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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맞지 않는 식성으로 인해 점심다운 점심을 먹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남겨져 있는 과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다시 양곤을 향해 달려간다.
고속도로 변을 달리다 보면 너른 땅 한 쪽은 비옥하며 또 다른 반대쪽은 그저 황량한 들판처럼 보이는 곳이 눈에 뜨여
가이드에게 질문을 해보니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 땅을 한꺼번에 경작지로 사용하지 않고 번갈아 가며 3모작 활용중이라는데 우리 같으면 언감생심.
노는 땅 꼴을 절대 볼 수 없어 온갖 농사와 작물을 심어댈텐데 싶어 미얀마 정부가 계도하는 땅의 휴식년 제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워낙 땅이 많기도 하겠거니와 관리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그에 따른 사회주의 자본국가 개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또한 사회주의 자본국가 이다 보니 땅을 사고 팔 수도 있어 일단 땅을 구입하게 되면 자신들의 영역 표시는 물론
개인적으로 그에 걸맞는 거주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들 삶의 최종 목적지 지향점이기도 하다는 말은
3대가 어울려 살아가는 미얀마인들의 거창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말과 같다.
바간으로 들어설 때도 차량을 일일이 숫자를 세어 적거나 인원수를 체크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더니만
네피도로 부터 너 댓 시간을 달려 양곤으로 들어서는 톨게이트 진입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시 바간에서 부터 따지자면 13시간의 거리를 버스 타고 이동한 셈이 되겠다.
고속도로비는 물론 바간에 들어설 때는 1인당 20불을 지불하였다고 하는데 양곤으로 들어설 때는 인원수에 따른 통행료는 받지 않는 듯.
양곤에 들어서 10 마일-양곤에서 10 마일까지가 그나마 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10 마일에 가까울수록 빈한한 도시가 드러난다-을 향해 가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택시들.
특히 미얀마에서는 택시는 그들의 자존감이요 넘쳐나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히 웬만한 자동차는 일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택시 같은 경우는 거의 오른손 운전이다.
너무 많아서 길거리 휴식 대기 행렬이 장난이 아니어도 미얀마 도시인들의 꿈은 또 택시를 구입하는 것이 우선 순위요
기존으로 택시 넘버를 가진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택시 수입할 자격을 완비하였으므로 중구난방 택시 수입이 활발하며 그 덕분에 지천에 택시가 되는 셈.
도시에 들어서니 서서히 건물다운 건물이 눈에 보이고 그 앞에 정차된 자가용이나 택시는 운행되지 않은 채 개인 재산으로 활용 중.
미얀마 역시 빈부의 격차가 극명하나 아랑 곳 하지 않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행복지수 가득인 이들은
대나무로 만든 축구공으로 "쉑타파크로"에 열중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즐긴다.
동남아시아권을 여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마사지 샆"에 들러 지친 몸과 마음을 푸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여서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네모" 로 향했다.
능수능란한 손길이 있었는가 하면 아직은 야리야리한 손길도 있는지라 피로를 풀어주는 손길에 넉넉한 달러를 제공한다.
그래도 그녀들이 온 힘을 다해 여행자들의 피로를 풀어주려고 노력한 것에 비해서는 약과라는 생각.
지친 심신의 피로도 풀었겠다 다시 입이 즐거울 시간이니 저녁 식사를 위해 한식집으로 들어서려는데 웬 "강남 일식"집?
알고보니 그전에는 조촐한 일식집을 경여하다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한식집으로 메뉴를 바꾸었다는 것.
음식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맛 있었고 특히 우렁된장국과 삼채는 별미였으며 야들댜들 부드러운 채소가 입맛을 당긴다.
이 집은 쥔장이 한달에 한번꼴로 한국으로 날아가 온갖 재료들을 공수해 온다고 하니 역시 우리 입맛에 제 나라 땅에서 생산된 것이 최고?
어쨋거나 그야말로 점심에 제대로 먹지 못하고 허덕이던 것을 생각해서 엄청나게 꾸역꾸역 먹었다는 말이다.
드디어 첫 날 묵었던 "SHWE KYAI SIN" 호텔에 여장을 풀고 긴 잠으로 숙면을 취한 후 이른 아침에 다함께 거실 딸린 방을 차지한 큰 시누이 방으로 몰려가
마지막 여정 또한 무사히 마무리 잘 되도록 기원을 하며 커피 한잔으로 "위하여"를 외쳤으나 구호는 구호일 뿐.
막바지 액운이 쥔장의 카메라에 달라붙더라는 말씀.
드디어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섰건만 양곤의 극한 도로 체증을 감당해야 했다.
그 순간, 비록 거리는 멀었지만 바간을 들리지 않는 양곤만의 여행이었다면 죽도록 억을할 뻔 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도로 사정은 열악하고 출근 시간대 도로 체증은 환장할 만큼 지지부진이요 신호 대기 한번 건너는데 2,30분이 족히 걸리니
성질 급한 사람은 신호등 기다리다 돌아가실 판이다....하긴 양곤에 들어서니 신호등도 처음 보이더라.
