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불교의 현황과 역사
라오스는 전 국토 면적 236,800㎢가 해안선이 없는 완전한 내륙국가다. 동쪽으로는 베트남, 서북쪽은 미얀마, 서쪽은 태국, 남쪽은 캄보디아와 인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346만 명, 그 중의 절반이 라오족이다. 이들은 대개 평야지대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메오족ㆍ야오족ㆍ쿰족 등 30여 종족은 고산지대에 살고 있다.
1975년 인도차이나반도가 베트남과 함께 공산화되면서, 공산국가가 된 라오스는 현재 수아누봉이 정권을 장악하여 친러노선을 걷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불교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인근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상황에 비추어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공산화되기 전의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 중요한 불교국가의 하나였다. 1965년 라오스 종교국(宗敎局)의 발표에 따르면 전 국민의 95%가 불교도이며, 승려 수는 12,845명(비구: 5,487명, 사미: 7,358명)이었다. 사원의 수는 베트남계를 포함해 1,726개. 이를 평균치로 환산하면 각 절당 비구가 3인, 사미가 4.2명꼴로 나누어진다. 같은 시기의 태국은 각 절당 비구가 평균 6.5인으로 환산돼 태국보다 라오스가 사원의 비구가 약간 적었으나, 사미는 다소 높았다. 그러나 비구와 사미를 합하면 태국은 10.1인, 라오스는 7.2인으로 태국이 라오스보다 높았다.
라오스는 불교가 국교로 되어 있었지만, 승려의 정치개입은 허락되지 않았다. 1960년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정치적으로 움직인 승려가 약간은 있었고, 그들이 파테트라오 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당시의 베트남과 같이 반정부 데모를 주동하는 승려는 없었다.
라오스의 불교교단은 태국과 마찬가지로 마하니카야파와 담마유타니카야파로 나누어져 있다. 종파별 비율은 마하니카야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부지방은 태국 쪽과의 관계로 담마유타니카야의 사원이 몇 개 있으나, 수도 브양트얀은 마하니카야의 사원이 50개, 담마유타니카야는 2개뿐이다.
교단의 최고책임자인 상가라자(法王)는 대대로 마하니카야에 속한 스님이 맡았다. 그는 자파(自派)만이 아닌 전 라오스교단을 관장한다. 상가라자 밑에는 5명의 고승으로 구성된 종교회의가 있으며, 지방에는 주지사에 해당하는 스님이 관할지역을 관장한다.
일반적으로 양가의 자제는 1개월에서 3개월 정도 견습승[沙彌]으로 출가생활을 경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활을 싫어하는 젊은이도 없지는 않으나, 그들의 부모는 자식이 승원에서 수도생활을 경험하기를 희망하는 편이다. 승려의 출가는 17세 미만의 소년은 부모의 허락만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 이상이 되면 촌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가 군대에 들어가야 하는지의 문제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다.
출가자는 한 푼의 돈도 없어도 된다. 때문에 빈곤한 가정의 자제들이 출가하여 교육을 받은 후 환속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이를 별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라오스불교는 사회교육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라오스의 역사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인도네시아족의 지배를 받다가 11세기부터 라오족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라오스에 처음으로 라오족에 의해 왕조가 성립된 것은 14세기 중엽 메콩 강 상류지역에 파킨이 세운 란창왕조다.
란창의 파킨은 브양트얀을 종속시키고, 루앙프라방에 왕도(王都)를 세웠다. 루앙프라방은 브양트얀과 같이 메콩 강을 바라보는 라오스의 중심지로서, 라오스의 역사는 이 두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라오스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11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라오족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상좌부 불교의 전통이 확립돼 있었다. 라오스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불교의 영향을 받아 살생을 삼갔으며 인사할 때도 합장을 했다.
불교가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란창왕조의 포테이사라트왕에 의해서였다. 열렬한 불교신도였던 포테이사라트왕은 많은 사원을 짓고 불교를 보호하여 이후 라오스불교의 기초를 정립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라오스에서는 국가적 행사나 민간의 관혼상제를 모두 불교식으로 행하며 승려들의 사회적 지위는 왕 다음으로 높았다.
16세기 이후 전통적으로 왕실의 보호를 받아온 라오스불교는 1947년 헌법개정 때 국교로 정해졌다. 또 1951년에는 태국의 선례를 좇아 ‘라오스 상가법’을 제정했다.
1957년에는 불멸 2500년 기념식도 성대히 가졌다.
라오스의 헌법 전문(前文)에는 ‘…라오스인민은 이 헌법에 의해 다음의 의무를 진다. 조국에 대한 신봉, 종교의 존중…’ 그리고 본문 7조에는 ‘불교를 국교로 한다. 왕은 그 최고의 보호자가 된다’, 제8조는 ‘왕은 열렬한 불교신도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명시했었다.
라오스의 불교사원 가운데 유명한 절들은 수도 브양트얀에 있는 방룡사(尨龍寺)ㆍ중앙사원(中央寺院)ㆍ타트루앙사ㆍ와트프라크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방룡사는 수도 브양트얀에 있는 유일한 베트남계 사원으로 규모가 크고 잘 정비되어 있다. 이 절에는 베트남인과 중국계 화교 불교신도들이 나오고 있다. 법당에는 본존으로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좌우보처로 봉안했다. 중국계 대승불교의 교리에 따라 아침에는 능엄주(楞嚴呪), 저녁에는 아미타경을 봉독하는 모습이 남방불교권에서는 특이하다.
중앙사원은 마하니카야파에 속한 두 번째 큰 절로 500여 년 전에 창건한 고찰이다. 장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은 라오스의 불교사원을 대표한다. 경내에는 팔리어학교도 부설돼 있으며, 비구와 사미 200여 명이 4학급으로 나눠 공부를 한다. 이 학교에서는 매년 3월 졸업시험을 치르는데, 이 시험에 합격해 졸업한 비구는 높은 대우를 받는다. 또 이 절에서는 일반 청소년들을 위해 야간학교와 일요학교도 경내에 운영하여 사회교육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타트루앙사는 라오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원이다. 광대한 부지에 금색과 흑색의 첨탑이 높게 솟아 있으며 그 밑에는 높은 기대(基台)의 희랑이 주위에 둘러져 있다. 이 절의 탑은 ‘황금의 탑’ 또는 ‘국왕의 탑’이라고 불려지고 있는데 탑 속에는 거대한 에메랄드불상이 안치돼 있었다. 이 불상은 타이가 약탈해 가 봉안하고 있다.
라오스에서 승려들의 평상생활은 새벽 4시에 기상하여 5시까지 좌선을 하고 6시에는 탁발을 나간다. 오후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취침 전에도 1시간씩 좌선을 한다. 좌선은 반가부좌로 1시간씩 하고 5분은 휴식을 취하는데 좌선법은 수상관(水想觀), 광상관(光想觀) 등의 관법으로 한다. 불전의식(佛前儀式)은 새벽 4시, 오전 6시, 오후 6시 등 하루에 3회를 한다.
한때 재가불교운동도 일어났던 라오스에서는 국내의 불안한 정정(政情)을 반영하여 불교와 사회주의를 접목하려는 움직임도 승려들 사이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