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선댄스 키드의 인사, 마지막까지 우아하게
<미스터 스마일>(2018)
전형적 핀업 미남이었지만 미국적 마초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은 비록 여기에 있어도 영혼은 저 너머를 여행하는 자인 양 무심하고 홀가분했다. 때론 질서와 제도의 바깥에서 명상하는 자유주의자처럼 보였다. 캘리포니아 남부 출신의 경쾌한 인상에 나체로 있어도 전혀 외설적이지 않은 풍모. 로버트 레드퍼드는 1960년부터 80여편의 TV프로그램 및 영화에 출연한 배우였고, 50여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10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경력 60년, 82살의 로버트 레드퍼드가 <미스터 스마일>을 마지막 작품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젠틀한 은행강도의 황혼 로맨스를 다룬 작품을 실마리로 배우, 감독, 나아가 행동주의자였던 로버트 레드퍼드의 영화 인생을 돌아본다.
<미스터 스마일>(2018)
60년 영화 인생에 대한 헌사, <미스터 스마일>
“절대적인 것은 없지만 연기에 있어서 이것이 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영화 팬들과 안녕을 고하기에 완벽한 작품이라 칭한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의 <미스터 스마일>을 은퇴작으로 택했다. 자신이 제작에 나서기도 했던 이 작품에서 그는 은행을 강탈하고 감옥에서 탈출하는 퇴물 갱단의 리더였던 실존 인물 포레스트 터커 역을 맡았다. 영화 전체가 로버트 레드퍼드의 영화와 삶에 대한 경의와 헌사로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포레스트 터커는 70살을 넘기고도 은행강도를 멈추지 않았다. 작은 총을 들고 부드러운 미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1980년 한해 동안 60여곳의 은행을 털었다고 한다. 영화는 그의 인생 중 가장 전성기였던 1980년대의 활약을 따라간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기이지만 포레스트의 경력은 정점에 도달해 있었고, 이 시기 그는 쥬얼(시시 스페이식)이라는 보석 같은 여인을 만나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강탈과 무법적 일탈을 즐길 뿐이었다. 그것은 노년이 되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방식이었다. 포레스트 터커의 강탈에 협박당한 직원들은 공통적으로 그가 매우 예의바른 신사였다고 술회한다. 영화 대사처럼 그에게 은행강도는 “생계(making a living)의 문제가 아니라 생(living)의 문제”였다. (실제 사용한 적은 없는) 작은 총을 들고 수많은 은행을 털었고, 17번 감옥에 갔으며 16번 탈옥했다. 그리고 그는 최후 혹은 최고의 탈옥을 마지막을 위해 남겨둔 채 여전히 은행강도를 계속한다. 마지막으로 체포되었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
<미스터 스마일>에는 로버트 레드퍼드를 비롯하여 시시 스페이식, 케이시 애플렉, 대니 글로버, 톰 웨이츠 등 연기파 명배우들이 함께한다. 슈퍼 16mm로 촬영된 영상은 1970년대 필름영화 스타일로 영상을 구현해낸다. 배경은 1980년대지만 레트로한 소품과 의상에 아날로그 범죄도구를 활용하여 로버트 레드퍼드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풍을 연상시킨다.
