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조금씩 얼음이 풀리고 있다.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깝게 봄이 오고 있는 것이리라.
'봄은 어디서 오는가'고 누가 묻는다면 '아지랭이와 쑥에서'라고 나는 대답하겠다.
아지랭이는 실크 머풀러 같은 유혹으로 배회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짧은 봄을 내내 현기증으로 앓게 하고, 쑥잎은 아지랭이 떠도는 밭둑과 논길 마른 덤불 속에서 보얀 털보숭이 잎을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소생시키어, 하마터면 모른 채 지나칠 뻔했던 세상 일과 사물의 진수를 새로운 애착으로 바라보게 하곤 한다.
친구여, 이런 때면 함께 들길을 걷고 싶다.
아직도 여기저기 잔설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희끗희끗 머물러 있는, 지난 가을 이래 무관심 속에 버려졌던 마른 풀들은 군데군데 불에 그을러 까칠한 수염처럼 을씨년스러운 2월의 들판을 걷고 싶다.
흔히 봄을 연두빛 분홍빛 혹은 보라빛이라고들 말하지만 최초의 봄의 색깔은 각성과 경이로 반짝이는 은회색이다.
아지랭이가 그렇고 얼음장 밑을 흐르는 강물이 그렇다.
아직 얼어붙은 겨울 신발, 바람은 호두기 소리를 내며 의뭉하게 파고들고 속으로 골병들게 하는 냉기가 복병처럼 엎드린 2월.
그러나 그중 양지바른 냠향의 언덕 아지랭이 아래 의연히 살아오르는 쑥잎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과히 무심한 사람만 아니라면 그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으로 떨리는 탄성을 터뜨릴 것이다.
아지랭이는 굳게 얼어붙었던 지면이 녹으면서 그것이 증기로 피어오르는 기화열의 승천현상으로, 유독 쑥이 있는 둔덕에만 아롱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회의 공장 지붕 위나 아스팔트 위나 빌딩 숲에 얼씬대는 수증기의 곡선까지 아지랭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아지랭이는 반드시 쑥나물이 있는 둔덕과 밭고랑, 낮은 언덕에 다사로운 입김처럼 설레어야 한다.
쑥은 수많은 봄나물들, 예를 들면, 냉이 보리볼테기, 질경이, 도리깨나물, 씀바귀 꽃다지, 코딱지나물, 초록잎, 깜박나물, 달래, 미나리아재비 등.... 그 어느 나물보다도 일찍 출현한다. 쑥은 봄의 전령인 동시에 봄나물의 총수다. 비속하지 않은 그 외모와 단순한 풋내가 아닌 그 향기, 겨울의 온갖 고난을 이기고 일찍 소생하는 의지와 인내와 결단이 봄나물의 총수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너무 순하기만 하고 그래서 우스워 보이고 어리석은 사람을 흔히 쑥이라고 불러 비웃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겸손이 미덕이란 말은 애시당초 빈말이고, 약고 억세고 표면에 시끌짝하게 떠서 난 체하는 것들만 인정받아 왔단 말인가? 그리하여 쑥처럼 외진 곳에 있는 듯 없는 듯 묻히어 있는 향기는 못나보여 깔보았던가?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중 가장 아름답던 부분은 나물 캐러 다니던 열살 안쪽의 일들이었다. 그것은 내 추억 중의 추억이며 내 전 인생의 보화다. 봄 한나절을 한 소쿠리 나물로 바꾸어 가지고 돌아오면 그것은 곧잘 어른들 보기에 하찮은 것이어서 조잡한 소꿈놀이 정도로 취급당하여 섭섭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나물을 발견하고 소리치며 달려갈 때의 흥분, 뾰족한 주머니칼로 '사각'하는 소리를 내면서 검은 땅을 후빌 때의 그 상쾌한 촉감.
이따금 고개를 들어 멀리 신작로께를 바라보면 온 벌판에서 일제히 피어오르는 아지랭이로 술렁대곤 했었다. 나물을 캐던 그 시절 나의 행위는 봄은 환영하고 그 봄을 향유하는 가장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적극적인 표현이었다.
전자오락실과 로보트 만화영화, 그리고 속눈썹이 유난히 긴 깡마른 인형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드레스를 갈아입히며 소일하는 오늘날의 어린애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초라하고 가난했던 나의 유년, 그러나 물질적인 빈궁을 열 두번 덮고도 남을 정신적 풍요와 비옥한 대지의 지평선. 이들 때문에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나물 소쿠리를 채우면서 아지랭이의 귓속말을 들었던 나는 내 인생의 아름다운 미래를 얼마나 가슴 설레며 그리워하였던가?
그러나 그 시절 내가 그리던 윤곽, 그 색체에 합당한 오늘을 나는 지금 충분히 살고 있는가?
봄이다. 쑥과 아지랭이의 봄이다.
나는 오늘 근처 수퍼마킷에 가서 비닐 하우스에서 기른 쇠약한 쑥이라도 몇 줌 사고 싶다. 저녁 식탁에는 맑은 된장기의 쑥국을 향수처럼 올려 놓고 싶다.
(이향아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