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실제로 다우징을 해보면 형기풍수학자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어옴을 보게 됩니다
위 두장 사진의 정룡맥도<正龍脈圖>는 수행자인 제가 체크한 맥<脈>의 흐름이고
아래는 형세 풍수학자 지선생이 바라본 간월암으로 오는 룡맥이다
형세로서 풍수지리<風水地理> 길흉<吉凶>을 논<論>하시는분으로 알고 있다
위 사진은 형기 형세풍수학자가 언급한 간월암으로 오는 룡맥
<사진은 학문 목적으로 가져온것이니 큰 양해바랍니다>
즉 正脈이 흐르면서 방향을 바꿀때는 지탱하는 형세에는 正龍에서 갈라진 기운이 같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는 正龍의 氣運 기준이다 正龍의 氣 자체가 수행자가 아니면 구분이 잘 안되실듯 하다
正龍脈에는 특별한 氣運이 라인을 따라 흐름이 있다라는게 重要한것
도수맥<渡水脈>
풍수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의 생기가 전달되는 산맥이다.
섬이나 바다 속도 산맥이 존재한다. 풍수에서는 이를 도수맥<渡水脈>이라 부른다.
지상의 산맥이 물속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진도·무창포·간월도·제부도 등에서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물이 갈라지는 현상은
위 두장 사진의 정룡맥도<正龍脈圖>는 수행자인 제가 체크한 맥<脈>의 흐름이고
아래는 형세 풍수학자 지선생이 바라본 간월암으로 오는 룡맥이다
형세로서 풍수지리<風水地理> 길흉<吉凶>을 논<論>하시는분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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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정룡<正龍>이 선회<旋回-방향을 바꿈>할때는 항상 측면에서 지탱<支撑>해주는
버팀목 즉 分脈을 만드는것이 氣運 체크가 된다
합리적인 氣의 흐름이라 할수 있겠다
즉 氣의 흐름도 합리성<合理性>을 지녔다 할수가 있다
지탱해주는 分脈은 정맥<正脈>이 100정도 기운이라면 마이너스 20을 한 80정도의 氣運으로
측정이 된다
正龍脈<정룡맥>의 氣運 종류를 기준으로 봤을때 그 이하의 분맥<分脈>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한다고 해도 無所用<무소용>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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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룡맥<正龍脈>은 설명을 드렸고 정룡맥 라인이 멈춰진곳에는
그곳에 혈<穴>이 형성<形成>되었다면 대부분 地靈<지령>이 나타난다
김징의 墓 기타 穴處로 인정된곳에서 다수 확인한바 있다
특이한것은 龍脈을 따라 地靈脈이 형성 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간월암<看月庵> 경우는 海水下로 이어져 올라오는게 체크가 된다
지령<地靈>이란건 수행을 깊이 해야만 체크가 가능한걸로 보여지는데
기운이 마지막에는 어떤 氣로 형성된 생명체? 형식으로 나타난다
수행자 입장에서 보여지는 부분들은 형세론의 風水學과는 다소 차이가 나지만 하여간
그 부분을 말씀 드려본다
地靈脈<지령맥>이 나타나는 경우는
1-온전한 穴處<혈처>에서
2-아주 나쁜 氣脈<기맥>이 어우러진곳
2종류로 극대극의 경우이다
하나는 穴處로 福을 받는 경우
하나는 惡殺 雲集<악살운집>으로 파탄 必敗<필패>의 땅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저 地靈 생명체?가 서 있는곳은 大吉地 혹은 大凶地가 분명한 증거이다
간월암도 穴이 맺어지고 다시 그 증거로 수행자 측면에서 보면 다시 地靈이 形成되었다
따라서 形勢論의 혈의 증거나 氣運의 측면에서는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부분들이 있는건 사실이다
이번 글에서는 말씀 드린 부분 요약입니다
1-正龍脈은 특별한 공통적인 氣運이 흐르고 있다
2-正龍脈이 急旋回<급선회>할때는 스스로 正龍보다는 덜한 氣運은 반대로 보내어 지탱하고 있다
3-穴 증거를 찾기가 무척 난해한데 수행자 입장에선 穴이 形成된곳에는 반드시 地靈이 형성된다
4-分脈<분맥>은 正龍<정룡>에서 기운이 빠진채로 흐르고 穴이 나타나기는 하나 부족함이 많다
위 측정된 모든 기맥은 다우징으로도 측정이 가능하다
正龍
풍수지리에서 결혈처(結穴處)는 곁가지의 산줄기가 아니라
중심으로 이어져 온 정룡의 정기를 받아 내려 온 것을 으뜸으로 친다.
