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서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톨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깔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밑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最後)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시집 『분수령』, 1937)
[어휘풀이]
-풀버렛소리 : 풀벌레 소리
-자래온 : 자라온
-아무울만 : 흑룡강 하류의 아무르 지역
-설룽한 : 썰렁한
-니코리스크 : 시베리아 하구의 항구 도시 니콜라에프스크를 가리킴.
[작품해설]
이 시는 러시아를 넘나들며 상인으로 삶을 꾸러가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최후를
통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유랑하는 민중의 비참한 삶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물
론 이 아버지가 시인의 실제 아버지였는지의 사실 여부는 작품 감상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시인 자신의 체험을 어느 정도 객관화시켜 북방 지역에 삶
의 근거를 둔 어느 유랑 조선인의 허망한 죽음을 형상화한 것은 틀림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세도 안 되어 아버지를 여
의었으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금을 얻기 위해 소금을 싣고 러시아 영토를 넘
나들며 장사를 하였던 것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용악의 시가 대부분 그러한
비극적 삶의 체험 세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그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도 진한 감
동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시의 핵심은 아버지가 ‘우리 집도 아니고 / 일가집도 아닌 집 / 고향은 더욱 아
닌 곳’ ‘아라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비참한 심정을 서정적으로 표출한데 이어, 2연에서는 아버지의 과거 삶과 아버
지의 과거 삶과 아버지의 주검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개관적으로 서술한다. ‘한
마디 남겨두는 일도 없었고’라는 구절에서 그의 죽음이 객사(客死)일 뿐 아니라, 급작
스러운 죽음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술은 화자 개인의
가족사적 비극 체험을 지나 당대 조선 민중의 비극적 삶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는 당대 유이민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연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그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얼음
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르쳤다.’라는 표
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고,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 없이 돌아간
뒤 /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라는 표현은 죽음의
현장에서 발어지는 사건의 제시이다. 이렇게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인 묘사과 사건의
제시를 통해 장면 위주로 전달함으로써, 그 처참한 현장이 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달되
는 한편, 그만큼 슬픔의 강도도 커지는 시적 효과가 있다. 4연은 1연의 반복으로, 소
위 수미상관의 구조로 주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안정감을 부여시키고 있다. 여기서 ‘풀
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는 표현은 때마침 집 주위에서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에 대
한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끼는 화자의 참담한 내면 심정을 대변해
주는소재라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는 국경을 넘나들며 힘겨운 삶을 살
아가다 결국은 낯선 땅에서 ‘침상없는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임종을 통해 시베리아 유이민의 참담한 실상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소개]
이용악(李庸岳)
1914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36년 『신인문학』 3월호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여 등단
1939년 일본 상지대학 신문학과 졸업
김종한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발간
1939년 귀국하여 『인문평론』 기자로 근무
1946년 조선문락가동맹에 가담
1950년 6.25때 월북
1971년 사망
시집 :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이용악』(현대시인전집)(1937), 『이용악시전집』(1988),
『북쪽은 고향』(1989),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