와중에 눈에 뜨인 입간판 "40G"는 미얀마의 한국판 커피믹스...나름 괜찮은 커피에 들어간다는 말씀이지만
가장 유명한 커피는 "프리미엄 슈퍼믹스" 라네.
그래도 미얀마의 전 수도 양곤에 한국인 옷들이 진열된 상가를 보니 반가움에 한 컷.
미얀마인들은 한국인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고 한류 열풍 또한 낙후된 미얀마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는다.
도심 곳곳이 건설현장 붐이라고 보면 우리나라 건설업자들이 진출해도 될 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현대 건설 정주영 회장이라면
벌써 달려들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지만 지금의 우리나라는 계산적으로 재느라 일본에게 밀리는 형상이라고 하니 아. 쉽. 다.
그말을 듣자마자 양곤 공항 바로 앞에 일본인들이 미얀마인들을 위해 공짜로 지어준다는 공항 앞 쇼핑몰을 비롯한 다양한 도로와 상가가 눈에 보인다.
그들이 조건은 일본 비행기 직항로 개설과 공항건설 수주권을 따는 것이었다고 하니 반은 이룬 셈으로 이미 일본 직항기가 작년부터 운행하고 있다는 말씀.
역시 동남 아시아 어디를 가나 발 빠른 일본인들의 행보를 부러워 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나라 행정의 늦됨을 안타까이 여겨야 하는지.
어쨋거나 막힌 거리를 뚫고 세계 최대의 백옥 좌불상 -600톤- "로카찬타"로 찾아들었다.
이 옥불은 불상을 조각하는 일을 하는 "우마웅지"라는 사람이 기증을 했다고 하며 만들레이에서 양곤까지 이동시키는데
15일-3,4일이면 도착할 것을 중간 기착지 마다 강가에 몰려든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느라 운반 기간이 길어졌다고 한다-이 걸렸고
그동안 우기였던 미얀마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밎지 못할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그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알기 쉽게 설명을 해놓았다.
유리상자에 고이 모셔진 옥으로 만들어진 불상은 흐린 날이 아니고서는 유리에 빛이 반사되어 자세히 보기도 어렵긴 하지만
사원을 다 지어놓은 다음에 불상을 들였다고 하니 열린 공간도 아닌, 건물이 들어선 채로 무사히 옥불을 안착시킨 그 방법이 놀라울 뿐이고
관람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은 눈 앞에 있으나 슬제적으로는 갖힌 부처님이라는 사실 때운이겠다.
크리스천인 작은 시누이 빼고 한 컷, 옥불사원은 특히 천정의 그림이 더불어 문화적 가치를 갖는다고.
거대한 옥 발바닥 무늬를 바라보면서 양곤 외곽에 자리한 로카찬티 사원의 딋 이야기를 들으며 열공 모드.
이 사원의 원래 이름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로카찬티 아바아라바무나"는 최근에 건립한 사원으로서 2002년에 착공해 2004년에 완성되었다고.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스마트 폰은 젊은이들이 먼저인 까닭에 다들 스마트폰에 얼중하느라 정신을 놓고 있는 모습.
미얀마인들의 스마트폰 사용인구는 7프로 정도 라고.
1992년 만들레이 북쪽 광산에서 옥 광맥이 발견되어 돈 많은 부자가 그 광산을 사들여 옥 불상을 조성하기로 마음 먹고
옥을 훼손하지 않으려 수작업으로 광산의 옥을 채취하기로 하였다는데 그때 일일이 손으로 옥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던 인부들은 무보수 자원봉사자들로
오로지 부처님을 조성하겠다는 열망과 불심으로 수작업을 하였다고 하니 그들의 부처님을 향한 불심이 놀라울 뿐이다.
다시 양곤 시내로 진입을 하니 더러는 한국의 위상을 드러내는 입간판도 보이고 한글로 쓰여진 버스도 보이더라.
그들은 한글이 쓰여진 버스는 그들의 자부심이라서 지우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고 하며 사고 팔 때는 유리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고.
또한 육교나 고가다리를 아직도 선호하지 않는 미얀마인들이라 들었던 까닭에 텅빈 육교를 보니 이해가 되더라는,
그저 길 건너 횡단하는 것이 아직은 그들의 습성...우리도 한때 그랬다.
감탄은 감탄이고 다시 다음 행선지를 향해 가는데 여전히 그들의 불심이 가슴에 남는다.
세계 평화의 상징 "까바에 "파고다.
'까바에" 라는 말은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요 셰계 평화를 기원하는 파고다라는 말이 되겠다.
