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기>
40일간의
남아메리카 여행 21
- 엘 찰텐, 피츠 로이와 로스 트레스
호수 -
(2015.4.19)
남부 파타고니아 최고봉 피츠 로이 Cerro Pitz Roy와 로스 트레스
호수 Laguna de los Tres
파타고니아의 산속 마을 '엘
찰텐'에서 연기를 내뿜는 위대한 암봉 '피츠 로이 Cerro Pitz Roy'를 경험했다. |
이른 아침 숙소가 있는 칼라파테를 출발하여 앨 찰텐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9시 30분.
엘 칼라파테와 함께 로스 글라레시아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엘 찰텐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엄격한 통제와 관리를 받는 국립공원에서 유일하게 트레킹이 허용되는 지역인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개의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있다. 피츠 로이 Pitz Roy(3,375m)와 '세로 또레 Cerro Torre (3,128m). 이 두 개의 봉우리는 엘
찰텐에서 출발하는데 트레킹으로 오가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방향도 다르기 때문에 하루에 다 돌아볼 수는 없다.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
여행자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피츠 로이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남부 파타고니아 최고봉(3,375m)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5대 미봉(히말라야의
마차푸차레, 안데스의 알파마요, 알프스의 마테호른과 그랑드조라스) 중 하나인 '피츠 로이 Cerro Pitz Roy"는 엘 칼라파테에서 버스로
약 2시 반 거리에 있는 외진 산골 마을 '엘 찰텐 El Chalten'에서 걸어서 왕복 20.4km, 약 8시간이
소요되는 곳에 있었다.
이 암봉의 원래 이름은 이곳 원주민 언어로 '연기를 내 뿜는 산'이라는 뜻의 '세로 찰텐
Cerro Chalten'이었는데 1834년 다윈과 함께 비글호의 항해를 지휘하며 이 지역을 다녀간 '로버트 피츠 로이' 함장을 기리기
위해 '피츠 로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언제나 구름에 덮혀있는 하얀 봉우리는 누가 봐도 '연기를 내뿜는 산'임이 분명한데 피츠
로이라?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로버트 피츠 로이(1805~1865, 영국)"는 영국의 항로 개척을 위한 남미대륙의 해로 탐사 및
항해도 작성 임무를 띈 탐사선 비글호의 함장으로, 1859년 '종의 기원'을 탄생시킨 계기가 된 비글호 2차 탐사 때 박물학자 찰스 다윈과
함께 탐사했다. (비글호는 1차 탐사 1825.5.22~1830,10.14에서 파타고니아와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의 수로를 조사하여 비글해협을
확인하였고, 1831. 12. 27~1836. 10. 2일까지의 5년 동안의 2차 탐사 때는 남미 대륙과 갈라파고스 제도 등을 탐사했는데 이
항해를 계기로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와 '종의 기원'이 탄생했다)
엘 찰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 찰텐은 도시라기보다는 봄부터 이른 가을까지의 성수기 때 트레킹을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트레일러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시즌 캠프촌' 같은 곳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는 도시의 대부분이 철수를 하거나 문을
닫는다는 곳이어서 그런지 어딘가 허술하고 정제되지 않은, 안정감이 없는 임시 마을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한 시간도 채 머물지 않은 채 깊은 산속 트레킹만 하다 떠난 여행자가 이 마을에
대해서 알면 뭘 알겠는가. 그저 감각적으로 그런 느낌일 들었을 뿐,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피츠 로이'라는 남미 최고의 미봉을 감상하기 위한
것, 땀흘려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대자연의 위대한 모습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기 위한 것이니 다른 부제들은 접어둘 일이었다.
