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우리나라 고교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티켓을 얻기 위해 3년간 열심히 배우고 익혀 대입수능시험을 치르던 날, 세계 미술사에는 새로운 획이 하나 그어졌다.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1972년 작품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이 9030만 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되었고, 저택에 딸린 수영장서 잠영 중인 남자와 물 밖에서 그를 지켜보는 또 한 남자를 그린,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작품은 이전까지 최고가였던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풍선 개`(5840만달러)를 크게 뛰어넘어 호크니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로 만들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의 소도시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나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였고 재학 중에 이미 스타작가로 등극하였던 미술가이다. 졸업 후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영국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 집집마다 갖춰진 수영장과 그 위로 쏟아지는 밝고 강한 태양광에 매료되어 그 광경을 화폭에 담은 이른 바 `수영장 연작`을 제작하고 더욱 큰 명성을 얻었으며 현재 생존 작가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폭넓게 사랑받고 있는 화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은 수년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바 있고, 그의 이미테이션은 보통 100억대를 호가하는 진품의 가격을 아는 이들이 아파트 벽면에 가장 많이 장식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피카소가 롤 모델이었던 그는 전통적인 미술교육을 받았지만 자유롭게 다양한 양식과 매체를 넘나들었다. 시각표현 중 가장 강력한 재현 도구인 사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사진에 몰두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무대 미술에도 뛰어들었으며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로 모자이크한 그림은 한 때 그를 상징하는 대표 작품이 되기도 했다. 또한 르네상스 이후 서양회화의 철칙이었던 일점투시 원근법을 버리고 동양화의 다시점 두루마리 그림 풍으로 창작하는 등, 최근의 거대한 풍경화작업으로 돌아오기까지 그의 행보는 도전과 탐색으로 늘 색다른 세계를 구축해 왔다. 신지식과 기술에 대한 넘치는 호기심과 탐구는 팩스와 복사기 그리고 컴퓨터드로잉을 예술과 결합시켰으며, 여든이 넘은 거장은 지금도 여전히 손에 든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으로 회화사의 지평을 넓히는 데 몰두해 있다. 또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화가의 본질에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쏟기 위해 이론과 원칙에 대한 사색과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진지한 학구파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대 시절 호기롭게 발표한 자신의 작품 `다재다능함의 증명`을 평생 진짜 증명해보이기로 작정한 듯 다방면에 걸쳐 끊임없이 독창성을 추구해 왔다. 화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나름의 관점으로 창작하므로 모든 그림에는 독특한 시선이 있다.
그래서 언어가 아닌 그림을 통해서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꿈꾸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그림은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독특한 안목으로 새롭게 발견해 보도록 이끌어 준다. 그러나 모더니즘 이후 현대 미술에서 화가의 정적인 시선을 따라가는 구상 회화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잭슨 폴록은 행위 하는 순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화면에 물감을 흩뿌렸고 마크 로스코는 화면 전체를 거대한 색면으로만 밀었다. 플럭서스 그룹의 멤버들은 해프닝을 벌였고, 사진과 영상도 미술의 한 장르로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 이미지까지 미술 영역이 되어버린 동시대미술판에서는 획기적으로 다르거나 엄청난 임팩트를 자랑하는 무언가를 작품에 얹어야 겨우 창의성을 인정받는 상황이다. 예술 문화와 대중 연예오락이 구분되지 않고 경계도 모호한 현대의 미술에서, 구상 회화는 전혀 새로울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영국을 대표하는 전방위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의 저서를 통해 "다시, 그림이다"라고 했다. 50개의 캔버스에 이음새를 꼼꼼히 메꾼 거대한 작품과 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아이폰을 같은 비중으로 탐구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적용하는 예술가가 호크니다. `현존 작가 중 최고가`라는 타이틀은 어떤 장르에 천착했던 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놀래 킬 것인가`가 아니라 늘 `무엇을 그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시각예술의 핵심 논제를 이행하며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예견해 온 진정성 있는 걸음의 `진짜` 예술가에 대한 경이로운 대가인지 모른다. 호크니는 "벽에 걸린 그림은 영화와는 다르다. 그림은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않지만 더 긴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림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는 말로 창작의 숭고함을 설파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그러한 것처럼. 그러나 그림 한 점에 천억이 넘었다는 작금의 뉴스는 텍스트를 잘 외워 정답을 많이 알아야 원하는 대학에 가서 엘리트 대열에 합류하고, 명품 의류와 수입차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사회에서는 예술가의 초상에 매겨진 천문학적인 가격이 아직도 이해 불가한 가십거리가 정도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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