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도안과 등장인물 ①
화폐도안 인물, 등장과 퇴장
세계 화폐의 8할은 앞면에 주로 왕, 대통령, 정치가, 전쟁영웅, 사상가, 과학자, 예술가 등 다채로운 인물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화폐엔 6명의 인물이 있고 현재 통용되는 것은 5종이다. 1950년 한국은행 설립 이후 나온 지폐 1호 인물은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대통령이다. 그해 8월 발행된 1000원 권에 처음 등장해 1950년대 말까지 지폐 모델을 독점했다. 지폐 모델이 역사 위인의 초상으로 바뀐 것은 세종대왕(1397~1450)이 처음으로 1000환권(1960년 발행), 500환권(1961년 발행)에 등장했고, 당시 최고액권인 1만 원권(1973년 발행)에도 모델이 되었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100원짜리 동전과(1970년 발행) 500원 권에(1973년 발행),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은 5000원 권에(1972 발행),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1000원권(1975 발행)에, 세종대왕(1397~1450)은 1만 원권에,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5만 원권에 초상으로 들어가 있다.
국내 최초로 화폐에 처음 들어간 얼굴은 일본 제일은행 총재였다. 1902년 일제는 대한제국의 발권권을 무시하고 1원, 5원, 10원권을 발행하면서 제일은행 총재의 초상을 사용 했다. 지폐에 들어간 도안의 주인공은 시부사와에이이치(渋沢栄一 1840~1931)라는 일본 기업인(일본 제일 은행 총재)였다. 일본 제일은행이 찍은 돈이기 때문에 총재의 사진을 넣었다.
국민적 반발을 의식했는지 일제는 1914년과 1915년 조선은행권을 발행하면서 각각 대흑천상(大黑天像)과 수(壽)노인상을 채택했다. 대흑천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신이다. 삼보란 불교의 3가지 보배(부처님, 부처님 말씀, 부처님 제자)를 말한다. 대흑천은 실제 인물이 아닌 상상 속의 인물이다. 1915년 발행한 1원권, 5원권, 10원권에 넣은 관(冠)을 쓴 긴 수염의 수노인(壽老人) 역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가상의 인물이다.
1950년 7월 피난지 부산에서 1000원짜리 한국은행권 발행으로 조선은행권과 수노인이 사라지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은행권 인물로 등장하였다. 이승만이 대통령으로서 화폐인물의 독점시대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 4월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야인으로 돌아가자 이승만이 은행권과 주화에서 모두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승만이 사라지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모델로 세종대왕이 등장하였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과학기술 개발, 4군 6진 개척, 대마도 정벌 등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소중히 여긴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 8월 15일부터 새로 발행된 1000환권, 연이어 500원권에도 세종대왕이 등장하였다. 세종대왕은 1961년 4월 19일 이후의 100환권, 1965년 8월 14일 이후의 100원권, 1973년 6월 12일 이후의 1만 원권, 1979년 6월 15일 이후의 1만 원권, 1983년 10월 8일 이후의 1만 원권, 1994년 1월 20일 이후의 1만 원권에 이르기까지 40년이 넘는 동안 은행권에 등장하고 있다. 이제 세종대왕은 최고액권의 인물상 자리를 독점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1970년 11월 100원짜리 동전에 처음 등장한 이후 1973년 9월에는 500원짜리 지폐의 초상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 지폐의 뒷면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1982년에 500원이 동전으로 바뀌면서 이순신의 500원 지폐는 사라졌고, 이순신은 다시 100원 동전 인물이 되었다. 이순신 장군을 500원 지폐에서 100원 동전 뒷면으로 한 것은 구국(救國)의 영웅에 대한 적절한 예우이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순신 장군의 죽어서도 애국을 한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이순신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영국보다 300년 앞선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그리스 선주를 설득해(1971.9) 현대조선소 설립자금을 빌려 울산의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은 1000원 지폐에 나온다. 동방의 주자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국립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유학자이다. 퇴계의 저서들은 약탈당했지만 일본 식자층이 탐독하여 에도 막부의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 율곡 이이는 5000원 지폐에 그려져 있다. 신사임당은 2009년에 발행된 50000원 권의 인물이다. 모자(母子)가 화폐인물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본명은 신인선인 신사임당은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상징으로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예술가였다. [202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