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너희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1.5-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5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9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중국 고서 대학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소인(小人)이 저 혼자 있을 적에 나쁜 짓을 하되 못 하는 짓이 없다가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그 나쁜 짓을 얼른 덮어버리고 자기가 한 좋은 일을 드러내거니와 남들이 나 보기를 폐(肺)와
간(肝) 들여다보듯이 하는데 그게 다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를 일러서 ‘중심(中心)에
착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誠於中形於外)’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 있을 때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故로 君子는必愼其獨也니라)."(「大學」傳 6章)
이 말을 요약하자면 소인(小人)은 남 앞에서만 법을 지키고 군자(君子)는 혼자 있을 때에도 법을 지킨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한 교우분이 이런 솔직한 심정을 전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 분 말씀이 ‘남들과 함께 하면 신이나서 기도도 잘 되는데 혼자 있으면 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기도도 시들해 진다.’
우리가 무를 썰 듯 ‘이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여서
이웃과 더불어 관계를 가질 때 의미를 가지지요.
그런데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이면 남이 있겄 없건 법을 지키고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단히 일러 하느님 법에 성실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 곳을 차지할 것이다.“(신명 4,1)
모세도 사람들 앞에서의 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성실하게 하느님 법규를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특히 사람들이 성실하게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라는 감탄을 할 때가 많습니다.
고국에 있을 산행을 하다가 마음을 아픈 적이 많습니다. 쓰레기가 여기 저기 있고 누가 보지
않는다고 쓰레기를 비닐 봉투에 넣어 나무에다 매달아 놓은 것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집 마당이나 남의 담 밑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모습은
우리의 불신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계명을 주며 힘들게 지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사람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사랑의 법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주님께서는 남 앞에서 지키는 법이 아니라 내면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기쁘게 하느님
사랑의 법을 지키는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느님 법이 다른 민족에게 얼마나 이스라엘을 자랑스럽게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7-8)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법에 대해서 또한 가르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7-18)
신명기의 하느님 법은 다른 고대 근동국가의 법과 다르게 사랑으로 모든 것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법의 정신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살아있는
하느님의 법을 문자화와 관습으로 고정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하느님의 법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주님의 계명을 남에게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키며 이웃을 인도해야 할 의무를
갖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세례성사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사람들 앞에 당신의 제자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의 법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읍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