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먹은 산행버스 갈 길을 잃다.
-금산군 남이면 성치山 십이폭포를 다녀와서-
처서를 며칠 앞두고 느닷없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아열대기후의 본때를 보여줄 기세로 늦더위의 심술이 그치지 않는다.
대구지방 최고기온이 36.5도까지 치솟았으며 서울은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 된데다 일사량도 많아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무더웠다”고 기상청관계자가 설명했다.
삼일후면 입추와 백로(白露) 사이에 드는 절기인 처서(處暑)다.
처서가 되면 입추 무렵까지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처서”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논둑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하는데 처서가지나면 풀도 더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농부들은 여름내 내 매만지던 쟁기와 호미를 깨끗이 씻어 갈무리하는 절기다.
이때가 되면 세시에서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논에서는 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모기의 극성도 사라지고,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 “어정칠월 건들팔월”
“어정뜨기는 칠팔월 개구리”라는 말들은 추수할일만 남아있는 농촌의 한가로움을 빗대어 생긴
속담들이다.
절기는 칠석(七夕)을 지나 처서(處暑)로 가고 있는 도중인데도 여름이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가 않는 요즘날씨다.
지난주 비로 취소된 지리산 대성계곡 때 더위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날씨가 작심하고 우리를 괴롭힐 모양이다.
오늘은 전북과 충남의 접도지역에 있으며 충남 금산군 남이면과 남일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성치山(648.4m)과 무자치골의 십이폭포를 산행하기로 한 날이다.
광주역에 도착한 산행버스가 새색시처럼 곱게 치장을 하고 나타났다.
코오롱스포츠가 협찬한 등산광고가 버스외벽에 선명하고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회장님과 정국장님이 개인사정으로 산행에 불참하였고 무더운 날씨 탓인지 산행버스
좌석이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중부지방에 폭염과 찜통더위가 있을 거라는 기상청예보 탓인 것 같았다.
오늘따라 산행버스가 더위를 먹었는지 성치山산행기점인 용덕고개를 찾지 못해 가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일도 있었다,
200m 내외의 구릉에 의해 동쪽으로 금산군 남일면과 접해있지만 서쪽으로 셋티재와
선치峰으로 전북 완주군과 경계를 하고,
남쪽으로 선峰과 성치山에 의해 전북 진안군과,
그리고 북쪽으로 보티재, 수리넘어재, 진락산으로 이어지면서 진산면과 금산읍에
접하고 있는 첩첩산간지역에 위치한 성치山이었다.
산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오전11시가 되어서야 용덕고개에서 하차를 했다.
오늘산행은 용덕고개에서출발
-성치山 -전망대 -649봉 -성峰 -신동峰 -12폭포 -징검다리 -모치마을로 내려오는
약 5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오늘산행은 산행이라기보다는 극기 훈련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山을 오르는 일이 곧 폭염과 무더위와의 싸움이었다.
기암괴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숲이 울창한 것도 아닌 여니 산과 다를 바 없었으나
바람 없는 숲속은 한증막이고 노출된 산길은 건식사우나와 다를 바 없었다.
땀은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갈증은 목을 타게 만들었다.
사방이 첩첩산중인 산행路는 그런대로 잘 정리되어있었지만 이정표가 전혀 없었다.
이정표를 대신해서 먼저 다녀간 다른 산악회리본들이 한 곳에 수십 개씩 필요한
곳에는 어김없이 걸려있어 길을 안내해주었다.
산 정상을 되돌아 내려와서 조금 낮은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장거리산행이라는 것은 열악한 시간대에 산행이이루어지고 점심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 없는 불편함을 감내해야하는 산행이었다.
바위구간의 전망대를 지나 648봉, 성峰, 신동峰을 거쳐 무자치골로 내려갔다.
“이 계곡의 끝은 정말 있는 겁니까?”
“그 끝은 어디쯤인데요.”
몸과 마음은 무더위와 피로에 몹시 지쳐있었다.
더위로 지친 내 머리 속에는 시원한 12폭포로 가득 차 있었지만 무자치골의 시작은
너무나 미미했고 돌길은 길고 지루했다.
실망스런 마음으로 한참을 내려오니 물길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숲과 층암절벽사이를
누비며 내려 쏟아지는 크고 작은 폭포가 있었다.
여기가 12개 폭포의 수를 따라 부르게 된 “십이폭포”였다.
