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탐방
경기도 안양 한마음 선원 대행 스님
‘나’라는 착이 없으면 '고(苦)'가 붙을 자리가 없으니…
글·사기순
내우외환(內雨外換;?)이라고 하던가. 산 넘어 산이라더니 경제위기에 물난리까지 그야말로 ‘이 세상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체득되는 이 즈음 경기도 안양의 한마음선원 대행 큰스님을 뵙게 된 것도, 그날따라 언제 비가 왔었는가 싶게 마치 가을날처럼 맑고 청명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스님을 뵙는 순간 그 알 수 없는 평온… 잔뜩 짊어지고 온 질문거리가 부질없어 보이고, 그저 뵙는 것만으로도 족할 듯했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습이 남아 어리석은 질문을 해댔고 스님께선 너그럽게 일일이 답해 주셨다.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네가 아는 만큼만 나도 알고 네가 보는 만큼만 본다. 몸뚱이가 다를 뿐이지 너와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게 불법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고 하시던 스님의 그 다정다감한 음성 속에서 올 여름의 번뇌망상이 다 녹아 없어진 듯했다.
스님 요즘 살맛 안 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님께서는 ‘삶은 고(苦)가 아니다’라는 법문을 자주 설하시고 그와 같은 제목의 법어집을 내셨는데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한말씀 해주십시오.
“지금 여기 올 때 걸어 왔지요? 발자국 짊어지고 오지는 않았지요? 한 발 디디면 뒷발자국은 없어지고 또 앞발자국은 딛지 않았으니 없는 것이고… 한 발 한 발 디딘 것도 결국 공한 것입니다. 찰나찰나 나투는 것일 뿐이지 그 어느 것도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이것 보면 저것 봐야 하고 이 일 하면 저 일 해야 하고 우리가 사는 게 다 그렇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각자 ‘나’라고 이름붙일 것도 없어요. 각자 이름붙일 나도 없는데 어떻게 고(苦)가 붙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일들이 그 동안의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생각이 지어낸 것이요, 집착과 관습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지 알고보면 하나도 걱정할 게 없는 겁니다. 진리가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고해가 아니라 광대무변한 불법을 그대로 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佛性)들이 부처님처럼 완전한 자유, 영원한 즐거움이 충만한 삶을 찾아가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그래도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해만 해도 이재민이 수천 명에 이르고 재산 피해 또한 천문학적인 수치라고 합니다.
“탈렌트가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데 고통스럽다고 합니까? 탈렌트 노릇 잘 해내기 위해 조금 수고스럽긴 해도 고통스럽다는 말은 안 합니다. 우리는 다 각자 배역을 맡고 세상에 태어난 탈렌트일 뿐입니다. 탈렌트가 한 배역만 맡지 않듯이 어디에도 영원불변한 나라고 이름붙일 게 없어요.
얼른 쉽게 말해서 이 물 한 컵을 내가 먹는다고 할 수 있겠소? 수많은 생명들이 달라니까 주는 것뿐이지 누가 먹었다고 하겠소? 우리 생각이 부족해서 그렇지 그대로 우주 삼라만상이 서로 연관짓고 연관지어서, 초월해서 돌아갈 뿐입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알 듯 모를 듯하니 답답합니다.
“나무들이 뿌리 없이 사는 것 못 봤지요? 그대에게도 뿌리가 있어요. 그 뿌리가 바로 불성(佛性)입니다. 그 불성은 수많은 광년을 진화하고 또 진화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또 부모가 되어 수없이 뒤바뀌어 가면서 수억겁 동안 거쳐온 자기 불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뿌리 즉 자기 불성을 모른다면 한생각 할 수 없겠지요. 이 한생각 할 수 있는 진실한 자기〔佛性〕는 본래 제 안에 구족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자기와 진실의 자기〔佛性〕가 둘이 아닌 이치를 알고 그 둘이 상봉하면 공법(空法), 공심(空心), 공생(空生)임을 저절로 알 수 있지요.
