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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참여와 협력 문화
김연정(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인증위원)
- 「공동육아, 더불어 삶」 중에서 발췌
들어가며
공동육아는 ‘내 아이’를 단순히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대신 봐주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즉 육아를 다함께 실천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위키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공동체(共同體)는 보통 같은 관심을 가진 집단을 말한다. 인간의 공동체에서는 믿음·자원·기호·필요·위험 등의 여러 요소들을 공유하며, 참여자의 동질성과 결속성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서구에서의 공동체 개념으로 쓰이는 단어인 community는 라틴어로 같음을 뜻하는 communitas에서 왔으며, 이 말은 또한 communis, 즉 ‘같이, 모두에게 공유되는’에서 나온 말이다. communis라는 말은 라틴어 접두사 ‘con-(함께)’과 ‘munis(서로 봉사한다는 의미)’의 합성어에서 나온 말이다. 일반적으로 공동체는 혈연이나 지연에 기반한 전통적인 닫힌 공동체와, 공동의 관심사와 목표·이해로 구성된 열린 공동체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개념적 정의를 적용해 볼 때 공동육아는 우리의 아이들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고자 하는 공동의 목적과 육아라는 관심사를 가진 부모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육아 공동체인 셈이다. 공동체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며 함께 공유되어진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헌신이나 배려가 요구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힘은 서로, 함께 라는 양방향의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닌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공동육아의 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참여,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
1. 참여란, 공동육아를 실현하는 주체로서의 부모 역할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균형을 이루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자라기를 원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할 줄 알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거침없이 해 나갈 방법을 찾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되기를 희망하며 공동육아에 참여한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가 정작 삶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아이가 그렇게 자라기는 쉽지 않다. 공동육아에서 아이들은 가정과 공동체 내에서 연결되는 흐름을 갖고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공동육아 교육을 통해서도 삶을 배우지만 부모의 실천적인 삶을 보고 배우기도 한다. 조절 능력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것과 공동체가 필요한 것을 구별해 내고, 지금 해야 할 것과 시간이 필요한 것 등을 조율할 줄 알며, 품을 내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다그치지 않고 격려하며 같이 가기 위해 기다려주는 등... 부모가 공동육아 안에서의 삶을 순간순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아이들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공동육아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아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 친구와 이웃을 만드는 것, 즐거운 삶을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부모 참여라 할 수 있다.
2. 참여의 방법: 다양한 생각을 듣고, 이야기를 하고, 풀어내기
공동육아 공동체에서 부모가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① 공동체의 운영이나 교육적인 논의를 위한 의사 결정 과정이 중요하므로, 그 과정에 참여하여 주체자로서 1인 1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육아를 실천하는 공동체로 모인다는 것은 조직이 활기 있게 살아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사안에 대한 부모의 동의와 지원이 꼭 필요하지만, 합의되지 못한 각자의 다양한 생각은 공동체의 결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공동육아 부모들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공동육아의 실천에서 부모들의 의결이 필요한 각종 회의는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매우 부담스럽고 참여가 쉽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종종 여러 공동체에서 오프라인의 만남이 어려워 각종 SNS나 카페 등의 댓글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며, 의사 결정을 하기도 한다. 온라인을 통한 의견 교환과 의사 결정은 의견 제시자의 충분한 배경 설명이 생략될 수 있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배제된 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또한 글은 읽는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 때문에 오해와 갈등의 소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각 공동체의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얼굴을 마주보고 진행할 수 있는 의사소통 구조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의사 결정 과정이 필요한 모임에서는 서로의 다른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하며,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공동체의 한걸음 전진을 위해 다른 생각에 동의해 주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② 공동체를 단순히 일이 진행되도록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들간의 끈끈한 관계망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조직으로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공동육아에서는 아이의 행복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구성원인 부모와 교사의 행복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공동체의 운영과 구성원간의 관계 맺기에 참여하는 부모에게 이 모든 과정이 일이 되어서는 지속하기가 힘들다. 공동육아는 일의 결과를 금전적으로 보상 받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나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육아 일이나 관계 자체가 즐겁지 않으면 육체적·심리적으로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육아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만나면 즐거운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방모임, 각종 소모임, 부모 모꼬지 등 같이 무언가를 계획하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진행하고, 시간적·물리적으로 참여가 힘든 부모들도 같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서로 만나는 자리가 즐겁고 여유가 있으려면 간식이나 밥, 간단한 차라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기를 권한다. 음식은 그 자리에 함께 하는 사람 사이의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관계를 부드럽게 하며,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3. 자발적 참여: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만났는데, 내일 또 만나고 싶은 마음
