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한국농구 센터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는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덩크슛으로 농구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전해 주었다.
당시 고공 농구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 한기범은 한국농구 센터의 중심이자 미래였다.
지난 7일 늦은 저녁시간. 한국농구의 국보급 센터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기범을 만났다.
'원조 골리앗' 이라는 별명으로 농구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와 농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용병은 한 명으로 충분하다!
과거 수 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현재 프로농구의 센터 부재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먼저 물어봤다.
한기범은 "용병때문에 토종 센터가 많이 없어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이었던 서장훈(33·서울 삼성)이 용병에 밀려 외곽 3점슛을 던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컷던 것이다.
이어서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농구를 배우는 어린 학생들이 일찌감치 센터의 길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용병들이 골밑을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해봤자 안 될꺼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기범의 신랄한 지적이 담긴 말이다.
사실 프로농구가 출범하고 용병들이 들어오면서 그들이 골 밑을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순간부터 절대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농구선수를 꿈꾸는 초,중,고 학생들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한기범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용병을 한 명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용병을 한 명만 쓰게 된다면 지금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심판 판정에 고개를 숙이자!
말이 나온김에 현재 프로농구의 상황에 대해 더 물어봤다.
최근 농구의 열기가 예전만큼 못하다는 말에 "선수들의 실력은 많이 향상됐지만 아기한 맛이 떨어진다"며 "외국용병들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좋은 용병을 두고 있음에 따라 팀 성적이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좋지 않다는 의견이다.
또한 한기범은 "심판 판정에 대해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NBA를 예로 들며 "심판들이 한 경기에 최소 10개 정도의 파울을 못 잡아 낸다"고 전했다.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골밑싸움에서 못 보고 놓치는 경우가 NBA에서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물론 심판들도 질 높은 교육을 통해 정확한 판정을 해야 되겠지만 선수들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거칠게 항의하는 것은 농구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큰 이유가 된다는게 한기범의 생각이었다.
방송출연은 후배들을 위한 선택!
처음부터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생각이 들어 화제를 바꿨다.
그것은 바로 방송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매니저의 말에 의하면 이날 인터뷰하기 전에도 모 개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한다.
사실 그가 방송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대학교 코치 생활 시절 후배들이 친구들도 못 사귀고 훈련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말하는 그는 "어린 아이들이라 연예인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방송 출연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부분의 일들을 말해주고 싶었다"며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보여줬다.
또한 방송활동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 "시트콤을 3개월 정도 한 순간 갑자기 작가가 너무 많은 대사를 줘 외우는데 고생많았다"며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지금도 대사 외우라면 피곤하다"고 손사레를 치는 그는 "나름대로 재미있었다"며 당시의 추억을 떠올렸다.
노력만이 살길이다!
자신만의 농구 철학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한기범은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짧게 말했다.
스스로가 운동신경이 좋지 않다고 인정하면서 남들보다 두 세 배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허재나 강동희, 이상민등은 운동신경이 타고난 선수들이다. 그들은 한 가지를 가르쳐주면 세가지를 안다"며 "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 노력하는 선수였음을 강조한 한기범이었다.
한기범은 1989년 소속팀 기아자동차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최고의 위력을 가진 최장신 센터였던 그가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으니 좋은 성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 지도 모른다. 한기범이 최고 센터로서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렸던 수많은 땀방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농구를 전파하는 한기범!
현재 한기범은 '한기범 농구 교실'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로 농구를 가르쳐 주고 있고, 연예인 농구단 '더 홀'의 감독을 맡으며 농구와의 인연을 계속 맺고 있다.
또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찍은 길거리 농구의 묘미를 CD에 담아 농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과거 '말판 증후군'이라는 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던 한기범.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 선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농구의 재미를 전파하기 위해서 다각도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원조 골리앗' 한기범이 전파하는 '사랑의 농구'의 힘이 계속해서 뻗어나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