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가진 열정에 대하여
“열정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대입을 앞두고 특차로 입학을 한 저는 다른 학생들 보다 빨리 입학을 결정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갈망하던 대학생활을 그 누구 보다 보람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입학 전에 학교를 찾아 갔습니다.
제가 입학할 화학공학과 과방에서 많은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선배들에게 제 조개를 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00학번 조남희입니다. 선배님들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큰소리로 소개를 하는 저를 보고는 많은 선배들이 웃으며 제게 “저놈 웃기는 놈이네.” 하면서 반겨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과내에서 이슈가 되었고 많은 선배들에게 저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선배들과의 술자리에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음주경험도 전무한 상태였고 주량도 모르고 게다가 저보다 많게는 6살 적게는 1살 많은 선배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어 두렵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술자리를 리드하는 한 선배를 보았습니다. 바로 학생회장 이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대학생활의 목표를 잡았습니다. 반드시 저 선배처럼 아니 더 인정받는 학생회장이 되고자 결심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선배들에게 얼굴을 익히도록 하여 과의 모든 선배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들은 모든 과행사에 저를 불러 주었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신입생 앞에 서는 기수가 되었습니다. 입학 후 많은 동기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제가 모르는 동기들도 제게 인사를 건네며 친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어느새 과에서 가장 대인관계가 넓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처음 대학생활에 가졌던 열정으로 목표를 잡을 수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한 노력으로 중·고등학교시절 반장 한번 못 해봤던 제가 그토록 바래왔던 2005학년도 과 학생회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열정으로 저의 대학생활은 누구보다도 보람 있게 보냈다고 자신합니다.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LG전자에 입사하여 열정을 가슴에 품은 진취적인 가족이 되겠습니다.
본인이 이룬 가장 큰 성취
“맨손으로 런던 때려잡기”
모두들 휴학하고 1년 정도씩 어학연수를 다녀오느것이 정규 대학과정처럼 되어 있는 요즘 저는 따라 하기식 연수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회화에 매진하였습니다. 대학생활을 막바지에 두고 저는 저의 노력을 시험해 보고자 유럽여행을 계획 했습니다. 친구와 둘이 가기로 하고 친구가 여행 루트를 잡고 저는 출국 전 사항을 준비했습니다. 전 준비를 마치고 유럽여행전에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에서 주체하는 한일 이공계산업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캠프일정후 3일 뒤에 유럽여행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친구가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하게 되어 저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부득이하게 유럽행 왕복 비행기표와 유레일패스만 들고 혼자 준비 없이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터라 당장 도착 후 숙소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런던 히트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설상가상으로 입국심사후 가장 중요한 여권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말도 안통하고 지리도 모르는 런던에서 이러한 상황은 저에게 두려움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제게 있는 건 인터넷에서 뽑은 유스호스텔 전화번호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두렵다고 공항에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순간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 감이였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속으로 외치고는 지하철을 타고 런던 시내로 향했습니다. 런던시내에서 공중전화를 찾아 여러 유스호스텔에 전화를 하고 마침내 숙박이 가능한 유스호스텔을 찾아서 예약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숙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방을 잡아 첫날 숙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나 지금부터가 더 문제 이었습니다. 여권을 분실하였기에 저는 다음날 지리도 모르는 런던에서 경찰서에 갔다가 대한민국대사관을 찾아서 여권을 새로 만들어야하는 중요한 미션이 생겼습니다. 막막하기만 한 저는 그날 밤 걱정으로 잠도 못 이루며 런던에서 첫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겨울이라 해가 늦게 떠서 아침 7시 반이 되어서야 경찰서를 찾아 나섰습니다. 현지인에게 길을 묻기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계속 물어물어 경찰서를 찾고 여권 분실 신고서를 작성하고 대사관을 찾아 나섰습니다. 대사관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걸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대한민국 대사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장장 4시간을 넘게 런던 시내를 헤매다가 태극기가 걸려있는 대사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단수여권을 새로 발급받을 수 있었고 런던에서의 아무것도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결하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저는 이 경험으로 많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은 기간의 여행도 첫날에 얻은 경험으로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이야 말로 제게 자신감을 심어준 가장 큰 성취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가장 큰 실패경험
“실패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다.”
2005학년도 학생회장이 되어서 제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실패의 경험입니다.
