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외국, 특히 서양의 소설들은 대부분 책이 두껍고 난해하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으로, 호쾌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조르바는 작가가 자기 삶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으로 꼽는 실존 인물이기도 한데 그의 인생이 담백하고 소담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잔차키스 인생과 작품의 핵심적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려고 했던 궁극적 가치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상태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로써 이 개념에 따라 저자는 ‘조르바’라는 자유인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젊은 지식인 ‘나’가 크레타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가, 60대 노인이지만, 거침이 없는 자유인 조르바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친구에게 ‘책벌레’라고 조롱을 받기도 한 후 새로운 생활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크레타섬의 폐광을 빌린 ‘나’에게 조르바는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섬으로 가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으며, 터키, 즉 무슬림 지배하에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스 민족시인 호메로스에게 사상적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을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앙리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하는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다. 1951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면서 문학성을 인정받았고, 주요 작품은 《오디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성 프란치스코》《영혼의 자서전》《동족상잔》등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준 작품으로,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와 조르바이지만,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서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힌두교도들은 ‘구루(師傅)’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거침없는 자유와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딱히 이 소설에 대한 평가나 줄거리가 없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가 자신을 반영한 ‘나’와 자유롭고 열정적인 인물인 조르바 사이의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삶과 자유,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는 ‘나’가 그리스의 크레타섬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나는 철학에 조예가 깊은 젊은 35살의 청년으로, 그곳에서 석탄 광산을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거기서 조르바라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조르바는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친 사람이다.
이전에 그는 ‘자기’를 만들 때 물레를 끊임없이 돌리면서 예술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다가 손가락 한쪽이 방해된다고 생각해 도끼로 자른 적이 있고,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해 여자들을 마음대로 만나고 즐기고 종교, 사상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런 조르바에게 흥미를 느껴 동업자가 되기를 원했고, 오랫동안 광산 일을 해본 경력자였기에 채굴 관리자로 임명했다. 조르바는 열정적으로 광산 일을 했고 멋진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는데, 케이블을 설치하여 나무를 운반한다는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르바와 ‘나’는 함께 추진했던 석탄 광산 사업은 맥빠지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통나무가 빠른 속도로 케이블을 타고 내려오다가 그만 아래층이 박살나고 말았다. 한 번 더 시도해 봤지만, 이제는 케이블 전체가 망가졌다.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망한 후 조르바와 ‘나’는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조르바는 앞으로 큰 도시를 여행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춤을 추는데 ‘나’는 먼저 춤을 알려달라고 요청했고, 조르바는 내게 춤을 알려주었다. 삶을 피부로, 영혼으로 느끼는 춤을 춘 뒤에 각자 갈 길을 가고 편지로 소식을 전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지루하리만치 길었던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보면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은데 (1). 자유와 삶의 열정으로 모든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2).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데에 조르바가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행동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감정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반면에 ‘나’는 이성을 중시하지만, 조르바를 통해 인간 본성의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3). 우정과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것에서도 조르바와 ‘나’의 관계는 깊은 우정을 바탕으로 하고, 이 우정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것은 사람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인터넷 교보문고]를 참고하여 2024.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