부모 참여에 대한 부담은 공동육아를 시작하는 부모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아이를 키우고 생활하는 공동체의 선택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를 선택하여 참여를 시작한 순간부터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은 자동적으로 발생되며, 공동육아의 부모 참여는 부모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참여의 수준이나, 방식, 횟수 등은 해당 공동체의 여건에 맞도록 언제나 조정 가능해야 한다. 이 또한 전체 구성원들의 합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선택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책임과 의무로서의 부모 참여는 매우 소극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참여 의지는 공동체의 가치와 철학에 깊이 공감하지 않으면 저절로 나오기 어렵다. 따라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부모 참여를 위해서는 본인이 선택한 공동육아 공동체의 가치와 철학을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부모 참여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면 공동체 운영와 실천은 매우 경직되고, 메뉴얼화 되어 버리게 된다. 공동육아에서의 부모 참여는 일로서가 아닌 부모 스스로가 천천히, 즐겁게 참여할 때 지치지 않고 길게 함께 갈 수 있다.
4. 부모 참여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
공동육아에서 바람직한 부모 참여의 방법은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내는 것, 그로 인해 그것이 주는 안정감을 공동체 구성원이 온전히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공동육아의 처음 시작 단계에서는 일보다는 친목의 모임을 자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 결정 및 의견 제안은 공식적인 통로(총회, 이사회, 운영위원회 등)를 통해서 진행되나, 그 외 부모 참여는 작은 단위의 모임, 소모임이나 방모임 등 거미줄 같이 빽빽한 친목의 관계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이런 모임을 통해서 부모간의 관계가 유연해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공동체의 역할과 일을 분담할 때도 상호 호혜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공동체를 위한 부모 참여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과거 공동육아 조합형의 경우 대부분의 어린이집과 조합의 일을 부모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어린이집 및 조합 재정 관리에서부터 어린이집 개·보수, 청소, 놀잇감·놀이터 만들기 등 전 분야에 걸쳐 부모들이 품을 내어 참여하였으나, 세대 및 사회의 변화에 따른 생활방식의 다양화는 공동체 일의 수행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이러한 차이를 때때로 공동육아 현장에서 과거의 부모 참여 방식과 현재의 부모 참여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동육아 실천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운영 방식이나 참여 방식의 첨예한 대립으로 사람을 잃고 나면 결국 조직만 남게 된다. 사람 없는 조직은 결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부모 참여 방법은 언제든지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는 정해진 방식은 없다. 단지 공동육아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공동체 구성원간의 협의는 매우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구성원이 동의하고 같이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협력,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것
1. 정확하게 일을 나눈다는 것은 정말로 공평한 일일까?
처음 공동육아를 시작할 때 부모들의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 찬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고, 뜻이 맞는 육아 친구들과 협력자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도 시작하고 진행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초기 공동육아를 만든 부모들이 졸업하고 새로운 부모들이 많아지다 보면, 일에 치여서 좀 쉬고 싶은 상황이 되기도 하고 일을 나누어 맡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부모 참여가 동등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일의 배분에 있어서도 무언가 평등하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게 되면 불만이 생기고 부모들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중재하거나 해결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공동육아 부모들은 흔히 말하는 1/n 방식, 최대한 일을 똑같이 나누거나 누구에게나 역할을 정해 주어 그 일만을 수행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어떻게 보면 일의 효율성을 높이거나 서로 간의 신경전을 줄이며, 갈등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등의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의 참여나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자발성, 협력에서 나오는 가능성, 즐겁게 참여하는 마음 등의 경험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정해진 역할만 수행하게 되는 소극적 참여를 가져 오는 단점이 있다. 개개인이 가진 재능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누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던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어떤 일도 당연한 것은 없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 공동체 모두를 위해 하는 어떤 역할도 감사한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2. 협력의 문화, 공동체라는 이름의 우산을 같이 쓴 부모들
공동육아라는 공동체는 ‘하나의 커다란 우산을 같이 쓴 사람들’로 비교할 수 있다. 각자가 다양한 옷을 입고 제각각의 신발을 신고 다른 가방을 메고 있지만, 우산 아래 모여 있어야만 비를 피할 수 있으며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다. 가는 방향은 앞으로, 옆으로 혹은 뒤로 갈 수도 있으나 모두가 협의해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비를 맞고 어떤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게 된다. 각자의 키가 다르면 우산을 드는 높낮이도 변화가 필요하며, 한 사람만 우산을 계속 들고 있기 힘들기 때문에 서로 돌아가면서 우산도 바꿔 들어야 한다.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비를 많이 맞으면 안쪽에 있는 사람들과 자리바꿈도 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비를 적게 맞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우산 아래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속도와 호흡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공동육아에서의 구성원들 간의 관계도 이와 같다.
