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병의
두 증세 ‘공주병’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이다. 어떤 드라마 덕분에
요즘은 ‘미지공’이라고도 한다. “미친년, 지가 공주인 줄 알고 …” 일종의 사회적
전염병이다. 주로 결혼 적령기를 앞둔 미혼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다지만, 미시족을 중심으로 일부 기혼층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공주병이
외국산 수입 질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주병’과 ‘미지공’의 ‘공주’는 특수한 종류의 외제
공주인데, 정상적인 공주가 아니니 병임에 틀림없다. 질병이란게 원인을
알아야 다스릴 수 있다. 암 치료가 어려운 것은 ‘정상 세포가 어째서
제 분수를 상실하고 암세포로 변하는 지’를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주병을
치료하려면 근본 원인과 유입 경로를 알아야 한다.
(환자인 게 불편하지 않으신 분들은 얼른 다른 글 읽으시라.) 그러려면 먼저 그
병의 징후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겠다. 스스로 공주병 환자인지 아닌지 알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공주병의 증상은 딱 두 가지다. 첫째,
공주병 환자들은 ‘공주는 이쁘다’고
생각한다. 그건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또 일반인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꽤 있다. 그러나 공주병 환자의 특징은 그걸 대전제 삼아서 다음과 같은 삼단 논법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대전제:
“공주는 이쁘다.” 소전제:
“나도 이쁘다.” 결론:
“고로 나는 공주다.” 그런데
사실 이쁘기만 해서는 공주병 환자가 되는 게 아니다.
사실 ‘이쁘다’는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굳이 얼굴에 칼을 대거나 기름낀 배에서 지방을 빨아내지 않더라도, ‘나는 이쁘다’고 착각만 할 수 있으면 된다. 게다가
요즘 화장품과 화장술이 좀 발달했는가. 그러니 ‘이쁘다’는 건 공주병 환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공주병의
두번째 증상이자 충분 조건은 ‘싸가지 없다’는 것이다. 손에 물을 묻혀서는
안되며, 새침은 있는대로 다 떨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남이 해 줘야 한다. “난 널 배려할 필요가 없지만, 넌 날 항상
배려해야”하기 때문이다. 공주가
싸가지가 없어도 되는 건 물론 ‘이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주의
“권력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공주의 아버지는 왕이다. 절대 권력자다. 그러니 공주는 당연히 싸가지가 없어도 된다. 게다가 공주는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될 수도 있다. 직접 왕이 될 수 없으면 남편이 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공주는 마냥 싸가지 없어도 되고, 신민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또 하나의 삼단논법이
도출된다. 대전제:
“공주는 싸가지 없다.” 소전제:
“나는 공주다. (앞의 삼단논법
결론에서)” 결론:
“고로, 난 싸가지 없어도
된다.” 요약하면
이쁘고
(필요조건) 싸가지가 없어야 (충분조건) 공주병 환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쁘고 싸가지 없는 공주’의 국적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공주병이 수입병이라는 것은 앞에서 밝힌 공주병의 두 증세가 한국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선 ‘공주는 이쁘다’는 명제부터
보자. ‘프린세스’는 이뻐야 한다. 그럼
‘공주’는? 왕의
자식이 미남이거나 미녀일 가능성은 원래 높다.
배우자 선택 폭이 무한한 왕/여왕은 미남이나 미녀를 배우자로 선택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미남/미녀 자식이 태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나코의 스테파니 공주를 보라. 미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테파니는 한 세대를 풍미했던 메국의 최고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딸이다. 그러나
잉국 황태자 챨스는 어떤가?
그 동생 앤드류 왕자는 미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챨스 왕자를 미남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데가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왕의 자식이라고 다 미남/미녀는 아니라는 확실한 반증이다. 왕의
딸이라고 다 미녀가 아니라는 건 한국 역사책에도 나온다.