“이 이야기 역시 대부분 사실이다.”(This story, also, is mostly ture) 영화가 시작하면서 뜨는 낯익은 문구에서 강조한 단어 “역시”(also)는 로버트 레드퍼드의 출세작 <내일을 향해 쏴라>(1969)의 “이 영화의 대부분은 실화이다”라는 구절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미스터 스마일>에는 이뿐만 아니라 로버트 레드퍼드의 전작을 상기시키는 장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형사 존 허트가 포레스트 터커와 만나는 장면에서 콧잔등을 치는 장면은 <스팅>(1973)을 오마주한 것이고, 어설픈 범행으로 은행을 터는 장면에서는 <내일을 향해 쏴라>가 떠오른다. 후반부에 포레스트 터커의 탈옥 장면이 순차적으로 전개되는데 16번의 탈옥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로버트 레드퍼드의 필모그래피를 연상시키듯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중 13번째 탈옥 장면은 실제 로버트 레드퍼드가 출연했던 영화 <체이스>(1966)의 필름 클립을 활용한 것이기도 하다. 로버트 레드퍼드 최후의 성공적 탈옥은 영화 밖에서, 추억과 존경 속에서 은막을 떠나는 은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내일을 향해 쏴라>(1969)
<내일을 향해 쏴라>부터 <미스터 스마일>까지
로버트 레드퍼드는 1960년 브로드웨이와 TV에서 연기 경력을 시작했고, 앤서니 퍼킨스 주연의 <톨 스토리>(1960)에서 단역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10대 시절에 운동 장학생으로 콜로라도대학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했으나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탓에 학교에서 쫓겨났다. 젊은 시절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와 회화와 연기를 공부하며 배우 경력을 시작하였다. 성공의 기회는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폴 뉴먼과 함께한 <내일을 향해 쏴라>였다. 이 작품은 말론 브랜도가 주연한 영화 <체이스>에서 인상적 조연으로 등장했으나 여전히 ‘잘생긴 애송이’에 불과했던 그를 일약 할리우드의 총아로 만들어주었다. 그사이 로버트 레드퍼드는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와 <졸업>(1967)의 출연을 거부하고 <내일을 향해 쏴라>를 선택하는 모험을 결행했다. 결단코 멋진 선택이었다.
<위대한 개츠비>(1974)
과묵하며 거친 이상주의자인 전설적 총잡이의 이름인 ‘선댄스 키드’는 이후 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게 될 것이었다. 그는 더이상 얼굴만 잘생긴 애송이가 아니라 성숙하고 거친 남자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후 주연급으로 발돋움해 출연한 작품의 흥행이 이어졌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한 멜로드라마 <추억>(1973), 미아 패로와 출연한 <위대한 개츠비>(1974),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고든 언론인을 중심에 둔 <대통령의 음모>(1976)를 비롯해 다시 한번 폴 뉴먼과 호흡을 맞춘 <스팅>을 통해 로버트 레드퍼드는 할리우드 간판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핸섬한 외모와 젠틀한 매너 그리고 여성을 대하는 자연스러운 품성은 남성들을 경쟁자로 만들 만큼 적대적이지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이상적 연인의 아이콘으로 다가왔다.
1980년대는 <내츄럴>(1984)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를 통해 최전성기의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그는 <보통 사람들>(1980)을 시작으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첫 번째 연출작인 이 작품으로 그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는데 <업클로즈 앤 퍼스널>(1996), <은밀한 유혹>(1993)에서 여전히 전문직 로맨스의 주인공이었으며, <퀴즈쇼>(1995)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호스 위스퍼러>(1999)로 또 한번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감독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가 5년간 제작에 공들인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는 기대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해양 조난담을 다룬 <올 이즈 로스트>(2013)의 대담하고 순수한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노년 배우의 진가는 황혼 로맨스 <아워 솔즈 앳 나이트>(2017)와 <미스터 스마일>로 이어졌다.
<콘돌>(1975)
선댄스와 유타주
