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리다 마주친 병무와 함께 9시30분 정각에 수서역 6번 출구를 나오자 벌써 많은 인원이 와있다. 이렇게
많이 모이기는 근래에 없던 일로 멀리 남양주에서 온 김석조와 졸업 후 35년 만에 보는 염동익(염병성)도 있다.
과거 이 부근에는 포장마차가 수 채 있어 오다가다 한잔씩을 하던 곳인데 10년 만에 오니 이 자리는 주차장으로 변해있고
십자로를 중심으로 맞은 편 세 곳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있다.
곧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메마른 수목림과 푸른 소나무 수풀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대모산(大母山)은
산세(山勢)가 부드럽고 경사가 완만해 처음에는 힘 안들고 편안한 산행이다. 나무들은 키가 크고 종류에 따라 서로 대항
하듯 갈색과 청색의 대조를 이루며 하늘을 향해 곧바르게 솟아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면에는 마른 낙엽들이
수북이 깔려있고 응달에는 잔설이 남아 있어 잔잔한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희뿌연 안개 때문에 시가지 전망을 즐길 수가 없다. 예보된 대로 오후에 비가 뿌려 이 매연 같은 안개를 모두 걷어가
버렸으면 좋겠는데.
정상으로 가는 주능선은 돌덩이나 자갈이 별로 없는 깔끔한 흙길과 중간 중간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의 연속이다.
좌측 편은 헌인릉과 국정원의 보안시설을 위해서라는 뜻으로 1994년에 설치된 3 km의 철책이 산을 양분하고 있어
군데군데 먼 경치를 볼 수 있는 전망을 막고 있다.
헌인릉(獻仁陵)은 조선왕조 3대 태종과 왕후 민씨 무덤인 "헌릉"과 23대 순조와 왕후 김씨의 무덤인 "인릉"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1995년 11월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이곳에 들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14년
이란 세월이 흘렀다.
산불 감시탑을 지나 정상에 올라도 여기가 진짜 정상인지는 언듯 모르겠다. 여러 등산객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사진도 찍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기념비를 찾으나 입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바닥에 동판(銅版)이 박혀 있어
윗면에는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사각형 마크가 있고 아래 면에는 "대모산 정상 해발 291.6m" 라고 새겨진 특이한
표시가 있다. 이 판을 보니 마치 서양식 무덤에나 있는 묘비명(墓碑銘) 같은 느낌이 든다.
후방에는 서울종합방재를 위한 기지국이 설치되어있다.
대모산을 보고 나서 구룡산(九龍山)까지 1.8 km를 가려면 한참을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멀리 솟아 있는
산을 보니 저 높은 곳(306m)을 또 언제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역시 군시설 보호구역으로 철조망을 쳐져있어
반쪽 산행길이 되었다. 단지 이 철망을 따라서 오고 가니 길 잃을 염려가 없어 그거 하나는 좋다.
개포동 주공단지와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 회색빛 연무로 시야가 흐려 감흥마저 엷어진다.
날씨가 풀려 춥지는 않지만 높이 올라오자 바람이 살살 불어 조금 으스스하다.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서서 먹는 "입석파티" 를 즐겼다. 인원이 많다 보니 여러 타입의 술과 반찬, 안주, 과일에
후식까지 나왔다. 향이 강한 인동주(忍冬酒)와 국산고량주에 목포에서 요양 중인 정태원이 보내온 약주를 마시며
유부초밥, 김장양념, 오징어무침 등을 맛보다 보니 다리 아픈 줄을 모르겠다.
약수터가 16개나 이를 정도로 수량이 풍부해 무더운 여름에 오면 맑고 시원한 약숫물을 마음껏 마실 수가
있어 좋겠다. 지금은 한겨울이고 워낙 가뭄이라 어떨지 모르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 나무가지가 이재중의 얼굴을 가리다니......
무거운 배낭을 매고 두 개의 산을 연이어 오르내리는 조태형이 꽤 힘들어 보인다.
하산 중 무심코 발견한 콘크리트 벙커. 전쟁 시 수도권 방어를 목적으로 서울, 인천, 김포 주변의 높고 낮은
산에 벙커를 대대적으로 만들었는데 이도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늘 간 두 산은 대도시 안에 있는 한 줄기의 낮은 산맥이어서 과거 휘산회에서 간 백덕산이나 남덕유산 같이
새하얀 눈에 덮힌 고지대를 올라가 수북한 눈길을 헤쳐 나가는 돌진감이나 아이젠을 끼고 급경사를 미끄러져
내리는 스릴감 같은 것은 없고 그냥 하루를 왠 만큼 운동했다고 느낄 수 있는 중급 코스의 산이었다.
하산주는 수서역전 로즈데일 빌딩의 지하상가에 있는 '병천 아우내순대'에서 하기로 했다. 구룡산을 보고
내려오다 지름길로 빠져 먼저 도착한 이들이 기다리고 있어 걸음을 재촉했다.
역 앞에서는 모두 모여 같이 간다며 후진 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영 모습이 보이지 않고 담배를 사러
간 김진순도 아직 오지를 않아 일단 일부만 들어가 여장을 풀고 이미 진을 친 다섯 명 옆 자리에 합석하고
나서 순대전골과 김치전을 주문했다.
인원이 모이자, "오늘 이렇게 성황리에 모여 준데 대해 감사한다!" 는 김진순 회장의 인사말과 함께 앞으로
육산회의 발전을 위한 건배를 들었다. 푹 고은 사골국물은 야채와 양념이 많이 들어가서 맛은 진한데 순대
양이 적어 몇 번을 추가했다.
술은 소주파와 맥주파, 소맥파로 나뉘어 19병이나 마셨다. 그리고 이병무의 제안으로 회장과 총무를 부를
때는 반드시 '님'자를 붙이기로 하고 또 그의 이름은 친근감을 위해 "이"를 빼고 "병무"라고 부르기로 했다.
염동익도 자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며 "다음에는 좀 더 능숙한 산행을 위해 힘써보겠다"고 다짐했다.
이어서 김재선이 2차를 쏜다고 하여 모두들 생맥주 집으로 향했는데 나는 소맥을 하여 더 이상 마시면 취한다는
이유를 대고 자리를 떳다.
이제는 모두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술, 담배 등의 기호(嗜好)도 좋지만 건강을 위해 절제를 해야겠다.
며칠전 동창 중에 "강재희"(성대 수학과 졸)의 맏형이 간암으로 작고하여 청량리 제기동의 위생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그 형도 담배는 많이 피우나 간과 폐가 깨끗해서 안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갑자기 몸이
아파서 진찰을 받아 보니, 간에 생긴 "선암"(腺癌, 선을 구성하는 세포에 발병하는 악성 종양)으로 인생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믿기지 않았으나 사실이 그런 걸 어떻하나... 그러니 모두들 건강에 유의하자!!!
어두운 이야기는 잠시 그만하고 이제 화제를 바꿔 본인 신동천이 이번주 상가 경매에 성공해서 큰 이익을 보게
됐으니 축하하는 뜻에서 다음 하산주를 사기로 함. 2월 둘째 산행후가 적당한데 바지와 장갑 두 켤레(홍승표)를
받은데 대한 답례도 겸해서 하오니 평소보다 비싼 요리나 고급음식점으로 할까 하니 많은 참석 바람.
PS : LA에서 업무를 마치고 귀국한 김윤기에게 연락이와 금후 등산에 자주 나온다고 하니 멤버가 또 한명 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