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오 년 전, 초파일을 열흘 남짓 앞둔 이맘때였다고 했다.
빗방울이 산란하게 흩어지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해가 일찍 떨어진 산자락엔 어둠이 눅눅하게 차올랐다. 새들도 서둘러 둥지를 찾아 들어 하늘엔 컴컴한 구름뿐이었다. 폭우 전의 스산한 냉랭함이 첩첩이 쌓인 산 중에 천년 고찰 북지장사만이 외로운 영혼을 안내하는 작은 등불처럼 온기가 돌았다.
갈색 털이 섞인 회백색의 어미 오소리는 조여 오는 산기産氣에 몸을 비틀며 상수리나무숲 낙엽에 몸을 숨기고 웅크렸다. 세상에 나오려는 새끼들의 발길질은 요란한데 몸 풀만한 곳이 없었다. 산 넘어 따스분 굴窟로 돌아가긴 늦었다. 산후 먹이를 장만하는데 정신이 팔려 분만 일이 코앞인 사실을 가볍게 여겼다. 찢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며 새끼를 낳을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드니 산 중턱에 엎드린 절 집, 북지장사가 보인다.
지난가을, 남편 오소리와 함께 저 절집 연못가에서 하룻밤을 보냈었다. 숨 가쁘게 도망가는 잉어의 지느러미를 낚아채고, 경내境內를 들락거리며 감나무에서 감을 따 먹기도 했다. 새벽녘에는 절집 뒷마당으로 놀러 갔다가 나뭇가리를 보았다. 밑동이 젖을까 굵은 통나무 기단을 먼저 성글게 쌓고 그 위에 나무더미가 쟁여져 있었다. 나뭇가리 밑으로 보이던 공간이 굴처럼 아늑했다. 저런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남편과 속삭였던 기억이 새로웠다.
아! 그곳이면 산실産室로 알맞겠다. 어미 오소리는 나뭇가리 밑에서 몸을 풀기로 했다. 저기압을 따라 스며드는 희미한 음식 냄새와 온기로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굵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나뭇가리가 희끄무레 보였다. 얼른 자리를 잡고 눕고 싶었다. 밤이 새어도 돌아오지 않을 아내를 찾아 나설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봐도 나뭇가리 밑이 적당했다. 어미 오소리는 천근같은 몸을 이끌고 절집을 향해 내려갔다.
바람이 불고 비가 흩뿌리니 컴컴한 뒷마당을 찾을 이는 없으리라. 태생적으로 눈은 좀 어두워도 빼어난 후각이 있으니 낯선 곳의 하룻밤 위험쯤이야 헤쳐 나가지 못하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만삭의 오소리는 조심스럽게 절 뒤로 숨어들었다. 주저앉을 것 같은 몸을 달래며 새끼를 낳을 좋은 위치를 찾아 나뭇가리 주위를 탐색하듯 여러 차례 돌았다.
먹구름이 내려앉은 산속의 밤은 캄캄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소리의 작은 움직임까지 경계하는 눈빛이 있었으니, 낯선 침입자를 빈틈없이 지키는 산사의 프렌치 불독 ‘왕산’이었다. 왕산은 어미 오소리의 발자국 소리로 절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호피무늬가 아름다운 왕산은 객客이 조용히 하룻밤 유留하는 정도는 봐 주려 했다. 그런데 저 오소리란 놈은 무슨 꿍꿍인지 나뭇가리 주위를 벌써 몇 바퀴째 염탐하고 있다.
철통수비 왕산은 의심스러운 짐승의 불온한 탐색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까치발로 살금살금 다가섰다. 나뭇가리 모서리를 돌아 움푹한 곳에 앞발을 밀어 넣고 뭔가를 움켜잡기를 반복하는 오소리가 수상했다. 괘씸 대체 무엇을 훔치려는 거야. 생각과 동시에 날쌔게 몸을 날린 왕산은 뎅강, 오소리의 목을 찍어 비틀고 있었다. 삽시간에 목이 달아난 오소리는 앞발로 만삭의 배를 감싸 안고 부들거렸지만 어이하리.
비가 멎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킹킹대는 왕산을 따라 뒷마당으로 간 스님은 나뭇가리 밑동에 처참하게 널브러진 주검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무관세음보살, 냉혹한 인과因果를 두려워하며 고개 숙여 깊이 합장했다. 스님은 만사를 제쳐 두고 왕산을 앞세워 청정한 소나무 숲을 찾아갔다. 따스한 햇살이 소복이 모여 앉은 양지에 석관묘 모양으로 땅을 팠다. 어미와 운명을 함께한 새끼를 애도하며 불룩한 배가 편안하도록 누였다.