엘 찰텐 마을을 가로질러 '피츠 로이'로 오르는 트레일길 바로 앞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기사는 오후 5시 30분까지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며 만약 그때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남겨두고 그냥 떠나겠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알았노라는 답을 남기고 기세 좋게 버스 문을 여는 순간, 세찬 찬바람이 훅 밀려 들어왔다. 앗! 이게 아닌데,,,,예상밖의 거센
바람에 깜짝 놀란 여성 시니어가 내리려던 발 길을 돌려 다시 차로 성급히 올라섰다. 그냥 차에 머물겠다며,,,,
피츠 로이 트레킹을 하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칼라파테를 떠났는데 엘 찰텐에 도착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급변한 날씨 탓인지 대부분의 일행들이 트레킹에 나서기를 꺼려했다. 결국 일곱 명이 트레킹에 나섰고, 이 중 한 명은 불과 30여분
만에 탈락하고 말았다.
왼쪽은 피츠 로이, 오른쪽은 Vueltas 강으로 가는 길이다. 사진 왼쪽
우리가 타고 간 흰색 전세 버스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피츠 로이 트레일이 시작된다.
엘 찰텐 북쪽, 로스 글라레시아 국립공원 안의 '피츠 로이' 트레킹
출발점
피츠 로이 가는 길 안내도
0.7 Km지점에 Vueltas 강 전망대가 있고, 4km 지점에 카프리 호수와 피츠
로이 전망대가 있고, 8km 지점에 포인세놋 야영장이 있다. 10.2km 목표지점에 있는 로스 트레스 호수에서 피츠 로이가 바로 올려다
보인다. 코스는 언덕이 약간 있는 중급 코스라는 등등의 설명이 들어있다.
트레킹 시작점의 암벽. 트레일은 저 암벽 오른쪽 아래를 돌며
이어진다.
라스 부엘타스 강 전망대.
Las Vueltas 강, 그냥 단어대로 해석하면 '빙빙도는 강' 쯤 되겠다.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는 강이라는 뜻일까? 이 강 역시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으로 엘 찰텐 마을을 끼고 흐르다 마을 입구에서 피츠 로이 강과
합류한다.
Las Vueltas 강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엘 찰텐
피츠 로이 트레일의 고목.
이제부터 본격적인 피츠 로이 트레일의 고색창연한, 원시 고생대의 자연 풍광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트레일러들을 안내하기 위해 로스 트레스 호수까지(10.2km) 1km
단위로 10개의 구간으로 표시를 해놓았다. 여기서부터는 3구간이 시작된다.
피츠 로이 전망대로 갈 것이냐 카프리 호수로 갈 것이냐는 여행자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우리는 전망대로 발길을 향했다. 하지만 하산할 때는 카프리 호수쪽으로 들러서오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는 시간에 쫒겨 내려오느라 같은
길을 왕복했는데 카프리 호수를 보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쉬웠다.
피츠 로이 전망대(해발 750m).
피츠 로이 전망대에 이르자 좌우에 Poincenot(3,002m),
Mermez(2,732m), Saint Exupery(2,558m) 등의 암봉을 거느린 피츠 로이(3,375m)는 세계 5대 아름다운 봉우리 중
하나답게 빙하에 둘러싸인 채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곳 원주민들이 부르던 그 이름 그대로,,,, 아침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그 거센
바람이 오히려 날씨를 맑게 했는가? 변화무쌍한 일기 탓에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다는 피츠 로이가 흰 구름을 이고 환상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그 자리에 있던 아르헨티나 여행자들도, 우리도 모두 환희의 탄성을 울렸다. 그리고 마구 셔터를 눌렀다.
붉은색 렝가 나무 저멀리 푸른 하늘 아래로 우뚝 선 피츠 로이는 원주민들이
말한 바로 그 '연기를 뿜는 산'이었다.
전망대를 지나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세 여성 트레일러
렝가나무 고목으로 장식된 트레일 사이로 장엄한 피츠 로이가 신비를 품고
있다.
