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1976년 8.18 도끼 만행 사건의 회상
1976년 8월 18일
갑자기 원대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훈련을 나갔던 우리는 즉시 부대로 돌아와 다시 원대에 복귀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소대원, 분대원들. 그러나 반가운 마음에 앞서 불안과 초조속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완전군장을 갖추어 머리맡에 놓고 군화를 신은채 취침을 했다가 기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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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미군장교 두명을 도끼로 죽인 사건이 발발한 것이었다. 전군에 비상이 발령되었다. 실제 수류탄 투척 훈련이 계속되고 크레모아 설치 훈련도 이어지고 지뢰매설 훈련도 이어졌다.
어느 시각에 전투에 임하게 될지 모르는 긴박한 기운이 모든 부대원의 가슴을 억누르고 있엇다. 휴가나간 병사의 귀대 복귀 명령이 떨어지고 외출이 금지되고 훈련도 멀리가 아닌 가까운곳에서 실시되었다. 명령만 떨어지면 연병장에 대기중인 군용 트럭에 올라 실제 전장에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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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 행사를 위해 차출되었던 병력들이 속속 복귀하는 가운데 나도 옆 대대에 배속되어 전방 훈련에 참가 했다가 느닷없는 복귀 명령에 따라 원대 복귀한 것이다.
원래는 내가 키가 커서 맨 앞에 서야 하는 국군의 날 행사참여요원이었다. 말하자면 스키를 메고 행진의 맨 선두에 서서 힘차게 걸어야 하는 스키부대 선두. 그런데 그만 첫날 첫 집합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이랬다. 키가 얼마 이상인 사람은 부대에 남아 행진연습을 하고 선출되지 않은 사람은 다른 부대에 배속되어 훈련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헤어지게 되는 날 그러니까 첫 집합이 있기 전 한시간 전 쯤일까. 한동안 헤어져야 할 소대원들끼리 이별주를 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아니 어쩌면 천우신조였는지도 모른다. 연병장에 모인 시각은 따끈따끈한 햇살이 내리쬐는 시각. 술에 취해 연병장에 서서 대대장 훈시를 듣고 있었다.
점점 취기가 오르며 앞이 노래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술한잔에 녹아나는 나였다. 마침 바로 옆에 우리 소대의 덩치 큰 일병이 있어 그에게 기대었다. 훈시는 계속이어지고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마침 바로 앞에서 훈시하는 대대장이 나를 보자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다. "현기증이 있는 병사는 안돼, 나가!" 나는 간신히 소대로 들아왔다. 얼굴이 굳어지고 등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렇게 나는 행사요원에서 제외되어 옆 대대 막사 신세를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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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물설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참으로 질긴 인연은 여기에도 있어서 하사관학교에서 탈영으로 퇴교를 당한 학교 동기가 영창생활을 마치고 이곳에서 근무중이었으니.. 나는 하사요 그는 아득한 이병이었다.
부대 막사도 뻬치카가 있는 곳이어서 보일러를 때는 우리막사보다 훨씬 어려웠다. 훈련 지역도 완전히 달라 몹시 힘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수 없이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 군대. 그나마 행사요원들 보다는 덜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기에 그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산을 누볐다. 땡볕의 비행장 활주로 아스팔트 위에서 하루종일 행진연습만 계속 해야하는 그들이었으니..
뻬치카에 조금씩 적응이 되고 막사의 눅눅한 분위기가 몸에 익어 갈 무렵 부대에서 먼거리의 훈련장에 나가 가상 적진을 살피는 중에 우리는 그렇게 도끼 만행사건을 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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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끼사건은 나에게 본대에 복귀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그들 행사요원들은 부대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 도중에 회군하는 불상사를 맞게 된 것이고. 그리고 피를 말리는 기다림의 초조함이 나날이 이어졌다. 손톱도 깎고 머리카락도 잘라 편지봉투에 넣어놓고... 실탄을 허리에 둘르고 항시 총을 쥔채 묵직한 철모를 쓰고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여차직하면 북한군과 실전이 벌어지는 최전선으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런 몇날이 흐르고 비상는 해제 되었다. 우리는 또다시 헤어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안도의 긴 한숨과 함께 지난 얘기를 나눌수 있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UN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전방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기 위하여 한국인 노무자 5명을 데리고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 경비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 장교가 십여명의 사병을 인솔하고 나타나 미군 측에 작업 중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자 11시경 30여명의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달려와서 몽둥이, 그 리고 한국인 노무자들이 나무 밑에 두었던 도끼를 휘두르며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경비중대장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바레트 중위가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맞아 그 자리에서 피살되었고, 미군 사병 4명과 한국군 장교와 사병 4명 등이 중경상을 입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