그것은 그 기운이 굳세게 내려왔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했을 때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종법사상을 반영해서 정룡으로 내려온 맥은 가업의 대를 잇는 장남에게
길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한다.
정룡의 맥이 희미하고 치우쳐 있거나 하면
그 기운이 바르지 못하다고 여겨 좋은 자리로 보지 않는다.
정룡이 힘이 없고 기맥이 약하게 내려오면 자연히 방룡의 기세가 우세하게 되기 때문에
풍수지리에서는 정룡을 귀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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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看月庵>
서산에 위치한 간월도 간월암 가는 길은 여느 산사행과 다르다.
서해 천수만을 품에 안고 있는 간월암은 4면이 바다인 작은섬에 위치하고 있다.
육지에서 간월암 가는길 30여미터는 주기적으로 물에 잠긴다.
매월 음력 초순일주일과 그믐 일주일, 그리고 14일부터 일주일동안, 하루 3~4시간씩 12시간 간격으로 물에 잠긴다.
간월암이 간월도에 자리잡게 된 것은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학 스님이 어머니 태중에 있을때 부친이 나라빚을 져서 갚을 것이 없자 피신했다.
관가에서는 법집행이 어렵게 되자 만삭의 부인을 대신 호송했다.
호송도중 산기를 느껴 쉴곳을 찾았으나 때가 엄동설한이어서 적당한 곳이 없었다.
적당한 곳을 찾던중 눈이 없고 햇볕이 드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부인은 아기를 낳은 후 그곳에 아기를 두고 관가로 호송됐다.
부인이 몹시 피로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현감은 호송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현감은 자초지종을 듣고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고 꾸짖고 급히 부하를 그 곳으로 보냈다.
아기는 눈속에서 큰학의 날개속에 파묻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은 현감은 상서로운 일이라 하고 아기이름을 `무학'이라고 지어주었다.
그리고 후에 아기가 발견된 곳을 `학돌재'라 불렀다.
공민왕3년(1353년)경 청년 무학은 20세 되던해 나옹스님을 은사스님으로 출가했다.
스님은 인생무상을 느끼고 간월도에서 바다를 벗삼아 정진, 정진을 거듭했다.
어느날 스님은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 `달을 보고 견성했다'해서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 했고 섬이름도 자연스럽게 간월도가 됐다.
나옹스님은 무학스님이 더 배울것이 없다하여 법호를 무학이라 지어 주었다.
고려의 국운이 저물어 갈무렵 무학스님은 함경도 고원 백연암에서 이성계에게
5백일 기도를 봉행케하고 기도를 마친 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다는 해몽으로 하였다.
이후 이성계가 등극한 후 당시 간월도.황도 등을 사패지로 정하여 무학스님을 주석하게 하였다.
이후, 조선조의 억불정책에 따라 간월도도 함께 쇠퇴했다.
완전히 폐허화 된 곳을 1941년 만공스님이 무학선사를 기려 복원했고
태평양전쟁이 극심할 때는 이곳에서 부처님께 천일기도를 봉행하며 `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고난을 겪고 있는 모든 중생을 구해달라'는 간곡한 발원을 부처님께 드렸다.
1천일 기도 회향 3일후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다.
