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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한 동백꽃이 그 붉은 혓바닥을 푸른 물에 담그는 따뜻한 겨울의 통영으로
의령중학교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학생과 학부모가 문학기행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햇살은 겨울속 봄날처럼 온화했었고 문학이라는 이상향을 대하듯 어느 곳에선 민들레라도 피어날 것 같은 날씨였다.
우리들의 여행을 이끄느라 갑자기 헤실해진 햇살이 그러했듯, 얼음보다 촘촘했던 일상의 틈바구니를 뚫고 만들어낸 하루는
모든 육체적 피로를 너끈히 뛰어넘는 공간이동의 활력소가 되었다.
보람있는 일에 날씨는 어떡하든 우주적 원리로 돕고 나선다는 신념을, 올해 마지막 여행에서까지 믿을 수 있어 좋았다.
학부모 독서토론반의 엄마 아버지와 함께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독서동아리 활동으로 이루어진 학생들이 있었고
어머니회를 통해 더 살가워진 학생들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어 더 특별한 하루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약속이나 한듯 엄마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그 나이때의 어투로 말들 했지만,
그건 부모가 함께여서 나온 괜한 투정이라 이해한다. 2학년 독서동아리 학생이나 몇몇 학생들은 그런 호강에 겨운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았으며, 이날의 의미가 살아가는 동안 희석되어져도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하는 성실성을 보여 주었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려 실컷 놀며 뒹구는 것이 더 좋은 나이때의 아이들이 이렇게 어른 취향의 여행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기특한 일이니, 그것만으로도 모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도 남을 일을 한 것이다.
함께 떠난 국어선생님(이순일,황창현 선생님)들께서 알고 떠나야 더 사랑할 수 있는 문학기행을 위해 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물론 내가 혼자 준비한 문학퀴즈의 정답들이 속속 등장하였으며 덕분에 상당한 퀴즈를 수정해야 하는 당황스런 순간이 있었다.
나는 나대로 틈없는 일상에서 겨우겨우 머릿속에만 퀴즈를 그려놓았는데, 학교라는 특성을 생각하지 못한 얕은 생각일지언정
그럼에도 학습의 분위기를 즐기는 학생들과, 나만 알아도 좋은 출제자로서의 무한한 자유가 어우러져
더불어 함께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학기행이라는 특별한 여행을 위해 우리가 좀더 의미를 갖자는 나의 들뜸이 낳은 것이지만
학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면, 난 그런 것이 제일 좋아 보였다.
세병관 -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라는 의미로, 두보의 싯구 중 한 구절이다.
그 문장을 끌어다 한글로 옮기자면 이러하다.
"안득장사만천하(安得壯士挽天河) 정세갑병장불용(淨洗甲兵長不用)."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다 병기를 씻어내어 길이 사용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전장을 누비는 장수의 언어가 이러한 것에 영혼을 걸었다니, 순연한 아름다움이 몸속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경상,전라,충청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었던 건물로 조선시대 건축물 중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축물 중의 하나라는 것과,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안내 팻말에 소개되어 있었다.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희망의 처소였으며, 벽도 창호문도 없이 통째로 훤히 바람을 맞고선 병사들의 휴식처.
그곳에서 그 처절했던 절규보다 그 시절에도 희망을 심었던 장수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이토록 늦었다니, 그것이 미안해졌다.
중학교 3학년. 나역시 저만할 때 인생이 무언지 몰랐고 그다지 알려고도 않았으며,
어른스러운 것이 지루해보여 일탈을 꿈꾸었었지.
아이들이 자라 청년이 되는 동안 꼭 거치는, 알고보면 황금기인 시기.
그것은 지나고 나면 보이는 것이기도 하였지.
중학교 2학년 학생들도 모이게 하였다.
이번 문학기행에 이 독서동아리팀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자리를 메꾸는 문제로 고민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 문제를 말끔히 씻었을 뿐 아니라, 만만찮은 독서력으로 문학기행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한 실력파이기도 하였다.
