褒彰完議文
포창완의문
本所 刱建 先聖廟 中刊五倫行實 以爲尊聖獎善而列郡單子
본소 창건 선성묘 중간오륜행실 이위존성장선이열군단자
次第來到中 謹按慶南有司及多士薦狀 則本道河東郡辰橋面
차제래도중 근안경남유사급다사천장 즉본도하동군진교면
月雲里居 孝烈婦南平文氏 仁鎭女 公州人 恭肅公 諱明德
월운리거 효열부남평문씨 인진여 공주인 공숙공 휘명덕
號沙峰 十七世孫 諱鉉 曾孫 諱基沅 孫 諱瀧麟 子 李秉泰
호사봉 십칠세손 휘현 증손 휘기원 손 휘룡인 자 이병태
妻也 天性賢淑 擧止端莊 自幼 素行著聞 及來嫁斯門 內承
처야 천성현숙 거지단장 자유 소행저문 급래가사문 내승
舅姑之盛訓 外納親戚之悅情 事君子 承順無違 一門雍和 宗
구고지성훈 외납친척지열정 사군자 승순무위 일문옹화 종
族仰其德 隣里慕其行 迺於丙戌恠疫 舅夫同歸 夫人 年纔
족앙기덕 린리모기행 내어병술괴역 구부동귀 부인 연재
二十五靑孀 痛迫 誓不欲生 而在堂老姑 誰有奉養 幼冲一孤
이십오청상 통박 서불욕생 이재당노고 수유봉양 유충일고
亦誰收育 感念存沒 不忍徑溘 强以自抑 遵禮執喪 恐其老姑
역수수육 감염존몰 불인경합 강이자억 준례집상 공기노고
傷心哭泣節哀 奉養尤誠 後又偏姑病患 日事供藥 齊浴致誠
상심곡읍절애 봉양우성 후우편고병환 일사공약 제욕치성
靡不用極 及喪 哀毁踰制 喪葬凡節 極備無憾 治家以勤 敎
미불용극 급상 애훼유제 상장범절 극비무감 치가이근 교
子以義 享年八旬 全貞而順命 噫 夫人之烈 未始不由於孝
자이의 향년팔순 전정이순명 희 부인지열 미시불유어효
而孝烈具全矣 豈不美哉 於是 士論 及于本所 有感而興起
이효열구전의 기불미재 어시 사론 급우본소 유감이흥기
先付鋟梓 壽傳芳名 使之繼建閣碑 廣樹美風 以圖不朽之意
선부침재 수전방명 사지계건각비 광수미풍 이도불후지의
成此完議文事
성차완의문사
공부자탄강 이천사백팔십년 기사 십일월 일
공부자성적도속수오륜행실중간연원유림향약본소
도약장.창립약장 대변선성묘 도유사 정성묵
약장 전판서 이재현
판 서 민경호
판 서 민병한
판 서 남규희
참 판 권익상
참 판 이명상
참 판 이순하
참 판 김재순
참 판 어용선
참 판 한창교
대 교 민후식
승 지 신두희
판 서 이병현
사무약장 참 봉 이덕규
직 원 권영만
직 원 이승갑
주 사 이종팔
간 사 오재권
정 자 한희원
강 사 주용환
주 사 민태직
경기도도유사 승 지 이윤종
충청도도유사 직 원 성락환
전라도도유사 의 관 이면식
경상도도유사 강 사 조진영
강원도도유사 직 원 김봉주
황해도도유사 참 봉 이병직
평안도도유사 유 학 이한순
함경도도유사 주 사 이달훈
公州李氏 始祖 諱天一 56世孫 中始祖 恭肅公 諱明德 17世孫 李秉泰의 妻
孝烈婦 南平 文在賢의 褒彰完議文 한글 解設
본소(本所)는 선성(先聖)의 묘(廟)[공자(孔子)의 사당(祠堂)]를 창건(創建)하고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중간(重刊)함으로서 성인(聖人)을 높이고 선(善)을 권장(勸獎)한다. 여러 군(郡)의 단자(單子)가 차례로 이르던 중(中)에 삼가 경남(慶南)의 유사(有司)와 많은 선비들의 추천장(推薦狀)을 살펴보니 본도(本道)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사는 효열부(孝烈婦)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인진(仁鎭)의 딸로 공주인(公州人) 공숙공(恭肅公) 휘(諱) 명덕(明德), 호(號) 사봉(沙峯)의 17세손(世孫)이고, 휘(諱) 현(炫)의 증손(曾孫)이고, 휘(諱) 기원(基沅)의 손자(孫子)이며, 휘(諱) 룡린(瀧麟)의 아들인 이병태(李秉泰.戶籍名英泰)의 처(妻)이다.
