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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칼럼] 조사 연구하지 않은 자, 발언하지 말라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란 사람 불편하게도 하는 것
남의 글 옳고 그름 따지기 전 스스로 생각부터 해야
정치적 독극물 언론이 띄우는 김경수 등 정치인들
지난 총선 때 ‘반명’ 정치인들처럼 될 가능성 높아
실제 발언 핵심 비틀어 조롱하는 평론가·정치인들
‘발언 전 조사 연구’ 강조한 공산당 모택동보다 못해
작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라는 산문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는데, 그중 하나가 ‘정치적 목적’이다. 오웰의 ‘정치적 목적’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를 의미한다. ‘정치적 목적’ 없이 쓰면 자신의 글이 엉망이 되곤 한다고 그는 말했다. 첫 책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부터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동물농장』을 거쳐 마지막 작품 『1984』까지, 그가 쓴 모든 글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었다.
“자유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말해 줄 권리”
나는 오웰처럼 치열하게 살지는 않았다. 인간 존재의 심연을 탐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쓴다는 것은 같다. 그가 언제나 옳은 견해를 말했던 건 아니다. 비평과 에세이와 소설 등 여러 장르의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게 다 옳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오웰의 글을 읽으면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했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겠는가.
비비시 사옥 앞에 세워진 조지 오웰 동상.
오웰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않았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려고 했다.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당시 독자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뛰어난 작가였다는 증거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조지 오웰 동상 뒤의 사옥 외벽에 그가 냉소를 섞어서 했던 말을 새겨두었다. “자유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말해 줄 권리를 의미한다.(If liberty means anything at all, it means the right to tell people, what they do not want to hear.)” 오웰은 그 말을 실천했다. 그가 철학적 정치적으로 옳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걸 따지려면 자기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발언 맥락 제거하고 조롱하고 비난한 평론가와 정치인들
나는 지난 번 칼럼에 이렇게 썼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서 일제히 활동을 개시한 민주당의 자칭 타칭 대선주자들은 22대 총선의 ‘반명’ 정치인들과 비슷한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이 많이, 크게, 좋게 보도해 준다고 해서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방해온 언론이 띄우는 정치인을 민주당 지지자들은 오히려 배격한다. 그런 언론의 보도를 정치적 독극물로 여긴다.” 또 김경수·김부겸·임종석·김두관·김동연 등을 거명했다. 민주당이 아니라 그들이 몰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1987년 창당한 평화민주당을 계승한다. 지금처럼 안정되고 강력하고 훌륭한 민주당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지난 번 칼럼에 대해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줄이라도 보도한 언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매불쇼>에서 같은 이야기를 조금 구체적으로 했더니 달라졌다. 신문 방송이 제법 보도했다. 하지만 내 말의 취지와 맥락을 제대로 다룬 보도는 거의 없었다. 다들 전후 맥락을 제거하고 ‘비명’ 정치인을 인신공격한 것처럼 보도했다. 여러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 출몰하는 평론가들은 나를 비웃고 조롱하고 비난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했다.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과 당직자들도 야당 패널로 방송에 나와서 나를 이재명의 하수인으로 격하했다. 내 비평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말한 이도 없지는 않았지만 극히 드물었다. 김부겸·김경수 두 정치인이 나름의 의견을 밝혔지만 내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정치비평은 내가 쓰는 여러 장르의 글 중 하나다. <시민언론 민들레>에 칼럼을 쓰고 <뉴스공장>과 <매불쇼> 등에서 말로 비평한다. 가끔 <MBC>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 말고는 신문 인터뷰를 하지 않고 방송 출연도 삼간다. 말로 하든 글로 쓰든 비평은 똑같은 비평이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당에서 벌어진 정파 대립과 경쟁을 언론 현실과 연계해서 분석하고 해설했다.
비판하되 제대로 알고 비판하는 기본을 갖추라
비평도 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평론가는 자신이 한 비평에 대해 ‘지적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평론가로서 다른 평론가들이 내 비평을 정확하고 매섭게 비평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처럼, 실제로 한 것과 다른 말을 한 것처럼 왜곡 비평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과 다투기 싫어서 못 본 척하지만 누가 어떻게 내 주장을 왜곡하는지 잘 안다. 내가 했던 민주당 비평의 요지를 다시 말하겠다. 내 비평을 비평하는 정치인과 평론가와 기자들은 읽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평을 통해 내 견해를 알게 되는 독자들을 위해 분명하게 정리하겠다.