피츠 로이로 가는 길은 트레킹의 진수였다. 렝가 나무와 니레 나무가 붉게 물든 오색의
단풍 숲, 빙하가 녹아 흐르는 푸른 호수와 크고 작은 강들, 늪지와 스텝이 펼쳐지고 곳곳에 빙하가 있는, 마치 원시 고생대의 어느 순간을 연상케
하는 이런 멋진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받은 행운이었다. 달리 말이 필요 없었다. 단풍 숲을 한바퀴 돌아 넓은 개활지에 이르면 저
멀리 보이는 피츠 로이는 조금 전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고 또 다시 숲길을 돌아 언덕에 오르면 새롭게 다가오는 흰 봉우리가 지친
트레일러의 기운을 북돋았다.
오래된 고목은 이 트레일의 풍광을 구성하는 중요한 피사체였다. 이 고목들이
있었기에 피츠 로이 가는 길이 더욱 아름답고 빛이 났다.
키 작은 아시아의 여인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정말 잘 걸었다.
개활지에서 바라보이는 피츠 로이는 바로 손 안에 들듯 가까이
보이는데,,,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2607 트레일 곳곳에 있는 작은 늪들과 먼 산 계곡의 빙하들은 피츠 로이 트레킹을
더욱 인상적이게 했다.
렝가나무 단풍잎과 죽은 고목들도 피츠 로이 트레일의 주요 풍경이다. 트레일을
벗어나 그 안으로 발길을 딛는 것은 사양한다 했다.
자연은 자연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 밟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 우리의 산야도 마찬가지다.
모녀 동반자,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엄마와 딸이 함께
해주었다. 40일간 여행 중에 때론 친구처럼, 때론 자매처럼 서로 응원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피츠 로이
트레킹에 나선 여섯 명 중 두 명이 바로 이 모녀였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사진
가운데 검은색 바위 안쪽에 로스 트레스 호수가 있다.
포인세놋 야영장, 블랑코 강, 그리고 로스 트레스 호수의 이름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고지가 멀지 않은가 보았다. 하지만,,,,
습지를 지나는 길도 이렇게 자연의 한 부분으로 채웠다.
포인세놋 야영장. 1952년 피츠 로이 강을 건너려다 죽은 프랑스 산악인을 기린
곳이다.
포인세놋 야영장에서 바라본 피츠 로이. 더 이상의 경이로움이 따로 없다.
포인세놋 야영장.
포인세놋 야영장까지 8km를 걷는데 약 2시간 반 가량이 걸렸다. 힘차고 팔팔한
청년들이라면 그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도 있는 구간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에 충실해야 했다. 10km 중 8km를 왔으니
거리상으로는 거의 다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피츠 로이 구간이었다. 여기서부터 남은 약 2km구간, 그 중에서도 마지막 1km구간은 피츠
로이 트레킹의 전부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힘들고 벅찬 곳이었다.
블랑코 강. 강가에 널린 바위가 희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아니면,,,?
강을 건너는 나무 다리도 자연친화적이다
우기가 아니어서 블랑코 강의 수량은 적었으나 이 강을 건너면서 바야흐로 피츠
로이 트레킹의 진짜 모습을 맛보게 된다.
앞으로 남은 마의 1km. 이 1km구간을 한 시간에 걸쳐
올랐다.
블랑코 강을 건너 피츠 로이 언덕 아래에 이르면 이런 경고문이
붙어있다. "이 구간은 가장 위험한 트레일이니 노란색 팻말을 따라 걸으시오."
붉은 관목들이 아름답게 펼쳐진 스텝지대
마지막 구간을 힘겹게 걸어오르며 뒤를 돌아보자 붉게 물든 아름다운 스텝지대 Steppe가
펼져지고 있었다. 너무나 멋진 모습에 숨이 가뿐 것도 잠시 잊은 채 넋을 잃고 바라보다 잠시 시간을 지체했더니 앞선 두 젊은 일행들은 어느새
언덕을 넘어 모습을 감춰버렸다. 하지만 그들과의 보조를 맞추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감상하는 기쁨이 더욱 소중했다. 개활지 오른쪽에 '엄마
호수Laguna Madre'가 보인다. 그 안쪽으로 '딸 호수 Laguna Hija'가 있다.