“어떤 사람에게는 분석이 주어집니다. 나에게는 유타가 주어졌지요.” 도시적 삶보다 자연 속의 삶을 선호했던 로버트 레드퍼드의 말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할리우드의 대표 스타로 살아왔지만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지극히 정중하고 개인적인 삶을 살아왔으며, 화려한 스타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가급적 피하며 살려 했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이지만 자연에는 산책하고 홀로 있을 충분한 공간이 있음에 만족했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자연보호와 환경 문제, 아메리칸인디언의 권리 및 LGBT 인권에도 공감해 적극적으로 개입, 활동해왔다. 그가 보여준 행동주의의 핵심에는 유타주가 있다. 그에게 유타주는 독립영화정신과 친환경주의의 상징이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유타주에 처음으로 집을 지어 살았다. 유타주 팀프 헤이븐 부근엔 농장과 스키장을 짓기도 했다. 이곳 리조트의 이름은 후에 자신의 영화 속 캐릭터 이름을 따서 ‘선댄스’로 바꾸었다. 1981년 독립영화감독을 위한 선댄스협회를 유타주 파크시티에 세웠으며, 1978년부터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소규모로 열리던 ‘미국 영화제’를 흡수, 통합하여 1985년에 선댄스영화제를 출범시켰다. 선댄스영화제는 1980년대 후반 스티븐 소더버그, 코언 형제,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등 신인감독을 발굴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독립영화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레드퍼드는 천연자원보존위원회의 창립이사이자 열렬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아이맥스 다큐멘터리인 <지구의 신비>(2004)와 <지구 놀라운 하루>(2017)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하고, 말 치유사가 등장하는 <호스 위스퍼러>의 제작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벅>(2011)에도 출연한 바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의 재선을 돕고 트럼프에 노골적으로 반대의견을 표하는 등 정치적 발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이념적 좌파로 고정시키는 것에는 조심스러워했지만 정치운동이 그의 삶의 일부이며 자신의 관심사가 미국의 지속 가능성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역사가 때로는 나쁜 경향을 되풀이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영화 제작자로 나선 것도 이러한 그의 행동주의의 일환이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1985)
그리고 레드퍼드의 친구들
폴 뉴먼은 로버트 레드퍼드의 영화적 삶과 실제 삶에서 가장 친밀한 동료이자 친구였다. 그와 함께 출연한 버디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와 <스팅>에서 폴 뉴먼은 여유롭고 낙천적이며 기지가 풍부한 연장자로, 로버트 레드퍼드는 그에 비해서는 다소 미숙한 신참 내지 동료의 역할로 궁합을 맞추었다. 평생의 친구였던 폴 뉴먼의 사망으로 로버트 레드퍼드는 친구와 함께하는 은퇴작이었을지도 모를 <어 워크 인 더 우즈>(2015)를 닉 놀테와 함께 완성해야 했다. 제인 폰다와는 <체이스>를 시작으로 <맨발 공원>(1967), <일렉트릭 호스맨>(1979), <아워 솔즈 앳 나이트>를 통해 청년, 중년, 노년의 멜로 콤비를 이루며 인연을 이어갔다.
<워 헌트>(1962)에서 로버트 레드퍼드와 배우로 함께 출연했던 시드니 폴락은 이후 감독으로 전업하여 <제레미아 존슨>(1972), <추억>(1973), <콘돌>(1975),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에 이르는 동안 서로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또 다른 인상적 재회는 자신이 연출하고 주연한 <호스 위스퍼러>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슈퍼스타가 되어 출연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에 알렉산더 피어스 국장으로 출연한 일이다. 로버트 레드퍼드의 영화적 상징을 가장 강력하게 물려받은 배우는 <흐르는 강물처럼>(1992)의 브래드 피트다. 이 작품에서 브래드 피트는 젊은 레드퍼드의 화신인 양 자유로운 영혼의 낚시꾼 기자인 폴 맥클레인 역으로 매력을 어필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둘은 <스파이 게임>(2001)에서 선임자와 신출내기의 버디 콤비로 재회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현장에서의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1992).
배우의 아우라
사생활은 은둔하며 숨겨두었지만 영화를 통해서는 현대 미국의 삶을 더할 바 없이 누렸다. <위대한 개츠비> <아웃 오브 아프리카> <미스터 스마일>에서의 그는 감미롭고 젠틀하며 여성에게 관대하지만 이상의 추동에 끌리는 차가운 로맨티시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대통령의 음모> <업 클로즈 앤 퍼스널> <트루스>(2015)에서는 전문 언론인으로서 정치와 쇼비즈니스가 결합된 미국 언론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언론인의 역할을 맡았다. 슈트와 안경이 어울리지만 그 못지않게 허름한 건맨과 카우보이 복색에도 어색함이 없다. 마천루보다 미국적 대자연의 풍경에 어울렸다. <스팅>과 <내츄럴>에 복원해냈던 대공황과 전쟁 사이, 1930년대 미국의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배우였다. 선댄스 키드, 밥 우드워드, 제이 개츠비 그리고 포레스트 터커. 레드퍼드는 미국과 영화의 한 시대를 증언한다. 정치적 행동주의는 온화한 반향을 일으켰다. 미워할 수 없는 무법자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콘이었으며,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통해서는 미국적 삶의 불안한 초상을 합리적이고도 솔직하게 그려냈다. 글 송효정(영화평론가) 2019-01-03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