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는 작가 겸 영화감독이라고 한다. 원래 일본 소설은 생소한 이름들을 기억하기 힘들어 몇몇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면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더구나 일본 소설이 아니더라도 특별하지 않으면 소설류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무엇인가 생각하고 지적으로 따져 묻기를 좋아하는 성격상 소설은 금방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의 책장을 넘긴 것은 독서 시간의 촉박함 때문인데, 나름대로 정해놓은 독서 규칙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독서가 밀려 이번에 읽을 책은 이틀 동안의 여유밖에 없었다. 원래는 심리학 책을 읽으려고 두툼한 책을 집어 들었지만 아무래도 이틀에는 무리였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사흘이고 나흘에 걸쳐 읽을 있지만 스스로가 한 약속을 깨뜨리면 그 다음부터는 게을러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가볍게 읽을거리를 찾다가 이 책이 우연히 눈에 든 것이다. 작가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저자가 감독하고 2022년 개봉하는 장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을 소설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소설 또는 애니메이션의 모티브는 저자가 겪은 38살 때의 동일본대지진이라고 한다.
왜 하필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는지,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생각은 오래도록 머리를 떠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 마침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어느새 거의 같은 작업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세상이 뒤집힌 듯한 경험을 여러 번 목격했으나 저자의 저변에 흐르는 선율은 2011년에 고착되어 버린 것 같다고 한다. 고베 지진을 말하는 것 같다. 일본은 크고 작은 지진이 매년 거듭된다.
지진은 삶을 온통 파괴한다. 더러는 삶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기기도 하고, 더러는 평생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도 한다. 일본을 여행할 때 텔레비전에서 보던 자막이 생각난다. 그저 잊을만하면 어디선가 강도 얼마의 지진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렸다.
그때 문득 일본인으로 산다는 것은 지진으로 단련된다는 말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힘든 일도 자주 겪게 되면 그것도 일상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트라우마를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마치 우리의 옛 장례문화가 슬픔을 승화시키는 과정인 것처럼 밀이다.
저자는 동일본대지진을 겪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세상이 흔들렸으므로 달아날 곳도 없었다. 생과 사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의 의문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자는 마침내 이런 극한의 상황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것을 먼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지만 가슴 속 응어리는 여전히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 응어리를 훌훌 털어내기 위해 이를 소설로 쓴 것이 이 책이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지진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한낱 허구로 변주하여 날려버렸다.
그럼으로 소설은 다시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 요석으로 든든히 문의 입구를 막고 열쇠를 단단히 채웠기 때문이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소설은 환타지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진이 뿜어져 나오는 근원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요석과 열쇠를 구체화하고 요석으로 문을 막으려면 누군가는 사람들보다 먼저 그 징후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가 소타이고 스즈메다.
소설은 스즈메의 네 살 어린 시절의 몽환적인 꿈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꿈은 이야기의 말미에 결말을 이끌어가는 장치로 이어진다. 꿈은 지진으로 죽은 엄마를 찾아 헤매다 저세상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곳이 저세상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소타와 지진을 막는 일에 휘말리면서 자기가 어린 시절 저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견했고 그곳으로 들어갔던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소타를 구해온다.
스즈메는 엄마가 돌아가고 나서 홀로 사는 이모와 둘이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여학생이다. 그녀가 어느날 아침 등굣길에 아주 잘 생긴 청년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그가 스즈메에게 주변에 폐가가 있는지를 물었고 문을 찾는다고 했다.
청년 소타가 찾는 문은 바로 미미즈가 나오는 곳으로 미미즈가 문으로 나와 힘이 강해지면 마침내 그것이 지진이 된다는 설정이다. 스즈메는 폐허의 마을 쪽에서 붉은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고, 마침내 그것에 이끌리듯 등교를 포기하고 청년이 간 폐허의 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허물어져 내린 호텔 마당으로 들어서게 되고 그 한 가운데에서 문을 보게 된다. 그 문 앞에 석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스즈메는 별 생각 없이 그 작은 석상을 들자 석상은 곧 털이 난 동물로 변하더니 그녀의 손을 빠져 달아났다.
그때부터 스마트폰에 지진 경보가 뜨는 현실과 미미즈가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막으려는 소타와 스즈메의 필사적인 노력이 교차되면서 이야기를 점점 극한 상황으로 끌고 간다. 소타의 집안은 내내로 문을 닫는 일을 한다고 했다.
고양이가 달아나면서 소타를 스즈메의 어린 시절 의자 속에 가두었다. 의자는 그나마 발이 하나가 없는 절름발이였다. 소타는 필요할 때는 스스로 달리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스즈메의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소타와 스즈메는 고양이를 잡아 다시 요석으로 되돌리고 그러면 미미즈가 나오는 구멍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달아나고 없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석상, 즉 요석이 변신해서 달아난 털이 난 짐승인 고양이를 쫓아 다녔다.
고양이가 요석이므로 그 놈을 잡아야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믿었다. 고양이는 두 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고베를 지나 도쿄까지 달아났다. 두 사람은 그런 고양이를 SNS를 통해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스즈메는 우여곡절을 겪었고, 스즈메의 이모는 그런 조카를 찾아 나섰다.
마침내 도쿄에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려는 조짐이 보였다. 두 사람들 필사적으로 지진을 막는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타는 미미즈에 박혀 얼음처럼 차갑게 변하고 말았다.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미미즈는 잠잠해지고 모든 것이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스즈메는 소타를 살려야 했다. 소타의 할아버지를 통해 저세상으로 가는 문이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과거 네 살 때의 꿈에서 본 것이 저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네 살 때까지 살던 고향으로 가서 그 문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가 소타를 구하게 된다. 소타는 여전히 미미즈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자기 길을 간다. 그리고 스즈메는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에는 영 흥미가 없다. 황당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어렵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한 번도 본 적도 없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일은 흥미보다는 오히려 고역에 가까웠다.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소감의 거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