은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수좌가 먼저 말했다. “나무토막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백장은 이어 위산에게 물었다. 그러자 위산은 물병을 걷어차 넘어뜨리고 나가버렸다. “수좌는 위산에게 졌구나!”라고 웃으면서 마침내 위산을 대위산의 주인으로 임명했다.
무문관(無門關) 40칙 / 적도정병(趯倒淨甁)
* 趯(뛸적), 倒(넘어질 도), 淨(깨끗할 정), 甁(병병)
학생은 시험을 보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스승이 원하는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학생이니까요. 반면 우리는 졸업을 했다면 시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상좌 스님은 충실하게 시험을 치렀고 그 결과 모범 답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위산 스님은 시험 자체를 거부합니다. 위산 스님이 물병을 걷어차고 자리를 떠버린 것은 자신은 더 이상 당신의 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겁니다.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면 이미 졸업을 한 것입니다.
1. 불교, 권위주의 극복한 인문정신
선사들은 싯다르타가 부처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도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은 아이러니한 데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깨달음에 이른 선사들은 항상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지 않고 네 자신을 따르라고 사자후를 토하기 때문이지요. 보통 다른 종교나 사상의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과 교시를 내립니다. “내가 각고의 노력으로 이런 경지에 올랐으니, 너희들도 나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면 내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와라!” 사제 관계는 항상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스승이 갔던 길이나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길은 나의 길이다. 그러니 너도 너의 길을 만들어라!” 이것이 바로 불교 스타일입니다. 하긴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 ‘화엄(華嚴) 세계’를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요.
모든 사람이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그래서 들판에 가득 핀 다양한 꽃들처럼 자기만의 향과 색깔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화엄 세계입니다. 선종의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학파들, 그리고 동일한 학파에 속해도 선사들마다 강한 개성이 풍기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자신이 싯다르타도 아니고 혜능도 아니고 마조도 아니니, 주인공으로서의 삶은 당연히 다양한 색깔의 개성을 뿜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불교의 역사도 마찬가지지만 선종의 역사는 자기가 속한 학파를 극복하는 역사, 혹은 스승의 스타일을 부정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단독화(singularization)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순간이 바로 깨달음에 이른 순간일 테니까 말입니다. 혜능 이후 남종선(南宗禪)이 다양한 스타일을 갖춘 종파들, 즉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분화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 위앙종(潙仰宗), 임제종(臨濟宗), 그리고 조동종(曹洞宗)이 바로 오가(五家)이고, 가장 번성했던 임제종의 두 파 황룡파(黃龍波)와 양기파(楊岐波)를 합쳐서 칠종(七宗)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선종이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하나의 학파가 될 때까지, 더 나누어져야만 합니다. 아예 종파니 심지어는 불교라는 카테고리가 무의미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오직 이럴 때에만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싯다르타의 마지막 유언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자임할 수 있을 겁니다. 스승에게 의지하지 말고 네 힘으로 서라! 스승의 말을 반복하지 말고 네 말을 하라! 한 마디로 스승을 통쾌하게 짓밟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 이것이 바로 다른 종교나 사상이 범접하기 힘든 불교만의 정신이자 스타일입니다. 그렇기에 불교에서 우리는 전체주의나 권위주의를 극복하려는 인문주의적 정신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는 겁니다.
2. 백장 스님, 두 제자를 시험하다
일체의 권위주의를 부정하려는 정신, 그것은 일체의 권위에 당당하게 맞서는 주인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무문관(無門關)’의 40번째 관문에서 스승이 놓은 물병을 과감하게 차버리는 위산(潙山, 771~863) 스님의 통쾌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곡절이 있었던 걸까요. ‘전등록(傳燈錄)’과 ‘오등회원(五燈會元)’을 보면 일의 자초지종이 자세히 나옵니다. 그러니까 위산의 스승 백장(百丈, 720~814) 스님은 대위산의 주인 노릇을 할 스님을 천거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당연히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제자를 보내면 됩니다. 백장에게도 상좌(上座) 스님이 한 명 있었습니다. 제일좌(第一座)라고 불리는 상좌는 수제자를 가리킵니다. 가장 오랫동안 스승을 모시고 있었기에 경험이나 관록면에서 가장 앞서는 제자인 셈이지요.