특히 1954년에서 1956년에 개최된 제 6차 불교 경전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1952년도에 세워졌다고 하니
아니라도 넘쳐나는 사원이던데 별별 이유가 사원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
하도 넘쳐나서 셰계 문화 유산 본부에서도 고개를 젓는다는 구만....
안에 들어가면 불상들이 줄지어 있고 특히 신자들이 기증한 다양한 불상들을 볼 수 있으며
세계 평화 파고다 답게 각국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음은 물론 우리나라 속리산 법주사 불상의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한다.
미얀마의 종교성이 자리하고 있는 사원이기도 하며 황금 부처와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모셔져 있는 사원이다.
1달러를 내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볼수 있다.
5달러를 내면 두명이 함께 진신 사리를 머리에 얹어 볼 기회를 갖으며 각자 기원의 마음을 담아 기도하면 이뤄진다나 뭐라나...서열 순위가 밀려 참여 못했다는.
"THE GREAT GIMA" 는 승가시험이나 불경대회 또는 법회를 여는 곳.
불교국가인 미얀마인으로서는 승려 국가 고시를 통해 정식 승려가 되는 것은 거의 하늘이 별 따기 수준이며
일단 국가가 인정하는 승려가 되기만 하면 또 권력이 보장되기도 한다는 것.
거리에서 쉽게 만나는 승려들은 그냥 수행승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미얀마에서는 아무나 법회를 할 수도 없고 설법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국가 고시를 통과한 나라에서 인정한 스님들께서 법회를 주관하는데 일일이 포스터를 붙여
고명한 스님 중에서도 어떤 스님이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하는지 알려 줄 정도라고 한다.
스님이 넘쳐나는 미얀마 자체가 국내외인 누구에게나 단기 수행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미얀마의 남자라면 누구나 최소한 6개월은 출가를 감행하여야 하며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교육하며 승려로 키우기도 한다.
그러나 제 이름값을 하거나 역량있는 스님이 되는 절차는 실제적으로 엄청 까다롭기도 하고 쉽지 않아
나름 식견있는 스님들로 존재하려면 수없는 승가 시험제도를, 국가에서 인정한 스님이 다단계 시험과 면접을 통해
제대로 된 스님을 찾고 단단히 걸러내어 위상을 떨치게 하는 불법이 새롭다.
TIP : 1.보석박물관 - 인야호수 까바에 파고다 근처에 있으나 촬영 금지.
세계에서 제일 큰 루비 원석을 볼 수 있으며 대형 진주를 전시해놓고 있다.
미얀마에서만 생산된다는 숨쉬는 보석 "제이드"로 치장해놓고 모든 장소에 제이드로 장식.
어찌나 귀하게 여기는지 눈으로만 살펴 보며 일반 "옥"과 구별하는 법을 가르친다.
미얀마인들은 "제이드"라는 보석을 금강석이라 부르는데 워낙 강도가 세어 다이아몬드로
제이드를 모양내거나 가공한다고 하는데 워낙 단단하여 "옥"처럼 정교하게 가공되지 않는다.
2. 미얀마의 택시 - 부의 상징이기도 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좋아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미얀마인지라
빈민층을 제외하고는 택시 타기를 즐겨하는데 교통 체증이던 거리가 멀던 상관없이 거리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고 기사와 손님이 제시한 가격으로 운행 중이며 싸움이 나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 보통이요 보험같은 것은 아직은 없으니 조심할 일.
작년부터 45인승 버스를 비롯해 왼손 운전이 성행하고 있으며 기본 적으로 도로는
왼손 운전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우리나라 차량도 진출해 볼 일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실제적이던 의미뿐이더라도 "왕"이 존재하는 나라는 오른손 운전이라고.
오토바이는 사이드 밀러 없이 운전 중이니 보행자가 조심 할 일이나 워낙 고단수 운전자들.
3. 미얀마인은 누구나 16세가 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마사지걸과 보이가 만연하다.
4. 양곤은 버어마라 불리던 시절 랭군으로 불렸던 미얀마의 전 수도 로서"아시아의 진주"로 불리우며 도시의
70%가 녹지이므로 "숲의 도시"라고도 불리운다.
그러나 미얀마 사람들의 가슴 속의 수도는 "만들레이" 라고.
첫댓글 햐~! 끝났나 싶으면 계속되는 흥미진진 미얀마 여행길입니다. 그려~!
참 달라서 재미있는 그들의 생활 모습과 종교 풍속도입니다. ㅎㅎㅎ
ㅎㅎㅎㅎ 너무 길긴 하죠?
그래도 촬영분을 보면 할 말은 너무 많은데 다음편에서 끝내려구요.
남의 나라 역사와 문화를 굳이 그 나라 국민도 아닌데 뭐이 그렇게 골치 아프게 공부하느냐는 분도 있더라는.
그래서 치매 안 걸릴려고 그런다고 했더니 웃더라만서도.
@햇살편지 덕분에 공부도 하고 좋은디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