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 신바람
/조영숙
지천명이 되어서야 글 쓰는 재미와 재능을 알았다. 늦둥이를 키우며 취미로 하게 된 라디오 사연 쓰기를 통해서였는데 통통 튀는 성격처럼 밝게 만 쓴 글임에도 채택률이 높았다. 기본기 없이 쓰기부터 했으니 쓸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배움의 길을 몰라 막막했을때, 블로그 이웃들과의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시흥시 평생학습관 글쓰기 강좌 수강, 글쓰기 동아리 활동,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입학으로 활동을 넓혀갔다.
미약하지만 꾸준함이 작은 열매를 맺었다. 복지관에 봉사로 참가한 시니어 글쓰기 강사활동을 계기로 올해는 직업 강사로 활동을 넓히게 된 것이다.
68세 막내부터 88세 맏언니까지의 수강생들은 다양한 연령대만큼이나 한글 실력이 천차만별이었다. 첫 만남에서 글쓰기라는 말을 하자 대부분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무표정하거나 난감해했다. "글을 써서 뭐 해. 글 쓰라고 하면 도망갈 거야!" 글쓰기 이전에 친숙해지는 일이 먼저였다. 첫날은 전체 회원 앞에서 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둘째 날은 글쓰기를 쉽게 느끼도록 한 줄 글쓰기를 했다. 대부분 회원이 무학인 상태에서 최근 문해교실을 통해 한글을 익혔기에 글 한 자 쓰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말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위해서 수업 이외에도 소규모 만남을 통해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종이 위에 몇 줄이라도 쓰도록 도왔다.
“쓰니까 써지네. 내 말을 어디 가서 하겠어. 내 이야기를 하면 같은 말 자꾸 한다고 자식도 싫어해."
꾹꾹 눌러 적는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온 힘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 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성작가의 멋스러운 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자연스럽고 솔직한 글이었다. 과장되거나 장황하지 않은 글에서 다정함이 느껴졌고 코끝 찡한 힘 있는 글도 있었다. 발음 나는 대로 꾹꾹 눌러쓴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정겨움도 묻어났다. 회를 거듭할수록 처음과 달리 분위기가 좋아지고 자신감도 엿보였다.
수업 시작 전 한 시간 일찍 나온 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보행 보조기를 끌고 참석한 분, 주말에도 글을 쓰고 다듬어 보내준 분, 작품집에 한편이라도 더 싣고자 마감일까지 작품을 보내준 분도 있었다. 막연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