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이 역사적인 날을 이렇게 무심히 넘겨도 되나!
1. 2012년 6월 13일
전국은 어떤지 몰라도 서울은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 흐리다.
며칠 전부터 굵은 빗방울이 간간이 몇 방울씩 흩뿌리고 지나는 갔으나 말 그대로 지나가는 짧은 소나기다.
3년 가뭄에 비 안 오는 날 없다드니, 바로 이런 해를 두고 이르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고 봄부터 시작된 긴긴 가뭄을 적셔줄 단비는 쉬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날씨다.
아침마다 새벽운동을 하러 올라가는 서울의 야산도 큰 나무는 몰라도 공원을 조성하느라 구청에서 새로 심은 나무와 잔풀들은 배짝 말라비틀어져 죽지 못해 서 있는 것 같다.
서울사람의 눈에도 기록적인 가뭄의 실상이 보이고 산의 나무와 풀이 애처롭게 보이는데, 농촌에서 근근이 논 밭떼기에 의지해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마음은 목마른 나무와 풀보다 더 속이 타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간간이 전해오는 북녘의 가뭄피해는 우리의 처지하고는 또 다른 아주 절박한 생사의 문제인 것 같다.
남녘이야 쌀이 창고에 쌓여 썩어간다니 묵은 쌀이라도 있지만, 당장 한 끼니 거리가 걱정인 북녘 동포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예전 같으면 임금이 만조백관과 더불어 사흘 동안 수랏상을 받지 않고 찬 물에 목욕재계하고 짚신에 굵은 삼베옷 걸치고 거적 깔고 기우제를 드려야 할 판에 이명박은 느닷없이 4대강을 완전히 죽여 놓은 결과로 수해(水害) 걱정이 없어졌다고 흰 소리를 해댔다.
예전에는 미친개가 보름달이 흘러가는 구름에 가려 땅바닥에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짓는다더니, 서울에서 달그림자를 보고 개 짓는 소리를 듣기가 힘들게 되자 쥐가 미쳐 미친 소리를 해 대고 있다.
저 미친 쥐가 얼마 있다 큰 장마가 몰아치고 낙동강에 보 몇 개가 터져나가 영남일대가 진흙 펄 쑥대밭이 되어도 4대강 공사를 해서 기록적인 폭우에도 이나마 피해로 그쳤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쥐가 송곳니로 깨진 바가지 긁어대는 소리를 해 댈 것이다.
2. 12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2000. 6. 13일
아침 9시 15분 성남 서울공항에서는 대통령 전용기가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활주로를 박차고 창공으로 떠올랐다.
서울하늘을 벗어난 대통령 전용기는 아직 남북직항로가 개설되지 않아 서해바다 깊숙이 서진을 하여 공해상으로 나가 다시 방향을 90도 꺾어 평양으로 향 하였다.
10시 30분 대통령 전용기는 수십만의 군중이 고운 한복에 꽃 깃을 흔들어대는 평양 순안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정확히 1시간 15분이 걸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직선의 직항로를 탔다면 1시간이 채 안되어 도달할 거리다.
서울의 하늘이 눈부시게 맑았고, TV로 비춰주는 평양거리도 햇살이 눈 부셨다.
하늘도 서울과 평양의 하늘이 똑 같았고, 사람들이 입은 옷도 똑 같았고, 생김생김도 똑 같았고, 쓰는 말도 똑 같았던 우리의 잊혀진 형제들이 살고 있었다.
트랩에서 내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0년 지기나 되는 듯이 서로를 껴 앉았다.
도저히 맨송맨송한 눈으로는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
대대로 충청도 출신인 내가 그랬으니 실향민이나 실향민의 자식들은 그 장면을 눈물 없이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으리라!
쓰는 말이 다른 국가 간에 정상회담을 할 때는 반드시 통역이 따르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이명박이 일본수상과 회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통역은 그냥 장식품으로 앉혀놓고 이명박은 통역의 말을 듣지 않고 왜 수상이 지껄이는 말을 직접 듣는다.
그 평양회담이 있기까지의 뒤에 가려진 비사와 가슴 뭉클했던 장면과 김대중의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과 번뜩이는 지혜와 재치가 담겨있는 글을 다음- 안티 이명박 카페에 실린 글의 주소를 복사하여 올린다.
http://cafe.daum.net/antimb/HXck/209294
윗글이 좀 길지만 차근차근 정독을 하시기 바랍니다.
평화통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며 우리역사를 이해하는 안목이 한 단계 더 성숙될 것입니다.
윗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몇 가지만 제 글로 덧붙이겠습니다.
3. 남북정상회담
전 국민이 다 아시다시피 애초에는 김영삼과 김일성 간에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김영삼-김일성 간의 남북정상회담은 불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부터 시작해서 북한을 40년 가까이 1인 통치를 해 온 사람으로서 백전노장의 능구렁이입니다.
김영삼은 중학교 때부터 책상머리에 “대통령”이라는 글을 써 붙인 자타가 공인하는 대통령 병 환자였습니다.