좋은 일 나쁜 일, 어렵고 힘든 일 기쁜 일 등등 모든 것을 놓고 그 진실한 자기, 불성이라고도 하고 한마음이라고도 하고 주인공이라고도 이름붙이는 그것에 맡기고 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에 놓고 관하다 보면 제 몸 그대로가 진리요, 부처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일체 만물 만생의 영원한 근원이 불(佛)이요, 말하고 돌아가는 자체가 교이니 진리의 다른 이름이 불교입니다. 생긴 모습이 다르고 삶의 차원이 달라보여도 다 평등하게 불성이 구족해 있고, 불법의 이치대로 여여하게 살아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따로따로 생각할 게 아니고 그대로 근본이며 진리인 불법과 삶이 둘이 아닌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스님께선 일체 경계를 주인공 자리에 놓고 맡기는 것을 수행법의 요체로 삼으시는데 보다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수행을 해야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현실의 자기와 진실의 자기(부처, 주인공)가 실로는 하나라는 것을 일러줄 뿐입니다. 지금 세상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코드를 굳이 빼놓고 부처가 아닌 중생이라고 우기고 있는 격인데, 주인공 자리에 놓고 맡기라는 것은 부처 자리에 빼놓은 코드를 잇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부처 자리에 연결되었다면 죽든지 살든지 뭐가 겁납니까?
이렇게 주인공 자리에 놓고 관(觀)하라 하니까 그게 대단히 어려운 일인 줄 알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임신하면 뱃속에서 어린애가 탯줄을 잡고 있지요? 배고프면 먹고 똥싸고 싶으면 싸고 그렇게 태평하게 자라고 있지요? 그와 똑같은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젖줄은 잡지 않고 전부 바깥으로만 끄달려요. 바깥의 무엇이 나를 구원해준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경전의 글을 보고 깨닫는 것도 아니고 설사 부처님이나 하나님이라도 나를 깨닫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누가 대신 먹어주고 똥 눠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만이 나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실천수행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님을 의왕(醫王)이라 칭송하며 스님을 믿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스님께서 원성 상원사 아래 토굴에 머물고 계실 때 토굴을 향해 절만 하고 가도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감응했기 때문에 병이 나은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얼굴도 보지 않고 병이 나으면서 왜 부처님, 한마음을 못 믿는지 모르겠어요. 자기 마음이 부처이니 진실로 자성불(自性佛)을 믿으면 병이 낫는 것은 물론이고 삼천대천세계의 이치를 알 수 있지요.”
한마음이 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말씀이십니까?
“0에다 수많은 0을 집어넣어도 0이에요. 그처럼 마음은 체(體)가 없어서 은산철벽도 뚫을 수 있고 지구도 넘어설 수 있어요. 물론 마음이라는 것도 이름이지만,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고, 그것이야말로 참된 에너지입니다. 마음으로 병을 지었으니 치유 또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실로 그런 마음의 에너지 때문에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진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내에 물리학, 심리학 등 제반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단체인 한마음심성개발연구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천체물리학이며 지구과학이며 부처님 법에서 어느 것 하나도 벗어나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심성을 도외시하고 과학만 발전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올곧게 살지 못하고 분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지구도 우리 몸뚱이와 똑같은데 그것을 모르고 자꾸 개발이다 뭐다 해서 몸살이 나게 하니 지구의 다른 생명들도 살기 위해 태풍을 몰아오고 장마가 지고 가뭄이 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육체도 다스릴 수 있고, 어디를 가든지 자기 주장자가 흔들리지 않아야 가정이든 사회든 일체가 평온해집니다.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 묘법인지를 깨달은 과학자들이 이 과학문명사회에서 보다 정교하게 불법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요.”
문명의 폐해로 갖가지 문제가 만연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재해도 재해려니와 정신을 뺏기고 사는 게 문제입니다. 제 주인공을 못 알아보고 헤매며 갈팡질팡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참 나, 주인공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모든 사회문제와 정신적 방황을 그치게 하고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인류에게 불법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현대 과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마음법을 깨우치는 데 있습니다.”
