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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춘화도(당시에도 파격적인 여성상위를 ㅋㅋ)
쌍화점(雙花店)> - 작자미상
雙花店에 雙花 사라 가고신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回回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회회(몽고인)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말미 이 店밧긔 나명들명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긔 잔 티 덤ㅅ거츠니 업다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三藏寺애 브를 혀라 가고신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그 뎔 社主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말미 이 뎔밧긔 나명들명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 上座ㅣ 네 마리라 호리라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티 덤ㅅ거츠니 업다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믓 龍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말미 이 우믈밧 나명들명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드레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티 덤ㅅ거츠니 업다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술 지? 수를 사라 가고신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말미 이 집밧 나명들명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구비가 네 마리라 호리라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박아지야 네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티 덤ㅅ거츠니 업다
그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1. 핵심정리
▶ 연대 : 고려 충렬왕 때(1274~1308)
▶ 갈래 : 고려 속요
▶ 형식 : 전 4연의 분절체
▶ 성격 : 향락적, 퇴폐적
▶ 의의 : 정사(情事) 감정을 극화(劇化)한 연극적 가요
▶ 제재 : 탕녀의 밀애
▶ 주제 : 남녀 간의 향락 추구
2. 해설
고려 충렬왕 때 지어진 노래로, 당시의 퇴폐적인 성윤리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노래는 4연의 분절체로 되어 있는데, 매연의 앞 4구는 한 여인의 성적 불륜의 행각을 그렸고,
뒤 2구는 그러한 여인처럼 자기도 한번 놀아보고 싶다는 탕자(蕩子),
혹은 탕녀(蕩女)의 독백을 읊은 것으로 보인다.
노래의 내용은 회회아비, 삼장사의 중, 우물의 용, 술집아비에 대한 것으로
사건의 성질은 모두 성적 불륜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조에서는
이 노래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대표적인 노래로 지목하여 배척하였다.
이러한 노래가 당시 고려의 궁중 연회에서, 방탕한 기질이 농후한 충렬왕의 기호에 맞추기 위하여 불려졌다 하니,
그 때의 군신들이 얼마나 향락적이며 퇴폐적이었나를 능히 짐작하게 해 준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몽고의 병화(兵火) 이후 원나라의 간섭과 왕권의 동요로 인해
사회가 혼란하여 퇴폐적인 생활로 흐르고 있을 때이다. 이 노래에서도 그 일면이 드러난 것처럼
위로는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외국인(회회아비)과 종교 지도자에게서도
타락한 성윤리의 예를 찾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때일수록 섹스 문화가 성행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려속요가 후기로 갈수록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경향이 짙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감상
쌍화점 : 고려 가요의 하나. 충렬왕 때의 작품으로 작자와 연대 미상으로 알아 왔으나
<고려사> 악지(樂志)에 한역(漢譯)된 <삼장(三藏)>이라는 노래의 내용과 꼭 같아 그 제작 연대가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왕이 연악(宴樂)을 좋아하여 오잠(吳潛)․김원상(金元祥)․석천보(石天輔) 등을 시켜
자주 노래를 짓게 했다는 점으로 보아 이 <삼장>, 즉 <쌍화점>도 그들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노래를 고려 시대의 속요(俗謠)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전 4절로 된 이 노래는 퇴폐한 당시의 성(性) 윤리를 잘 나타냈으며 나아가 그것을 풍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표현면에 있어서도 유창한 운율과 아울러 봉건시대의 금기(禁忌)이던 왕궁을 우물로,
제왕을 용(龍)으로 은유(隱喩)한 것은 뛰어난 표현이다. 이조 성종 때 음사(淫辭)라 하여 가사를 약간 고쳐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전하고 있고, 어떤 문헌에는 <상화점(霜花店)>이라 한 곳도 있는데 쌍화점(혹은 상화)는 만두라는 뜻이다.
쌍화점 노래는 고려 충렬왕 때 궁중악의 하나로 상연되었던 가극의 대본이었다.
지은 사람은 충렬왕 5년에 승지였던 오잠(吳潛) 이었다.
이 노래를 불러야 했던 사람은 궁중에 적을 둔 남장별대(男粧別隊)였다.
남장별대는 노래기생, 춤기생, 얼굴기생으로 편성된 여자배우단 무대 이름은 향각(香閣)이었다....
(중략)...무대가 뒤로 물러났으며, 장막을 지니고 있는 것
고려 사회의 질서가 흐트러지면서 어지럽게 된 것은 충렬왕조부터였으며,
충렬왕조에 두드러진 것은 몽고풍이 들어온 것이다. 쌍화점 가극도 몽고풍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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