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KTX 안에서- 김사인 형께/ 김용락
19시 19분 동대구발 행신행 KTX를 타고 대전성모병원 특3실 김사인 시인 부친상 문상 가면서 그저 받은 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읽는데 첫 시부터 좋구나 소리 연방 나오더니 ‘중과부적’에 와 이를 세 개나 빼야하는 딸아이의 성 내는 구절을 읽다가 참 좋은 시인! 이라는 신음이 마침 치과 치료중인 내 어금니 사이에서 상갓집 흐릿한 조등 불빛같이 기어코 흘러나오고 말았다
내 20대 중반부터 시를 쓰면서 뻔질나게 서울 나들이할 때 자정이 가까워지면 서울 놈들 하나같이 장마 끝 잘 여문 봉숭아 씨방 내용물처럼 탁 터져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면 어리버리 지방 촌놈들 닭 쫓던 개 꼬락서니라 많이 당황하고 슬펐는데
그때 촌놈들 서울 어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낡은 아파트에 이끌어다 놓고 자신은 옆방에서 급한 원고 메운다고 밤새 타닥타닥 수동타자기 두들기던 선한 얼굴의 30대 초반 그 김사인이 생각난다
나도 이런 좋은 시 딱 한 편 쓰고 싶은데 나에게는 그런 복이 없는 것 같다 내일모레 60인 걸 생각하면 안달이 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내 詩心을 조문해야 하나 차창에 비친 내 야윈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새 목적지 대전역에 내리라고... (2015. 2. 16)
- 시집 『산수유나무』 (문예미학사, 2016) ...............................................................
어제 모처럼 영남일보문학상 시상식 나들이에서 이 시를 지어 건넨 김용락 시인과 이를 받은 김사인 시인을 함께 만났다. 김사인 시인은 송재학 시인과 더불어 본심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하였고, 김용락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장의 신분으로 초청받아 축하의 ‘한 말씀’을 위해 참석했다. 나는 그저 박수를 치러갔다. 김용락 시인은 그저께 <시와시와> 신년회도 와주어 이틀 연장으로 만난 셈이다. 그런데 그들 인연의 내력이 이렇게나 깊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김용락 시인의 문단 이력을 떠올리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하고, 그해 ‘분단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인식하고 극복하려는 젊은 시인들’이 모여 <분단시대> 동인을 결성하였다. 2014년 분단시대 동인 30주년 기념시집 <광화문 광장에서>를 <푸른사상>에서 펴낸 바 있다. 초창기 뜻을 함께한 ‘젊은 시인들’로 도종환, 김윤현, 배창환, 김창규, 정대호, 김종인 등이 있다. 1985년에 나온 분단시대 첫 동인지<이 어둠을 사르는 끝없는 몸짓>은 판매금지 되었고, 그후 이들은 감시받으며 다니던 직장에서 해직되고 구속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들은 굴하지 않고 생업의 현장에서, 광장 한복판에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굴절된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그들은 촛불을 들었고 주먹을 쥐었다. <분단시대>의 역사의식과 실천행동은 지금도 변함없으며 그 중심에 김용락이 있다. 김용락은 중2때부터 문학에 뜻을 품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시인이 되어 30년 넘도록 활동해오면서 ‘창비’에서 낸 첫 시집 『푸른 별』을 포함해 6권의 시집과 8권의 평론집을 냈다. 그러고도 58년 개띠 언저리라니 나와는 좀 묘한 괴리감이 있다. 그는 지금도 팔팔한 청년의 모습 그대로다. 언제부턴가 만나면 나를 ‘형’ ‘형님’이라 부르는데, 한편으론 안도하면서도 공연히 송구스럽고 민망했다. 나이는 몇 살 위라지만 뒤늦게 지방문단에 삐죽 기웃댈 때부터 김용락은 이미 내겐 우뚝한 존재였다. 오히려 내가 선생님, 회장님이라 조아려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런 김용락 시인임에도 ‘문인협회’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문단에서는 그를 잘 몰라서 그러는 건지 모르는 척 하고 싶어서인지 그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 같다. 개의치 않던 그가 요즘은 가끔 이에 대한 ‘뿔따구’를 내보이기도 한다. 이번 여섯 번째 시집의 표사에서 신경림 시인은 “언제 읽어도 그의 시는 푸르고 싱싱하다! 또한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현실의 비리나 모순을 피하거나 숨지 않고 정면으로 맞받으며 사는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도 그의 시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듯 김용락의 시는 돌직구다. 변화구를 던질 줄 모르고 기교 섞인 마구를 구사하려 않는다. 내용과 사상만을 중시한다. 그의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이를테면 시로 쓰는 문단사의 편린쯤 될 것이다. 뒤이은 김사인 시인의 표사는 “나는 무엇보다 김용락 시의 평명함에 경의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순탄함에 함께하는 소년스런 맑은 기개와 지사다운 가을기운을 사랑한다.”라고 거들었다. 김용락 시인이 부러워마지 않던 김사인 시인의 시는 남루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일상과 그 비애를 늘 따뜻하게 보듬고 있어 그뿐 아니라 누구나 ‘가만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학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쉽게 말하고 딸리는 사람일수록 더욱 어렵게 말한다고 한다. 시인의 삶이 그렇듯 그의 시적 지혜로움은 쉽게 한 움큼으로 말하는 듯 보여도 실로 어마어마한 감동의 심연을 품고 있다. 이태전 내게 <시와시와>에 대해 애정 어린 ‘조언’을 조곤조곤 들려준 바 있어 나로서도 그 잠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겠는데, 김용락 시인으로서야 오죽하랴. 이날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하이네겐 한 병씩을 더 마시고서 소설부문 심사위원이었던 성석제 작가와 송재학 시인이 먼저 일어섰다. 이하석 시인, 박방희 시인, 류인서 시인, 서영처 시인, 권오현 평론가 등과 늦은 시간까지 있다가 김용락 시인은 김사인 시인을 KTX로 배웅하기 위해 5백 미터 거리인 동대구역까지 둘이서 함께 걸어갔다. 나는 집에 돌아와 김용락 시인의 시집 『산수유나무』를 집어 펼치다가 이 시를 보게 되었다. 여기 언급된 시 『중과부적』은 나로서도 ‘이런 좋은 시 딱 한 편 쓰고 싶은데’ ‘나에게는 그런 복이 없는 것 같다’는 김용락의 절망을 공유하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그 시 ‘중과부적’을 이어 붙인다. 권순진 중과부적 衆寡不敵/ 김사인 조카 학비 몇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젓가락은 두자루, 펜은 한자루...... 중과부적!'* 이라고 적고 마치려는데, *마루야마 노보루 {루쉰}에서 빌려옴. -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