부드러운 흙을 덮고 무거운 돌 여러 개로 무덤을 눌렀다. 다른 짐승들이 땅을 파헤쳐 주검을 훼손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천천히 목탁을 두드렸다. 진혼곡 같은 목탁소리가 소나무 사이로 퍼져 갈수록 배를 땅에 바싹 붙인 왕산은 기다시피 낑낑댔다. 생명을 뱃속에 품고 있던 왕산의 참회가 하늘에 닿은들 어미 오소리와 새끼들이 살아 날 리 없었다. 엎지르진 물은 다시 담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일이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칠월, 여름 장마가 시작된 때였다고 했다.
인시寅時부터 산기가 있던 왕산은 아침나절에 새끼를 생산했다. 스님과 절 집 식구들은 맛난 음식을 갖다주며 격려했다. 행여 새끼가 잘못될까 신경을 곤두세운 왕산의 마음을 헤아린 식구들은 요사체 앞마당에 있던 왕산의 집을 발길이 드문 지장전 모퉁이로 옮겨주었다. 지장전은 축대를 쌓은 높은 지대에 자리 잡아 빗물이 잘 빠지고 마당이 질척거리지 않았다.
절 집 식구들은 왕산의 판자 지붕이 젖지 않도록 커다란 함석을 얹어 주었다. 허술한 집을 넉넉하게 감싸고 길쭉한 함석으로 지붕과 축대를 마주 잇대어 부는 바람에 빗물이 쳐들지 않도록 했다. 왕산의 집은 요사체를 등지고 지장전과 마주보는 형국이 되었다. 요사체를 보려면 지붕에 오르거나 에워싼 함석을 돌아서야 했지만 새끼들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넓은 집이 맘에 들었다.
흐뭇해진 왕산은 돌아가며 새끼를 부드럽게 핥았고 새끼들은 평온한 잠에 들었다. 호피 무늬를 가진 여섯 마리 새끼들은 앙증맞았다. 밤은 깊어갔다. 집 뒤쪽에서 들리는 기척에 위협을 느낀 왕산은 새끼들이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 깊은 어둠에 묻힌 지장전 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요사체가 궁금해진 왕산은 멀리서라도 살펴볼 요량으로 가볍게 함석 지붕에 뛰어올랐다.
비에 젖은 양철함석은 미끄러웠다. 공양주 보살이 무언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반가운 마음에 한발 내딛는데 주욱, 앞발이 미끄러졌다. 비스듬하게 세운 보조 지붕이라 미끄러져 내리는 몸을 어찌해 볼 수도 없이 그만 목이 축대에 매달렸다. 영민한 프렌치 불독 왕산은 힘을 조절해 두발을 벽면에 고정시키고 기어오르려 용을 썼다. 비에 젖고 이끼까지 낀 축대는 너무 미끄러웠다. 발은 자꾸 미끄러져 내리는데 나일론 목줄은 강철보다 강한 힘으로 목을 조여왔다.
다음날 아침밥을 주려고 지장전으로 오르던 보살의 목격으로 왕산의 주검이 거두어졌다. 몸부림이 얼마나 처절했던지 축대 여기저기가 핏빛으로 긁혀 있었다고 했다. 또 주검이 된 사지 四肢는 싸늘하게 늘어졌는데 새끼에게 물리고 싶었던 젖은 퉁퉁 불은 채 식지도 않고 뜨뜻했다고 하니, 죽음을 넘어서도 지속되는 모정 앞에 그저 울컥했다.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찾아간 북지장사에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을 윤색하여 옮겼다. 말 못 하는 짐승의 이야기고 어쩌다가 상황이 맞이 떨어졌겠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삶의 질서가 약간 두려웠다. 성급한 선택으로 새끼를 졸지에 죽음으로 내 몬 오소리나, 참담한 업보로 새끼들과 생이별한 왕산이 모두 ‘엄마’였다.
인과因果를 기억하는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네 삶이 훨씬 윤택해질 거라는 스님에 말씀에 옷깃을 여몄다. 생각은 행동을 부르고 행동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져 지속되니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지금의 사소한 선택이 전혀 다른 삶으로 향하는 길목이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진중해졌다.
(정기임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