황창현 선생님의 지도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는 것이, 저마다 손에 수첩과 펜을 들고 꼼꼼히 메모하는 성실함을 갖추었고
공부 잘하는 것보다 책읽는 문화를 높이 사야 하는 앞으로의 세대에 희망을 준 아이들이었다.
재강이와 동욱이, 세창이는 1학년답게 저희들끼리 눈치껏 버스 앞자리에 앉으며 뒷자리는 형아들 자리라는
개념처럼 저희들끼리 뭉쳤으며, 학년별로 내 카메라에 담길 때, 넌지시 기다려준 귀여운 행동들을 보였다.
아직 앳된 표정의 아들들은 시낭송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물론,
경치좋은 곳에서 한 수 읊는 여유를 부려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특히 동욱이는 천연덕스럽게 '풀잎'이란 시를 읊었고, 그것도 생긴 것 답지않게 저음으로 읊어 즐거움을 선사했다.
창을 그치게 하리라는 신념의 지과문.
현판에 쓰여진 글씨들은 피폐한 전쟁터일수록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 어떻게 간절히 드러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바로 옆 건물인 향토역사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순신의 영정들이 다양한 화가들의 손끝에서 여러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네편의 큰 그림을 시계방향대로 보자면, 우선 청전 이상범의 이순신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표준영정과 달라도 너무 다른 이상범의 영정그림은 무인의 기개가 철철 넘치는 작품이다.
사뭇 눈꼬리를 치켜올린 그림은 낯설지만 자신만만한 무인으로서의 기개가 유감없이 표현되어 있었다.
오른쪽 위 상단은 장우성 화백의 표준영정인 이순신이다.
이순신 영정의 대가답게 단정하고 현명한 무인의 기질을 표현하였다.
그 아래로 인물화 분야의 어전화가인 정형모의 이순신이다.
정형모 화가는 청와대 대통령이나 유명인들의 인물화를 독점하다시피한 화가이며
이 인물화에서도 이순신의 얼굴과 이미지가 잘 드러나 보였다.
왼쪽은 조금 유약해 보여 어딘지 이름값을 못한듯한 이당 김은호의, 장군복을 하고 서있는 이순신.
이처럼 여러 화가들에 의해 여러 이순신의 그림들이 그려진 것을 전시해 두었으며
이외에도 통영에 관련한 키워드를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꼼꼼하게 전시해서 좋았었다.
역시 문화예술의 거목들이 통영 강구항을 배경으로 한 사진위에 열거되어 있었다.
이 부러운 인물들은 통영을 빛낸 예술인으로 엽서에 실렸다는데,
왼쪽부터 쭉 이름을 불러보자면, 통영 나전칠기의 명장 김봉룡, 동랑 유치진,
그의 동생 청마 유치환, 미술계의 거목 전혁림, 설명이 필요없는 윤이상, 음악가 정윤주,
시조시인 김상옥, 해외에서 명성이 더 잘 알려진 '꽃신'의 김용익, 꽃의 시인 김춘수,
그리고 박경리.
바다는 예술을 길러 먹이는 푸른 맥이었을까, 유난히 바다의 언어가 싱싱했던 유전적 기질이었을까.
그 막힘없는 예술의 본고장에서 익히 알려진 김상옥의 시 '봉선화'를 읊어보고 싶어진다.
봉선화 -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가 웃으실가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한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노나.
모두들 지겨워 할때, 가장 꼼꼼하게 박물관을 관람한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분명 달라 보였다.
'브나로드' 운동을 설명해주시는 국어선생님이 있으니, 예전에 여고시절 국어 수업에서,
심훈의 상록수가 농촌계몽운동을 뜻하는 '브나로드'운동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40명에 가까운 인원이 골목길을 누비며 어쩐지 맛으로 알려졌을 것만 같은 '중앙식당'으로 찾아간다.
