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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골 1:6)
골로새서 1장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 이하 성경인용은 별도 표기가 없는한 개역개정)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소식이 골로새 교회에 이른 다음 그 기쁜 소식을 골로새 교인들이 듣고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감각이나 신비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믿고 자기 것으로 삼으며 생각과 의식의 체계가 바뀐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전에는 안믿어지던 말씀들이 하나 하나 믿어지면서 그 말씀들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인격 전체가 변해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 변화의 시작점이 <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 이며 거듭난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깨닫다는 뜻에 사용된 헬라어는 에피기노스코 로서 마태 13장 23절의 순이에미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됩니다. 이 단어들은 철저히 이해하다, 분명히 알아차리다, 분별하다, 영적으로 지각있다 ( 순이에미: 마 13:13, 14, 15)의 뜻을 가졌다고 믿어집니다.
이러한 표현은 여기 서신서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마태 13장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위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볼수 있는 것은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머리로만 이해하지만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14, 19절)
2)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중에도 뿌리가 없어 넘어져서 열매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20, 21절)
3) 말씀을 듣고도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4) 좋은 땅에 뿌리운 사람은 <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라는 것입니다.
5) 아무리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여도 추수되어질 열매 알곡이 없으면 어떻게 곡간에 거두어들여지겠습니까?(마 13:30)
6) 그에 반하여 좋은 땅에 뿌리운 자는 100배 60배 30배 결실한다고 합니다.
7) 좋은 땅에 뿌리운 자들만이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의상급도 좋은 땅에 뿌리운 자들에게만 있는 것이며 길가, 돌밭, 가시밭은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믿어집니까?
길가, 돌밭,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들은 결실하지 못하여 추수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땅에 뿌리운 자들만 열매를 맺어서 그들중에 어떤이는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아마도 겨우 한알밖에 맺지 못하였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이는 언급되어진 100 보다 많이 천배 만배의 열매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땅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라고 23절에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자(23절)와 앞서의 기쁨으로 받아들인자(20절)
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쁨으로 받아들이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은 바로 인간의 주관적 이해만을 갖고, 성령님에 의해 마음에 말씀이 새겨지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해됩니다. 반면에 좋은 땅에 뿌리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 듣고 깨닫는 자> 로서 영적으로 깨달은 사람이라 해석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고전 2장 14절
육(肉)에 속(屬)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聖靈)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靈的)으로라야 분변(分辨)함이니라
육신의 사람, 아담의 사람의 지혜와 두뇌로는 영적인 일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진리는 성령님에 의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령님에 의한 깨달음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날 때만 해당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듭남 이후에 영적 성장을 경험해갈 때에도 인간의 육신의 지혜는 모두 제쳐놓고 아주 맑아진 마음의 상태에서 매우 조용한 가운데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런 상태에서 날마다 영적 성장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골 2장
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慰安)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聯合)하여 원만(圓滿)한 이해(理解)의 모든 부요(富饒)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秘密)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특별히 어렵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구하면 얻을 수 있는 은혜가 바로 이러한 복음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님 이십니다.
루카 11장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에 그분이 행하시는 최초의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을 깨닫게 해주시는 일입니다!
요한 복음 16장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을 증거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어느 인간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거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영광을 입으셨습니다. 즉 우리 인생모두를 포함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그것을 인생들에게 증거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가 은사주의입니까?
은사주의란 죄문제의 해결이나 의식과 생각의 체계를 바꾸어 하나님을 믿도록 하는데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이나 방언, 귀신쫓기 등 실제로 검증하기도 쉽지 않은 것들로서 이교도들에서도 흔히 주장되는 것들을 행한다고 하는 주의 주장을 말합니다.
그에 반하여 이러한 성령님에 의한 깨우침은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를 믿도록 새겨주시는 것이며 죄를 버리고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변화의 핵심이 죄문제의 해결과 거룩함의 지향에 있습니다.
이것들이 주관적 체험입니까? 인간들이 만들어낸 체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 기쁨으로 받아들이되>(마 13:20) 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에 의해서만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마 13:23, 고전 2:14)
이제 요즈음의 쟁점들을 생각해봅니다.