저는 학우들이 과를 대표해서 뽑아준 학생회장으로서 교내 행사와 과 행사를 맡아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한해를 보냈습니다. 제가 내세웠던 공약들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반드시 이행해야할 공약들을 다이어리에 순서대로 적어놓으며 평소 제 신조인 신용이 있는 학생회장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가 학생회장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과의 선후배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서 교수님들과 졸업한 선배들 그리고 재학생들과의 만남을 추진하고자 홈커밍데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해마다 동문체육대회날이 있어서 교수님을 제외한 선후배간의 만남은 있었지만 교수님, 재학생, 졸업생의 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홈커밍데이를 기획 하게 되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선배들에게는 교수님도 찾아뵙고, 후배들을 만나서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생각하고,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고, 재학생들에게는 선배들을 만나고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난 졸업엘범을 뒤지며 연락처를 파악하고 일일이 연락을 하여 행사를 설명하고 선배들의 반응도 좋았고 꼭 온다는 확답도 받았습니다.
마침내 행사 당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선배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행사 시작시간이 되어서도 선배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늦게 교수님이 행사장에 오셨을 때 그곳엔 선배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행사를 성공적으로 잘 이끌어 왔던 저는 자신 있게 교수님께 초대장을 드렸는데 선배들이 아무도 와주지 않아서 교수님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기분을 그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수님은 한참을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제게 “원래 처음엔 잘 안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행사장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오신다던 선배들이 왔습니다. 선배들은 해마다 있는 동문체육대회라고 생각하시고 교수님은 오시지 않는 줄 알고 늦게 오셨던 것입니다.
결국 제게 계획했던 본 행사는 치르지도 못하고 뒤풀이만 치르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준비한 행사가 허무하게 수포로 돌아갔지만 저는 그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잘못판단을 하여 실패했기에 원인을 분석하고 지난과정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번 행사에 대한 취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여 실패 했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었고 언제나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남은 행사에서는 더욱 신중을 기해 임하게 되었고 무사히 한해 행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이번일로 저는 매사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본인의 역량에 관하여 글로벌감각과 지원분야 관련 전문지식
“우물 밖으로 나와야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26세가 될 때까지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 했습니다. 한때는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현재를 살아가기엔 너무 작은 나를 만들 뿐이 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한⋅일 산업기술 협력재단에서 주체하는 이공계산업 기술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일년간의 기간동안 국내 연구가 진행되었고 보름동안의 일본 산업현장견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일제라 함은 품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었기에 이번견학을 통해 조금이나마 일본의 산업현장에서 품질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눈으로 보고 느끼고 왔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요다 자동차의 품질 관리 방법 이였습니다. 불량이 나오면 모든 라인을 멈추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다시 라인을 가동 시켰습니다. 이렇게 애초에 불량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품질관리를 하고 있는 기업이라 역시 세계최고의 자동차 기업이 될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이번 캠프는 학교를 다닐 때 배웠던 DMAIC를 통한 전사적 품질관리 및 경영혁신을 하여 고객만족을 최대화 시키고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 하는 목적을 가진 ‘Six Sigma GB’와 나날이 표준화가 되어가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표준화된 기술을 가진 회사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배운 ‘미래사회와 표준’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다가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를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경쟁이 심한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소비자에게 신뢰를 준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본사 품질경영팀 R&D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전공지식과 R&D관련지식은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접 관련부서에서 일하며 R&D에 관한 전문지식을 끊임없이 공부하여 제 자신을 누구나 인정하는 품질관리 및 R&D분야의 최고의 인재가 되고 싶습니다.
자기개발이 없이는 회사의 발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각오로 제 손으로 세계 최고의 품질의 LG전자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겨울 유럽 여행 중에 유럽의 각 도시에서 본 LG심벌 광고판이 생각이 납니다.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고객은 전 세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기간동안 많은 유럽인 들이 LG제품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며 내손으로 만든 세계최고의 품질의 제품들 그들에게 쥐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세계 속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기업, 최고의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며 매사에 임하겠습니다.
본인의 성격에 관하여 강점/약점
“유연하게 행동하지만 결국 목표한 것을 이룬다.”