당당히 골목길에 위치한 것이 어쩐지, 아무나 큰 길에 그것도 번듯한 정원까지 겸비한 집보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감처럼 보여, 가는 동안 기대감이 생겼다. 배는 한참부터 이미 고파 있었으니 잘 먹어주는 것이 제일 쉬울 때였다.
한끼 식사 오천원인 식당에 매운탕도 개인별 그릇에 한마리씩 넣어 얼큰하게 끓여주고, 한식 특유의 반찬들도 맛깔스러웠다.
모두 배가 고파 쓰러지기 직전에 먹은 밥이어선지,
무슨 복을 따로 받았는지 금방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받고 더 행복했던 것도 같다.
모든 인원이 다 앉지 못하여 우리 엄마들 6명은 따로이 상을 받았으며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엄마와 학생들은 모두 한 방에 모여 먹었다.
뒤에 듣자니, 강열이 아버님이 아이들에게 주도를 가르친다고 한 잔씩의 술을 돌려 먹였다는데,
아이들은 돌아오는 차안에서 느낀 점을 발표하라는 것에 대뜸 문학기행의 의미보다 점심때 먹은 술맛 얘기로 흥을 내었다.
조금 옳지못한 듯했지만 아저씨 나름대로 삶을 키운다는 의미로 한 것이니, 그냥 그런가보다 넘기면 될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마당에 서자 아이비 줄기가 담장에 늘어뜨려져 있었다. 겨울의 초록잎사귀는 상쾌했다.
아이비를 보고 이순일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분위기를 끌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아이비리그라고 하는데, 이 아이비에서 따온 말이다."
물론 아니라는 말에, "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덧붙이며 물러났다.
통영시 산양읍...아름다운 산양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외곽의 표시같은 푸른 솔잎들이 길을 열어주는 곳에
박경리 기념관이 세워져 있었다. 검박한 인품의 박경리선생에 어울리게 겉치레가 화려하지 않은 건물을 보며
어쩐지 삼엄한 경배의 마음이 깃든다.
인간으로 여자로 대소설가로 한국 문학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의 기념관이라는 생각에
모든 사고력이 수식을 거부하고 오로지 이 여인의 굵직한 걸음에 사무치게 되는 것이리라.
지난 해, 나는 원주 박경리 문학관으로 문학기행을 떠났었고, 거기에서 나는 이토록 사무치게 문학의 외길을 걸었던 여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한 편의 소설에 바친 26년의 긴 세월에 엎드려 이 기념비적인 큰 여인에게 절하고 싶었고,
이것은 한국문학이 세계에 당당할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떠한 상업적 잣대를 배제하고 오롯이 가장 숭고한 업적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대하소설의 자리매김이지 않을까.
조정래가 그러하고 박경리가 그러하였다. 물론 황석영도 이문열도 대하소설을 내었지만,
나는 두 사람의 발자취는 특별히 더 높고 아득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원고를
썼던 것이다. (중략) 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였더란 말인가."
통영을 무대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위해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뚝지먼당이나 서문고개, 안뒤산등이 한눈에 잡힌다.
본문에 해당하는 지명 근처에 원고를 배치해 두어 읽고 비교하는 맛도 살려 두었다.
사랑은
가장 밀도짙은
연민이예요
연민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먹는 것에 대한 설명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길러주는
사랑을 하세요.
'생명의 아픔'
박경리
피곤한 성숙이는 시간과 공간만 생긴다면 저래야 했다.
연말이니까.
나도 저러고 싶었다.
우리는 그녀의 산소에서 즐겁게 웃으며 인증샷을 남겼다.
뭘 해도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을 다독이는 듯했다.
나뭇가지가 모든 연약하고 짧았던 생명들을 거두어 들이는 12월,
그 틈으로 열렸던 그날의 하늘은 시린 겨울에도 옷을 벗게하는 온유함을 머금었었다.
아무 벤취나 앉아서 그렇게 노닥거리는 것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문학기행이었었지.
저 바다를 보며
당신과 나란히 앉아
담배연기 날리는 것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 모두 경외감에서 비롯된 끊임없는 존경심
당신은 영원히 이 곳에서 새의 노래를 들을 것입니다.