<삼국유사>에 보니까 신라 48대
경문왕의 총각시절 이름은 응렴이었다. 탁월한 국선(화랑)이었던 그는 현안대왕의 눈에 띠어 ‘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현안대왕에게는 공주가 둘 있었는데 맏공주는
형색이 초라하고 박색이었고 둘째 공주는 아름다웠다. 고민 끝에 응렴은 맏공주를 선택했고 덕분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삼국유사 원문의 요지야 그런 게 아니겠지만, 아무튼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왕의 딸에도 박색이 있다’는
점이다. 공주의
미색/박색 비율에는 양의 동서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건 ‘공주’라는 말의 쓰임새 때문이다. ‘공주’는 흔히 서양말 ‘프린세스’의 번역어지만 그 두 말의 용법이 같은 것은 아니다. 한국 ‘공주’는 ‘왕의 딸네미(이하, ‘왕딸’)’만 가리킨다. 그러나 서양 ‘프린세스’는 ‘왕딸’ 뿐 아니라 ‘왕자의
마누라(이하, 왕자마눌)’도
가리킨다. 그러므로 다른 조건이 같다면 한국 ‘공주’보다 서양 ‘프린세스’가 숫적으로 두배 가량 많게 된다. 서양
‘프린세스’가 왕자 마눌을 포함한다는 점 때문에 미모 비율까지 높아진다.
왕딸의 경우 미모/박색의 비율이 반반 정도라고 보면 되지만,
왕자 마눌들은 몽땅 미인일 수 밖에 없다. 신라 경문왕과는 달리 서양 왕자들이
프린세스를 고르는 첫번째 조건은 언제나 미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양 프린세스들은 이쁠 수 밖에 없다.
왕딸도 절반은 이쁘고, 왕자 마눌은 1백퍼센트 이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공주는 깡그리 왕딸이다. 현안대왕의 딸들처럼 미인 비율은 반반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니 ‘공주는 이뻐야 한다’는 공주병 필요조건이 한국 토양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열에 일곱 여덟 이상이 미인이었던 서양 ‘프린세스’에 뿌리를 둔 조건이었던
것이다. 한국에
‘공주’ 얘기가 별로 없는 까닭. 이런
논리/산술적인 이유 말고 문학적인 이유도 있다. 서양에는 프린세스 이야기가 무척
많다. 또 그런 이야기에는 프린세스가 얼마나 이쁜가를 침이 마르도록 서술한 부분이 반드시
나온다. 서양 동화책을 아무거나 펼쳐 보시라. 프린세스 이야기가 절반
이상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프린세스들은 예외없이 이쁘다고 묘사돼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떤가?
우선 한국에는 공주가 주인공인 전설이나 설화가 별로 없다. 하다 못해 여름밤 모기
쑥불 옆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동화에도 공주님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평민이나 사대부 집안 출신의
왕비나 대비가 일세를 풍미하면서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적은 자주 있다. 그러나 공주가 누항의 이야기
거리가 된 적은 극히 드물다. 그만큼 한국의 공주들은 관심 밖이었다는
말이다. 예외가
있다면 고구려의 평강 공주와 신라의 선화 공주나 요석 공주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 속의 공주님들이 ‘이뻤다’거나 ‘아름다웠다’며 그 미모를 칭찬한 구절이 별로
없다. 평강 공주는 어린
시절 울보였다. 무왕 설화에는 선화 공주가 ‘이쁘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돼 있지만, 정작 서동요에도 선화 공주가
‘이뻤다’는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요석 공주도 과부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미모는 커녕 다른 인적 사항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한편
신라에는 여왕이 세명 있었다.
선덕/진덕/진성 여왕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공주 시절에 이뻤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선덕 여왕은 당나라 임금이 보낸 그림의 숨은 뜻을 알아챌 만큼
명민했다는 기록은 있다. 그러나 그녀가 이뻤다는 기록은 없다. 진성
여왕은 ‘남자처럼 떡대가 좋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덕 여왕은 당태종에게 태평가를 지어 바쳐서 칭찬받았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의
외모, 특히 공주 시절의 외모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한국
공주에 대한 기록에 ‘이뻤다’는 서술이 없다고 해서 ‘한국 공주들은 몽땅
박색이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주가 이쁘냐 안이쁘냐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혹은 이쁘든 안 이쁘든 역사가는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일 지도
모른다. 아무튼 ‘공주는 이뻐야 한다’는 공주병의 필요조건이 한국에서 생긴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그건 한국 공주가 아니라
서양 프린세스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국
공주의 ‘싸가지’는 세계 최고 수준 그렇다면
‘싸가지’ 부문은 어떨까? ‘공주는 싸가지가
없다’는 것도 편견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쁜 공주’의 국적은 서양임에 분명하지만, ‘싸가지
없는 공주’의 국적은 그나마 불명이다. 우선
기록에 남은 한국 공주들은 ‘미지공’이나 ‘공주병’ 증후군이 전혀 없다. 평강 공주는 바보 남편을 장군으로 키워냈다. 선화 공주는 왕실의 비난과 세간의 손가락질을 무릎쓰고 백제의 왕비가 됐다. 요석 공주는
원효를 꼬셔서 잠자리를 같이 한 다음 설총을 낳아서 대학자로 키웠다. 한마디로
한국의 공주는 이쁜지 안이쁜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싸가지는 수준 이상이었다는 말이다.