일반교계, 소위 주류 교단들이라 하는 곳들에서는 대부분 교회에 들어오고 다니기 시작하면 예수 믿는다고 합니다. 즉 그들에게는 예수 믿는다는 말은 바로 교회당 다닌다, 는 말과 거의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신자들에게 구원상담을 별도로 하지 않고 또한 그들이 거듭났는지 간증을 들어보기 보다는 교리문답 혹은 세례문답을 거쳐서 세례를 줍니다. 즉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구원의 확신을 들어보거나 혹은 각자의 간증을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위 구원파라는 곳들에서는 구원의 간증을 듣습니다. 형제모임에서도 당연히 구원간증을 듣고 교회 모임에 영접되며 영접된 사람들만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하여 주류 교단들은 한결같이 구원파가 이단들이라고 합니다.
이제 한가지 분별해보고자 합니다.
일반교회에서는 단순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구원얻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구원파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믿음을 영적으로 마음에 확신으로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구원파에서는 그냥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것이 진실한 것인지를 좀더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간증을 듣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때 간증하는 사람이 충분히 기억해내지 못하거나 과거의 믿음의 생활가운데 있었던 마음의 변화에 < 거듭남> 이나 < 구원의 확신> 이나 <듣고 깨달음> 이라는 용어를 붙여줄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자기 안에 있었던 현상에 대하여 잘 간증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구원파 사람들은 그릇된 판단이나 분별을 할 가능성을 늘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원의 분별이 잘못된 것도 아니며 사도 바울은 분명히 < 믿음을 시험해보라> 고 고후 13장 5절에서 말하며 또한 예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분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고후11:4) 뿐만아니라 바울 자신은 글레멘드와 여러 동역자들 자매들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고 그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빌 4:3)
사도 요한 또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교회안에 있다가 나간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요일 2:19)
따라서 구원의 분별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그것을 보다 정확하게 행하려는 노력은 항상 필요합니다.
이제 소위 정통파라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구원파의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고 믿어집니까? 구원은 무엇으로 얻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얻어지는 것이 구원이라 하지 않습니까? 일반 정통교회라는 곳들에서는 자기네 구성원들이 그냥 예수 믿는다고만 하면 구원얻는다고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파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으면서 그냥 깨달았다고만 합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다면 제발 그곳들에 한번만 찾아가 보십시오!
그들도 모두 예수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구원얻지 않았습니까? 정통파가 구원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구원파 사람들의 구원을 분별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구원얻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구원파의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고 지옥 불못에 내려가지 않을 것이며, 천국에 간다고 인정되는데도 그들이 이단이라고 믿어집니까?
이단들도 천국에 갑니까?
어느 분은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구원파가 예수를 믿는지 안믿는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을 판단합니까?
잠언 18장
사연을 듣기 전에 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사연을 들어보기도 전에 남을 판단하는 사람도 하나님께로부터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례를 들려드립니다.
1970년대에 왕중생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와 지방교회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가 권신찬 목사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정동석 목사라는 분이 참석하였습니다. 권신찬과 왕중생이 치열하게 다투더니 서로 당신은 구원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정목사가 중재하여 당신들 둘다 구원얻은 사람들인데 서로 다투느냐 하여 화해시켰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듭남은 일회적 현상이며 매우 순간적입니다. 그것은 영적 경험이며 은사주의나 은사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경험이 아니라 주님앞에 간구할 때 주신다고 약속되어진 성령님의 임재입니다. 다만 그 실질적 사건이 바로 거듭남이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례는 워낙 많이 있습니다. 심령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었음을 정확히 이름붙이지 못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파의 사람들은 분별에 있어서 오판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신중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원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오류에 대해서는 단호히 잘못을 지적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의 많은 문제들은 기독교인들 스스로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약의 교훈들이 지켜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교회들 안에서는 징계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징계가 있는 경우는 목사들에게 대들었다거나 목사의 비리를 지적하면 징계를 받습니다. 반대로 교회안에서 간음이 일어나도 징계되지 않고 쉬쉬 넘어갑니다.
교회안에 다단계 판매를 행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징계되어야 합니다.
뇌물을 주고 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받아도 징계사항입니다. 뇌물을 주고 군청에서 가도원 부지의 지목변경을 해도 당연히 징계사항입니다.
