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거제 계룡산 (570m)
넘실대는 바다와 철쭉을 동시에 감상
계룡산, 용 몸뚱이를 하고 정상에는 닭벼슬을 썼다. 승천을 꿈꾸며 바다 위로 솟아 올랐지만,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용이 된 것일까. 산자락에는 승천을 하고 싶은 꿈 위에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꿈까지 포개져 있을 듯하다. 바다와 하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꿈, 산은 그 꿈을 다시 꾸는지 연둣빛 나뭇잎을 용비늘처럼 반짝인다.
청용이 되어 일어서는 산등성이가 꽤 가파르다. 옆으로 새는 길도 주능선을 향해 꼿꼿하게 고개를 치켜든다. 한발 한발 올라가는데도 뒤로 떠밀리는 듯한 느낌,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찬다. 꼬마 둘이, 걷는 대신 두 팔을 벌리고 울음보를 터트린다. 안고 가든지 업고 가달라는 청이다. 엄마 아빠는 꼬마들 다리를 주물러 주며 함께 걸어가자고 살살 달랜다. 그러자 꼬마 둘은 내려가자고 떼를 쓴다. 별 뾰족한 수가 없는지 꼬마 둘을 안고 업은 엄마 아빠 걸음이 술에 취한 것처럼 휘청거린다. 그 걸음에 돌멩이가 채여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정자가 있는 전망대다. 마치 기다려준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댄다. 드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감탄하는 소리가 왁자하다. 그 감탄 속에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간간이 오간다.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처럼 그를 바다의 일부로 여기는 듯하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쭉 돌아가면 임진왜란 때 첫 해전이 벌어졌던 옥포만이 나온다. 아나도 이순신 장군은 그 옥포만에서 바다로 거듭났을 것이다. 잔잔하게 우리 가슴으로 밀려오는 남쪽 바다다.
주능선에 놓인 암릉은 순한 편이다. 길이면서 멋진 풍경이고 사방이 탁 트이는 전망대 구실도 한다. 그중 높은 바위에 올라서니 제법 너른 들에도 아파트가 들어서는 중이다. 다들 수직상승하는 아파트가 되고 싶은 걸까, 수직에 깔려 쓰러진 수평, 사라져 가는 들을 말없이 바라본다.
암릉에서 잠시 비켜난 정상 부근은 언덕처럼 펑퍼짐하다. 길가에는 꽃이 피었다. 흰색, 노란색, 자주색 작은 꽃송이가 줄을 지어 늘어선다. 철쭉은 군락을 이룬다. 어쩌다 한두 그루 피었을 뿐 아직은 꽃봉오리다. 저 꽃봉오리가 다 꽃잎을 터트리면 정상이 닭벼슬처럼 붉게 물들 것 같다. 서서 기다리면 꽃봉오리가 터질까, 잠시 걸음을 멈추고 꽃구경에 빠진다.
정상에 서면 갯바위에 서있는 것처럼 발밑에서 바다가 넘실거린다. 정상을 지나 의상대 가는 길도 그렇다. 암릉 또한 절벽으로 일어서며 절정을 이룬다. 의상대에는 절터가 있다. 신라 때 화엄종을 연 의상대사가 세웠던 절이다. 어느덧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절터를 둘러친 바위들은 지금도 울타리 노릇을 하고 있다. 아늑한 절터에 걸터앉아 절이 된 기분에 젖는다.
의상대를 지나면서 길은 좀 수월해지는데 걷기는 오히려 더 힘이 든다. 봄 내내 쌀쌀하던 날이 느닷없이 한여름 날씨가 된 탓이다. 암릉과 잔 나무뿐인 능선길이 뜨겁다. 그 뜨거움이 불꽃처럼 몸에 옮겨 붙는다. 자꾸 물을 들이키지만 이내 땀으로 줄줄 흘러내린다. 신열을 앓는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린다.
거제는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그 수용소의 통신시설이 있던 곳에 선다. 폭격당한 집처럼 창문이 뻥 뚫린 건물벽 세 개가 남아 있다. 흔히 한국전쟁을 '동족상잔의 비극' 이라고 한다. 이산가족이 천만을 헤아리니 맞는 말이다. 동족끼리 삼년 동안 피 터지게 싸워 휴전선으로 끊어낸 것은 인륜과 천륜이다. 육십년 동안 서로 남이 되다 못해 한 맺힌 원수처럼 지낸다.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오갈 수는 없을까. 남북이 하늘과 땅 사이 만큼이나 멀다고 해도 가족은 서로 오가야 하지 않겠는가. 꼬마 둘을 안고 업고 낑낑대던 젊은 부부는 정상에 오르지 못해도 아름답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도 어머니를 가까운 곳에 두고 극진히 모셨다. 여르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 오순도순 함게 하는 것, 그것이 참살이가 아닌가 싶다. 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할 것이다.
