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책이나 백과사전에는 세종 16년(1434) 장영실 등이 어명에 따라 제작한 자격루를 ‘우리나
라 과학기술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자격루는 물을 일정한 속도로 흘러내리도록 하
여 정해진 시각마다 북이나 징이 울리도록 함으로써 시보를 알려주는 물시계다. 장영실은 자격루를
만들 목적으로 명나라에 건너가 그곳에 있는 물시계의 구조를 그려 와서 그대로 만들었으니, 엄밀하
게 말해서 발명품이 아니라 모방품이었던 것이다.
자격루를 발명품이라고 과장하기에는 더욱 낯간지러운 것이, 물시계는 세종 16년보다 3000년 앞선 B
C 1500년경 이집트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기심 많은 한 사제가 낮과 밤의 정확한 길
이를 재보기 위해 물시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사제는 하지에는 낮 길이가 18시간, 밤은 6시간밖
에 안 되고, 동지에는 그 반대인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물시계가 어떤 모양인지, 제대로
작동은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테네에 있는 <바람의 탑>
고대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BC 428~BC 348)도 클랩시드라는 물시계를 만들어 늦잠꾸러기인 아카
데미아 학생들을 깨우는데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클랩시드는 휘파람이라는 뜻인데, 일정 시각
이 되면 소리를 내어 시보를 알린 것으로 보인다. 로마시대에 아테네에 지은 로마아고라에는 <바람
의 탑>이라는 8각 탑이 있고, 그 안쪽 벽에는 고대그리스에서 만든 물시계‧해시계‧풍향계의 모양이
그려져 있다. 고대그리스에서는 물시계가 널리 이용되었는데, 특히 아고라에서 재판을 할 때 원고와
피고의 변론시간을 재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영국의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가 대륙회의를 소집하여 독립을 선언한 것은 1776년 7월 4일이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영국에 저항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였다. 이후에도 미국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
쟁을 계속하여 1781년 3월에 가서야 전쟁에서 승리하여 완전한 독립을 이룩했다. 이때부터 13개 식
민지가 州 형태로 연합체를 구성하여 시시마꿈 통치했는데, 강력한 연방정부를 구성할 것이냐 각 주
가 독립적으로 통치할 것이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연방주의자들이 反연방주의자들
을 설득하여 실질적으로 연방정부가 구성된 것은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1732~1799. 위 사진)
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부터였다.
세상에는 대단히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의외로 많다. 전기공학
자 찰스 스타인메츠(1865~1923)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프로이센의 한 시골마을에서 곱사등이
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찰스는 대학에서 교내신문 편집장
으로 일하던 중, 당국에서 금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관한 글을 실었다가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1889년 찰스는 체포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작은 전기회사에 취직했다.
찰스는 연구에 몰두하여 <이력현상에 대한 법칙>이라는 중요한 이론을 수립했다. 그때까지 미국에
서는 전동기‧발전기‧변압기 등 모든 전기장치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의 원인을 몰라 많은 과학자들
이 원인 찾기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찰스는 그 원인이 자기현상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고 그에 대한
대책까지 발표했다. 덕분에 세계 공학자들은 모든 전기장치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기현상으로 발생
하는 전력 손실을 미리 계산하여 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을 딴 ‘찰스계
수’가 전기공학 용어가 됨으로써 27세의 찰스 스타인메츠는 전기공학 계통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교류회로를 사용하는 전기장치를 제작할 때 먼저 효율을 계산하여 설계하도록 고안한 것도 찰스의
중요 업적 중 하나다. 이로써 전기 구조를 미리 만든 후 효율을 시험하여 필요하면 수정하던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제작자는 엄청난 비용 절감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아울러 찰스는 일반 공학자도 교류
회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교류현상을 계산하는 기호적인 방법을 발달시켰고, 복잡하여 거의 이해되
지 않던 분야를 단순화시켰다. 이로써 교류장치가 상업적으로 빨리 도입될 수 있었다. 찰스는 이 이
론을 정리하여 1897년 「교류현상의 이론과 현상」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문제는 전기공학자들이 찰스의 책을 읽고도 계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학적 능력이 없다는 데 있
었다. 이에 찰스는 1911년 「공업수학」이라는 수학교재를 만들어 직접 강의에 나섰다. 전기시대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던 시기라 그의 강의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의 강의를 들은 미국의 전기공학
자들은 금세 계산법을 숙지하여 효율적인 교류장치 설계 및 생산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전
기제품 생산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社는 찰스를 스카우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아예 그가 재직
중인 아이케마이어社를 통째로 인수해버렸다.
큰 회사에서 최상의 대우와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자 찰스는 기다리고 있
었다는 듯 엄청난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첫 과제는 나이아가라폭포의 새 발전소에 발전기를 설
치하는 임무였다. 찰스는 즉시 교류회로를 이용한 가장 효율적인 발전기를 만들어 회사의 이익을 획
기적으로 증대시켰다. 그는 회사 내의 모든 엔지니어들에게 이 방법을 교육시킴으로써 생산 및 운용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찰스의 이 업적이 없었더라면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도,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
도 널리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전기적 과도현상, 즉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전기회로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이론 수립도 찰스의
주요 업적 중 하나다. 전기적 과도현상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번개다. 찰스는 번개를 관찰하여 진
행파에 관한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번개로부터 高전력 전송선을 보호하는 장치 개발의 길을 열었다.
그는 이 이론으로 10만 분의 1초 동안 100만 마력 이상의 힘과 맞먹는 1만 암페어의 전류와 10만 볼트
이상의 전압을 방전하는 발전기를 고안해냈다. 오늘날 제너럴 일렉트릭社가 세계적 공룡기업으로 성
장한 데는 찰스 스타인메츠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찰스가 제너럴 일렉트릭社의 계산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동료 엔지니어 두 사람이 그의 사
무실로 찾아왔다. 직경 2인치인 쇠막대기에 드릴로 2인치짜리 구멍을 내서 반으로 자를 때 깎여나가
는 쇠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비싼 쇠막대기에 구멍을 내서 쇠를 깎아내는 일은
비용과 직결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데,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며칠 간 계
산해봤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찰스가 노트를 펼쳐놓고 열심히 계산하여
이내 해답을 찾아주기를 기대하고 왔지만, 찰스는 미간을 좁히고 한동안 생각을 하더니 즉석에서 ‘답
은 5.33세제곱인치일세’ 하고 대답했다. 이때부터 동료들은 찰스를 연방대법원이라고 불렀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최후의 법정이라는 뜻이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그렇게 많은 부동산 대책을 내어 놓고도 현금의 상황을 초래한 것은 부동산을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접근 하기 때문 입니다. 과열 투자 수요은 없애야 하지만 감정적인 보복 정책은 실수요자들을 옥죄이고 있는 실정 입니다. 주택 매매 허가제를 언급한 청와대, 위헌 논란 까지 불러오는 반 시장정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