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은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고유명사다. 고3이면 다 용서되는 사회 분위기도 없지 않다.
힘들고 심적 부담감이 큰 시기, 열심히 공부도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고 부모와 말다툼도 하고 때론 충동적으로 가출도 하는 시기다. 부모들도 고3을 겪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 시절을 잊기 때문인가.
고3 자녀를 둔 집집마다 부모와 갈등이 적지 않다. 여기 질풍노도의 시기, 고3을 정면으로 다룬 웹툰이 있어 화제다.
고3의 방황,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그린 <아유고삼>을 만든 일등 공신, 김범진·이승복 교사에게 고3의 삶과 그들의 고민을 들었다.
취재 조진경 리포터 jinjing87@naeil.com 사진 전호성
편집부가 독자에게 ...
Are you 고3?
‘고3’ 이라는 말에는 측은함과 함께 비장함이 묻어납니다. 막 고3을 벗어난 학생들은 세상이 고3을 겪어보았는지, 아닌지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고3의 압박감과 불안감이 크다는 뜻일 겁니다. 처음 교육부와 충남교육청에서 고3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을 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지루한 학원물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탄탄한 스토리, 빠른 전개, 무거운 소재를 풀어나가는 재치와 유머는 이런 예상을 깨기에 충분했지요. 내용 구성에 참여한 20년 이상 경력의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고3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_조진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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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만드는 데 교사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김범진 교사 웹툰의 작가들이 스토리를 만들 수 있도록 교직 생활에서 겪은 다양한 일들과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뼈대를 잡아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다녀 고3의 일상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콘셉트는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고3 이야기를 모두 다 다루려면 지나치게 범위가 넓어질 수 있어 대부분이 응시하는 수능을 중심 소재로 잡았다. 주인공이 수능 며칠 전 가출함으로써 ‘수능 며칠, 몇 시간 전’ 이라는 설정으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웹툰의 큰 주제는 주인공 가온의 가출을 계기로 드러나는 고3의 인생 고민이다.
웹툰의 시작이 고3 수험생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학교는 정말 전쟁터인가.
이승복 교사 방향을 설정할 때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을 다니는 학생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를 들었다. 고3 생활이 어땠는지 물으니 한마디로 ‘전쟁’ 이라고 하더라. 어른들도 입시가 고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고3 아이들에게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늘 옆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어느 시점부터는 경쟁 상대로 보이더라는 말이었다. 1학년 때는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친구들과 함께 나눴지만, 3학년이 되어서는 내게 유리한 것이라면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고2에서 고3 올라갈 때 수능다짐대회 등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 학생들은 고민을 모두 1년 뒤로 미룬다. 가온처럼 자기가 왜 전쟁을 하는지 모르면서 무작정 따라가는 게 문제다. 아이들도 현실과 타협하는 것 같다.
김범진 교사 현실은 그렇지만 최근 학생부 종합 전형의 확산으로 학교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내신 성적이 중요한 요소라 1~2점에 아등바등하는 학생도 있지만, 교과 성적에 의해 당락을 결정하지 않는 정성 평가라 일정 수준의 학업 역량이 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이나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다.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어 경쟁이 어느 정도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방황할 자유조차 저당 잡힌 고3
주인공 가온이 수능을 며칠 앞두고 핸드폰을 보며 빈둥거리는 모습에 아버지가 한 ‘널 낳은 걸 후회한다’ 는 말에 가출을 감행한다. 집을 나온 가온은 학교 옥상에 텐트를 치고 침낭 하나로 며칠을 보낸다. 그동안 집에서는 난리가 난다. 아빠는 자책하고 엄마는 눈물로 지새우며 가온을 찾아 헤매지만 아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며칠 동안 연락을 끊고 부모의 애간장을 녹이는 가온이 매몰차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래 친구들은 가온을 이해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엄마가 학교 옥상으로 가온을 찾아온 순간을 담은 16화의 베스트 댓글은 이렇다.