선자산 가는 길은 완만하다. 하산하는 길은 산길이 아닌 것처럼 더 완만하다. 걷는 것이 앉아 쉬는 것처럼 편안하다.
*산행길잡이
실내체육관-(1시간25분)-정상-(55분)-고자산치-(40분)-정자-(5분)-선자산-(5분)-정자-(50분)-1018번 지방도
실내체육관 앞 주차장에서 산 쪽으로 난 도로를 5분쯤 따라가면 거제공업고등학교 정문이 나온다. 학교 정문을 지나가면 곧 등산로 입구다. 등산로(왼쪽길)로 올라서면 이내 도로 공사현장을 만난다. 도로를 건너 다시 등산로로 들어서 오른쪽 길로 간다. 이후에 길은 두어 개 샛길인데, 주능선에서 다 만나는 길인 듯하다. 샛길을 버리고 오르막 등성이를 따라 쭉 직진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30분쯤 올라가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건너 25분쯤 더 올라가면 팔각정이 있는 전망대다.
전망대를 지나면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위험한 곳은 없고 곳곳에 계단도 설치돼 있으나 신경을 써야 되는 곳이 더러 있다. 20분 정도 바위를 타고 가면 철탑이 나오고 산이 평퍼짐해진다. 철탑에서 완만한 길을 5분쯤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서 내려서면 또 암릉이다. 50m를 가면 갈림길인데, 절터 0.3km 방향인 오른쪽 길로 가서 철계단을 오른다. 5분쯤 가면 의상대사가 세웠던 절터가 남아있는 의상대다. 의상대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열린 길은 신현읍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직진해서 20여분 가면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통신시설이 있던 유적지다. 유적지에서 고자산치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고자산치에서 임도를 건너 직진한다. 대체로 완만한 길을 40분쯤 가면 정자가 나온다. 정자 왼쪽에는 하산길이 하나 있다. 계속 직진한다. 5분쯤 가면 선자산이다. 정상석은 없고 위치번호 거제 8-7 이란 푯말이 서있다. 선자산에서는 정자까지 되돌아간다. 5분, 하산길로 접어들면 길 상태가 좋은 오솔길이다. 45분 정도 내려가면 덕산아파트, 5분 더 내려가면 1018번 지방도가 나온다.
*교통
부산사상터미널에서 고현, 장승포행 직행버스가 06:40부터 40분 간격으로 있다. 소요시간 2시간, 요금 12,600원.
부산여객터미널에서 고현행 배가 08:30, 12:30, 16:30. 요금 21,500원.
고현터미널 앞에서 거제시청으로 가는 100번 버스가 15분 간격으로 있다. 요금 1,000원. 거제시청 정류소에서 고현성 계룡루를 지나면 '거제시' 라고 새긴 몽돌 표지석이 나온다. 이 몽돌 앞에서 왼쪽길로 올라가면 공설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이 나온다. 택시비 2,500원 정도 나온다.
날머리에서는 고현행 130번 버스가 15:48, 16:43, 17:48, 18:28, 19:28에 있다.
고현터미널에서 부산행 직통버스가 40분 간격으로 19:00까지 있다. 통영, 남마산을 경유하는 버스는 19:28까지 있다.
고현여객터미널에서 부산행 배가 10:30, 14:30, 18:00에 있다.
승용차는 남해고속국도를 타다가 서마산이나 내서요금소로 나가 14번 국도를 탄다. 고성에서 통영까지는 고속국도를 이용해도 된다. 거제에서는 다시 14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이정표 상 거제시청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시청 조금 못간 지점에서 공설운동장으로 올라갈 수 있다. 운동장 주변은 넓은 주차장이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날머리에 동동주 해물파전을 하는 민속주점(055-637-6617)이 있다. 고현터미널 부근에 파스텔모텔(638-3688)이 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부근에 찜질방을 겸하는 계룡산온천(638-0002)이 있고, 멍게비빔밥을 하는 백만석(637-6660) 등 맛집이 많다.
*볼거리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고현성(경남기념물 제46호)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때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 2월에 설치한 것이다. 인민군 15만, 중공군 2만 등 최대 17만3천명까지 수용하였다.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이념갈등으로 인한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하였다. 휴전 후 폐쇄되었다가 1983년 경남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자료와 기록물을 바탕으로 전쟁역사의 산 교육장인 유적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고현성은 유적공원 옆에 있다. 문종 원년(1451)에 쌓기 시작해 단종 원년(1453)에 완성됐다. 이후 성은 현종 4년(1663)까지 거제의 읍성 역할을 했다. 관아를 거제면으로 옮긴 이후에 성 내부는 폐허가 되었다. 성은 1950년 이전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를 설치하면서 파괴됐다. 현재는 80m 정도만 남아 있다.
글쓴이:박미림
참조:거제 계룡산
참조:고속철 산행 계룡산
참조:계룡산진달래
참조:계룡산르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