교회의 신자들을 모아서 돈을 모은 다음 그 돈으로 자기 이름으로 사업을 벌이고 그 사업을 통해서 축재하는 자는 당연히 징계되고 출교시켰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출교시키지 못할 만큼 그런 사람들이 교회안에서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으셔야 할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려와야 합니다! 오늘날 목사들중에 이런 사람들이 워낙 많습니다!
신약의 교훈들만 충실히 지켜도 교회의 많은 문제들은 해소됩니다. 매우 돋보이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기도모임의 충실한 이행, 주님의 만찬을 위한 경건과 거룩함을 준비하는 삶의 지속적인 유지와 만찬의 자주 실행 ( 매주 실행), 누구든지 동등한 형제호칭 등은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는 더 나아가 율법준수믿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한국교회는 너도 나도 율법 폐기론 위에 서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초등학문이요, 십자가에서 율법이 못박혔으며 예수님이 율법을 십자가에서 끝내셨다고 착각하게 하는 번역들과 오해들로 가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율법의 살인하지 말라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남의 생명, 이웃의 생명을 내 생명처럼 여기라는 교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 이윤 극대화> 의 경제학원리가 더 중요시 되었을 것입니다. 생명의 영께서는 율법을 위반하시지 않으며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십니다(롬 8:4) 율법중 도덕법은 결코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율법이 무시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2014. 5. 8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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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한국기독교계 전체 문제와 최근의 구원파의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쓰려다가 워낙 길어져서 우선 이 구원의 교리에 관한 주요 쟁점인 거듭남의 경험이나 깨달음에 대하여 썼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깨달음과 구원파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구원 깨닫기 놀이하고 같습니꽈???
성경의 깨달음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구원파 아해들의 구원 따먹기 놀이는 짝퉁을 내세워 명품이라 속이고 네다바이 친거나 마찬가집니다.
형님은 그 짝퉁이 때깔 좋다고 폭탄 간증 전세 간증 같은 중화기로 우리같은 하수들 한테 후까시 팍팍 넣다가.. 못참겠다 꾀꼬리 고무줄 새총 하극상이 일어 난겁니다.. 다시 빠꾸 기어 넣고는.. 진품사용 설명회로 바꿔 여러분들은 짝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이 들면 시리얼 넘버도 있고 본사에 문의하세요.. 형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깨달음이라고 다 같은 깨달음입니까.
시티백 배달의 기수 짱꿰 오토바이에 번쩍이는 똥불달고 아싸가오리 하는거 하고, 가와사키 칠백오십 씨씨로 땡기는거 하고 같습니까. 형님은 구원파 맛을 몾잊어 야, 다같은 오토바이 닝께로.. 일단 땡겨보자고 하는 거고요. 우리들은 그게 아니라니깐요. 하면서 개기고 있는 겁니다.
성경의 깨달음이 구원파 아해들에게 올 수도 있지만. 오용되고 남용되서 지금의 결과가 왔다고 봅니다.
돌팔이 의사 처방으로 몸에 좋다고 마구 마구 처먹다.. 이 길이 아닌게벼 빠져나온 간증이 있으면 형님은 그런 간증을 소중히 여겨 이차 피해를 막는데 힘을 쏟아도 권파 흔적을 씻을까 할까 말깐데..
메이드 바이 구원파 만병 통치약 선전 나팔수를 자임하고 있었던 겁니다. 형님같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도 빨리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습니꽈.. 아마 빤수까지 벗고 쫓아 갈겁니다. 깨달음을 내세운 구원팔이들의 구원 로또번호 찍기는 먹음직스럽고 탐 스럽고.. 그런거 아닙니까.
거 왜 있잖아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약 모르고 오용말고 약 좋다고 남용말자.
