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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잠들다 / 박혜선
세상에서 가장 긴 날개를 가진 바닷새 알바트로스 두 달이면 지구 한 바퀴 휘이 둘러볼 알바트로스는 날면서 먹고 날면서 쉬고 날면서 자고 날면서 크고 날면서 늙어 가는 자신의 운명을 버리기로 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들모래밭에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그래서 바다의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가 되기로 했다날면서 병 뚜껑 보면 꿀꺽 삼키고날면서 유리 조각 만나면 주워 담고장난감 조각부터 스티로폼, 볼펜에 칫솔까지꿀꺽꿀꺽 주워 담아자기 몸을 쓰레기통으로 만들기로 했다가장 멀리가장 오래 나는 알바트로스오늘 그 큰 날개를 접고 바닷가에 조용히 몸을 뉘었다뱃속 가득 쓰레기를 채우고도넘치는 쓰레기 남겨 두고 떠나 못내 아쉬운 듯끼룩끼룩 몇 마디 남기고밀려오는 파도 소리 들으며 눈을 감았다. | 그리고 『쓰레기통 잠들다』는 현재의 환경파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이들의 눈을 통해 이야기 하는 환경 동시집이다.
즉 아이들의 눈과 마음이 되어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은 지구가 우리들의 엄마라는 인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은 지구 엄마의 아이들이라는 인식은 생명의 소중함과 평등사상을 갖게 하는 원천인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이 가장 자주하고 가장 잘 잊어버리는 말이 ‘자연’일 것이다. 누구나 그 소중함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 ‘환경’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과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전통, 역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토대는 지구 환경이다.
즉 우리가 매일 접하는 자연이 인류의 흥망성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고 만들어진 인류의 문명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왜 자연을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신(神)과 같이 스스로 새로운 자연을 만들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로인한 자연파괴와 지구 생물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우리의 적극적인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
빌려줍니다 / 박혜선
유모차, 장난감, 흔들침대, 책...... 정수기, 공기청정기, 제습기, 비데...... 휠체어, 목발, 안마의자, 가발, 보청기,,,,,, 가방, 옷, 신발, 자전거, 자동차, 집, 운동기구...... 사용료만 주면 무엇이든 빌려줍니다 사용하시다가 마음 바뀌면 돌려주세요 변질, 파손, 분실은 책임을 묻겠습니다
바람, 공기, 비, 이슬, 눈…….햇빛, 달빛, 별빛, 놀빛, 어스름 새벽 빛…….하늘, 땅, 바다, 산, 언덕, 들판, 옹달샘, 개울…….나무, 꽃, 풀, 과일, 곡식, 열매, 뿌리, 잎, 씨앗…….토끼, 다람쥐, 사슴, 나비, 벌, 잠자리, 반딧불이…….풀벌레소리,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까지사용료 없이 공짜로 다 드립니다쓸 만큼 쓰시고 그대로 두세요맘껏 쓰시고 제발 돌려만 주세요지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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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 의자가 되고 책상이 되고 연필이 된 나무에게 미안하다.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책상으로 의자로 살아가는 그 마음이 고마워 더 미안하다. 이 시집은 그런 자연에게 보내는 반성문이다. 어느 날, 나무가, 꽃이, 태양이, 별이 우리 곁을 떠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으로 쓴 일기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함께.이 말 참 좋다. 혼자가 아니어서 더 좋다.따로.이 말 참 슬프다. 함께가 아니어서 더 슬프다.지금 지구 맘이 그렇다.
이 좋은 봄날에 / 박혜선
나는 보았지 밖에서 새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내 책상이 꿈틀 내 의자가 들썩 바람이 창문을 달칼달캉 두드릴 때 또 보았지 내가 풀던 문제집이 휘리릭 내가 잡은 연필이 파다닥 밖을 내다보며 흔들거리는 걸 보았지
아, 너희도 한때는 나무였구나 이 좋은 봄날에 방 안에 갇혀있으니 참. | 슈퍼문이 찾아왔다 / 박혜선
잘 지내지? 어디 아픈덴 없니?
1948년 1월에 왔다 간 뒤 68만년 만에 다시 찾아온 슈퍼문
지구 얼굴 좀 더 가까이서 보고 가려고 더 밝게 더 크게 슈퍼문으로 찾아왔다
괜찮은 거지? 어디 아픈 데 없는 거지?
지구야! 지구야! 지구야? ...... | |
바다 약국 / 박혜선
이런 소화제 없나요? 한 알 삼키면 비닐이 술술 플라스틱이 흐물흐물 유리 조각에 쉿조각까지 다 녹아내려 풍덩풍덩 똥으로 속 빠지는 이런 소화제는 없나요? 소화 불량에 걸린 바다 물고기들 하나 둘씩 죽어 가는데
이런 소화제 정말 필요 없나요 | To 인간 / 박혜선
참고 참고 참고 이해하고 이해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용서하며 용서하며 250만 년을 견뎌왔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내 집에서 나가 줄래?From 지구 | |
어떤 가방 / 박혜선
어떤 가방에는 교과서, 문제집, 필통, 무릎 담요...... 어떤 가방에는 화장품, 지갑, 손수건, 거울....... 어떤 가방에는 서류봉투, USB, 꾸깃꾸깃 넥타이....... 그런데 어떤 가방 속에는 스패너, 펜치, 드라이버, 기름 때 찌든 장갑, 컵라면, 나무젓가락...... 19살, 지하철 수리공 김군의 가방이었다
낡고 쓸쓸한 갈색 가방 오늘 주인을 잃었다. | 거꾸로 세상 / 박혜선
젊은 삼촌은 일자리가 없어 팽팽 놀고 늙은 할아버지는 택배 배달, 교통정리, 급식 도우미까지 정신없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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