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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가복음 10:17-31
오늘 말씀은 영생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갈구합니다. 영생이란 단순히 시간적으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의미있고 가치있고 행복한 삶을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영생을 간절히 원하는 한 청년에게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도 그 비결을 배우심으로 행복한 영생의 삶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에 나가실 때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길에 꿇어 앉아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영생이라는 절실한 인생 문제를 안고 예수님께 나아 왔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22절을 보면 부자였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관리, 즉 고위직 공무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고시에 합격하여 권세와 명예를 얻고 국회의원도 되었던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젊은 시절에 허랑방탕하게 게임이나 음란물 같은 것에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 공예배참석등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흔히 세상에서 성공하면 영생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청년은 영생에 깊은 관심이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인정받는 모범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자매들에게는 1등 신랑감이였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볼 때 그는 세상의 좋은 것은 다 갖게 되었지만 영생을 아직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참 만족이 없었고 마음에 참 평화와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세상을 얻었지만 영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영혼은 곤고했습니다. 그래서 체면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혼의 호소를 들으시고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영생의 길이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 죄인으로서 자기 발견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영생과 선에 대한 그의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아 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물은 것을 볼 때 선을 도덕적인 차원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이 행위로 선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시므로 절대 선이신 하나님만 선하시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조금 착하게 산 것 같으면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선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포합니다 (롬3:10).
예수님은 이 사람도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자 십계명 중 인간 상호 간에 지켜야하는 계명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이 청년은 놀랍게도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릴 때부터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나 거짓이 아닙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하여 여섯 살이 되면 율법을 암송하도록 하고 계명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 사람도 이들 중 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6살 때부터 순종을 배우고 말씀을 암송하고 지키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는 거짓말 한 번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그는 청소년시기에는 음란물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가르켜 주시고 영생을 얻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1절을 보면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이 말씀에서 부자 청년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계명은 잘 지켰지만 계영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 근본정신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막12:30,31).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은 계명은 잘 실천한 같은 데 계명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잘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이란 남에게 폐 안끼치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도덕생활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소극적으로 나쁜 짓 안하고 주일날 교회에 착실히 다니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고 헌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이 청년은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면 죄인으로서 자기를 발견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는 흔히 도덕적인 기준으로 볼 때 교회 잘 다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았으면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열심과 자기 성실에서 나온 자기 의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이 계명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죄인임을 발견하게끔 하기위하여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 말씀앞에서 자신에게 바로 한 가지 부족한 것, 즉 사랑이 없음을 발견하고 겸손히 죄인임을 인정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둘째, 영생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21b)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그에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늘의 보화 곧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땅의 모든 것을 다 팔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은 영생은 그 어떤 것보다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할 때 하늘의 보화란 가장 가치있고 귀한 것입니다. 또 영원불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가치있게 여기던 것들을 팔아야 합니다. 팔아야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보화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에서 가치있게 여기던 것들을 팔아야 합니다. 돈에 너무 가치를 두어서 안됩니다. 죽을 때는 돈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부귀영화를 보화로 알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세상권세와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얼마 못가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자기 외모에 가치를 두고 투자하는 것도 얼마 못갑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땅의 보화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부자 청년을 보면 그는 세상 보화를 다 얻고 난 후 절망하여 예수님께 나아와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면 이 하늘 보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하늘 보화를 약속하신 후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늘 보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보화가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예수님 안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 그 안에 죄 사함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그 안에 죽음의 권세도 이길 수 있는 부활이 있습니다. 그 안에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더라도 이 예수님을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늘 보화인 예수님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에게 최고의 가치를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가치관은 완전히 변화 되었습니다. 그는 보화되신 예수님을 얻기 위하여 이전에 가치를 두었던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빌3:7) 그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최고 가치가 있어서 과거 세상에서 보화로 여기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3:8)
마태복음 13:44절을 보면 천국의 보화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갈아주다가 보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을 얼른 흙으로 덮어두고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다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그는 최고가치가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덜 가치있는 것을 팔았습니다. 이와 같이 참 보화되신 예수님을 얻기위해서는 세상 보화를 파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생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팔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우리성도님들은 무엇을 팔아야 예수님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부자 청년을 사랑하사 영생을 얻는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2절을 보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물러갔습니다. 그의 문제는 영생도 얻고 싶고 땅의 보화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었습니다. 땅의 보화에 대한 미련은 그의 영적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영생을 팔아서 세상 재물을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99%는 다 잘했지만 결국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그렇게 갈망하던 참 보화를 눈 앞에 두고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것 같으나 참으로 미련한 자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합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부자 청년이 슬픈 기색을 하고 떠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말씀은 한 마디로 부자가 구원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문제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둔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부로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부자들이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면 영생을 얻습니다.(29)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매우 놀라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실망에 찬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기쁨으로 허신한 이유는 장차 부와 권세를 소유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앞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그에게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희생했으니 보상해 달라는 보상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어쨌든 베드로와 제자들은 세상의 모든 보화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만큼 용기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29,30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버리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백배나 축복을 받기 위한 투자에 해당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목적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축복과 함께 박해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박해는 없으면 좋겠는데 반드시 박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우리의 믿음을 순수케 하고 땅에 붙은 소망을 떨어버리고 참된 소망을 갖게 합니다. 박해는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자극제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현세의 축복뿐만 아니라 내세의 영생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때 잃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31절을 보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는 베드로에게 경고하신 말씀으로 자기 의만 내세우고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중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보화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을 얻기 위해 시간과 물질과 젊음 등 자기소유를 파는 것이 바로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세상에 좋아 보이는 것이 많은 이 시대에 세상 보화에 미혹되지 않고 참 보화되신 예수님을 얻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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