타고난 성품(性品)이 어질고 정숙(貞淑)하며 행동(行動)거지가 단정(端正)하고 엄숙(嚴肅)하여 어려서부터 평소(平素)의 행실(行實)이 널리 알려졌다.
이 가문(家門)에 시집와서는 안으로 시부모(媤父母)의 가르침을 잘 받들고 밖으로는 친척(親戚)들의 친목(親睦)을 도모(圖謀)하고 기쁘게 하여 온 집안을 화목(和睦)하게 하였고 남편을 섬기되 뜻에 순종(順從)하여 거슬림이 없었다.
한 가문(家門)이 화평(和平)하니 종족(宗族)들은 그 덕(德)을 우러르고 이웃에서는 그 행실(行實)을 사모(思慕)했다.
병술년(丙戌年)에 괴질(恠疾)이 돌아 시아버지와 남편이 함께 돌아가시니 부인(婦人) 의 나이가 겨우 25세였다.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된 아픔이 간절(懇切)하여 삶의 의욕(意慾)을 잃었으나 집에 늙은 시어머니가 계시니 누가 있어 봉양(奉養)을 하고, 나이 어린 외로운 아들을 또한 누가 있어 거두어 기를 것인가!
살고 죽는 것을 생각함에 차마 순리(順理)를 거역(拒逆)할 수 없으므로 마음을 자제(自制)하고 정성(精誠)과 예(禮)를 갖추어 상례(喪禮)를 치렀으며, 늙으신 시어머니가 마음을 상(傷)하고 지나치게 울어 몸이 상(傷)할 것이 두려워서 봉양(奉養)에 더욱 정성(精誠)을 쏟았다.
훗날 다시 홀시어머니가 병환(病患)이 들게 되자 날마다 약(藥)을 바치고 목욕(沐浴)시켜드리는 치성(致誠)을 드림에 일찍이 지극(至極)함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시어머니의 상례(喪禮)를 치르게 되자 슬퍼하여 몸의 상(傷)함이 도를 넘었으나 상례(喪禮)와 장례(葬禮)의 모든 절차(節次)가 지극(至極)히 갖추어져 유감(有感)이 없었다.
집안을 돌보기를 부지런함으로서 하고, 자식(子息) 가르치기를 의로움으로서 했다.
향년(享年) 80에 정절(貞節)을 온전히 한 채 돌아가셨다.
아! 부인의 정열(情熱)은 일찍이 효(孝)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어서 효(孝)와 열(烈)을 함께 온전히 하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이에 선비들의 의론(議論)이 본소(本所)에 이름에 감흥(感興)이 일어나서 먼저 글을 쓰서 붙임으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오래도록 전(傳)하고 그것을 쫒아 이어서 비각(碑閣)과 비석(碑石)을 세워 널리 아름다운 풍속(風俗)을 세움으로서 불후(不朽)의 뜻을 도모코자 이 완의문(完議文)의 일을 이룬 것이다.
공부자탄강2480년(단기4262년) 11월
첫댓글 앞의 사진에 대한 한자,한글 해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