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 부동산 아카데미 예산.아산지역 풍수답사계획
1. 일시 ; 2009년 8월 8일(토요일) 08시~19시
2. 출발장소 ; 잠실역 3번출구 롯데호텔앞(너구리상앞)
3. 답사일정 ; 충남 홍성, 예산,아산지역
1) *홍성 명당 ; 충남 홍성군 은하면 대천리, 은하면사무소 뒷편
2) 남연군 묘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5-28(가야산 도립공원내)
3) 손석우 선생묘 ; 남연군 묘 뒷쪽
4) *이회창 총재 선조묘 ; 충남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 산13-1
5) *김영삼 대통령 장인묘 ; 충남 아산시 송악저수지 근방
6) 맹사성 고택 ;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 1,4,5번은 모종수교수 점혈지임
* 답사코스 -1. 홍성 은하면 사무소뒤, 홍성명당 ->2.가야산 도립공원내 남연군묘/손석우묘-> 3. 중식(오얏골 농장) ->4.예산 예당저수지 인근 이회창 선영->5. 아산 송악저수지 인근 김영삼 전 대통령 장인묘->6.맹사성고택
4. 답사안내 및 설명 ; 서경대 모종수 교수
5. 답사지 내역
1) 홍성 명당 ; 충남 홍성군 은하면 대천리, 은하면사무소 뒷편
09년 5월 23일(토) 이장한 묘, 은하면 사무소 뒷편에 있으며 최근에 용사한 묘이니 직접 현장을 보고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장은 모종수교수 주관, 김진태, 권오삼님이 현장에 참관하였습니다.
2) 남연군 묘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5-28(가야산 도립공원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 2명의 왕을 배출한 묘, 대원군이 풍수길지를 찾아 이장한 묘입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으로 규모는 약 5,590㎡이다. 풍수지리설을 믿은 대원군 이하응이 한 풍수가에게 명당을 찾아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풍수가는 이 자리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1844년(헌종 10) 대원군은 명당자리를 찾아 옛 가야사를 불 지르고 탑을 부순 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썼다. 그리고 인근 골짜기에 절을 지어 보덕사(報德寺)라 이름 짓고 개운사 주지인 도문(道文)을 초대 주지로 삼은 후에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守護一品大僧)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載晃)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탄압을 가중시켰다.
3) 손석우 선생묘 ; 남연군 묘 뒷쪽
생전에 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던 명지관 육관도사 손석우의 묘는 충남 예산 덕산의 가야산 자락에 있다. 가까이에는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남연군묘가 있는데, 육관도사는 생전에 대원군이 찾은 곳은 진짜 자미원(천자의 자리)이 아니라 했다. 가야산에는 그보다 더 좋은 명당터가 있다는 것이었다. 육관도사가 죽은 후 그의 묏자리가 어디인지, 그곳이 진짜 명당인지 아닌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랴. 자미원이 어디인들, 설사 손씨 천자가 나온다 한들, 진정 그것이 천기이고 음택의 일이라면, 세간이야 어찌해 볼 도리가 있겠는가.
남연군의 묘쯤은 진정한 자미원이 아니다. 이 땅의 오장육부 내포땅 가야산에는 또 다른, 진정의 자미원이 있나니. 나, 그곳이 여기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곳은 북두칠성의 기운을 한몸에 받는 곳이고, 그 앞에 커다란 못이 있구나. 북망의 하늘엔 별빛이 가득하고, 용연엔 천사들이 목욕재계하나니. 복치형에 용혈사수, 장풍득수니, 서출동류니, 계수즉지니, 아, 나는 끝내 천기를 누설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나의 천자는 어이 치산조차 하지 않는구나. (글 ; 유성문 여행작가 rotack@lycos.co.kr )
4) *이회창 총재 선조묘 ; 충남 예산군 신양면 녹문리 산13-1
대권에 여러차례 도전하면서 조상묘를 여러차례 이장하여 언론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곳중의 하나입니다. 아파트나 연립주택단지 조성, 도로신설 등으로 예산리,손지리->산성리->녹문리로 2차례 이장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답사하는 곳은 녹문리의 10기입니다. 이중 9기를 모교수께서 이장하였는데 풍수사들간에 가장 말이 많은 곳 중의 하나이니 직접 현장을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5) *김영삼 대통령 장인묘 ; 충남 아산시 송악저수지 근방
서울 외곽에 있던 묘를 신설도로가 나는 바람에 김영삼 대통령 재직당시 이장한 묘입니다. 모교수께서 이장을 주관하셨는데 이번에 처음 답사하는 곳이니 좋은 공부가 되리라 봅니다.
6) 맹사성 고택[孟思誠古宅] ;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중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맹사성(孟思誠)이 살던 가옥. 고려 말의 무신 최영이 지은 집으로 그의 손자사위인 맹사성의 부친 맹희도가 물려받은 후 수백년간 대를 이어 살아오며 보존되었다. 신창맹씨 종중 소유로 후손 맹흥렬이 관리하고 있다.