“올해 고3이었던 나는 저 마음에 진짜 공감 간다.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게 무섭고 초조해서 미칠 것만 같은 게 고3이라는 걸,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테지만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다. 하루하루 극심한 불안감에 살면서 도망치고 싶은 저 기분은 지옥 같다. 엄마가 조금만 더 이해해주고 아이의 말을 들어줬으면….”
가온이 가출을 한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승복 교사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해야 하는데, 고3이 될 때까지 그런 기회가 거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막상 고3이 돼 대학, 학과, 진로를 결정하려니 두렵고 겁이 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디론가 떠밀려서 가야 하는 상황, 그래서 가출 충동을 느낄 수 있다. 고3들이 호응을 보낸다면 불안한 마음에 가출한 가온에게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학교에서 보면 성적이 아주 좋거나 반대로 안 좋은 아이들은 무엇을 하겠다는 꿈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중간에 끼어 있는 대다수의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가온이가 그런 아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고3의 불안감은 어느 정도인가.
김범진 교사 고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입시가 조금 멀다고 생각하다가 고3이 되면 벼랑 끝으로 몰린다. 부모님도 다 겪은 일이지만 나이가 들면 잊어버린다. 지금도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모든 친구들이 경쟁자로 보여서 사람이 있는 데서 공부를 못 한다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옆에 있어야 공부가 된다고 해서 차를 태워 드라이브도 하고 동창회관을 빌려 공부하도록 하고 시험 기간에는 옆에서 같이 밤을 샌 적도 있다. 잠시라도 선생님이 안 보이면 불안해서 공부를 못 할 정도였다.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해 지금 잘 살고있지만, 그 정도로 아이들의 불안감은 크다.
고3이 가출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나.
김범진 교사 한 10여 년 전만 해도 한 달에 3번, 3박 4일은 나가서 가출한 아이들을 찾아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3일을 넘기면 다른 지역으로 뜨기 때문에 3일 안에 찾아야만 했다. 여관을 뒤지다가 조직 폭력배 방문을 벌컥 열어 긴장한 순간도 있었고, 아이 잡으러 뛰어가는 걸 보고 경찰이 내 뒤를 쫓아온 경험도 있었다. 가출을 하는 이유? 문제 학생의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 너무 무관심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간섭을 해도 가출을 생각한다. 옛날에 비하면 요즘은 가출하는 아이가 많지는 않다. 요즘 아이들은 갈등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혼자 삭이는 게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에 상처를 받지만, 그건 부모도 마찬가지다.
김범진 교사 모든 부모는 아이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잘하기를 바라고 때로는 가온이 아빠처럼 모진 말도 한다. 하지만 부모가 지나치게 앞서가거나 욕심을 부리지 말았으면 한다. 공부도 잘하고 참 착한 아이가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몇 발짝씩 앞에 가 있었다. “엄마가 바라는 1등 했잖아. 뭘 더 어떻게 해” 하면 엄마는 “2등하고 격차를 더 벌여야지” 한다.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고2 까지는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다가도, 3학년이 되면 어느 대학은 가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부모는 의대를 강요한다. 간호대를 가더라도 교수나 연구원을 하라고 다그친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문과 1등 학생은 부모의 성화에 의대를 지원하기도 했다. 고3 올라와서 부모 자식간에 갈등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부모와 아이가 가장 크게 부딪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이승복 교사 부모가 아이의 꿈을 결정하고 재단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는 엄마가 결사반대해서 일반 학과에 진학했지만, 1년 만에 자퇴하고 다시 미술을 공부한다. 교원대를 졸업하고 정교사가 되어 교단에 섰던 아이도 6개월만에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만두고 다른 꿈을 찾아 떠났다. 취직이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적성에 안 맞았으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두었을까. 아이들은 그렇다. 부모 눈으로 보면 답답하겠지만, 비록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일시적인 바람이나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면 부모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아이는 받아들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성장의 기회가 된다.
