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
고려시대 승 일연(一然, 1206~1289)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여성의 모습으로 화한
관세음보살의 재치와 유머가 반짝이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怛怛朴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 중기에 일연(一然) 선사는 최씨 무인정권과 몽골침입을
함께 겪는 모진 세월을 살았다.
지금의 광주광역시에 있던 무량사(無量寺)에서 학문을 익혔고,
1219년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해
대웅(大雄)의 제자가 돼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여러 곳의 선문(禪門)을 방문하면서 수행했다.
특히 1277년(충렬왕 3)부터 1281년까지
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이 때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출간은 군위의 인각사(麟角寺)에서 이루어졌고,
78세 때 국사(普覺國師)가 됐다.
일연 스님은 노년에 인각사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침에 해가 뜰 때
일연 스님의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연 스님 어머니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일연 스님의 부도탑(普覺國師塔)과 비가
경북 군위 인각사에 남아 전한다(보물 제428호).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는 그 동안 폐사로 방치돼 오다가
근래 들어 비로소 옛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여기 이야기에 나오는 노힐부득(努層夫得)은
신라 성덕왕 때 미륵불(彌勒佛)로 화현한 염불승이었다고 한다.
선천촌(仙川村 :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 출생으로
아버지는 월장(月藏)이며, 어머니는 미승(味勝)이었다.
노힐부득의 친구 달달박박(淃淃朴朴) 역시
성덕왕 때 아미타불로 화현한 염불승으로,
역시 지금의 경남 창원 출생이며, 아버지는 수범(修梵),
어머니는 범마(梵摩)였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함께 지금의 경남 창원(昌原)
백월산(白月山, 428m)에서 수도하다가 709년(성덕왕 8)
회진암(懷眞庵)에서 관음보살의 화신(化身)을 만나
그의 법력으로 각기 미륵불과 아미타불이 됐다고 한다.
이로 인해 경덕왕(景德王) 때 백월산에 남백사(南白寺)가 지어졌고
미륵보살과 아미타불의 소상(塑像)을 안치하게 됐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창원 백월산 남쪽 자락 남백사 터에
석탑재가 남아 있으며, 남백사의 절을 남사(南寺),
남백사(南白寺), 남백월사(南白月寺)로 불렸다.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오늘날 경남 창원의 진산으로 알려진 백월산 아래 자리한
어느 마을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란 두 청년이 살고 있었다.
풍채가 좋고 골격이 범상치 않은 청년들이었다.
속세를 초월한 높은 이상을 지닌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로 인물이 뛰어나고 마음도 착했다.
그러던 중 둘은 지나가는 걸인들을 보고서 가진 것이 없으면
탐욕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추수를 끝낸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장차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공부할 것을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힐부득은 머리가 몹시 아팠다.
온종일 끙끙 앓던 노힐부득은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이상한 꿈을 꿨다.
서쪽하늘에서 흰 빛줄기가 내려오더니
그 빛줄기 속에서 황금빛 손이 나타나 뜨겁게 달아오른
노힐부득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노힐부득이 잠에서 깨자 신기하게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기분이 상쾌했다.
노힐부득은 달달박박을 찾아가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달달박박이 자신도 똑같은 꿈을 꿨다고 말했다.
둘은 부처님을 알현한 것이라고 믿었다.
둘은 심지를 굳게 세우고 가족들과 헤어져 출가하기로 했다.
죽마고우인 두 청년은 드디어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갔다.
박박은 북쪽에 오두막 암자를 만들어 살면서 아미타불을 염송했고,
부득은 산의 남쪽에 돌무더기를 쌓아 암자를 만들어 살면서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다. 이들은 이렇게 다른 암자에 살면서
도를 닦고 있었다.
그렇게 입산 후 3년이 지난 성덕왕 8년(709)
어느 봄날 저물어가는 밤, 갓 스물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낭자가 난초 향기를 풍기면서 박박이 살고 있는
오두막 암자에 찾아들어 달달박박에게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청했다.
“걸음은 더디고 해는 떨어져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한데,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하신 스님은 노하지 마소서.”
달달박박은 오랫동안의 청정한 수행생활이
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말미암아 파탄 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생각할 여지도 없이
그녀를 한 마디로 냉정하게 거절했다.