피츠 로이 가는 길의 바람과 환경은 이런 멋진 자연을 만들었다. 니레 Nire
나무
힘겹게 마지막 구간을 오르고 있다. 쉬고 오르고 또 쉬고,,,, 스텝지대 한
가운데로 블랑코 강의 흰 자갈밭이 선명하게 보인다.
고난의 길
마지막 구간은 평지가 아닌 급경사로인데다 모래와 자갈로 된 길이어서 한 발짝 디디면 반
발짝 밀려 났다. 올라갈수록 길은 온통 바위 투성인데다 물이 흐르고 얼음까지 얼어있는데 왜 이리 숨을 가쁘고 힘이 드는지,,,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는 이를 붙잡고 물었다. "정상까지 얼마나 걸려?" 돌아오는
답은 아이고~ "아마도 한 시간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고 확인 차 묻는 사람의 심정은 그들이 고려할 사항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묻고 또 실망하고 또 묻기를 반복하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숨을 헐떡이며 정상을 오르자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리라 생각했던 로스 트레스
호수가 아닌 또 다른 정상이 나타났다.
힘들고 고된 언덕길을 올랐다. 오르면서 생각했다. 저곳만 넘어가면 트레스 호수가
나오겠지? 그러나 오산이었다.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죽을 힘을 다해 올랐더니 호수는 또
다른 산 너머에 있었다. 그 또 다른 산 너머의 로스 트레스 호수를 찾아 마지막 힘으로 발길을 옮겼다.
흰 구름을 이고 있는 아름다운 '세로 피츠 로이 Cerro Pitz
Roy(3,375m)'와 비단같이 영롱한 '로스 트레스 호수(1,200m)
드디어 눈 앞에 시원한 푸른 호수와 하늘을 가릴 듯한 장대한 암벽 피츠 로이가
나타났다. 먼 나라 이야기를 전해주듯 스쳐가는 흰구름 조차도 다정한 몸짓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피츠 로이는 신의 뜻이 아니라면 절대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가 없노라고,,,그런데 이렇게 멋진 장관을 보게 되다니, 이른 새벽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가운데 가장 높은 암봉이 피츠 로이, 그 왼쪽에 포인세놋(3,002m), 그 왼쪽에 R.
후아레스, 그리고 생, 액수페리 등등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메르모스, 기요맷 등의 봉우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건장한 청춘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피츠 로이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여행의 피로를 풀고있다.
호수는 여전히 옥빛이었다. 태고의 빙하가 서서히 녹아 흘러 든 푸르고 푸른
물이었다.
오후 2시의 로스 트레스 호수와 피츠 로이
로스 트레스 호수에서 아쉬운 30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하지만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제 시간에 도착을 하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던 버스 기사보다는 우리가 트레킹을 떠난 후 엘 찰텐 인근을 돌고
나서 카페나 레스토랑에 머물고 있을 다른 일행들이 지루해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10분이라도 늦으면 안될 것 같았다. 오후 2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왔던 길을 이제 내려다 보며 걷기 시작했다.
작은 나무다리조차도 이곳에서는 포토존이었다.
렝가나무 숲들
돌아오는 길의 포인세놋 야영장에는 방금 도착한 여성 트레일러 세 명이 야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막 도착하는 우리나라 두 젊은 야영객을 만났는데, 오늘밤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 피츠 로이의 일출을 보겠다
했다. 참으로 건강하고 부러운 청춘이었다.
트레일의 고목들은 죽어서도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정겨운 합창을 하는 듯한 나무들은 헐벗은 모습조차도 조화롭다.
자연은 나무만 있어도 빛이 나지 않는다. 물도 있고, 풀도 있고, 새도 있어야
한다. 혹, 물고기는 없을까?