김영삼의 머릿속에 들은 것이라고는 “대통령”뿐이 없고 머리는 텅 비어 말 그대로 빈 깡통이었고, 그의 필생의 소원인 대통령이 되어 정권을 잡고 나서는 나라를 자기 머리와 같이 빈 깡통을 만들어 온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빈 깡통 차고 거리로 나서게 했습니다.
고집과 오기로만 똘똘 뭉친 사람입니다.
자원을 끝까지 재활용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과 박스를 줍는 것이 그때부터 생겨난 풍습입니다.
만약 김일성과 김영삼 간에 최초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 졌다면 김일성이 연장자로 그 분위기도 냉랭했을 것이고, 노회한 김일성에게 김영삼은 농락만 당하다 분기가 탱천하여 회담을 때려치우고 급거 서울로 돌아오는 국제정상 간의 외교에서 보기 힘든 추태를 부렸을 것입니다.
김영삼의 남북정상회담은 오로지 자신이 분단이후 최초로 정상회담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그 정상회담을 해서 남북관계나 민족의 앞날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지혜로움이나 비전 같은 것을 생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위인입니다.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정상회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김대중은 1971년 박정희와 맞붙은 제 7대대통령 선거 때부터 남북의 화해와 공존 - 평화정착 -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일관되게 주창하고 연구한 그 방면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가 알아주는 정치지도자였습니다.
세계가 냉전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1970년대 초에 벌써 머지않아 동서냉전은 사라지고 무한경쟁의 경제전쟁시대가 도래한 다는 것을 두세대 앞서 꿰뚫어 보는 혜안과 지혜를 갖추었고, 그 위에 40년간 일관되게 통일에 대하여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입니다.
능구렁이 아들 김정일도 그런 김대중의 초지일관한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과 진정성을 잘 알고 있고, 연령적으로도 삼촌뻘은 되니 깍듯한 예우로 임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큰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거기에는 김대중과 비슷한 철학을 가진 각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활약이 뒷받침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김대중이 40년간 “빨갱이”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도 철저히 준비한 결과였습니다.
그 길을 노무현이 다시 한 번 다졌습니다.
4. 아쉬웠던 점
김정일의 서울답방이 부도가 난 것입니다.
김정일이 서울 답방을 했을 때 일어날 수도 있는 불상사와 무사귀환의 불확실성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건 김대중의 평화통일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만약 김정일이 서울답방을 했다면 김대중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안전을 보장했을 것이고,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런 불상사를 그냥 두고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절대로 그런 무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정일의 서울답방이 이루어졌다면 남북 간에는 평화통일 바로 전 단계까지 진척이 되었을 것이고, 감히 수구냉전을 부추기는 이명박 정권의 출현은 생각할 수도 없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설쳐 댈 수 있는 환경이 애시 당초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김정일이 서울답방을 하지 않은 그것이 바로 김대중과 김정일의 그릇 차이입니다.
김대중과 같은 인물은 자주 태어나는 인물이 아닙니다.
광복이후 분단의 시대에 우리민족이 배출한 최고로 걸출한 인물입니다.
5. 다시 2012년 6월 13일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명박 4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성취했고, 무엇을 이루었습니까?
8천만 겨레 모두가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한반도가 되었습니다.
8천만 중 그래도 이명박만은 행복하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퇴임 뒤를 생각하면 제 말대로 날밤을 하얗게 새울 것입니다.
박근혜는 행복하다고요?
천 부당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해도 지금 속으로는 똥끝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달콤하고 엉큼한 꿈 깨게 될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30년간 무사히 틀켜 쥐고 있던 장물 다 토해내느라 목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고, 하루아침에 천사에서 마녀의 마각이 들어날 것입니다.
재벌과 1%는 행복하다고요?
그것 역시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명박 끝나는 날이 자신들의 행복도 끝나는 날인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정부가 시작되는 날이 1%의 혹독한 불행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국민들이 그것을 깨달은 것이 이명박 5년의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나머지 99%와 북녘의 2천만은 당장 살기가 힘들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5년 동안 8천만이 공평하게 불행해 졌습니다.
이명박은 “불행”하나는 남북을 가리지 않고 공평히 분한 것 같습니다.
오늘 6월 13일 최초로 평양 길을 뚫었던 그 역사적인 일을 거론하거나 기억하는 언론이 하나 없습니다.
물론 615공동선언 기념이 있기는 하겠지만 오늘은 오늘대로 역사적으로 기억을 해야 될 날입니다.
과연 김대중- 노무현 10년과 이명박 5년, 어느 시기가 잃어버린 세월입니까?
다시 박근혜 5년을 채워 잃어버린 세월을 10년을 만들지 않으려면 국민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윗글에서 보면 김대중이 남북정상회담을 했을 때 남한국민의 90%이상이 지지를 했다고 합니다.
이명박 - 박근혜 - 새누리당 - 조중동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국민의 90%가 “빨갱이”, “종북좌파”입니다.
거기에 5%의 종미(終美)와, 5%의 종왜(終倭)가 섞여 사는 게 오늘의 대한민국입니다.
에이-18!
찌푸린 날씨에 비도 안 오면서 왜 이렇게 후덥지근하기 까지 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