각자의 다양한 배경과 사고, 삶의 방식을 갖고 살아온 구성원들은 육아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지향하지만 그것의 실천에 있어서는 100인이면 100개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다름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초기의 설립 목적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그 순간을 함께하는 옆에 있는 공동체 구성원의 필요를 파악하고, 도와주며 걸음의 속도를 맞추는 것... 그것이 공동체라는 이름의 우산을 같이 쓴 공동육아를 실천하는 구성원의 모습이다.
3. 갈등에 대처하는 자세
갈등(葛藤)의 어원을 보면 칡넝쿨(葛)과 등나무(藤)이다. 생김새를 보면 칡넝쿨은 오른쪽으로 꼬이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꼬이면서 올라간다. 칡넝쿨이 보기에는 등나무가 잘못 꼬였고, 등나무가 보기에는 칡넝쿨이 잘못 꼬였다.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간의 갈등도 이와 같다. 육아라는 같은 지향을 지닌 공동육아 안에서도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심화된다. 갈등 관계에 놓인 사람들은 내가 아닌 상대의 잘못이라고 비난하기 쉽다. 아이들 간의 갈등은 어느샌가 부모의 갈등으로 심화되기도 하고, 부모와 교사 혹은 교사간의 갈등 또한 비번하게 일어난다.
공동육아 현장에서의 갈등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이루어진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계속 참다가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고, 나와 다른 의견이 나에 대한 적대적 행동이라고 오해하는 순간 감정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보통 당황하면 화가 나게 되어 있는데 상대방을 잘 알면 그 사람의 돌발행동에 화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등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특성상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지만 전체가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갈등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갈등이 일어난 경우 방치하거나 덮어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수면 위로 올려놓고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를 지속적으로 경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구성원 전체로 공론화하기 전에 반드시 이사회 혹은 운영위원회, 교사회 등에서 충분히 의견을 모은 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비난이나 비판이 아닌 내가 속한 공동체 혹은 상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져야 한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해진 답이 없다. 각 공동체 특성과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구성원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객관적으로 상황이 정리되는 것이 필요하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도 있다. 내가 갈등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우선적으로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면이 나를 자극하며 그 자극에 대한 나의 반응에 대하여 점검해보고, 나의 의견이나 행동에 상대가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갈등의 문제점을 찾은 경우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고 나부터 고쳐나가는 용기도 필요하며, 때로는 갈등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4. 협력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
공동육아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동체를 직접 운영하는 주체이자 참여하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간의 상호 협력은 공동체를 움직이는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하게 된다. 논어의 「자로」에 나오는 사자성어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공동육아 실천에서 구성원의 협력을 잘 설명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어울리기(화, 和)는 하지만 같아지지 않고 소인(小人)은 같아지기(동, 同)는 하지만 어울리지는 않는다.”라고 하셨다. 어울림(和)에는 나의 존재도 있고 남의 존재도 있지만, 같아짐(同)에는 나만 있고 남이 없거나 나는 없고 남만 있는 경우, 즉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가 철저히 맞추는 경우만 있는 것이다. 공동육아에서 각자의 생각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을 따르거나 구성원 한 사람의 독단적인 결정에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조율하고 맞추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목소리가 크거나 적극적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의견이 없거나 동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분위기 혹은 다른 방식으로 본인들의 의견을 풀어가고 싶을 때가 많다. 따라서 당장 결정해야 하는 급한 사안이 아니라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모두의 생각을 듣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협력에 의한 구성원과 공동체의 변화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을 들여 매우 천천히 진행된다. 때로는 극과 극의 결정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서로의 다름과 상이한 요구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협력적 관계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매우 더딘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의 과정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바뀌는 공동육아의 환경을 생각하면 그 변화의 시간은 더욱더 느리게 느껴진다. 한 발짝 성장하는 것 같다가도 새로운 환경이나 구성원, 사안에 따라 제자리 걸음인 듯 하고, 해마다 새로운 갈등으로 다시 공동체가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자. 왜냐하면 변화는 그 공동체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처음 시작된 공동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잘 자라고 성장한 사람들이 또 다른 공동체로 이동해서 그곳을 성장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국 협력의 문화는 공동체 개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변화된 구성원이 영향력을 끼치는 다른 공동체의 성장과도 연결된다.