해방된 사실을 만공스님께 전했더니 천일기도의 영험함과 환희심을 느껴 `세계일화'라는 휘호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만공스님은 특히 간월암을 아꼈고, 경봉.춘성.효봉.금오스님등 근세 유명한 스님은 거의 간월암에서 정진했다.
또 성철스님도 1년간 정진했다고 알려져 있다.
관음보살상이 세차례나 도난당했었지만 그때마다 무사히 되돌아 오기도하였으며
만공스님이 간월암을 중창한 이후로는 도난당하는 일도 없어졌다고 한다.
간월암은 (재)선학원에 등록된 포교원(예비분원)이다.
주지 원융스님은 "사람이 기를 많이 쓰면 탈진하게 마련인데, 기를 보충하는데는 간월암이 적격"이라고 소개했다.
간월암은 기가 성해 단지에 넣어둔 음식이 상하지 않고, 이곳에 온 신도들은 신경통 요통을 한결 덜 느낀다고 한다.
현재 간월암은 법당밑에 요사채를 짓는 등 불사가 한창이다.
스님은 범종과 산신각도 점차 보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원융스님은 간월암을 복원해 옛 명성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큰원을 세웠으니 부처님이 반드시 도와주실 겁니다. 곧 관음성지로의 면모도 되찾고요."
간월암은 성지의 명성만큼 영험담도 많다.
몇해전 인천에 있는 노보살이 부처님께 기도발원을 했다.
기도에 들어간 후 하얀옷을 입은 관음보살을 친견한 후 집안일은 물론 모든 걱정이 해소됐다고 한다.
또 동네 미사는 어떤부부가 아이가 없었는데 기도후 아들 넷을 두고 잘살고 있다고도 한다.
간월도의 인근 8.27㎢가 1983년 10월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바뀌었다.
그 이전에는 교통이 불편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간월도의 간월암만큼 유명한 것이 하나 있다. '어리굴젓'으로 그 명성은 조선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태조대왕에게 무학선사가 어리굴젖을 진상하면서 부터 그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간월도 어리굴젖은 임금에게 진상되던 특별음식이었다고 한다.
간월도 어리굴젖은 다른지방 굴보다 알이 잘고 빛깔이 거무스름한 편이지만
굴에 나있는 잔털의 수가 많아 양념이 속까지 잘 밴다고 한다.
단맛이 돌고 향기로워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정거장앞에는 석조물로 된 어촌 촌부들의 조형물과 어리굴젖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마을의 발달과 함께 바다가 척박해져 예전 전성기때 만큼 굴이 생산되지 않지만
옛날 그 명성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징표였다.
스님들의 참선수행처였던 간월암. 요즘은 인근지역의 신도들과 철따라 오는 성지순례단이
간간히 절을 찾으며 특히 봄에는 방생하기위해 이곳을 들른다고 한다.
간월암을 취재하는 사이, 어느덧 물이 불어 길이 막히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둘러 귀로에 올라 뒤를 돌아다 보니 어느새 간월암으로 통하는 길이 물밑으로 숨어 버렸다. 석양이 드리운 간월암의 모습을 육지에서 바라보니 금새라도 관세음보살님이 나투실 것만 같았다.
간월암에느 氣가 盛해서 단지에 넣어둔 음식이 상하지 않는다
이런말은 입증되기전에는 믿지 않는게 좋을듯 하다
입중이 안된 말들을 쭉 따라 들어가면 나중에는 되돌아 나올수도 없는 허황한 지경에 빠져들게 된다
정신분야는 무엇이건 반드시 여러갈래로 입증을 하고 크게 의심 또 의심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상한 세계로 빠져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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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oobo@hanmail.net
1-음력 양력 구분한 생일 생시 즉 출생시간 /궁합은 남녀 두분 생년월일시
2-이름 한자 한글 <익명 상담 제외>
3-한글 이름은 한자 제외 <익명 상담 제외>
4-남여 구분
5-궁금하신 사항
6-상류층과 일반 사주 보는 방식이 다르니 어렸을때 가정 환경을 간략히 기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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