문제는 백장이 보기에 아직도 상좌 스님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아직 제자들을 이끌 만한 역량이 없다고 판단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백장은 상좌를 대위산의 주인으로 임명하는 데 주저했던 겁니다. 어떻게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만드는 스승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과 실연을 제대로 겪은 사람만이 타인의 실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혹은 부모를 먼저 여읜 사람만이 상을 당한 사람에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백장의 눈에는 상좌보다 늦게 자신의 문하에 들어와서 부엌일을 맡고 있는 위산 스님이 들어왔습니다. 비록 사찰에서의 위상은 상좌보다 떨어지지만 위산이라면 충분히 대위산의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 이것이 바로 백장의 판단이었던 겁니다.
당연히 상좌 스님은 스승 백장에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러자 백장은 두 사람을 나머지 제자들 앞에서 시험했던 겁니다. 백장의 시험과 그 결과는 ‘무문관(無門關)’의 40번째 관문에 있는 그대로입니다. 백장은 바닥에 물병을 놓고 상좌 스님과 위산 스님에게 물어봅니다. “물병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너희 둘은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순서상 상좌 스님이 먼저 대답합니다. “나무토막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상좌로서 관록이 묻어나는 대답입니다. 일단 ‘물병’을 언급도 하지 않았으니, 상좌의 대답은 “물병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스승 백장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나무토막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으니,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라는 백장의 요구에 나름대로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상좌 스님은 대답하고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3. 물병 차버린 위산, 깨달음의 표현
상좌 스님의 대답을 듣는 순간, 아마 위산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을 “역시! 상좌 스님이다”라고 고개를 끄덕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안심은 얼마 가지 않아 여지없이 좌절되고 맙니다. 동일한 질문을 위산 스님에게 하자, 위산 스님은 물병을 발로 걷어차고 자리를 떠버립니다. 스승 백장, 사형이었던 상좌 스님, 그리고 수많은 동료들은 순간 멘붕이 찾아왔을 겁니다. 엄숙한 시험의 장소를 발길질 한 번으로 조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도, 사형도, 그리고 동료도 안중에 없는 오만불손한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때 백장만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어디에서 백장은 위산 스님이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요.
자 생각해보세요. 학생은 시험을 보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스승이 원하는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학생이니까요. 반면 우리는 졸업을 했다면 시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상좌 스님은 충실하게 시험을 치렀고 그 결과 모범 답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위산 스님은 시험 자체를 거부합니다. 위산 스님이 물병을 걷어차고 자리를 떠버린 것은 자신은 더 이상 당신의 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겁니다. 그러니까 이미 자신은 당신에게 더 배울 것이 없다는 겁니다. 하긴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에게 누군가 초등학교 중간시험 문제지를 주면 그는 당연히 그 문제지를 박박 찢어버릴 겁니다. 당연히 찢어야지요. 만일 문제지가 주어졌다고 정답을 찾으려고 고심한다면,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 아닐까요. 물론 장난으로 문제지를 풀 수도 있지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진지한 시험이 아니라 장난일 뿐일 겁니다.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면 이미 졸업을 한 것입니다. 이미 학생도 아닌 것입니다. 이제 백장 문하를 떠나도 된다는 겁니다. 졸업한 학생이 취업을 하든 무엇을 하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닐까요. 반대로 모범 답안을 마련한 상좌 스님을 대위산 주인으로 보냈다고 해보세요. 상좌 스님은 위기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이 모범 답안인지 확인하러 계속 스승 백장을 찾아올 겁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한 사찰의 주지로, 여러 스님들을 주인으로 이끌 스승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삶의 주인공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합니다. 계속 선생님을 찾거나 부모님을 찾아서 자문을 구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영위할 수 있겠습니까? 위산 스님이 물병을 거침없이 차는 순간, 선종 오가 중 하나인 위앙종(潙仰宗)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백장의 기대대로 위산은 그의 제자 앙산(仰山, 815~891)과 함께 하나의 뚜렷한 개성을 가진 종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