“사찰은 깨끗해야 하므로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지체하지 마시고 어서 다른 곳으로 가 보시오.”
오갈 데가 없는 아름다운 낭자는 이번에는 노힐부득을 찾아간다.
한층 간절한 어조로 노힐부득에게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는 낭자,
노힐부득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꾸었다.
노힐부득은 계율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계율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이곳은 부녀와 함께 있을 데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고,
맑고 고요하기가 우주의 근본 뜻과 같거늘
어찌 오고감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서 밤이 어두우니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자신이 받아주지 않으면 인적 없는 산골짜기를
혼자 밤새도록 헤매야 하는 그녀의 처지를 생각하니,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노힐부득은 정성껏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밤이 깊어가자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잡념과 싸우고자 염불을 시작했다.
열심히 염불을 하는 노힐부득은 여인이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새벽이 되자 낭자는 급한 목소리로 노힐부득을 찾았다.
노힐부득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인이 아랫배를 감싸 쥐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스님 제가 산고(産苦)가 있으니
스님께서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여인은 산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노힐부득은 마른 풀을 모아 아이 낳을 자리를 마련했고,
여인은 노힐부득의 도움을 받아 긴 시간 끝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여인은 해산을 끝내고 목욕하기를 청했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일었으나,
어쩔 수 없이 쩔쩔매면서도 자리를 치우고
물을 덥혀 아이를 목욕시켰다.
노힐부득은 여인의 몸도 씻어줬다.
그러자 신묘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인의 몸에서 향기가 나면서
목욕통 속의 물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아니!" 노힐부득은 놀라 크게 소리치니
낭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을 하시지요."
마지못해 낭자의 말에 따라 목욕을 한 부득은 또다시 크게 놀랐다.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더니
자신의 살결이 금빛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에는 연화좌대가 하나 마련돼 있었다.
낭자가 부득에게 앉기를 권했다.
“나는 관음보살이오. 대사를 도와 대보리를 이루게 할 것입니다.”
북암의 박박은 날이 밝자,
“부득이 지난 밤 필시 계(戒)를 범했겠지.
가서 비웃어 줘야지.” 하면서 남암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부득은 미륵존상이 돼 연화좌대 위에 앉아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며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부득이 그간의 사정을 말하자, 박박은 자신의 미혹함을 탄식했다.
“나는 마음에 가린 것이 있어 부처님을 뵙고도 만나지를 못했구려.
먼저 이룬 그대는 부디 옛정을 잊지 말아 주시오.”
미륵불이 된 부득이 말했다.
“통 속에 아직 금물이 남아 있으니 목욕을 하시지요.”
박박도 목욕을 하고 아미타불을 이루었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앞 다투어 모여 법을 창하자,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설한 뒤,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
훗날 경덕왕이 즉위해서 이 말을 듣고는
백월산에 큰절 남백사(南白寺)를 세워 금당에 미륵불상을 모시고
아미타불상을 강당에 모셨는데,
아미타불상에는 박박이 목욕할 때 금물이 모자라
얼룩진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부득과 박박의 성불을 통해
당시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한 여인에 대한 부득과 박박의 태도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데,
박박은 자신의 수도 정진을 위해 여인을 배척하는 반면,
부득은 계율을 깨고 그 여인을 절 안으로 받아들여
해산을 돕고 목욕까지 시킨다.
결국 먼저 성불을 하는 것은 부득이었다.
이로써 불교의 진정한 정신은 계율에 집착이 아니라
대중에 대한 자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부득이 수도 생활을 하는 박박에게까지 도움을 주어
함께 성불을 한다는 면에서 불교의 자비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설화에서 달달박박은 수행에 엄격한 수도승의 모습이며,
노힐부득은 인자한 바라밀승의 모습이다.
율법은 본래 바르게 살기 위해 만든 계율이다.
그런데 때로는 모든 계율이 포승줄이 돼 자승자박할 때도 있다.
바로 달달박박의 예가 그러할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도 결국은 중생제도에 목적을 두는 것인 만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없고,
보다 중요한 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안으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밖으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만약 중생을 제도하는 것보다 개인의 깨달음이 우선한다면
애초 상구보리만이 있을 것이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의미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 갈대다발의 비유로 연기사상을 설파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 작성자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