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 특집]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을 지키는 사람들
| ▲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매장 예절이 끝난 후 흙을 덮는 매장과 직원들. 죽음이 정해진 때가 없듯, 이들의 손길도 일 년 내내 분주하다. 백영민 기자 |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끝은 서로 다르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고,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나는 이도 있다. 수많은 사람의 애도 속에 치르는 장례도 있고,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애석한 죽음도 존재한다. 그런 죽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 고인을 위한 예식을 치르고 그 육신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 묵묵히 일하는 묘원 직원들이다.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을 찾아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죽음에는 고인의 삶이 묻어난다
상주가 길을 헤매나 보다. 용인공원묘원 매장과 직원들이 삽을 든 채 상주를 기다린 게 벌써 20분 째다.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은 100만㎡ 부지에 납골 형태의 묘가 6만 3000여 위, 매장묘는 2만 3000여 위에 이르는 대규모 묘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인을 모신 유족이 자리하고 고별 예식과 매장 작업이 시작됐다.
매장과 김석기(49)씨는 "매장 일은 시신에 대한 혐오감이 있으면 할 수 없다"며 "고인을 하느님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자부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길도 김씨를 비롯한 묘원 직원들이 함께했다.
현장직을 거쳐 관리소장까지 18년을 이곳에서 일한 안병주(프란치스코, 51) 관리소장은 "처음에는 혐오시설이라 불리는 묘원에서 오랫동안 일할 생각이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근무할수록 고인들을 모시고 그들의 묘를 유지 관리하는 데 전문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지금껏 일하고 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죽음을 지켜봤다. 안 소장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볼 때면 아직도 마음이 저며 온다고 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때 숨진 8명이 이곳에 잠들었지요. 꽃도 피우지 못하고 진 젊은 남녀의 죽음은 늘 애석합니다."
안쓰러운 죽음도 있다. 장례를 치르며 가족의 잠재된 불화가 드러나는 경우다. 유산상속 문제로 고인의 묘 앞에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래도 모든 죽음은 늘 아쉽다고 했다.
묘원 측은 얼마 전부터 고인을 떠나보낸 유족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고자 '하늘의 편지'를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 추모관에 고인에게 띄우는 편지를 올리면, 관리사무소 측에서 출력 후 고인의 묘 앞에 배달한다.
엄마를 떠나보낸 딸은 엄마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띄웠다. "엄마 연미사 넣고 묵주기도 열심히 바치면서 용서를 구하지만, 살아 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해서 한으로 남네. 엄마 용서하세요. 간병도 제대로 못해 드리고 자주 찾아보지도 못하고 엄마에게 못해준 일만 생각이 나. 엄마, 하늘에서 다 내려다보고 있지? 눈물이 흘러 더는 말을 못하겠어. 조만간 엄마 아버지 보러 갈게. 미안하고 고마워 엄마"('하늘의 편지' 중에서).
| ▲ 벽식형 봉안묘에 모셔진 고인들. 벽에 붙은 고인의 사진과 화환이 고인의 대한 가족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
#누가 고인을 위해 기도해 줄까
"고인의 자녀가 냉담교우이거나 신자가 아닌 경우는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누가 고인을 위해 기도해 줄까요?"
매장 예식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권재겸(토마스 아퀴나스, 56) 관리팀장은 "부모 선종 후 묘원에 문의 전화를 하는 신자도 '세례대장이 뭐냐, 교적이 뭐냐' 묻는 경우가 많다"며 "어림잡아 70~80%가 냉담교우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자녀가 비록 냉담 중일 망정 세례라도 받았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묘지 계약 당사자가 신자가 아니면 이곳에 올 수 없다. 신자였던 고인이 살아 생전 묘원과 계약을 했거나, 부모가 비신자라도 자녀가 신자인 경우는 묘원에 모실 수 있다. 배려도 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입교한 한 예비신자는 교구의 배려로 부모를 이곳에 모실 수 있었다. 세례를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부모님을 천주교 묘원에 모실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남긴 예비신자의 감사인사는 이곳 공동체에게 큰 힘이 됐다.
권 팀장은 "신앙의 대물림이 끊어지면 고인 역시 신앙적으로 잊힌 부모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고인의 천상 양식은 후손의 기도인데, 냉담 중인 자녀가 부모를 위해 기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식사 후 바치는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가 이들의 유일한 양식인 셈이다.
간혹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묘원 사무실에서 만난 최순자(소피아, 70) 할머니는 기도하러 온 김에 외부 납골묘원에 모신 남편과 자신의 묏자리를 알아보러 들렀다고 했다. 최씨는 "자식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사후를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준비없는 죽음은 늘 당황스럽기만 하다. 안병주 관리소장은 "아무 연락도 없이 고인의 시신을 모시고 이곳을 직접 찾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고인이 될 분에 대한 배려이며, 유족 역시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고인과 작별할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취재를 마치고 묘원을 떠나는 길, 또 다른 장례 행렬이 묘원을 향한다. 문득, 이곳이 하느님을 향한 여정의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가 봉헌하는 위령미사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는 고인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연결하는 신앙의 고리가 될 것이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여행사 운영 30년, 이제는 죽은 이들 여행 도와"
▨용인공원묘원 권재겸 관리팀장
"봉사라고 생각하면 늘 마음이 기쁩니다." 권재겸(토마스 아퀴나스) 용인공원묘원 관리팀장은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 여행사를 운영하며 30년간 산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했다"며 "지금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권 팀장은 자식이 다 크고 물적으로도 "먹고 살 만큼은 됐다"는 생각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오게 됐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째, 바쁜 일정으로 일주일에 한 번밖에 집에 못가지만, 고인들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소명감에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는 늘 죽음과 함께하기에 죽음이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제가 1957년생인데 이곳에 오는 분 절반은 저보다 나이가 많고 또 절반은 어립니다. 젊은 분들을 볼 때마다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권 팀장은 "신자가 세상을 떠나면 먼저 성당에 연락하거나 연령회에 연락해야 한다"며 "연령회마다 예식이 다른데, 통일된 「상장례 예식서」를 따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째 자손이 찾지 않는 무덤을 볼 때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남들이 보면 궂은 일이지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죠. 고인의 마지막을 정성껏 배웅하는 일이 참 보람됩니다."
백영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