"새들 지켜 주며 살고 싶어
전선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물 한 모금 밀알 하나 꿈꾸는 새야"
연민, 중에서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인생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중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맞췄던, 책읽기를 즐기는 원준이의 소감발표.
선생님이 초서체의 대가라는 소개를 했다고
자신의 글씨가 갑자기 명조체로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흐뭇하게 인정하는 초서체의 대가.
돌아오는 차안에선 모두가 자신의 소감을 발표하기도 하였고
시를 읊기도 하였다. 시인을 엄마로 둔 해령이가 나와 무슨 시조를 빠르게 외웠는데,
내가 그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순전히 해령이가 웃지도 않는 시기를 살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들을 몰고 문학기행을 한 것이 기특한 하루였다.
이런 수업의 내용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그날의 문학수업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동욱이는 잠바를 입고 오지 않았다.
자꾸만 너무 덥다고 하였다.
하긴 나도 더웠었지.
그러나 해가 지는 시간에도 잠바를
입지 않는 동욱이.
동욱아. 너무 신경 쓰였단다.
너의 그 풀잎이란 시 다시 한 번 읊으며
나도 풀잎 풀잎 되뇌이고 있단다.
풀 잎
박 성 룡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 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아들은 기형도의 '엄마 생각'을 외웠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젊은 날 내 첫사랑 같았던 시인은 기형도였다.
물론 그것을 알 리 없는 아들은 자신들이 외운 시를 외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모두 저마다의 시와 오늘의 느낀 점을 발표하고 들어주며
돌아오는 문학기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강열이 아버님 덕분에 학교버스엔 마이크가 새로 놓이게 되었고,
기사님이 소중한 일요일을 반납하고 우리를 위해 하루의 시간을 고스란히 내 주신 점에 감사하였다.
이렇게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어우러져 뜻밖의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어 어쩌면 더 의미있는 문학기행이었다.
문학은 내 첫사랑같은 것이다. 한번 마음에 들어온 이후 지워지지 않는 얼굴처럼 각인된 삶의 동반자.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영원한 동반자, 그것은 바로 문학이라는 이름의 애인이었다.
첫댓글 지나간 글이지만, 새삼 문학하는 느낌을 함께 하고자 이렇게 옮겨 봅니다.
옮겨놓고 보니, 지난번에 가운데정렬을 하지마라는 그 약속을 또 어겼다는 생각이...
그러나 이미 써놓았던 것이기에 요번까지만 참고 보시길.
참고로 가운데정렬을 하지마라신 두 분은 노안의 증상으로 보였다는 말씀을 아울러.
보람찬 문학기행 모습 잘 봤습니다. 모두들 즐거워 보이군요. 혹시 내년에도 문학기행 가시면 연락 주세요. 동행하고 싶습니다.
통영. 15년 전 추억을 선물해 주시는군요. 의령오기 전 2년간 근무했지요. 그런데 그간 뜸해서 박경리기념관 한 번 가보지도 못했군. 산양읍에 있는 모양이죠. 그곳 해안도로가 멋지지요. 가족끼리 즐거운 모습이 보기좋군요~ㅎ
영옥이도 학부형이라고 함께 갔었네. 어느 문학기행보다 알찬 기행이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이순신 장군편은 나중에 읽어보기로.
저는 통영에서 교편생활 10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라고 하는 이가 없는데도 그렇게 가고싶고 가보고 싶은 곳이 통영이라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죽을 위험을 당하며 고생한 곳이라 뒤돌아 보기도 싫을 건데 그렇지 않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통영, 이름에서 벌써 이순신과 뗄수없는 통제영, 충무공의 고장인데, 문학기행을 가서인지 그곳이야말로 문학적인 고장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모두 통영과 굉장한 인연이 있으신데 여행자의 시선으로 너무 많이 나선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날 날씨는 어쩌자고 그렇게 따스했던지. 겨울바다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