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추억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한낮의 더위는 물론이고 열대야에 시달리며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여름날의 기억은 벌써 잊혀진지 오래다.
출근길 아침 겨울을 재촉하듯 두암타운 단지 가로수들이
흠뻑 물먹은 단풍으로 한 폭의 동양화가 되어
바람결에 떨어지는 단풍잎들이 늦가을을 느끼게 하는 아침이다.
며칠 전 상무지역 광주시청 쪽을 지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청 옆 공터에 아름답게 피었던 코스모스 밭이
이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있었다.
우주를 가리키는 단어 코스모스(=Cosmos)는 질서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혼돈의 카오스를 질서의 코스모스로 바꾸시고 감탄하셨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고 흡족해 하시며
지으신 세계가 너무도 완벽하고 사랑스러워서 스스로 놀라셨다.
하나님은 눈으로 보시고 거듭 반복해서 “좋다.”라고 평가하신 것이다
코스모스~
파란 하늘을 이고 한들한들 길가에 피어있는 청초한 꽃.
내 짝꿍이 제일 좋아하는 꽃 코스모스 ~
언제부터인가 나도 코스모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해 아예 집 거실에 큼직한 코스모스 유화 그림을 걸어 놓았다.
이 그림보고 가을 들녘으로 나가자는 말을 좀 줄여 보려구 ~ 하하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깝고도 편한 큰길이 있었지만 멀리 돌아서 다니는 방천 둑 좁은 길은
우리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봄이면 둑 언덕에 엎드려 살며시 고개 내민 쑥을 뜯으며 다녔다.
달짝지근한 물을 머금고 막 올라온 삐비(띠 풀)를
한 움큼씩 뽑아 하나하나 까먹으며 집으로 오곤 하였다.
여름이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냇가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다이빙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해야 내팽개쳐졌던 가방을 들고 귀가를 서둘렀다.
끝없이 이어진 코스모스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을 하늘을 맴돌며 자유로운 비행을 즐기는 고추잠자리만큼이나 행복했다.
해마다 초여름이면 반 별로 배정된 방천 둑길에 코스모스를 심었다.
학교에 가고 오면서 다른 반 코스모스 보다 잘 자라도록
물도 주고 풀을 뽑아주며 열심히 가꾸었다.
긴 여름방학을 지내고 처음 학교에 나오던 날에는
우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던 코스모스가 제일 먼저 반겼다.
오늘처럼 안개가 짙게 낀 날 아침이면
함초롬히 이슬 머금고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던 코스모스였다.
어릴 적 가을이 다가 오면 코스모스 꽃은 우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꽃말처럼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청군과 백군이 이기고 지는 것을
점치는 아주 중요한 꽃이었다. 코스모스 꽃 색에 따라
그 해의 청군 백군 승패가 좌우된다고 믿었던 때였으니까.
흰색 코스모스가 많이 피는 해는 백군이 이기고
분홍이나 검붉은 색 코스모스가 많이 피면 청군이 이긴다고 믿었다.
그 일 때문에 가을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우리들은 항상 작은 다툼이 있었다.
흰색 꽃이 많다거나 분홍 꽃이 많다는 둥
항상 자기편 꽃이 많다고 목소리들을 높였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길을 따라 꽃송이를 세다보면
어느새 학교가 보이곤 하였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습작으로 만든 꽃이 바로 코스모스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연약한 여인처럼 가냘프고 안쓰럽다.
하지만 그 연약함 때문에 바람 부는 대로
작은 바람결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은
무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그리움을 하나씩 안겨준다.
코스모스는 잊혀져 가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을바람에 실어 나른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파란 잎줄기 속에는
뙤약볕에 더위를 잊은 채 운동회 연습을 하던
까무잡잡한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예쁜 코스모스 꽃송이 속에서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넓은 운동장을 누비던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같이 세상이 주는 선물과는 비할 수 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주시고자 우리에게 집중하고 계시지만,
우리의 마음과 마음가짐은 어디를 향해 있고
우리의 마음 씀과 마음 내킴이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 봄은 어떨까요?
마음이 가는 곳이 마음이 쓰이고 마음이 내키고
마음이 달리고 마음이 머무르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 개개인의 마음 우리 교회의 마음이 주님께 열납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