고3은 무엇으로 사는가
드디어 엄마가 가온을 찾았다. 집에 가자는 엄마의 말에 가온은 “난 안 가, 이젠 학교가 더 편해”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학교 가기 싫다던 놈이?”라는 엄마의 말에 가온은 이렇게 말한다. “응, 대학만 갈데가 없는 줄 알았는데, 막상 나와 보니 내가 갈 덴 한 군데도 없더라고. 그때 알았어. 학교만큼 내가 잘 아는 곳도 없단걸….”
교사들은 가출 장소를 학교 옥상으로 정한 것에서 학생들이 의지하고 기댈 곳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학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단다. 실제로 웹툰에는 유일하게 가출 사실을 알리는 마음 통하는 친구, 아이들 몰래 가온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는 담임선생님, 훈계 한마디 없이 농구 한판으로 마음을 다독이는 젊은 선생님이 등장한다. 교사들은 “힘들지만 또 가장 추억이 많은 때가 고3이다.
힘든 시기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견딘다” 고 입을 모은다.
고3 교실 분위기가 살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김범진 교사 아이들은 친구를 경쟁 상대로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로 친구 때문에 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TV에 보면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가 공부 잘하는 아이를 괴롭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공부 못하는 아이가 “얘는 대학 가야 하니까 공부하게 좀 조용히 하자” 고 말하는 게 교실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성적 차가 심한 도농 복합형 학교다. 성적이 낮아 대학 가기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하는 아이들을 챙겨준다. 졸업한 후에도 공부 못하는 아이, 잘하는 아이 구분 없이 같이 잘 어울린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학교가 그렇게 삭막하지만은 않다.
고3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이승복 교사 고3이 행복하긴 어렵겠지만, 학생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누구에게 책임 전가하거나 변명할 수 없다. 차라리 받아들이고 작은 것에서 행복 거리를 찾아보면 어떨까. 우리 반은 아침마다 “가자, 희망으로! 수능 대박” 등의 구호를 외치고 시작했다. 졸업한 후 물어보면 구호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힘이 됐다고 한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에 다소 불안하기도 하지만 내 옆에 부모, 친구와 담임이 있다고 느끼면 견딜 만한 고3이 될 것이다. 혼자 가면 힘들다. 힘들 땐 솔직히 힘들다고 말하자. 부모와 교사는 물론이고 경쟁자로 보이는 친구들도 도와준다. 수시에서 떨어져 우는 아이를 다독여주는 것도 친구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고3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나.
김범진 교사 한마디로 표현하면 믿음과 신뢰다. 믿어주면 달라진다. 교직 생활 하면서 믿음이 학생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수도 없이 목격했다. 중위권 성적으로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에 가겠다는 학생을 다들 비웃었지만 “선생님은 너 믿어, 넌 할 수 있어” 이 한마디에 무섭게 달라지는 걸 보았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일찍 등교하고 가장 늦게 하교한 학생이 됐고, 마침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이승복 교사 아이의 성향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야 한다.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성공했다 하면 부모는 그대로 따라 하려 한다.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주는 걸 좋아하는 아이도 있지만, 자기가 하는 걸 지켜보길 원하는 아이도 있다.
각자의 삶을 살면 좋겠다. 모든 부모님에게 공통의 팁을 주고 싶은건 학교 교사와 고민을 나누라는 것이다. 꼭 담임이 아니라도 좋다.
진로진학교사나 학년부장교사나 소통할 수 있는 교사를 찾고 적극적으로 함께하면 좋겠다.
웹툰은 2월 중순이면 끝나지만, 고3은 그렇게 짧게 끝나지 않는다.
1년 동안 좌절하고 방황하고 고민할 테지만 교사들의 말처럼 묵묵하고 담담히 이겨내야만 한다. 혼자만 가는 길은 아니다. 친구와 부모와 교사와 함께 간다면 그 길도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