일찍이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왜 사람에 따라서 잘 살고 못 사는 차별이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으셨고, 성장하면서 늘 내면의 대화와 관(觀)을 통해 스물다섯 살 때 불법의 진수를 깨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출가 인연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응아’하고 태어날 때부터 출가를 했는데 어디 출가가 따로 있나요?”
스님께선 주로 자연을 스승삼아 공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수수가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 것을 보고는 수수 한 알이 나왔다가 왜 저렇게 수만 개의 알갱이가 되는가 하는 의문 속에서 뒤도 없고 앞도 없고 처음도 끝도 없이 시공을 초월하여 돌고 도는 도리를 알게 됐습니다. 누가 부처님 법을 일러 주어서 안 게 아니고 내 앞에 닥친 대상을 가지고 공부를 한 셈입니다. 이 세상 만물 어느 것 하나 부처 아님이 없고 스승 아님이 없습니다.”
스님께서 젊은 날 산야에서 용맹정진하신 것을 일러 부처님의 설산고행에 견주기도 하는데, 스님께선 고행보다는 생활불교를 강조한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몰라서 고행을 했지만 모든 것이 한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살아 숨쉬고 있는 삶 그 자체가 그대로 불법이고 진리이며 참선입니다. 지구가 어디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합니까? 쉬임없이 돌아가지요. 삶과 불법이 둘이 아니니 항상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살면 그뿐, 내 주인공자리 한마음에 귀의해서 늘 여여하게 살아가면 진리대로의 삶입니다.”
국내 포교에도 새바람을 일으키고 해외에 한마음선원 지원이 8곳이나 자발적으로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또 우리 나라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에 초청을 받으셔서 ‘미국이 남북분단에 책임이 있으니 한반도의 통일과 핵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미국은 장차 정신세계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설하셨고, 미국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조언도 해주신 걸로 알고 있는데 미국불교의 미래상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미국불교 한국불교가 어디 따로 있습니까? 모두가 내 몸이요, 한자리인 것을… 미국불교의 앞날은 매우 밝아 보였습니다. 그네들 가운데 오히려 우리보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드는 이들이 많아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요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기복하던 습성이 남아서 공부하기 힘들지요….”
스님, 많은 이들의 고통을 살펴 참된 이익을 주고 계신데 끝으로 특별한 회향 계획이 있으시다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시작도 없는데 끝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똥누고 밑 씻는 것도 회향인데 특별한 회향은 또 뭡니까? 우리는 서로 공존하면서 별의별 이름으로 상응하고 있으니 자성삼보(自性三寶)인 한마음에 귀의해서 그저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만생 만물에 회향하는 것이고 진리 속에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거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자기 주인공 한마음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한량없는 자가발전소에서 전력을 끌어 좋은 데 써달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 세상에 내 부모 내 자식 아닌 게 없고 실로는 모두가 둘이 아닌 한 몸이니 그 또다른 자기를 진실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저 안 된 일, 불쌍한 일 볼 때마다 ‘잘 됐으면 좋겠다’하고 축원해주면 그 사람 안에 있는 불성자리 즉 주인공자리가 알아듣고 잘 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질 때 바로 이 자리에 불국토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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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시대 가장 거대한 (?) 비구니스님인 대행스님 인터뷰 기사로 99년 월광불광에 실렸었는데 지금하고 상황이 똑 같군요...경제가 어렵고 물난리가 났을때...좀 묘한 일입니다. 이분의 법문은 한마음선원 홈페이지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주인공을 알게 해주신 큰스님... 오래 오래 건안 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행큰스님과 한마음입니다.
대행 스님의 말씀,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고 가슴을 적셔 줍니다. 참으로 훌륭하신 분. 블법에는 대미가 있음을 확신시켜 주시는 분! 그 은혜 갚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일어나게 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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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관세음 보살 !!!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