“조사 연구하지 않은 자는 발언하지 말라.” 마오쩌둥이 한 말이다. 공산당 말을 인용한다고 타박하지 말라. 공산당도 이 정도는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인용했다. 누군가를 비판하려면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게 기본이다. 기본조차 하지 않는 기자를 저널리스트라 할 수는 없다. 그런 평론가를 평론가라 할 수도 없다. 그런 정치인을 정치인이라 하기는 싫다. 정신 차리기 바란다. 공산당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다가올 대선 앞두고 많은 인간관계와 ‘헤어질 결심’
요즘 나는 정치인을 만나지 않는다. 민주당이든 조국혁신당이든 정당이 관련되어 있는 행사 초대나 강연 요청은 모두 거절한다. 사람을 상대로 취재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근거로 삼아 비평한다. 이른바 조국사태 때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로 적극 취재했다. 그런데 전화로 사실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떤 총장과 어떤 교수가 내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 모함했다. 증거로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일이라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을 겪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취재를 그만두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소위 ‘친노’다. 노무현 정부의 장관이었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참여정부 인사들을 대부분 안다. 인간적으로 친밀하다. 나는 또 ‘친문’이다. 정치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정부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존경했고 지금도 존경한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두루 안다. 나는 ‘친명’이다. 당원은 아니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며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국정을 잘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확고한 민주주의자이고 유능한 행정가이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가졌다고 본다. 누가 이재명의 측근인지는 모른다. 소위 ‘친명’ 정치인·비평가와 교류하지 않는다.
개인적 친분을 맺으면 객관적으로 비평하기 어렵다. 평론가로서 공사를 구분하려면 사적인 교류를 삼가는 게 바람직하다. ‘친노’든 ‘친문’이든 ‘친명’이든, 나는 정치를 하던 시기에 인연을 맺었던 정치인들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함께 정치를 했던 사람들 가운데 이미 마음에서 떠나보낸 이가 적지 않다. 지난해 총선에서 떠나보낸 이도 많다. 다가올 대선에서 또 그래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그들과의 인간관계보다 글 쓰는 일이 내겐 더 중요하다. 그들 없이는 살 수 있지만 글을 쓰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 선택이 2002년이나 지난 총선 때와 다를까?
최근 민주당 상황을 보면 일종의 기시감을 느낀다. 2002년이 생각난다. 노무현을 적대하는 언론이 노무현을 공격하는 민주당 정치인을 띄웠다. 그러나 민주당 당원과 시민들은 언론의 공작에 넘어가지 않고 노무현을 선택했다. 2024년 총선도 떠오른다. 언론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주문을 외면서 이재명을 공격했다. 표본이 오염된 여론조사 결과를 퍼뜨리면서 민주당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단정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을 흔들고 ‘반명’ 정치인들을 비호했다. 그러나 민주당원과 시민들은 그들을 남김없이 정치무대에서 끌어내렸다. 자신이 속한 정당의 대표를 윤석열 검찰독재의 손아귀에 넘겨준 배신행위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거듭 말한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내놓고 입에 올리거나 은근히 부각시키는 민주당 정치인은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민주당 당원들은 윤석열의 검찰 사유화와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승인하는 정치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법에, 칼에, 계엄령에, 세 번이나 죽을 뻔했던 당의 대표에게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승인하지 않는다. 당의 주권자가 당원이라는 원칙을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정치인을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란세력과 민주세력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는 방식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려는 정치인한테 국정 운영 권한을 맡기지 않는다.
민주당의 대표가 이재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상황이 동일하다면 나는 같은 진단을 내릴 것이다. 내 주장이, 내 전망이, 내 판단이 옳다는 증거는 없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말할 따름이다. 나는 말과 글 말고는 가진 무기가 없다. 내 말과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으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최소한 일리는 있는 견해를 말해야 평론가로서 존재할 자격을 얻는다. 나는 내가 아직은, 사람들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에 대해 생각하도록 북돋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잃으면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를 스스로 그만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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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시대의 현자 유시민...
내인생 최초로 완독한 책 "거꾸로 읽는 세계사".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 작가...
부디 건강하시고 많은 글 남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