평강 공주와 선화 공주와 요석 공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혜안이 있고,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도 있다. 난관을 이기고 목표를 달성하는 투지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래야 한국 공주들은 역사에도 기록되고 이야기 거리로도 남는다. 물론
한국 공주의 의지와 혜안,
통찰력과 투지가 오직 남편에게 집중됐다는 건 문제다. 그점이 바로 요즘
페미니스트들의 불만거리겠다. 하지만 어쩌랴. 한국은 무려
2천년 동안 극심한 가부장제 속에서 살았다. 공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인네들은
최대 활동 반경이 가정을 넘어서질 못했다. 아무리 똑똑하고 당차도 여자의 영향력은 남편과 자식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실
한국 공주는 사회적 영향력이 전혀 없었다.
왕궁 밖으로 발걸음 떼기도 어려웠다. 정치적 영향력은 말 할 것도
없다. 그것은 공주나 그의 남편이 왕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외동딸인 경우라도 왕은 후궁을 들여서라도 아들을 낳아 왕위를 물려줬다.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서 공주나 부마가 왕위를 승계한 경우가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없다. 그 이전 고구려와 백제도 마찬가지였다. 삼한과 부여, 발해와 고조선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조선
시대의 공주 남편은 아예 정치 활동을 금지당했다. 정치적 의견을 말했다가는 의금부의 탄핵을 받아야
했다. 왕의 현손 이내 모든 혈족은 과거 응시 조차 금지됐으니 사위야 말해
뭣하겠는가. 공주나
부마가 왕위에 올랐던 유일한 나라는 신라다.
신라에는 공주가 왕위에 오른 것이 세번, 공주의 남편이 왕위에 오른 것이 다섯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울며 겨자먹기였다. 한국 역대 왕조 중에서
신라는 가장 엄격한 신분 제도를 갖고 있었다. 골품제도다. 성골이
아니면 왕이 될 수 없다는 조항때문에 두 명의 공주가 왕이 됐다. 선덕/진덕 여왕이다. 그나마 자동 승계가 아니라 화백에서 추대한 것이다. 성골이 멸종한 후에는 남자 없이 유일한 진골이었던 진성왕이 왕위에 올랐다. 신라의
부마가 왕위에 오른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처럼 시장판 장똘뱅이였던 알라딘이 세자딘 공주와 눈 맞고 배 맞는 바람에 왕자가 됐다가 왕위를
계승하는 그런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왕위에 오른 신라의 부마들도 모두 골품상 공주에 버금은
갔다. 공주를 왕을 시키느니 비슷한 신분의 왕족 남자를 결혼시켜서 공주대신 왕을 시킨 것
뿐이다. 신분에 상관없이 공주와 결혼하면 자동적으로 왕이 될 수 있었던 알라딘류와는 경우가
다르다. 돈이나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국 공주들은 싸가지를 상실할 수 없는 처지였다.
별로 이쁘지도 않았고, 또 이뻐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쁜 것을 그다지 높게 쳐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주들은 이쁘든
이쁘지 않든 싸가지가 훌륭해야만 역사에도 기록되고 이야기 거리로 남곤 했다. ‘병(病)’은
서방에서 그렇다면
요즘 한국 여인네들이 걸리곤 하는 ‘이쁘고 싸가지는 없는 공주병’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아무
서양 문화사 책을 읽다 보면 첫부분에서 반드시 접할 수 있는 글귀가 있다.
“빛은 동방에서.” 고대 문명은 모두 동방에서 시작됐다는 거다.
인류 역사를 보면 그와 댓구가 될 만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병은
서방에서.” 서양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질병 때문에 마야/잉카/아즈텍 문명이 몰락했고,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사분의 일로 줄어 버렸다. 서양인들이 신체적 질병만 갖고 다니는 건 아니다.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마음의 질병과 영혼의 질병도 퍼뜨리고 다닌다. 요즘
한국의 공주병은 서양에서 전파돼 들어와 현지에서 변형된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주절 주절 길어져서 할 수 없이 2편을 써야하게 생겼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다음 글에서는 공주병의 한국 전파 과정을 보기로 하겠다.) 평미레
드림/ 2006/1/21 |
출처: 평미레 원문보기 글쓴이: 평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