5. 협력의 문화, 서로를 연결하는 힘
협력은 공동육아 공동체 내·외부 누구에게나 필용한 일이다. 공동체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간의 협력 문화를 잘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육아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협력은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재정적인 어려움이나 터전의 전환이 필요할 때, 많은 구성원이 갑자기 조합을 탈퇴하거나, 새로운 구성원 등이 충원되지 않을 때, 또는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공동체가 분열의 위기에 놓였을 때 등... 이런 일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부모·교사 할 것 없이 협력적 관계를 형상한다. 그러나 평상시에 구성원 간의 신뢰와 이해가 그 조직의 바탕에 녹아있지 않으면 위기의 순간에 협력으로 발휘되지 않는다. 즉 협력은 평상시에도 끊임없이 존재하고 이행되어야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될 수 있다. 협력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숨을 쉬듯이 공동육아 안에서 공기처럼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협력은 구성원 간에 일종의 암묵적인 강제적 행동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자율적으로 수행되는 공동체의 일을 일종의 임무완수처럼 “내 역할만 잘하면 되지 뭐.”라고 공정할 수도 있겠지만, 공동육아는 관계의 힘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 역할만 잘 수행한다고 잘 굴러가지 않는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서로 연결할 때 공동육아라는 바퀴가 잘 굴러갈 수 있는 동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로를 연결하는 힘, 협력의 문화가 공동육아를 굴러가게 하는 실질적인 동력이라 할 수 있다. 문화는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다. 협력의 분위기는 공동체 구성원이 바뀌어도 조직 안에 남아 있어야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는데, 공동체 구성원의 교육이나 졸업한 구성원과의 교류를 통해 협력의 문화를 전수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졸업한 선배 구성원들이 지역 내에서 다양한 마을 활동을 하면서 상호 교류하는 것은 공동육아 공동체가 확장성을 가지고 지역과 협력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6. 삶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공동육아의 협력
공동육아는 내가 속한 육아 공동체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 지역사회, 국가 모두가 우리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에 그 지향을 갖는다. 공동육아의 처음 시작은 조합형 공동육아였지만, 이제는 공동육아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육아 정책들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공동육아 형태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비롯하여 유치원, 지역아동센터와의 협력 등 공동체 조직의 다양성을 통해 공동육아 보편성을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공동육아에 참여한 아이·부모·교사이며 이들 구성원이 가진 공동육아 경험과 노하우는 또 다른 행태의 공동체에서 그 씨앗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공동육아 운동을 생애주기 공동체 돌봄운동과 연계하고 협력하여 발전시킬 수 있다. 마을에서는 육아 품앗이, 초등방과후,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해 지역 내의 각종 마을 활동의 협력 관계를 넓혀갈 수 있다. 이는 아이의 육아와 성장뿐만 아니라 공동육아가 추구하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역 공동체성’이란 삶의 지향을 생활과 사회문화의 변화를 요구하는 지역 구성원들과 함께 확장하는 것이다.
나가며
마지막으로 공동육아 현장에서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하여 지금도 애쓰고 있는 수많은 구성원들의 열정과 노력, 협력이 공동육아의 확장과 보편이라는 결실로 맺어지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