호박에 줄긋고 수박이라는 쌩 양아치 교주의 속임수에 속은걸 .. 깨달음이니, 호박 수박..그래도 빡빡 따끄면 같은 박 되는거 이니냐. 호박도 몸에 좋단다.호박에 줄근 수박, 메이드 바이 구원파 약빨이 아직 남아있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카리스 <<
호박에 줄긋고 수박이라는 쌩 양아치 교주의 속임수에 속은걸 .. 깨달음이니, 호박 수박..그래도 빡빡 따끄면 같은 박 되는거 이니냐. 호박도 몸에 좋단다.호박에 줄근 수박, 메이드 바이 구원파 약빨이 아직 남아있습니까. 대단하십니다. >>
호박에 줄그은 수박 같은 구원관은 용기 조의 가짜복음 교회에서 전파합니다. 그들은 구원을 제조해내지요.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 주여 믿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믿습니다. 믿으면 받은 줄로 알라 하셨습니다.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원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 가장 빨리 속성으로 제조되는 구원이 순복음에 있습니다
형님, 막강한 교주를 누가 어떻게 출교를 시킨단 말입니까. 그러다 뒈지게 먿어 맞고 잘못하면 개죽음으로 되는 수도 있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았으면 육체로 짓는 죄는 죄가 아니라고, 마귀를 죽이면 하늘의 상급이 크다고 부추기는 미친놈의 약빨에 취한 놈들이 칼침을 놓는데니깐요. 누가 나가라고 할건데요? 형님이 권파에 들어가 유병언이 대신에 운영해 보실려고요? 그게 안된데니깐요.일반 교회 먹사를 어떻게 짤라 낼건데요? 개판되는 거 순식간이고요..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나오는게 상책이라는거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런 모임에 들어가지도 않았거니와 들어가 있었더라도 튕겨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가 깨달은 것은 진품이겠습니까? 파스칼은 어떻습니까? 또 해리 아이언사이드는 어떻겠습니까? 마르틴 루터도 로마서 1장 17절로 깨달았다는데 그것은 가짜일까요? 유대인 학살을 선동했으니까.
형님, 제가 아무리 똘팍이라도 형님이 수차례에 걸쳐 말씀하셨는데 반따까리는 이해했다고 봅니다. 또형님 말씀이 맞다는 것도 압니다. 그렁 전 미친넘 처럼 야밤에 혼자 산꼭대기서 소리지르는 겁니까.
권파와 루터가 유대인 갈군거 하고 틀린게 뭐가있냐고 하시는데요. 그렇다고 권파를 받아 들여야 히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피해자가 속출하는데 교리에 붙잡혀 있어야 할까요. 아님 그런 위험한 장난질을 막아야 할까요?
형님 말에 혹해 사람들이 귄파에 들어 갔다가 개피보면 형님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때도 교리와 실행 율법 준수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겠습니까.
형닝 같은 분도 교리에 빠지는데 저같이 얼빵한 놈은
@카리스 앞 뒤 구분없이 빠질 수가 있습니다.
누가 독약과 진짜약을 구별해 먹겠습니까. 그럴 능력있으면 들어 가지도 않겠지만요.
@카리스 << 형님 말에 혹해 사람들이 귄파에 들어 갔다가 개피보면 형님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
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파에 들어가라고 말한 적도 없고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칭찬한 적도 없습니다. 형제모임이라는 곳이 가장 좋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데 왜 다른 곳을 권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장래에 주님이 인도하시는 바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1) 안식일을 예배일로 준수하는 모임 2) 환난전 휴거에 반대할 수 있는 모임, 을 지향하되 현재의 형제모임에서 유지하는 체제를 갖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1) 세례 아닌 침례, 2) 목사 아닌 성경적 복수 장로제도, 예배 수건 등은 기본이 될 것입니다.
@하토브 저 보고는 교젠지 뭔지 해보라면서요?
형님이 하도 편을 드니까 저같이 얼빵한 사람들은 권파도 개안은갑다..이렇게 생각한데니깐요. 그 위험성을 말하는 검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럼 뭔데요?
권파가 이단입니까 아닙니까? 사람들이 거기에 가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지나가는 부모님 아무 한테나 애들 권파에 보내라고 하면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다리 몽둥이 분지러서 라도 안보낸다고 할겁니다. 이것이 교리 따지며 구원의 확신..루터의 유대교 갈굼..빠스칼..이런 형이상학적 설을 푸는 것 보다 훨씬 성경적이고 명료하다는 겁니다.
하토브 형제님의 이 글은 진실로 기독교라는 종교쟁이들은 아마 알아먹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영접기도로 믿음이 시작된 이들은 구원을 받았고, 깨달음으로 믿음이 시작된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도 허접한 것이지만, 이른바 이단시비로 밥 먹고 살아가는 자들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결과인 줄을 알기란 하늘의 별따기일 것입니다. 카리스 님은 이제 시비를 멈추었으면 합니다. 시비를 위한 시비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가 다 같이 진리를 놓고 대립을 할지언정 감정놀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카리스 님의 성경 안에서의 보편적 구원론이 하토브 형제님의 이 글과 완전히 다르다면 저와도 다른 것입니다. 같은 줄 알았는데...