저를 한마디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저의 성격의 장점과 단점은 하나입니다. 유연하게 행동을 하여 구성원간의 마찰을 최소화 하고 목적을 위해서 추진합니다. 한 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구성원간의 분열을 방지하고 한마음으로 전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회장 시절 저는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경험을 했습니다. 학생회에는 각기 다른 성격의 학우들이 구성원이 이었고 이러한 구성원으로 하나의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었습니다. ‘훌륭한 리더는 조직의 비전을 제시해야한다.’ 제가이시기에 매일 가지고 다니던 행사일 정이 적혀있는 다이어리 맨 앞장에 적어놓은 문구입니다. 저는 항상 이 문구를 생각하면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고 그 목표를 실행했을 때의 결과를 보여주어야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축제 시기였습니다. 해마다 해왔던 과주점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하여 학생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매해 과 학생만을 위한 집안잔치식으로 진행되었던 터라. 해마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 주점의 실체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는 다르게 과학우들 뿐만 아니라 축제기간에 찾아오는 외부사람들 까지도 모두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컨셉을 잡고 전국에서 하나뿐인 특색 있는 주점을 하기로 하고 다른 주점과의 차별을 두어 소주 맥주만 파는 주점이 아니라 우리주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을 강원도 평창에서 공수하여 주점을 운영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회구성원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진행이 어려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자 제가 나서서 서로타협을 하도록 했습니다. 못마땅하여 참여하지 않는 학생회임원도 있었지만 결과가 좋아짐에 따라 같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동안 유래에 없던 주점사상 흑자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한 방법대로 주점이 운영되고 있고축제때마다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저의 성격은 가끔 의사결정이 늦어지게 되고 우유부단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 마다 마음을 자극시켜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 성격을 최대한 발휘하여 LG전자의 가족 같은 구성원이 되어 보탬이 되는 사원이 되고 싶습니다.
본인의 10년 후의 계획에 관하여
“센스 쟁이 맥가이버 조남희씨.”
10년 후 제가 이루어야할 모습입니다. 10년이란 시간은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으로서 노력한 성과가 충분히 나타나고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해있는 품질경영팀 R&D부서에서의 모든프로젝트를 믿고 맞길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필요합니다.
첫째 입사 후 저는 우선 업무에 대한 부족한 저의 지식을 채울 것입니다. 끝없는 배움의 욕구와 전문가가 되기 위한 갈망으로 채찍질을 하며 품질경영팀 R&D부서에서 가장 지식과 지혜가 많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둘째 R&D의 생명은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빨리 알아낼 수 있는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눈이라 확신합니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이 지금의 컴퓨터처럼 작아 질 수 있었던 것도 고객이 원하는 트렌드를 읽고 끊임없는 계발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창의력을 계발 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열린 눈을 가지고 나이가 들수록 창의력은 높아진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의 융화에 힘쓸 것입니다.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업무에 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벽입니다. 찌그러진 바퀴는 굴러는 가지만 빨리 갈수 없습니다. 저는 10년 후 회사의 선배와 후배를 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튼튼한 바퀴를 만들겠습니다.
위 언급한 능역들은 반드시 습득하여 LG전자에서 인정받고 꼭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쓸모 있는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 되어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LG전자의 인재가 되겠습니다. “그런 일은 조남희씨한테 맞겨봐. 그럼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란 말을 들을 10년 후를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첫댓글 님들~~ 리플 부탁드려요~ 글구 모두들 홧팅이에요^^
맨손으로 런던때려잡기..제목좋네요.ㅎㅎ..우선..좀 긴거같아요^^ 글자수 맞추는 것도 좋지만 사실들의 나열로 지루함을 주면 안되니까요...이야기식으로 서술하기보단 간략한 줄거리와 느낀점 그걸로인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다 식으로..
저도 그런거 많이 지적당했거던요^^ 암튼 잘 수정하셔서 건승하세요^^
두번째 이룬 성취 부분에서 "자신 감"-> "자신감" "허나" -> "그러나" 로 바꾸는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솔직히 공감가게 잘 쓰셨는데, 10년 계획은 조금 지루한 감도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줄 오타있네요~능역-능력~^^
오타발견했어요^^ [열정]세번째 줄에 조개 -> 소개 ㅎㅎ
많은 분들 리플 감사드려요~ 완전 많이 빼야 할듯 하네요... 글고 아직도 오타가 있다니.. 제눈엔 왜 안보였져??
맞춤법 검사기 이용해 보세요~ 자상하게 짚어 주던데요^^
본인 역량 부분에서 4번째줄 한ㅁ일 오타네요 윗분 말씀대로 한번 돌려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