고택은 설화산을 등지고 있는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ㄷ자형 맞배지붕집이다. 뜰에는 맹사성이 심은 수령 600여 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으며, 은행나무 아래서 강학(講學)했기 때문에 맹씨행단이라고도 불렸다. 이 고택과 구괴정, 은행나무를 포함하여 아산맹씨행단이라 불리며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고택 뒤에는 맹사성과 부친, 조부 등 맹씨 3위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 세덕사와 정각이 함께 있으며, 맹사성의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유물 전시관이 세워졌다. 이곳에 고불맹사성유물일괄(중요민속자료 225)이 보관되어 있다.
맹사성은 고려 우왕 때 장원 급제하고 청렴하면서도 강직한 관직생활로 선비정신을 드높였는데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주변에 현충사, 온양온천, 외암리 민속마을, 아산온천, 도고온천, 이충무공묘, 온양민속박물관, 삽교천방조제 등의 관광지가 있다.
6. 남연군묘 및 손석우묘 답사기 (올미)
1) 예산 남연군묘 답사기
일시 ; 2008년 4월13일, 위치 ; 예산군 가야산 공원내(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 5-28 )
높은 언덕에 반구형 봉분,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지사 정만인이 잡은 곳, 당초는 절터였음. 묘를 옮기고 7년후 차남을 낳았는데 철종의 후사가 없어 12세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함 - 고종
이 자리는 힘이 있어 좋다. 좌우측에 돌이 박혀 있고 내룡과 함께 보면 삼발이, 그런데 안산이 없다. 안산이 없으면 내 부하가 없거나 자손이 없다. 백호쪽이 좀 높다. 백호는 지손 또는 여자쪽, 청룡은 장손, 백호는 멀지만 커서 백호쪽이 판을 친다. 묘앞 우측의 바위는 옥쇄에 해당된다. 박정희선대 묘는 옥쇄가 앞에 있음. 도장인자, 인암이라고 함 왕이 되자면 인암이 있어야 한다. 모택동도 인암이 있다.
상석이 비뚤어져 있다. 상석에 두고 좌향을 재면 안된다. 작명등을 보고 좌향을 재든가 ........ 결정적인 것은 안산이 없다. 밥상이 없다. 내룡은 ㄴ자를 그리다가 다시 ㄱ자로 들어 온다. ㄱ자 ㄴ자를 볼 줄 알아야 재혈이 제대로 된다. 잘 못 보면 좌향을 1자내지 2자가 틀려진다. 건좌손향, 내룡이 우회전하다가 마지막에서 좌회전 한다. 명당일수록 맥따라 써야 한다. 현공으로만 쓰는지 아는데 현공으로 좌향을 트는 게 아니고 현공으로도 당연히 좌향이 맞아야 한다. 좌향은 맥따라 써야 한다.
손석우묘를 들렸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과협처를 지나 남연군묘에 다시 왔다. 다시보면서 정리하면 1. 과협이 좋다. 청룡백호가 없어 바람이 쎄지만 과협이 좋고 내룡의 좌우 변화도 보인다. 2. 청룡줄기중 하나가 암벽산으로 치고 들어오나 이 자리가 힘이 있어 무시해도 좋다고 본다. 3. 백호가 돌아 않은 듯 하는가? 백호의 골짜기 바람이 영향이 있다고 보는가? 높아서 관계가 없다. 4. 결정적인 것은 안산이 없다. 물이 항정없이 빠져 나간다. 그러나 좌우측의 석맥이 있어 설기되지 않고 내룡과 더불어 삼발이 역활을 해주고 있다.
2) 신안 손석우(1917~1998) 묘 답사기
일시 ; 2008년 4월 13일, 위치 ; 예산 가야산 도립공원내 ( 남연군 묘 뒤편, 오얏골 농장뒤) 땅속을 훤히 본다고 큰 소리치고 다녔던 고 손석우의 묘를 이제야 가 보게 되었다. 본인이 점혈하였다고도 하고 제자가 용사하였다고 하는데 자미원터로 소문나 있고 이곳이 명당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명당이 아니다고 하는 사람도 많은 곳이기도 한 곳이다.
전체적인 국세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으나 주산을 보면 암석이 보이고 갈라져 있으며 용맥은 오른쪽으로 하나가 내려가고, 왼쪽으로도 하나가 내려가는데 그 사이의 분맥지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당대의 최고 풍수사가 잡은 곳이니 초학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난해한 곳이다. 다만 당대의 최고풍수사도 결국 이런 곳에 들어 가는구나 생각하며 명당에 들어가려면 어히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혹시 조금 더 내려오면 덩어리 진 곳이 있을까하여 내려 가보니 덩어리가 좌우균형이 맞지 않고 오른쪽으로는 줄기가 더 내려가고 있다.
신안의 경지에 오르면 혹시 새로운 것들이 보일지 모르는데 명당의 공통인자 1. 발복이 있었다. 2. 주산이 좋다. 3. 용세가 뚜렷하다. 4. 덩어리가 통통하고 살이 쪘다. 5. 주변국세까지 포근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중 몇 가지를 충족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과연 이 자리가 명당일까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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