((영접기도로 믿음이 시작된 이들은 구원을 받았고, 깨달음으로 믿음이 시작된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논리))
이런 논리를 누가 주장했던가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로마서 13:10)
카리스님. 왜 열이 받히시는지 이해됩니다만 이제 온도를 좀 낮추셔서 차근히 말씀 하시는
쪽으로 듣게 되었음 합니다.
어떤분들에겐 언잖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저 역시도 피기도전에 참혹한 죽음을 당한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 구원파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입니다.
신도가 없이 교주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원파 신도들이 피켓들고 "스스로들 종교를 탄압하지 말라" 하는데 그렇게 추종하며 헌신하는 종교인들의
돈으로 유병언은 종교와 사업의 두 얼굴을 갖고 각종 불법으로 어마어마한 재력을 키워 거대한 부를 일궜으며
문어발보다도 더 많은 기업들을 만들어 오늘날의 세월호까지도 존재케 된것입니다.
서로 시선을 다른데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듯한 외침은 엊박자음만 낼뿐 더는 유익하지도, 소용이 없는일 같습니다.
뒤늦게 유병언의 세월호에 개입된 검찰의 기사를 보시고 그는 출교됬어야 했다는
하토브님의 언급에.... 다 한통속이었는데 그게 될법한 일인가??
누가 누구를 출교 시킬수 있다는 말인가 묻게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그래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에 맘이 무거웠습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위키백과에서 유병언을 검색해봤습니다.
"...이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연루되면서 1991년 구속 수감, 오대양 대표 박순자로부터 자금을 받았다는 부분에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의 헌금을 횡령하였다는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어 이듬해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하기도 하였다. 1995년에는 세모에서 해운사업부를 분사시켜 자회사 세모 해운을 ....
어떻게 그토록 어머어마한 재력을 키울수 있었을가요? 정 관계의 비호아래 행한 불법도 많았겠지만
신도들의 헌금과 재산을 갈취한것으로 부를 키우고, 축적하고 종래는 국가적 재난이라고 부를정도의
대형 참사를 일으킨 유병언을 누구도
옹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참에 이곳 회원들중에 구원파에 계시는분들께 정중히 여쭙고 싶은것이 있습니다.
이 궁금증이 오늘 하루내내 제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어서 입니다.
이렇게 구원파 교주라고 불리는 유병언씨와 그 휘하에 있는 그의 인물들, 교회 관계자 대표자들의
거짓과 불법 비리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이때 아직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남아
있겠다는 분이 계시다면 카리스님도 질문하신것처럼 진리를 믿고 새로운 생명의 길을 걷는 저도 모르는
그 맛이 무엇이기에 떠나시지 못하시는건지
구원파엔 성경을 뛰어넘는 어떤 새로운 진리의 계시가 더 있기에 그러한지..
아니면 구원파의 크던 작던 계열사 사업과 관계된일들 때문인지...정말 한번 들어나 보고 싶습니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도 있지만 항상 그렇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맛'의 정체를 '교만'이라고 봅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미혹의 영은 교만한 사람을 그냥 통과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만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기가 많이 소유한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명예(유명대학), 지식(영적체험), 물질 등
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이 처음 시작부터 교만의 영에 사로 잡혔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다른 신자들보다 독특하고 강렬한 구원의 체험은 그들을 급속도로 영적인 부요를 갖게 하였습니다.