바람과 구름과 비碑
단풍 숲을 지나 숨을 고르기 위해 뒤를 돌아보다 무심코 만난 풍경에서 이병주 선생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碑'가 떠올랐다.
소설이 말하는 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역만리 풍경 아래서 뜬금없이 이 소설의 제목이
떠오르다니,,,
억지로 의미를 찾자 하니 바람이 있고, 구름이 있고, 碑(바위)가 있었다. 시적인 감상에
젖어 무심결에 흘러나온 운율을 타고 떠오른 것이었다.
바람이 구름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겠느냐'고.
구름이 답했다.
'바람 부는 대로'
구름이 바위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느냐'고.
바위가 말했다.
"알 수 없는 그 옛적부터"
바위가 바람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바람이 말했다.
'구름 흐르는 대로'
돌아오는 길에 전망대에서 우리나라 젊은 이 두 명을 또 만났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인
이들은 이른 아침 칼라파테에서 첫 시외 버스를 타고 왔지만 엘 찰텐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며 피츠 로이에
오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오늘 오후 늦은 시간 시외 버스를 타고 다시 칼라파테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에 묶여
있었다. 너무 촉박하게 일정을 짠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달리 도울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타고 온 전세 버스는 단 한석의 여유 좌석도
없었다.
다시 라스 부엘타스 강으로 돌아왔다.
남은 거리 1km
엘 찰텐 마을과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 마르틴' 도로. 아침과는 달리
바람도 불지 않고 고요했다
오후 5시 20분.
1분 1초도 쉬지 않고 걸었다. 로스 트레스 호수에서 오후 2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3시간
20분이 걸렸다. 너무 지쳐서 중간에 쉬었다가는 두번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쉬지 않고 그냥 걸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나중에는
신발이 땅에 끌렸다. 갈증이 극에 달했으나 아무도 물을 가진 이가 없었다. 심지어는 수퍼마켓에도 물이 없었다. 어렵사리 냉장고에서 아이스 바를
찾아내 간신히 갈증을 달래고 나서 버스에 올라 그대로 탈진했다.
칼라파테와 엘 찰텐을 잇는 길
칼라파테로 돌아오는 길, 산타 크루즈 강변의 붉은색 지붕의 La Leona
호텔
칼라파테로 돌아오는 길의 석양
엘 찰텐에서 칼라파테로 돌아온 날 밤,
일행들은 노란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에 윙윙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호스텔 로비에
앉아 포도주 한 병 들고 늦게까지 흥에 겨웠다.
모두들 피츠 로이에 오르기로 했었지만, 오르고 못 오르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전망대
건 어디서 건 피츠 로이를 보았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그렇게 즐거워했고 그렇게 밤이 깊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피츠 로이 트레킹의 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07:00 칼라파테 숙소 출발(전세 버스)
09:30 엘 찰텐 도착
09:50 트레킹 시작, 엘 찰텐(해발 450m) - 카프리 호수 / 피츠 로이
전망대(해발 750m) - 포인세놋 야영장 - 13:30 로스 트레스 호수(해발 1,200m) 도착 ( 3시간 40분 소요)
14:00 로스 트레스 호수 출발 - 17:15 엘 찰텐 도착 (3시간 20분
소요)
17:30 엘 찰텐 출발 - 20:30 칼라파테 숙소
귀환
첫댓글 경치가 정말 환상입나다...잘 봤읍니다.
네, 경치 참 좋은 곳이더군요.
우리나라 산천도 이 못지 않겠지만 먼 곳에서 만난 풍경이어서 그런지 신선했습니다.
사진이 파란하늘에 넘멋진 풍경입니다
보는것만 봐도 마음이 훤하네요
트레킹을 하던 중에는 비뿐만 아니라 심지어 눈발까지 날렸는데,
막상 목적지에 도달해보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맑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더군요.
현장에서 눈으로 본 피츠 로이는 사진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