가장 큰 폭포는 높이가 20여m나 되고 물이 맑아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모습과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웅장한 물소리가 산행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뱀이 많아 무자치라는 이름을 얻은 무자치골 12폭포는 그중 4개의 폭포가 각기
흐름이나 모습이 너무 달라 폭포의 전시장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넓은 암반에 길고 무자치처럼 꼬불꼬불 흘러내리는 와폭,
패여 진 홈통으로 물이 모아져 내리는 폭포,
넒은 岩곡의 높다란 바위 낭떠러지 위에서 하얀 비단 폭을 풀어 내린 것처럼 바람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직폭(直瀑)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무자치골의 12폭포가 돋보이는 것은 이 지방 선비들의 멋진 풍류를 느낄
수 있었으니 폭포암반에 새겨진 漢文 글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두 곳은 초서(草書)이고 한곳은 예서(隸書) 또 한곳은 해서(楷書)로 새겨 있었는데,
무자치골 맨 아래쪽폭포 암반에 새겨져 있는 “초포동천”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계곡 시원한물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다스려봤지만 물에서 나오자말자 폭염의 노예가
되어 땀을 뻘뻘 흘리는 강제노역(奴役)에 동원 되어버렸다.
산행종점인 모치마을 앞에는 시냇물이 시원스럽게 흘러가고 있었으며 징검다리를
건너가니 당산나무 밑에 정자가 하나 있었다.
산행을 하지 않는 여성회원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이 더운 날 양동매씨들이 하산酒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메뉴가 삼계탕이라고 한다.
직-원, 직원!
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조폭처럼 일사불란하게 뒤로 빠졌다.
그와 동시에 사장 손에 들려있던 서비스품목하나가 추가되어 본 상품위에 올려 진다.
썰물처럼 밀려났던 6-7명의 여직원들이 다시 밀물처럼 몰려와 구매를 요구한다.
그들은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니며 꿀을 채집하는 곤충처럼 서로 교차해가면서 물건을
살 것을 집중적으로 강요한다.
열대야로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처럼 신경을 건드린다.
구매자가 없으면 사장은 고향을 팔기도하고, 은근히 협박도하고, 적절한 공포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25분간만 회사제품에 대한 홍보를 하겠다던 약속시간이 1시간 반이 지나버렸다.
건강에 허약하고 체면과 인정에 약한 노인들은 하나둘씩 상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65만 원 짜리 건강식품이 십여 개가 팔렸으니 천만 원 정도의 매출을 그 회사는 올렸다.
“이렇게 까지 해야만 영업이 되는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 상혼(商魂)이 얄밉기만 했다.
사건의 발단은 하산酒를 먹던 모치마을에서 부터였다.
인삼회사 판촉사원이 휴식중인 운영진과 접촉을 시도하고 상품홍보 차 회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25분정도만 참여해달라는 조건으로 유혹을 시작한 것이다.
자칭 홍보과장이라고 자기설명을 한 여직원의 능란한 화술과 매너에 우리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보직원이 선도하는 승용차를 따라 산행버스는 금산시내를 돌아 어느 인삼공장주차장에 주차를
하게 되었는데
하차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쟁포로처럼 친절을 가장한 회사직원들의 감시 속에 홍보실로
밀려들어갔다.
우리는 일류 코미디언을 뺨치는 영업전무의 발효흑삼에 대한 설명을 유치원생수준으로 들으면서
대답하고 박수치고 따라 웃어야했다.
하기야 우리 모두가 6-7세의 어린유아들이 아닌가,
개그가 따로 있나, 우리 사는 세상이 바로 개그콘서트장이 아니고 어디란 말인가?
제품의 진위나 값의 싸고 비싸고를 떠나서
병원중환자실에 있는 사람이 벌떡 일어설 효능은 없을 것이고 부모자식도 아닌데 회사가 손해를
보면서 국민건강을 위해 힘없는 우리에게 자선봉사를 하겠습니까?
회사는 영리가 목적이니까 이익을 충분히 남길 것이고 다만 국가기관의 허가를 받고
하는 회사영업인데 국민건강이야 해치겠습니까?
다음 불 로그: kims1102@
(2010년 8월 20일)
더위를 먹어 하루를 고생했는데 나도 발효흑삼을 먹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어찌 여자 마음만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