작금의 구원파 지도자들이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 알고 본을 보였다면 오늘날의 구원파는 없었을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작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지 않는 것이요 자기가 없는 것이다"
구원얻었더라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수 있기 때문에 이미 구원얻은 자들에게 크나큰 경종이 되는 사건입니다. << 그렇지 않고 구원얻은 사람은 절대로 죄를 지을수 없기 때문에 저들 구원파는 구원얻은 것이 아니다. 구원얻으면 죄를 안짓는데 그 열매를 보니까 죄를 지은 열매가 아니냐? 그러므로 저들은 구원얻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단들이며 지옥불에 던져질 사람들이다.>> 이런 진단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구원얻은 사람들은 죄를 안짓습니까? 그게 바로 소위 정통파라는 사람들이 < 구원파가 그런 주장을 한다고 비방하던 비방의 내용이었습니다!> 즉 정통파에서는 구원을 얻어도 죄를 지을수 있는데 구원파는 거듭나면
죄를 짓지도 않고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더라( 이런 주장은 박옥수 모임에 상당부분 맞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거듭났어도 죄를 짓는다는 것이 정통파의 주장이 아닙니까? 그런 그들이 이번 사건에서 죄가 드러났으니까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한다면 그것은 행위구원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여기서의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바로 구원파의 기본교리인 구원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행이 잘못되엇다는 것과 그들 자체가 이단이며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주장이 아닙니까? 아니면 그들이 구원은 얻었는데 이단이라는 말입니까?
이단들도 천국에 갑니까?
정통파라고 주장하는 무리들 중에서도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구원파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원파의 문제점은 구원 이후의 교리와 사이비성(교주 우상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KESLL 정확한 진단입니다. 더 나아가 구원이후의 실행교리 체계 전체와 그외 성경말씀의 실천에서 잘못한 것이고 그것이 엄청난 죄악을 자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
구원 얻은 사람들도 얼마든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도 죄 나름이며 오랜세월 죄를 먹고 마시는 속에 거할순 없는일입니다.
내가 그리 살고 싶어도 안되는게 새로운 생명을 받은 사람들의 삶 입니다.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은 한 몸안에서
죄와 그리스도가 함께 오래동안 동거가 불가능한 ,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특유의 신분으로 바뀌어진 인간 들입니다.
토기그릇님은 박옥수 기소선 교리 위에 서계시는 것입니다. 박옥수 집단은 구원얻은 이후에는 죄를 짓지도 않거나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요?
거듭난 이후에도 장기간이든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목사제도 자체가 죄악인데 그 목사직에 머물러 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자리에서 군림하지요?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이스터를 행사하며 크리스마스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루터는 죽을 때까지 로마 카톨릭 사제직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마리아 숭배자였습니다. 또 그는 유대인 혐오주의자였습니다. 그가 구원못얻었다고 믿으십니까?
@하토브
웬 난데없는 박옥수 기소선 교리위에 세워놓고 흔드시려 합니까?
20년전 여행중이던 박옥수 파의 목사들을 알게되어 이틀을 재워주며 그들의 설교와
전도 공식을 두번 듣고는 상종할 사람들이 아니구나 한 경험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혹 방문하면 그들을 다시는 집에 들이지 말라"고 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있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증인이시다)))는 말까지 해야하는 피곤함과 지겨움이 생깁니다.
이제껏 보면 하토브님이 만나본적도 없는 역사적 인물서부터 누구 누구는 구원 받았고
또 누구는 구원 못받았다는 식의 말을 너무 쉽게 하시는데..자신의 고유 영역도 아니며
@토기그릇
주님께서 아무에게도 그러한 권한을 위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문제는 마지막 나팔불때 가서 알 일이고 천국가서 만날때 알 일로서
인내를 갖고 봐 주어야할 사람도 있고,, 루터니 누구니 내 상관할바 아니며 관심도 없습니다.
이제...이런일들로 시간과 정력을 소모말고 그만 하나님께 맡기는게
어떻겠는지요?
@토기그릇 구원얻은 사람들도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얻은 사람들의 육은 구원얻지 않은 사람들의 육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해입니다. 그것이 로마서 7장 16-25절의 교훈이라 믿어집니다. 그런데 박옥수 모임 사람들은 구원얻으면 죄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고 회개할 필요도 없고 자백할 필요도 없다고 여기에 온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제 구원파를 분별하면서 죄를 많이 지었으니까 그들은 구원얻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바로 구원이후에는 죄를 안짓거나 적게 짓는다는 박옥수 교리와 같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카톨릭이 구원에 대해 갖는 견해에 서있어서는 안됩니다.
@하토브 예... 유병언의 구원관과 하토브님의 구원관이 같은지를 이제사 배웠습니다.
@토기그릇 ㅎㅎㅎㅎ
구원얻은 사람들도 죄를 엄청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못 깨달으면 자신의 죄 관리를 잘못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